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운명을 거역하는 것이기에 …… (33)
세이어는 지그시 입술을 깨물더니, 이윽고 세라린의 눈을 마주보며 말했다.
"거절…하겠다면… 어쩌시겠습니까?"
세라린은 가볍게 피식 하고 웃었다.
"거절하는 이유는?…"
"……."
세이어는 입을 다물었다. 세라린은 조소하며 말했다.
"무의미한 생이다. 어디에 의미가 있다는 거지?"
"……."
"린… 그 여성."
세라린이 말했고, 세이어는 미간을 좁히며 세라린을 바라보았다. 세라린은 얼굴에
비웃음을 띄우며 말했다.
"그녀에게 왜 그렇게 행동한 거지?…"
그는 잠시 말을 끊었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어중간한 태도를 취한 이유가…"
"후훗."
세이어가 조소를 터뜨렸다. 세라린은 가볍게 눈쌀을 찌푸리며 세이어를 바라보았
다. 세이어는 입술의 한쪽 끝을 치켜올리며 말했다.
"세라린…. 당신은 누구에게 화를 내시고 있는 것입니까?"
어둠 속에서 세이어의 눈동자가 빛났다.
"과연… 당신과 저는, 비슷하군요…."
"뭐?…"
"다른 존재에게서 스스로의 모습을 보는 것이겠지요…. 그리고, 그것을 비웃는 것
입니다. 후후훗. 우습지 않습니까?…"
세이어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예, 그렇습니다. 전 린 씨를 비웃었지요. 다른 사람이 결정한 대로 행동할 줄 밖
에 모른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사실 저는 저를 비웃고 있던 것이었습니다.
그렇지요…, 제가 비웃고 있던 것은 제 자신, '운명'에 순응해야만 하는 저였기
에, 저와 비슷한 다른 존재들을 비웃어 그것으로 위안을 삼고자 한 것입니다. …
하지만, 그것으로는 위안이 될 수가 없었지요."
"……."
세라린은 표정을 굳혔다. 세이어의 말을 계속되었다.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저 자신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을 비웃을 일이…
아니었지요."
세이어가 자조적인 미소를 지었다.
"세라린… 당신은 '사라딘의 대리자'…이겠지요?
당신이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
세라린은 피식 웃었다.
"…네가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해라, 세이어."
"후…후후후훗…."
세이어가 낮게 웃었다.
"…그렇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제 자신이었던 것이지요.
전, 당신의 복제 따위가 아닙니다. 당신과는 다른… 또다른 존재이며, 자신의 존
재를 주장하는… 계속 존재하기를 주장하는 그런 존재입니다.
운명?… 전, 순응 따위 하지 않겠습니다."
세이어는 천천히 마나를 끌어올렸다.
"제게 당신의 말을 따라야 할 의무는 없습니다. 전…, 당신에게 흡수당하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 당신께서 정히 저를 흡수하고 싶으시다면… 해 보십시오. 단,
저는 저의 온 힘을 다해 그것을 거부하겠습니다."
세이어는 차갑게 미소지었다.
"전… 당신의 인형이 아니니까요."
"……."
세라린은 피식 미소지었다. 자신에게 대항할 준비를 하는 세이어를 바라보며, 그
는 가볍게 조소를 터뜨렸다.
"…쿠쿠쿡….
그것이 너의 의지인가?…"
세라린은 광소를 터뜨리며 이어 말했다.
"그래…….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봐 주마."
"?…"
세라린의 태도가 다소나마 부드러워진 듯 싶었고, 돌변한 그의 태도에 세이어는
가볍게 미간을 찌푸렸다.
"…무슨 뜻입니까?…"
"글쎄… 별다른 것은 아니다.
단지, 네 녀석의 의지가 어디까지인지 보고 싶을 뿐이다."
세라린은 음울하게 미소지었다.
"나의 의지는 한 번 꺾였었지, 그분에 의해서….
