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스트로이어-22화 (23/158)
  • 1. 운명을 거역하는 것이기에 …… (22)

    쓸쓸했다.

    "…하아."

    린은 가볍게 한숨을 내쉼과 동시에 몸을 일으켰다. 방 가운데에 선 그녀는, 천천

    히 고개를 들어 창 밖을 바라보았다.

    밤. 어느새 밖은 완전히 어두워져 있었다. 달은 떠 있지 않았고, 구름에라도 가렸

    는지 별들도 빛나고 있지 않았다. 완전한 어둠이었다. 린은 창에 얼굴을 갖다댔다.

    초여름이라고는 하지만, 바깥의 날씨가 꽤 추운지 유리창은 꽤 차가웠다.

    린이 내뿜는 숨결에 유리창이 뿌옇게 흐려졌다. 린은 살짝 미소지으며 손가락을

    들어 거기에 낙서를 했다. 잠시 후, 그녀는 자신이 유리창에 '세이어 님'이라고 써

    놓았다는 것을 깨닫고 문득 얼굴을 붉혔다. 린은 얼른 손을 내밀어 유리창을 슥슥

    닦았다. 뿌옇게 흐려졌던 유리창은 다시 투명해졌고, 린은 창에서 얼굴을 뗐다.

    린은 고개를 들어 책상 위에 놓여진 램프를 바라보았다. 램프는 가볍게 일렁이는

    불빛으로 이 방 안을 밝히고 있었다. 왜인지, 이유모를 한숨이 새어나왔다.

    "…생각했었는데…."

    린은 자신의 옷을 내려보았다. 디간이 갈아입으라고 준 옷. 맨살이 상당히 드러나

    는 것이, 어디로 보나 천박해 보이는 옷이었다. 남자를 유혹하는 창녀들이나 입을

    만한 옷이었다.

    "행복해 질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린은 한숨을 내쉬었다. 디간, 그는 대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만

    나고 나서의 그 태도들로 미루어 볼 때 자신을 '아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지

    는 않았다. 현재 자신의 위치를 대변해주는 듯한 이 옷에 린은 무겁게 한숨을 내쉬

    었다.

    그 때였다.

    발걸음 소리가 들렸고, 린은 눈을 반짝였다.

    '…혹시?'

    발걸음 소리가 가까워졌다. 린은 가볍게 숨을 내쉬며, 눈물을 닦았다. 그리고…

    발걸음 소리가 문 앞에서 멈췄다고 생각될 즈음.

    덜컥.

    문이 열렸다. 린은 반색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세이어 님?…"

    "…허어?"

    린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린의 기대와 달리, 들어온 사람은 디간이었다. 디간은

    가볍게 미간을 찌푸리더니, 눈을 가늘게 떴다.

    "세이어…라."

    디간은 가볍게 고개를 까닥이더니, 린에게 물었다.

    "아까 너와 함께 왔던 그 남자를 말하는 건가?"

    "……."

    린은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돌렸다. 디간이 히죽 웃었다.

    "흐음… 그렇군."

    디간은 천천히 린 앞으로 다가왔다. 린은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섰으나, 기껏해야

    4제곱예즈 크기인 이 방 안에서 뒤로 물러서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곧 린은 벽

    에 부딪혔고, 디간은 킥킥 웃으며 린의 가까이로 다가왔다.

    "그 남자와 눈이라도 맞았던 거냐?"

    "……."

    "쿡쿡…."

    더 이상 듣지 못하고 린은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디간은 눈을 가늘게 뜨더니, 오

    른손을 들어 린의 턱을 잡고는 자신을 향해 돌렸다. 린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디

    간에게 향하게 되었으나, 시선은 다른 쪽으로 돌렸다.

    "내가 왜 널 불렀는지 궁금하겠지?"

    디간은 씨익 웃었다. 린은 여전히 시선을 돌린 채 입을 다물고 있었고, 디간은 그

    런 그녀의 모습에 만족스럽게 미소지었다.

    "뭐… 넌 예전과 다를 게 없군."

    "……."

    "차이가 있다면 말이지…."

