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스트로이어-16화 (17/158)
  • 1. 운명을 거역하는 것이기에 …… (16)

    세이어와 린, 동행한 지 열흘째.

    여전히 숲 속.

    세이어는 씁쓸하게 웃으며 자신들을 둘러싼 고블린들을 바라보았다.

    "이것으로 열 한 번째…."

    린과 만난 후, 몬스터와 조우한 것만도 11번째다. 거의 하루에 한 번 꼴로 만난

    셈이 되는데, 아무리 프로얀 숲에 몬스터가 많다고는 해도 이 정도는 아니다. 자신

    의 망토를 꽉 붙들고 있는 린을 바라보며 세이어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아무래도, 이 린이라는 여자는 세이어를 완전히 의지해버리게 된 모양이다. 하긴,

    이번까지 합쳐 몬스터란 족속들과 11번이나 조우했으니, 자신을 '지켜 주는' 존재

    를 의지한다는 것이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닐 지도 모른다. 그러나….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세이어는 쓰게 웃으며 린을 바라보았다. 린은 불안한 눈으로 세이어를 바라보고

    있었고, 세이어는 그런 린에게 가볍게 미소지어 주었다.

    "말씀드렸지 않았습니까…?

    시도아 시까지 가는 동안 무사하게 지켜드린다고."

    "아… 예."

    린은 세이어를 붙든 손을 놓았고, 세이어는 한 발짝 앞으로 나서며 천천히 이니아

    를 뽑아들었다. 고블린 열 여섯 마리…. 보통 인간이라면 약간 벅찰 수도 있겠지만

    …, 자신에게는 한숨만 나오는 상대일 뿐이다.

    "케르르…."

    자기들끼리 뭐라 지껄이며 고블린들은 포위를 좁혀왔다. 일시에 덤벼 올 생각인

    모양이었다. 세이어는 여유 있는 태도로 그들을 둘러보았다.

    증오의 눈빛. 세이어를 목표로 하는…, 적의.

    "역시…."

    세이어는 조소했다.

    "당신들도… 그런 것들입니까."

    포위공격…. 자신 뿐이라면 상관없겠지만, 린을 무사하게 지켜야 하는 이 상황에

    서라면 저들이 덤벼오도록 그냥 나두어서는 곤란하다. 말려들 위험이 있으니까. 그

    렇다면 우선 진형을 흐트러뜨릴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한 가장 기본적이고

    확실한 방법은… 각개격파다.

    탓.

    세이어의 발이 지면을 찼고, 다음 순간 세이어는 고블린 한 마리의 목을 베어냈다

    . 피가 치솟았고, 세이어는 가볍게 뒤로 빠지며 그 피를 피했다.

    "케르륵!!"

    주위의 고블린 두 마리가 세이어에게 공격을 가해왔다. 강하게 휘둘러진 파이크…

    그러나 세이어의 눈에는 형편없이 느려 보일 뿐이었다.

    "고작 이 정도로…,"

    세이어는 다리를 굽히며 몸을 숙였고, 세이어의 머리 위를 파이크가 스쳐지나갔다

    . 세이어는 조소하며 오른쪽의 고블린을 향해 이니아를 올려쳤다.

    "제 앞길을 막을 수 있다 생각하십니까?…"

    뻐걱.

    둔탁한 소리와 함께 고블린의 몸이 아래에서부터 양분되었다. 세이어는 곧이어 왼

    쪽의 고블린을 향해 돌려차기를 날렸고, 명치를 직격당한 고블린은 맥없이 나가떨

    어졌다.

    "무의미합니다."

    세이어는 힐끗 눈동자를 굴려 린을 쳐다보았다. 린은 아직 포위진의 가운데에 있

    는 상황. 그러나, 걱정할 것은 없다.

    "카아아아―!!!"

    어차피, 지금 이들이 노리는 것은 세이어 하나일 뿐이니까.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

    지만… 이곳의 몬스터들 중 상당수는 이미 세이어만을 노리도록 되어 있는 듯 하다

    . 그러니, 굳이 린을 걱정해야 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물론, 린은 그런 것을 알지 못하는 듯 하지만.

    "뭐, 아무래도 상관 없지만 말입니다…."

    파이크를 내세우며 자신을 향해 돌격해오는 고블린들에게 세이어는 진한 비웃음을

    흘렸다.

    카카칵!!…

    세이어가 움직임과 동시에 이니아가 검광을 발했고, 동시에 분리된 파이크의 창신

    이 땅을 굴렀다. 당황해하는 고블린들.

    "어쨌든, 자의든 타의든 이들은 제게 덤벼 온 것이고."

    퍼억!

    이니아가 고블린의 머리에 박혀들었다. 스윽… 이니아를 뽑아든 세이어는 그 고블

    린을 발로 차 밀어뜨리고는 앞으로 한 발짝 나서며 이니아를 횡으로 크게 휘둘렀고

    , 이어 세 마리 고블린의 목이 단번에 날아갔다. 냉소하며 세이어는 시선을 아직

    남아 있는 고블린 아홉 마리에게로 향했다.

    "그 대가는, 죽음입니다."

    "…잘 견디시는군요."

    시체들을 외면하며 헛구역질을 하고 있는 린에게 다가가 세이어가 말했다. 린은

    고개를 돌려 세이어를 바라보더니,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 예…."

    "그럼, 가던 길을 계속 가도록 하지요."

    짤막하게 말하고 세이어는 앞으로 발걸음을 옮겼고, 린은 입을 막은 채 세이어의

    뒤를 따랐다.

    "괴로우십니까. 아직?"

    세이어가 입을 열었다. 린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가볍게 미간을 찌푸리며 답했다.

