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운명을 거역하는 것이기에 …… (15)
"후우…."
에이드는 한숨을 내쉬었다.
로빈의 말이 맞았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자신은 그 마왕이라는 존재가 두려
웠다.
"그렇지만…,"
'이것은 다하난의 뜻.'
에이드는 고개를 한차례 젓고는 정원으로 들어섰다.
"두 번째로 주어진 기회…. 이번엔 결코 실패해서는 안 돼."
자칫 흐트러지려는 마음을 다잡으며 에이드는 정원 안을 둘러보았다. 아마도… 기
다리고 있을 것이다. 물론 에이드가 만나기로 했던 시간보다 일찍 나오기는 했지만
, 왠지 에이드는 그녀가 이미 와 있으리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 느낌은 빗나가지 않았다.
"여기예요. 에이드 님."
"아…. 엘피 님. 오래 기다리셨습니까?"
에이드는 목소리의 주인공을 발견하고는 밝게 미소지으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아니예요. 에이드 님. 저도 방금 왔는걸요."
엘피는 생긋 미소지으며 벤치에서 일어나 에이드를 반겼다. 에이드도 반가운 듯,
즐겁게 웃으며 엘피 앞에 다가가 무릎을 꿇었다.
"기다리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
엘피는 그런 에이드를 내려보며 살짝 웃었다.
"여전하시네요. 에이드 님은."
"그렇습니까?
엘피 님은 많이 변하셨습니다만…."
에이드는 고개를 들어 엘피를 바라보며 빙긋 미소지었다. 엘피는 고개를 갸웃하며
에이드를 마주보았다.
"?… 뭐가… 변했다는 건가요…?"
"엘피 님의 그 아름다움이…, 한층 더해지셨습니다."
엘피의 얼굴이 붉어졌다.
"자…, 장난치지 마세요."
"아니…, 저는 사실을 말했을 뿐입니다.
성기사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엘피 님께서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에이드는 다시 한 번 빙긋 미소지었다.
"짖궂으시네요.
…참, 일어나세요. 무릎, 아프시지 않아요?"
"아니오…. 전 괜찮습니다만, 엘피 님께서 원하신다면 일어나도록 하겠습니다."
에이드는 가볍게 일어섰다.
"그런데…, 정말 오래간만에 뵙게 되는군요."
일어선 에이드를 올려다보며 엘피가 말했다. 에이드는 자신을 바라보는 엘피를 애
정이 듬뿍 담긴 눈으로 내려보며 미소지었다.
"예. 그간 기회가 닿지 않아서."
"바빴다고 들었어요."
"엘피 님께서도… 바쁘시다고 들었습니다."
"예…. 어제까지, 조금 수련을 하느라고요…. 그런데 그건 어떻게 아셨지요?"
엘피는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아, 예…. 시네라 왕녀님께 들었습니다."
"그래요, 언니가?…"
엘피는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약간 고개를 숙인 채 오른손 검지 손가락을
입술에 대고 작은 소리로 무언가 중얼거렸다.
"왜 그러십니까?"
잠시 그것을 지켜보던 에이드는 그렇게 입을 열었고, 엘피는 고개를 들더니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 밝게 미소지었다.
"아니예요. 아, 저기… 조금, 앉죠?"
엘피는 그렇게 말하고는 벤치를 향해 고개를 돌려 보였다. 에이드는 가볍게 미소
지었다.
"엘피 님 먼저 앉으시지요."
"예…. 에이드 님도요."
엘피는 천천히 벤치에 앉았고, 그 뒤를 따라 에이드도 엘피의 옆에 앉았다.
"저기…,"
엘피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왜 그러십니까?"
에이드는 고개를 돌려 엘피를 바라보았다.
"―!…"
일순 둘의 눈이 가까운 거리에서 마주쳤고, 엘피는 부끄러운 듯 얼굴이 붉어진 채
그냥 입을 다물었다.
"……."
"………."
잠시 그대로 침묵.
"…………."
"……………."
"……아, 저기…. 내일 떠나신다면서요?"
어색한 분위기가 싫었는지, 엘피는 붉어진 얼굴을 애써 감추며 입을 열었다.
"아, 예…,"
역시 달아오른 얼굴을 감추려 애쓰며 에이드가 대답했다.
