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스트로이어-11화 (12/158)
  • 1. 운명을 거역하는 것이기에 …… (11)

    시체들의 처리작업을 마친 후,―디그 Dig 마법으로 단번에 구덩이를 파서 그 곳에

    시체들을 몰아넣은 후, 구덩이를 함몰시켜 버렸다― 세이어와 린은 천천히 시도아

    시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마차는 그냥 그곳에 두고 왔다. 가져와 보았자 쓸모가

    없다는 세이어의 말 때문이었다.

    뭐, 어디까지나 세이어는 린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말했을 뿐이었으니까. 린을

    모셔다 줄 이유는 없는 것이었다. 둘 다 말을 탄다면 모르겠지만…, 린은 말을 탈

    줄 모른다.

    "그럼… 말씀해 보십시오."

    세이어가 입을 열었다.

    "당신이 시도아 시에 가고자 하는 이유를."

    "네…."

    린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그리 길진 않은 이야기예요…. 그러니까….

    시도아 시의 영주님께서 절 부르셨어요."

    "…?"

    세이어는 고개를 갸웃했다.

    "왜 부르셨습니까?…"

    "그야… '아내'로 삼기 위해서죠…."

    린이 힘없이 대꾸했다. 세이어는 이상하다는 듯, 미간을 찡그리며 물었다.

    "…영주의 아내가 되는 것에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전 그를 알아요."

    린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잔인하고… 이기적인 사람이예요. 전… 그에게 가고 싶지 않아요."

    "그렇다면 가지 않으면 되잖습니까."

    세이어의 말에 린은 슬프게 미소지었다.

    "가지 않으면 그는 저희 가족을 몰살시킬 거예요."

    "……당신은 시도아 시의 시민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만. 한 시의 영주라 해도 타

    시의 시민을 해하지는 못하는 것으로 압니다."

    "맞아요. 전 레이아다 시에서 살았지요…. 하지만,"

    린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는 그런 것을 신경 쓰지 않아요…."

    "그렇습니까?…"

    세이어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그래서 시도아 시에 가야만 한다는 말입니까."

    "예."

    "그렇습니까…."

    세이어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가고 싶지 않으면서도 가야만 한다… 라. 결코 호감 같은 것 가지고 있지 않은 존

    재에게 자신을 맡겨야 한다… 인가.

    그러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에게 해가 간다, 는 건가.

    "후후훗… 웃기는군요……."

    세이어가 조소했다. 그 어투에 린은 움찔하며 그를 바라보았다. 역시… 자신은 귀

    찮은 존재일까? 그만 헤어지자고 하는 걸까?…

    "결국, 그런 것이었습니까…."

    세이어는 나직하게 웃었다. 린은 불안감을 느끼며 그를 바라보았고, 그는 왠지 자

    조적인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마주보았다.

    "좋습니다. 시도아 시에 도착할 때까지 보호해 드리겠습니다."

    "……! 저… 정말인가요?…"

    린의 얼굴이 환해졌다. 활짝 웃으며 그녀는 세이어의 손을 붙들었다.

    "고…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

    '…보고 싶은 겁니다.'

    세이어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기뻐하며 자신의 손을 붙잡고 감사를 표하는 린을

    바라보며, 세이어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당신이 그 곳에 가서 어떻게 행동할 지 보고 싶은 겁니다.'

    "고마워요…."

    린은 눈물마저 글썽이고 있었다. 세이어는 피식 웃었다.

    "별로 고마워 하실 것 없습니다."

    "아니예요… 정말로. 정말… 감사해요…."

    '보고 싶은 겁니다. 당신이 어떻게 행동할지가 궁금한 겁니다.

    단지 그것 뿐.'

    피식.

    세이어는 조소하며 린의 손을 떼어냈다.

    "이만, 가도록 하지요.

    시도아 시까지는 아직 한참이나 남았습니다."

    "아…예…."

    린이 미소지으며 대답했다.

    오늘이 6월 14일…. 30일까지는 시도아 시에 도착해야 한다….

    아직 시간은 넉넉하다. 부양하기 귀찮은 짐이 하나 생기긴 했지만, 그 정도로는

    계획에 지장을 주진 못할 것이다.

    프로얀 숲. 시도아 시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계속 이 숲 속을 걸어야 한다. 프로얀

    숲이 몬스터가 많이 서식하는 곳이라 위험하다고는 하지만, 세이어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이다. 단지, 이 여자를 지켜야 하기 때문에 약간 귀찮아질 지도 모르지

    만…, 어차피 상관없다.

    이 여자가 없어도 어쨌든 몬스터들은 상대해야 할 테니까. 아주 약간 귀찮아지는

    것 뿐이다.

    "저기… 제 이름은 린이예요. 린 세이라."

    린이 입을 열었다. 세이어는 생각을 멈추고 린을 바라보았다. 린은 생긋 웃어 보

    였다.