네 녀석의 의지는 어떨까……?"
"…?"
"운명을 거부해 보겠다는 것이냐… 너는."
세라린은 비웃음의 표정으로 입가를 일그러뜨렸다.
"마치… 나와 같이 말이지…. 쿡… 쿠쿠쿡.
얼마 가지 않아 알게 될 거다. 네 생각이 얼마나 당치 않은 것이었는가를…."
알 수 없는 말을 하는 세라린에게 세이어는 가볍게 미간을 찌푸려 보였다.
"무슨 뜻입니까?…"
"알게 될 거다. 곧.
어쨌든 나나 네 녀석이나… 피를 부르는 운명이니까. 그렇게 안배되어 있으니."
"안배?…"
"그것은 존재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일….
어디까지 할 수 있나, 그것을 보고 싶은 거다."
"…역시, 이해할 수 없습니다."
세이어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 이해하지 않아도 좋다. 어차피 곧 알게 될 것이니까."
세라린은 씁쓸하게 웃었다.
"…알게 될 거다. 네놈도.
이 세계가… 어떤 곳인지."
"……."
세이어는 조용히 세라린을 바라보았다. 세라린은 자조적인 웃음을 흘리더니, 이내
표정을 굳히며 숲 속 저편으로 고개를 돌렸다.
"…생각보다 빠르군."
세라린의 입가에 조소가 떠올랐다.
"다하난의 개들이여."
"이제 금방입니다."
무표정한 얼굴로 프렌테이즈가 말했다. 그는 가만히 고개를 돌려 자신을 따라오고
있는 에이드와 로빈, 아디즈를 바라보았다. 긴장감으로 굳어있는 그들의 얼굴을 바
라보며 프렌테이즈는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 두려우십니까."
"두려움이 전혀 없다면, 그것이 거짓이겠지요."
에이드가 답했다. 로빈은 싱긋 웃으며 에이드의 어깨를 두드렸다.
"두려움에 맞서는 거다. 에이드. 이기고 돌아가는 거야."
"예…."
에이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거나… 이것은 다하난의 뜻이니까요."
"…흠, 그런가?"
로빈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뭐, 아무래도 좋아. 난 무사히 사이아스로 돌아갈 거야.
넌 어떻게 생각하지, 아디즈?"
"저 말씀이십니까?"
아디즈가 입을 열었다.
"물론…,"
무언가 말하려다 말고 갑자기 아디즈는 입을 다물었다. 끈적끈적한 살의. 엄청난
양의 살기가 프렌테이즈로부터 뿜어져나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조심스레 에이드가 입을 열었다.
"시… 신디라이클 씨?"
"쿡… 쿠쿠쿡…."
프렌테이즈는 광소하며 몸을 돌려 그들을 마주보았다. 순간 느껴진 섬짓한 기운에
에이드는 몸을 떨었다. 프렌테이즈는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롱 소드를 뽑아
들었다.
"쿠쿠쿡…, 놈들… 이군…, 쿡, 쿠쿠쿡…."
어느새 프렌테이즈의 눈동자가 붉게 빛나고 있었다.
- To be continue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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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휴일이었습니다. 뭐, 저야 학교에 가야 했지만 말이지요. 여러분은 어떠
셨는지? 휴일 즐겁게 보내셨나요? 자, 즐겁게 보내셨다면 데스트로이아와 함께
다시 한 번 즐거운 시간을 보내시고, 그다지 즐겁지 않으셨다면 데스트로이아를
읽으며 기분 전환을 해보세요.
싱긋. 즐겁게 즐겁게^^
Neissy였습니다.
번 호 : 6887 / 21081 등록일 : 2000년 05월 12일 23:27
등록자 : NEISSY 조 회 : 296 건
제 목 : [연재] ◈ 데스트로이아 ◈ # 34
데스트로이아 DestroiA
Fa-las de sy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