소설리스트

데스트로이어-41화 (42/158)
  • 2. 아무도 믿을 수 없다면 …… (1)

    「…환상이 만들어낸 존재였다고도 생각된다. 과연, 그것은 어떠한 것이었을까.

    사실 지금에 와서는 그것에 대하여 알 수 없다. 당시 사건의 당사자들이 그

    것에 대하여 밝히기를 꺼려한 탓으로, 지금에 와서는 그에 대한 어떠한 자료

    도 남아 있지 않는 때문이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그것이 어떠한 존재였든, 그것은 사람들 사이의

    불신을 조성했다는 것이다. 당시 사건의 당사자들은 서로를 믿지 못하고 서로

    를 적대시하게 되었고, 결국은 서로를 죽이기에까지 이르렀다.

    악감정―. 사실 '그것'은, 그 악감정 그 자체였는지도 모른다. 불안. 불신.

    적대. 그 감정 자체가 형상화되언 나타난 것일지도 모르는 것이다. 결국, 그

    것의 실체는…」

    비전의 서, 프리네리아력 57년 발행

    4장 '악의의 존재들' 에서 발췌.

    "야, 이 말아먹을 자식아! 구경하지만 말고 좀 도우란 말이다!!"

    채챙!

    금속과 금속이 강하게 부딪히는 소리가 숲 속에 울려퍼졌다.

    "칵!"

    투덜투덜대며, 한 남자가 산적들을 상대로 싸우고 있었다. 약간 날카로워 보이는

    인상의 사내였는데, 턱까지 길게 기른 금발을 가르마를 내리고 있었고, 이마에는

    붉은 색의 헤어밴드를 하고 있었다. 하프 플레이트 메일, 붉은 망토, 롱 소드. 꽤

    흔한 복장이다.

    그의 주위를 둘러싼 산적― 다섯 명은 꽤 덩치가 큰 자들이었는데, 이 남자를 둘

    러싸고 집중공격을 가하고 있었다.

    가운데에 갖힌 남자는 그들의 공격을 막아내며 연신 투덜댔다.

    "나 죽는 게 보고 싶은 거야?!!…"

    그렇게 말하며 그는 잠깐 위를 올려다보았다. ―공중. 그들의 위, 공중에 한 존재

    가 있었다. 아름답다… 라는 생각이 드는 미려한 외모. 청순하다는 느낌도 든다.

    길게 늘어뜨린 녹발, 그리고… 길고 뾰족한 귀. 엘프… 엘프라고 불리는 존재다.

    엘프는 생긋 미소지었다.

    "귀찮아."

    "……어이!!"

    "시린. 이건 시련인 거야."

    엘프는 가볍게 손가락을 흔들었다. 시린이라 불린 남자는 검을 휘둘러 산적들의

    공격을 막아내며 외쳤다.

    "궤변 늘어놓지 마!"

    "흐음…, 너무한데 시린. 너에 대한 나의 마음을 그렇게 간단히 묵살하면 안 되지

    ."

    "…헛소리마."

    챙! 채챙!

    시린은 문득 왼손을 들어 이마의 땀을 닦아냈다. 엘프가 다시 말했다.

    "겨우 산적 다섯 명에게 그렇게 고전하다니. 너도 수행이 부족해."

    "…'겨우'가 아니란 말야! '겨우'가!"

    …라고는 해도, 일대 오로 싸우는 주제에 꽤나 입심 좋게 떠들고 있는 시린이었다

    . 위기감 같은 것은 느끼지 못하는 듯한 그의 태도에 산적들은 열이 뻗쳤지만, 시

    린은 상당히 훌륭하게 산적들의 공격을 방어해내고 있었기에 어떻게 할 수는 없었

    다.

    "네가 한 번 싸워 보란 말야!"

    "흐음. 시련이라니까.

    그나저나 너도 참 대단하네. 10분이나 걸리고서도 끝을 못내다니. 그것도 산적들

    을 상대로."

    엘프의 말에 시린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제길. 네게 도움을 부탁한 내가 바보지."

    "잘 생각했어. 스스로의 무지를 아는 것이야말로 발전의 시초라고 할 수 있겠지."

    "집어쳐."

    욕설을 내뱉으며 시린은 거칠게 검을 휘둘렀다.

    "…싸움이 일어난 모양입니다."

    세이어가 입을 열었다.

    "예?… 도와줘야 하지 않을까요?"

    린이 말했고, 세이어는 가만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누구를 도와야 한다는 것입니까?"

    "예? 물론 좋은 사람들을 도와야…"

    "누가 선이고 누가 악입니까?"

    약간 굳어진 얼굴로 세이어가 물었다. 어쩐지 차가워진 듯한 그의 태도에 린은 흠

    칫하며 세이어를 바라보았다. 세이어는 천천히 말했다.