"내일 13시에 시도아 시를 향해 출발합니다."
"괜찮으시겠어요…?"
"뭐가… 말씀이십니까?"
"위험하다고 들었어요…."
"……."
에이드는 조용한 눈길로 엘피를 마주보았다.
"그렇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지만…."
엘피는 왠지 처연해 보이는 듯한 눈동자로 에이드를 바라보았다. 역시, 에이드의
안위가 걱정되기 때문일까. 에이드는 자조하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
"전 죽으러 가는 것이 아닙니다.
엘피 님을 다시 뵙기 위해서라도, 전 죽지 않습니다."
"에이드 님…."
"저를 믿어 주십시오."
"…전 에이드 님을 믿어요. 하지만…"
"절 믿으신다면 이제 그 이야기는 그만해 주십시오.
거듭 말씀드리거니와, 저는 죽으러 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또한… 이 일은
다하난의 뜻이기도 한 것입니다."
에이드는 싱긋 웃어 보였다.
"성기사로서 저는, 가야만 합니다."
"다하난께서… 뜻…"
엘피는 에이드의 말을 되뇌었다.
"약속드리겠습니다."
에이드는 양손을 들어 각각 엘피의 양 어깨를 붙들었다.
"전 반드시 이곳으로 돌아올 것입니다. 그리고 무사한 모습으로 엘피 님을 다시
뵐 것입니다."
"에이드 님…."
상기된 얼굴로 엘피가 조용히 말했다.
"그 말씀…, 꼭 지키셔야 해요."
"물론입니다."
에이드는 그렇게 말하며 미소지었다.
"그럼… 이제 다른 이야기를 하도록 하지요.
그동안 못 뵈었던 만큼…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습니다."
"마음… 확실히 잡은 모양이군. 에이드."
로빈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에이드는 조용히 미소지으며 로빈의 말에 답했다.
"반드시 다시 돌아와 뵐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가? 과연, 엘피 왕녀님께서도 꽤 마음고생이 심하시겠군."
"로빈 님은… 어떠십니까?"
"나 말인가?"
로빈은 빙그레 웃어 보였다.
"에아네스에게 호되게 혼났어. 대체 무슨 생각으로 지원했느냐고.
만약에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남을 자신은 어떻게 하라는 거냐고 말이지."
"그러셨…습니까?"
"그래서 꽉 끌어안고는 말해줬지. 난 승산 없는 싸움은 하지 않는다고. 절대로 이
기고 돌아올 거라고 말이야.
뭐, 내가 한 행동이지만… 나도 참, 낯뜨거워서 혼났어."
로빈은 핫하하… 하고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뭐… 에이드에게도 어제 말했었듯이… 난 죽으러 가는 게 아니니까."
"그렇습니까…?"
"자자. 그럼 슬슬 준비를 하러 가야겠군.
잠시 후에 또 보자고, 에이드!"
로빈은 씨익 미소지어 보이고는 자신의 방으로 다시 들어갔다.
"…이기고 돌아오기 위해서… 일까."
복도에 남겨진 에이드는 씁쓸하게 미소지으며 발걸음을 돌렸다.
"그렇게만 생각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프리네리아력 193년 6월 24일.
'마왕'과 상대하기 위해, 수도 사이아스 시에서 세 명의 성기사가 시도아 시를 향
해 출발했다. '마왕'이라는 존재가 등장한 것이 일반에 알려질 경우 일어날지도 모
를 혼란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이 일은 일반에는 알려지지 않았으며, 또한 왕성
내에서도 이 일은 극히 일부의 사람들에게만 알려졌다.
- To be continue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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냐함. 데스트로이아 지도와 세이어 그림을 잡담란에 올렸습니다. 흑백이니까 보
는 데 그렇게 부담이 가진 않을 겁니다.(별로… 크진 않을 거예요. 아하하)
즐거운 시간 되세요.
Neissy였습니다.
번 호 : 6427 / 21148 등록일 : 2000년 04월 16일 23:51
등록자 : NEISSY 조 회 : 345 건
제 목 : [연재] ◈ 데스트로이아 ◈ # 16
데스트로이아 DestroiA
Fa-las de sy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