    "…끔찍해요."

    "익숙해 지는 것이 좋을 겁니다."

    세이어는 그렇게 말했고, 린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익숙해 질 것 같지 않아요…."

    "그렇습니까?…"

    세이어는 피식 웃었다.

    "그러면 힘든 것은 린 씨일 뿐입니다."

    "――."

    린은 세이어를 바라보았다. 별 표정 변화 없는 얼굴. 싸늘해 보이는 모습이지만…

    "…생각해주셔서 고마워요."

    린이 살짝 미소지었다. 세이어의 얼굴에 약간의 당혹감이 떠올랐다.

    "……."

    세이어는 무언가 말하려는 듯 입을 달싹였으나, 곧 고개를 가로저었다.

    "…마음대로 생각하십시오."

    그렇게 말한 세이어는 몸을 돌려 다시 걷기 시작했고, 린은 가볍게 미소지은 채

    세이어의 뒤를 따랐다.

    "……."

    고블린들의 시체가 널린 곳을 벗어나, 다시 숲 속의 상쾌한 공기를 맛본다. 역한

    냄새가 사라져간다.

    "후아…."

    린은 기분 좋게 공기를 들이마셨다. 신선한 공기가 폐 속으로 흘러들어온다. 피비

    린내가 진동했던 아까의 공기와는 다르다. 린은 미소지으며 앞서서 걷고 있는 세이

    어를 바라보았다.

    "……."

    여전히, 싸늘해 보이는 뒷모습이다. 하지만, 린은 왠지 그에게서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 겉으로 보이는 싸늘함 속에서….

    그래, 독설을 내뱉지만, 그 안에 있는 것은 자신에 대한 배려다.

    린은 그렇게 생각하며 살풋 미소지었다.

    '이 분이라면…, 의지할 수 있어…….'

    쿠르릉.

    뇌운이다.

    "……."

    세이어는 가볍게 눈쌀을 찌푸리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앞 쪽― 저 편에서부터

    몰려오는 비구름. 하늘이 점점 어두워지고 있다.

    "소나기입니까…."

    세이어가 중얼거렸다. 린은 걱정스럽다는 듯이 세이어에게 물었다.

    "어디에 비를 피할 만한 곳이 없을까요?…"

    "글쎄요…."

    세이어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숲 속…. 숲 속인만큼 나무들이 어느 정도 비를 막

    아 주긴 하겠지만, 그것으론 충분하지 않다. 어쨌든, 소나기인 만큼… 흠뻑 뿌려대

    는 비를 그대로 맞는다는 것도 조금 문제가 있다.

    "여행 중에 비를 맞아서 좋을 것은 없으니…."

    세이어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길가에 서 있는 나무들 가까이로 다가갔다.

    "…만들도록 하겠습니다."

    "만들다?"

    린이 물었다. 세이어는 나무에 손을 대며 나직히 중얼거렸다.

    "에어 배리어 Air barrier."

    휘익.

    그 나무 위로, 공기의 막이 펼쳐졌다. 에어 배리어― 원래는 공기의 흐름을 막아

    화살 같은 원거리 무기로부터 몸을 지키는 마법이지만, 세이어는 그것을 나무 위에

    사용했다. 하나의 대형 우산을 만든 셈이랄까. 세이어는 린을 돌아보며 말했다.

    "이 정도로 충분할 겁니다."

    "예…, 그렇겠네요."

    린은 살짝 웃으며 나무로 다가왔다. 세이어는 가만히 나무 아래의 낙엽들을 치워

    자리를 만들었고, 린은 그 자리에 앉았다.

    "고마워요."

    린은 생긋 미소지으며 세이어에게 말했다. 세이어는 린을 따라 나무에 기대앉으며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별로 고마워하실 것 없습니다."

    "아니예요,"

    뚝. 투둑. 투두두.

    하나 둘 떨어져 내리는 빗방울을 바라보며 린은 세이어에게 말했다.

    "저 때문에 이렇게 비를 막으신 것 아니예요?"

    "린 씨가 쓰러지기라도 하면 곤란해서 그렇게 한 것 뿐입니다."

    세이어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특별히 감사받을 만한 일은 아닙니다."

    "그런가요?…"

    린은 즐거운 듯이 가볍게 웃었다.

    '솔직하지 못하시네요, 세이어 님.'

    그렇게 생각하며 린은 시선을 '바깥'으로 돌렸다. 어느새 비가 세차게 내리고 있

    었다. 단지 린과 세이어가 있는 이 나무 안만은 전혀 빗방울이 떨어지지 않고 있었

    는데, 말 그대로 거대한 우산 속에 들어앉은 것 같은 모양이었다.

    세차게 내리는 비. 그러나, 이 안은 그와는 별개인 듯, 오히려 약간의 편안함마저

    제공하고 있다.

    '안심할 수 있어….'

    린은 살짝 미소지으며 눈을 감았다.

    '세이어 님께서 지켜 주시는 한….'

    - To be continue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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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러스트 하나를 잡담란에 올렸습니다. 으음…. 하지만 별로 만족스럽진 않군요

    . 예전에 리메이크 전에 그려서 올렸던 일러스트 쪽이 훨씬 나은 듯 싶습니다.

    뭐, 나름대로는 열심히 그린 그림이지만…….

    데스트로이아와 함께하는 즐거운 시간 되시길^^;;;

    Neissy였습니다.

    번 호 : 6447 / 21148 등록일 : 2000년 04월 17일 23:52

    등록자 : NEISSY 조 회 : 351 건

    제 목 : [연재] ◈ 데스트로이아 ◈ # 17

    데스트로이아 DestroiA

    Fa-las de sy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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