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운명을 거역하는 것이기에 …… (29)
"물론이지."
퓨어린은 가벼이 미소지으며, 손을 들어 세라린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세라린이
슬쩍 미소지었고, 퓨어린은 마주 눈웃음을 지었다.
"네가 웃는 걸 보니까… 좋다."
"후훗…. 그래?…"
세라린이 피식 웃자, 퓨어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너… 그 때 이후로 웃음이 없어졌었잖아.'
"아아…. 그 때."
세라린은 씁쓸하게 미소지었다.
"그 때의 넌…, 정말 무서웠어."
"그랬던가…."
"응."
퓨어린은 생긋 웃어 보였다.
"음… 뭐랄까, 인간들을 상대할 때의 넌…. 왠지 네가 아닌 것 같아."
"물론… 당연하지."
언뜻 세라린의 얼굴에 노기가 스쳤다.
"그 버러지같은 것들…. 우리를 배신한 것들을…. 그 때, 모두 죽여 버리려고 했
는데. …후우. 게다가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세라린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사라딘… 그 분의 태도. 인간들… 그들의 의지를 인정한 것이라고… 하자. 그럼,
왜 나의 의지를… 꺾어 버린 거지? 앞뒤가 맞지 않아."
"글쎄…. 그 쪽이 더 합리적이라고 생각하신 모양이지."
"…합리적? 쿠쿳…."
세라린은 나직히 광소를 터뜨렸다.
"…그래, 하긴 난 그분의 대리자일 뿐이지."
"세라린."
짐짓 질책하는 투로 퓨어린이 말했다.
"그렇게 자신을 비하해서 좋을 건 없어."
"……."
세라린은 입을 다물었다. 퓨어린은 세라린의 가슴에서 얼굴을 떼더니, 잠시 세라
린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문득 퓨어린의 얼굴에 장난스런 미소가 떠올랐다.
"키스해 줄까?…"
"…푸훗."
세라린이 웃음을 터뜨렸다.
"변한 게 없구나, 넌…."
"물론이야."
퓨어린이 미소지었다.
"난 널 배신하지 않을 거야. 영원히."
그렇게 말한 퓨어린은 슬쩍 얼굴을 들어올려 세라린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세
라린은 가볍게 미소지었다.
"…고맙군."
"응. 그럼, 나 잠깐 가 볼게.
헤이라스 녀석에게만 맡겨둘 순 없으니까."
"아아…. 그러도록 해."
세라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퓨어린은 생긋 웃더니, 손을 흔들어 보였다.
"조금 있다가 다시 올게∼."
"그래."
"그럼,"
퓨어린의 모습이 희미해지더니, 사라졌다. 퓨어린이 사라지고 난 공간을 잠시 바
라보고 나서, 세라린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영원이라……."
"오늘은… 달이 뜨지 않는군요."
세이어는 방 안에서 창을 통해 밤하늘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밤하늘…. 쏟아져
내릴 듯한 별빛이 땅을 비추고 있었다. 구름 하나 없는 맑은 하늘이었으나, 달은
보이지 않았다.
<당연하지…. 내일은 30일. 그믐인걸.>
이니아가 말했다.
"…그렇군요."
세이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너…, 아까…….>
"말씀하십시오."
이니아가 뭔가 심각한 이야기라도 하려는 듯 말꼬리를 길게 늘이자, 세이어가 입
을 열었다. 이니아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7월 1일에, 레이아다 시로 출발하겠다고 했지?>
"그랬지요."
잠시 고개를 돌려, 침대에서 곤히 자고 있는 린을 바라보며 세이어가 고개를 끄덕
였다.
<결국 뭐야? 그분에게 대항하겠다는 거야?>
"글쎄요…."
세이어는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어떤 것이라고 생각되십니까?"
<뻔하잖아.>
이니아는 당연하다는 투로 답했다.
<넌 내일 그분에게 흡수당하는 거였잖아. 그런데 모레 그녀와 함께 가겠다는 것은
흡수당하지 않겠다는 뜻이고, 결국 그분에게 대항하겠다는 말이 되는 거지.>
"…대항이라."
세이어가 슬쩍 한차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것일 지도 모르겠군요."
<하아?>
이니아가 탄성을 내질렀다.
<결국, 너….>
"글쎄요."
세이어는 씁쓸한 미소와 함께 이니아의 말을 끊었다.
"내일이 되면… 확실해지겠지요."
<…뭐가?>
이니아가 물었고, 세이어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그 말에 답했다.
"제가 어떻게 될 지 말입니다."
<헤에?>
"부딪혀 봐야 알 수 있는 일이겠지요…."
세이어는 문득 자조적인 미소를 지었다.
"…후훗…. 우습군요."
<…뭐가?>
이니아는 궁금하다는 듯 물었고, 세이어가 낮게 웃었다. 어딘지 허탈하다는 느낌
이 드는 그런 웃음을 웃은 후 세이어는 피식 조소하며 말했다.
"자기 앞가림도 제대로 못 하는 주제에… 다른 사람을 비웃는다니, 우습지 않습니
까?…"
<…으응?…>
"그래요. 당신의 말이 맞았습니다."
세이어는 힘없이 웃었다.
"전… 제게 화를 내고 있었습니다."
<……?>
이니아는 약간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이어의 태도가… 예전과 상당히 틀렸
다. 예전의 그 오만하다고까지 생각되던 태도와 비교하면… 주눅이 든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다.
세이어는 손을 들어 슬쩍 가볍게 앞머리를 넘기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이… 운명…에 순응해야만 하는 저였기에… 저와 비슷해 보이는 다른 존재들을
비웃어 스스로를 위안해 보고자 한 겁니다. 후훗…. 바보같은 일이지요….
…그래요…, 제가 비웃고 있던 것은… 제 자신이었습니다."
- To be continue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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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어는… 어떤 녀석인지…, 스스로도 잘 모르겠군요….(알다가도 모를 놈이란
말야…. -_-;;;)
Neissy였습니다.
번 호 : 6670 / 21139 등록일 : 2000년 04월 30일 21:57
등록자 : NEISSY 조 회 : 309 건
제 목 : [연재] ◈ 데스트로이아 ◈ # 30
데스트로이아 DestroiA
Fa-las de sy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