    "누구나 나름대로 살아가는 이유가 있기 마련입니다. 그들이 택한 길이고, 그들이

    나아가는 길입니다. 거기에 선악의 구별은 무의미합니다.

    그런 것에 끼어들어야 할 이유도, 필요도 없습니다."

    "하, 하지만."

    린은 말했다.

    "그 때… 세이어 님께선 절 도적들에게서 구해주셨잖아요…?"

    그녀의 말에 세이어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한차례 고개를 가로젓고 나서 그

    는 말했다.

    "린 씨를 구하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들이 제가 가려는 길

    을 방해하기에 그들을 없앤 것 뿐입니다."

    "그래도…."

    "특별히 그들이 악이라고 생각해서 그들을 죽인 것이 아닙니다.

    악인들을 없앤다…, 그런 생각은 무의미한 것입니다."

    세이어는 고개를 저었다. 신들조차 선악이 뒤집혀 있는 이런 세상에서 굳이 선악

    을 구별해야 할 이유는 없다. 선이 악으로 불리는 이런 세상에서는, 말이다.

    "무의미… 하다니요? 그게 무슨 뜻이죠…?"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린이 물었다. 세이어는 한숨과 함께 대답했다.

    "뒤틀려 있기 때문입니다."

    "……?"

    린은 의아한 시선을 던졌지만, 세이어는 더 이상 대답하지 않았다. 세이어는 금속

    음이 들려오는 저 편을 향해 고개를 돌린 채 한동안 가만히 있더니, 이윽고 천천히

    고개를 돌리고는 다시 앞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약간 우물쭈물하며 서 있던 린은

    그것을 보고는 황급히 몸을 돌려 그를 쫓았다.

    세이어가 중얼거렸다.

    "이 파장… 파이어 볼이로군요."

    "……?"

    시린은 비틀비틀 몸을 일으켰다. 그는 고개를 쳐들었다. 여전히 공중에 떠 있는

    채 여유 있게 미소짓고 있는 엘프를 바라보며 시린은 고함을 질렀다.

    "야이 미친 엘프야!! 싸우고 있는데 그 한가운데 파이어 볼을 던지면 대체 어쩌자

    는 거야!!"

    "살아 있잖아, 너."

    엘프는 되려 이상하다는 듯이 말했다. 시린은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손가락으로

    누르고는 다시 외쳤다.

    "이 무책임한 엘프 같으니!!…"

    "실드 쳐줬잖아."

    엘프는 생긋 웃더니, 천천히 바닥에 내려섰다. 새카맣게 타버린 채 쓰러져 있는

    산적들을 둘러보며 엘프는 말했다.

    "도와달라고 네가 징징거려서 도와줬더니 왜 또 그러는 거야?

    기껏 실드도 쳐줬구만. 실드 쳐줬으니까 너 그냥 튕겨나가고 말았지, 안 쳐줬으

    면 너도 이 꼴이 되었을 걸?"

    "…잘났다, 정말."

    시린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엘프는 살짝 미소짓더니, 시린의 앞으로 다가왔

    다.

    "후훗. 화난 거야, 시린?"

    "당연하지!"

    "자자, 화 풀어. 자아, 부비부비도 해줄 테니까."

    그렇게 말한 엘프는 얼굴을 시린의 목에 파묻고는 부비적거렸다. 시린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는 엘프를 확 밀쳐내며 외쳤다.

    "남자와 부비적거리는 취미 따윈 없어!!…"

    "흐음. 애정이 식었구나 시린."

    "식을 애정이 대체 어디에 있다는 거야 이 변태 엘프야!!"

    일그러진 얼굴로 시린이 외쳤다. 엘프는 생긋 웃더니, 가볍게 고개를 저으며 말했

    다.

    "변태라니. 실례야. 나에겐 네이시라는 멋진 이름이 있다고.

    자. 불러봐. 마·이·하·니·네·이·시."

    "…집어쳐!!"

    시린은 네이시의 머리를 한대 후려갈겼다.

    - To be continue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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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시 등장!!…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말해둡니다만, 네이시가 등장했다고 해

    서 데스트로이아가 개그풍으로 바뀐다든지 하는 것은 아닙니다. 데스트로이아는

    언제나 기본적으로는 진지 & 음습(?) 입니다. 네이시가 저러는 것도 다∼ 이유가

    있지요.(뭐… 그렇다고는 해도 사실 좀 이상한 녀석이긴 하지만…)

    Neissy였습니다.(네이시 가 아닙니다!!)

    번 호 : 7060 / 21076 등록일 : 2000년 05월 19일 23:40

    등록자 : NEISSY 조 회 : 286 건

    제 목 : [연재] ◈ 데스트로이아 ◈ # 41

    데스트로이아 DestroiA

    Fa-las de sy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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