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스트로이어-24화 (25/158)
  • 1. 운명을 거역하는 것이기에 …… (24)

    "린 씨를 구하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고 했을 텐데요."

    세이어는 그렇게 대답했고, 린은 납득할 수 없다는 듯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아뇨, 아녜요…, 아니예요…!!"

    "……."

    "왜… 왜… 왜 절 구하신 거예요…!"

    린은 울부짖듯 외쳤다.

    "거기서 그대로 죽었어야 했어요, 전!!…"

    린은 그렇게 소리쳤고, 세이어의 얼굴에 싸늘한 빛이 스쳐갔다. 세이어는 고개를

    저었다.

    "…그럼 지금이라도 죽으십시오."

    "……!"

    린은 눈을 크게 떴다. 세이어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을 계속했다.

    "이것이 린 씨가 선택한 길입니다.

    린 씨는 스스로 행동하려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이 만들어 둔 길로 가는 것을 선

    택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가 지금의 상황입니다."

    "그…런…"

    "죽고 싶으십니까? 그렇다면 죽으십시오.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가려 하지 않는 사람에게 줄 호의 따윈 없습니다."

    "세이어… 세이어 님이 저에 대해 뭘 알아요!!"

    린이 울부짖었다.

    "제가… 제가 이런 것을 원했다고 생각하세요? 전 세이어 님이…"

    "그래서 어쨌단 말입니까?…"

    세이어의 말투는 신랄했다.

    "뭐라고 생각했다는 것입니까. 생각해서 어쩌겠다는 것입니까.

    행동이 없는, 생각뿐이라면 그것에는 아무 의미도 없습니다. 아무런 선택도 하지

    않는다는 것, 그것도 선택입니다. 아시겠습니까."

    "……."

    린은 입술을 깨물며 세이어를 바라보았다. 세이어는 차갑게 웃었다.

    "린 씨가 선택한 것이 바로 지금의 이 상황입니다."

    "크…크흑… 어쩔 수가…"

    린이 흐느꼈다.

    "어쩔 수가… 없었단 말이예요…. 어쩔 수가…

    방법이 없었단 말이예요…. 제 힘으론… 어떻게 할 수 없는… 할 수 없는…"

    "어쩔 수 없다고 하셨습니까?…"

    세이어의 입가가 일그러졌다.

    "린 씨가 처한 상황을 바꾸기 위한 노력은 해 보셨습니까. 혹은 대항을 해 보셨습

    니까. 시도라도 해 보셨느냔 말입니다."

    세이어는 냉기가 뚝뚝 묻어나는 어조로 그렇게 말했다. 린은 멍하니 세이어를 바

    라보았다.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세이어가 피식 조소했다.

    "…그렇군요."

    "……."

    "이만 가겠습니다."

    "…세이어 님?…"

    세이어는 등을 돌렸고, 린은 당황하며 그를 불렀다. 세이어는 바닥에 놓았던 이니

    아를 주워들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것으로 제 용무는 끝났습니다."

    세이어는 고개를 저었다. 순간, 린이 침대에서 뛰어내려와 세이어의 옷자락을 붙

    들었다. 세이어는 고개를 돌려 린을 바라보았다.

    "…무슨 뜻입니까?"

    "가지 마세요… 제발, 이젠…."

    린은 울먹이며 말했다. 세이어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 스스로 해결하십시오."

    세이어는 그렇게 말하며 린의 손을 떼어 내려 했으나, 의외로 린의 힘이 강했다.

    린은 한 손으로는 세이어의 옷자락을 붙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걸친 망토를 꽉 여

    민 채 말했다.

    "…싫어요…."

    "……."

    세이어는 무겁게 한숨을 내쉬었다.

    <세이어.>

    그리고 그 때, 이니아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넌, 린에게 화를 내고 있는 게 아니야.>

    ……? 세이어는 가볍게 눈살을 찌푸렸다. 세이어는 가만히 고개를 돌려 오른손에

    들려 있는 이니아를 내려보았다.

    "…그러면?…"

    <넌 너 스스로에게 화를 내고 있는 거야.>

    이니아는 단정짓듯 말했다.

    <세라린에게 가야만 하는 자신에게. 하지만, 제대로 된 행위가 아니야. 지금 너의

    행동은. 알고 있어?>

    "무엇을… 말씀이십니까."

    눈살을 찌푸리며 세이어는 그렇게 말했고, 이니아는 말을 계속했다.

    <린의 일, 네게도 책임이 있어.

    그녀를 그렇게 몰아간 건 세이어, 너야.>

    "……."

    <분명히 말하겠는데, 넌 린의 일에 책임을 져야 해.>

    이니아는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의 네 행동… 옳지 못해.>

    "……."

    세이어는 린을 내려보았다. 애처롭게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린.

    ―확실히, 세이어에게 이 일에 대한 책임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세이어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그 때였다.

    덜컥.

    문이 열렸다. 세이어는 가만히 고개를 들어 들어온 사람에게로 시선을 주었다. ―

    디간 데이빈, 시도아의 영주. 바로 그였다.

    디간과 세이어의 시선이 맞부딪혔다. 디간이 히죽 웃었다.

    "호오. 이거 '세이어 님' 아니신가? 여긴 왠일이시지?"

    "……."

    "내가 네 이름을 어떻게 아는지 궁금하겠지? 간단해."

    디간은 자신을 피해 세이어의 뒤로 숨어드는 린을 바라보며 히죽 웃었다. 그는 킥

    킥 웃으며 말했다.

    "간밤에 린, 이년이 그 소리밖에 안 하더군.

    '세이어 님' 어쩌구… 라던가? 뭐."

    디간이 한 발자국 걸어들어왔다.

    "나름대로 그것도 재미는 있더군. 아, 그거 아나?"

    디간은 히죽히죽 웃으며 팔짱을 꼈다. 세이어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

    "이년, 아직 처녀더군. 의외였어.

    네 녀석…과 특별한 관계일 줄 알았는데."

    디간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런데… 솔직히 말해 기분이 좀 나쁘더군. 하는 건 난데 왜 불리는 건 네 녀석

    인가… 하고 말이지. 그래서 네놈을 찾아볼까 생각 중이었는데… 잘됐군. 스스로

    찾아와 주다니."

    디간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네놈, 죽어 줘야겠어.

    그럼 이년도 쓸데없는 기대를 버릴 테지."

    "……."

    세이어의 눈썹이 꿈틀했다.

    - To be continue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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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일이란 것이… 마음먹은 대로만 되는 것은 아니지요.

    Neissy였습니다.

    번 호 : 6603 / 21139 등록일 : 2000년 04월 25일 23:53

    등록자 : NEISSY 조 회 : 317 건

    제 목 : [연재] ◈ 데스트로이아 ◈ # 25

    데스트로이아 DestroiA

    Fa-las de sy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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