    순간, 갑자기 디간은 린의 얼굴을 끌어당겼다. 린은 흠칫하며 반항하려 했지만,

    디간의 힘 쪽이 훨씬 강했다.

    "……!!!"

    린의 눈이 흡떠졌다.

    숨이 막혔다. 자신의 입술에 맞대진 그것. 자신의 입술 속을 파고 들어오는 그것.

    자신을 탐닉하는 그것에―.

    기분이 나빴다. 본능적으로 혐오하던 그것이 자신을 덮치는 듯한 느낌에 린은 발

    버둥을 쳤다.

    "웁…!! 우웁…!!"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이윽고, 디간이 떨어져 나갔다. 린은 숨을 헐떡거리며

    디간을 노려보았다. 디간은 혀를 내밀어 입술을 핥으며 히죽 웃었다.

    "여전히 멋진 맛이군."

    "……."

    "호오. 그 벌레를 보는 듯한 눈도 여전하군."

    디간은 킥킥 웃었다.

    "계속하지, 차이가 있다면 말이야―."

    디간은 미소지으며 린을 바라보았다.

    "저번엔 내가 찾아갔다는 것이고, 이번엔 네가 찾아왔다는 것이지."

    "……!!"

    "네가 선택해서, 스스로 찾아왔다는 거야."

    디간은 낮게 웃었다. 린의 눈이 커졌다.

    '내가… 선택한 거라고?…'

    "그리고 또 한 가지."

    디간은 손을 내뻗어 린의 어깨를 잡았다. 린은 불안한 눈으로 디간을 바라보았다.

    순간 디간의 눈에 광기가 떠올랐다.

    "이번엔― 네가 거부해도!!"

    투투둑.

    디간은 손에 힘을 주어 린의 상의를 뜯어내어 버렸다. 실밥이 터지고, 단추가 튕

    겨나갔다. 디간은 드러난 린의 어깨를 보며 만족스럽게 미소지었다.

    "아무도. 널 구해줄 사람 따윈 없어."

    "……!! …"

    린의 얼굴에 공포가 떠올랐다. 디간은 히죽히죽 웃으며 린의 상의를 방 구석에 던

    져 버렸다. 린은 이를 악물었다.

    "크훗…."

    디간의 손이 가슴께로 다가왔다. 린은 움찔하며, 손을 들어 디간의 손을 쳐냈다.

    디간이 피식 웃었다.

    "이제 와서 날 거부하겠다고?"

    디간의 눈동자에 광기가 떠올랐다. 린이 주춤했다. 디간은 광소를 터뜨렸다.

    "쿡… 쿠쿠쿠쿠… 크하하하하핫!!…

    어림 없어!"

    디간이 달려들었다. 린은 그를 떨쳐내려 했지만, 무리였다. 린의 입이 열렸다.

    "시… 싫어…."

    벗겨져 나가는 하의.

    "그, 그만둬, 그만둬요!!"

    린이 외쳤다. 하지만 디간은 린의 말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듯 자신이 하려던 일

    을 계속할 뿐이었다. 린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발버둥을 쳤다.

    디간이 히죽 웃었다.

    "그만 둘 것 같나?…"

    디간의 손이 린의 속옷에 닿았다. 움찔. 린의 몸이 활처럼 휘었다. 린은 절규하듯

    외쳤다.

    "시… 싫어, 싫어…!!

    도와…줘요, 도와줘요… 세이어 님…, 세이어 니이이임―!!"

    "……?"

    세이어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니아가 물었다.

    <…왜 그래?>

    "아니요… 무슨 소리가 들린 것 같아서."

    세이어는 고개를 젓더니, 침대 위로 몸을 뉘었다. 나무 침대가 삐걱 소리를 냈다.

    "…착각이었겠지요."

    세이어는 씁쓸하게 미소지었다.

    - To be continue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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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無念.

    Neissy였습니다.

    번 호 : 6574 / 21139 등록일 : 2000년 04월 23일 23:25

    등록자 : NEISSY 조 회 : 322 건

    제 목 : [연재] ◈ 데스트로이아 ◈ # 23

    데스트로이아 DestroiA

    Fa-las de sy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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