    "앞으로 같이 가게 될 텐데… 서로 이름 정도는 아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서로 이름 정도는 아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라? 자신의 이름을 말했으니 당신의

    이름도 알려달라… 라는 것이겠군.

    세이어는 가볍게 냉소하며 대답했다.

    "세이어…. 성은 없습니다."

    "……세이어?"

    린의 얼굴에 놀란 기색이 떠올랐다. 세이어는 가볍게 고개를 저으며 물었다.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아니요… 단지, 조금 특이해서요.

    세이어라면, 이슬… 또는 신기루란 뜻이잖아요. 사람 이름으로는 그다지 적당하

    지 못하지 않나요?…"

    "글쎄요."

    세이어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이름으로 사용하기에는 그다지 적절하

    지 못한 단어일이도 모르지.

    "그리고… 존재하지 않는 것… 이란 뜻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어째서

    그런 이름을?"

    세이어의 얼굴이 불쾌감을 띠었다.

    "그런 것을 알려드려야 할 이유는 없다고 봅니다만."

    "아…. 죄송해요."

    린은 고개를 숙여 보였다. 세이어는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제가 직접 지은 이름입니다. 그 이상은 묻지 마십시오."

    "예……?"

    린은 고개를 들어 세이어를 바라보았다. 세이어는 자조적인 미소와 함께 가만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가던 길을 계속하도록 하지요."

    세이어는 발걸음을 조금 빨리 했다. 굳이 필요하지도 않은 이야기를 할 생각은 없

    었으니까. 린도 발걸음을 빨리 해 세이어를 쫓았다.

    "저… 저기, 세이어 님?"

    린이 외쳤다. 세이어는 걸음 속도를 약간 늦추며 고개를 돌려 린을 바라보았다.

    "왜 그러십니까?…"

    "혹시… 제 말에 기분 상하신 건가요?"

    "아닙니다."

    세이어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린은 납득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제가 뭔가 실례한 건가요?…"

    "아닙니다."

    짤막하게 세이어가 대답했다. 린은 조심스레 세이어를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자

    신이 뭔가 잘못을 한 것 같은 생각이 드는 모양이었다.

    세이어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린 씨께서 제게 잘못하신 것은 없습니다.

    괜한 일에 감정을 낭비하지 마십시오."

    약간 차가운 듯한 세이어의 말이었고, 린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 그럼, 정말 괜찮으신 건가요?…"

    "그렇습니다."

    세이어는 그렇게 말하며 걸음을 계속했고, 린은 걱정스런 얼굴을 하며 세이어를

    따랐다.

    "……."

    왜일까?

    확실히, 그녀가 잘못한 것은 없지만… 왠지 기분이 과히 좋지 않다.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의 무의식 중에서

    그녀를 거부하고 있었다. 아마도… 그녀는 그것을 느낀 것이리라.

    그러나, 뭐라고 해야 할까. 속에서부터 치밀어오르는 이 감정은….

    ……아니, 어차피 상관없다.

    시도아 시까지 데려다 주기만 하면 되는 것이니까. 그리고 확인해 보는 거다. 그

    녀가 자신의 운명에 어떻게 대항하는지를. 어떻게든 대항할 것인지, 아니면 다른

    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대항을 포기하고 순응할 것인지를.

    그것을 확인하고 싶은 것이었으니까.

    "후훗…."

    세이어는 문득 자조했다.

    "뭘 그렇게 신경쓰는 것입니까…, 세이어."

    "……?"

    린이 이상하다는 듯 세이어를 바라보았고, 세이어는 입가에 미소를 띄우며 가볍게

    오른손을 들어 보였다.

    "아…, 혼잣말입니다. 신경쓰지 마십시오."

    괜한 일에 감정을 낭비하고 있는 것은 오히려 자신이 아니었나? 뭘 그렇게 자꾸

    신경쓰는 걸까. 지금 신경써야 할 일은 그것이 아니지 않는가.

    그래, 짐이 늘었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스스로가 원해서 늘린 것 아닌가. …하지

    만, 왜?

    …세이어의 얼굴이 굳어졌다.

    '……동질감?…'

    세이어는 피식 조소하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럴 리가."

    어쨌든, 시도아 시로 가는 거다.

    그곳에서 린은 그 영주를 만나고, 나는 세라린을 만나는 거다.

    그리고…….

    - To be continue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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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아… 단편을 하나 써 볼까 했습니다만, 도저히 쓸만한 주제가 떠오르질 않아

    일단 보류중입니다. 어떤 의미에선 단편이 장편보다 더 어려운 것 같아요…^^;;

    즐거운 시간 되십시오.

    Neissy였습니다.

    P.S. 뽀댕이님, 추천 & 감상 감사합니다^^

    번 호 : 6340 / 21148 등록일 : 2000년 04월 13일 00:00

    등록자 : NEISSY 조 회 : 364 건

    제 목 : [연재] ◈ 데스트로이아 ◈ # 12

    데스트로이아 DestroiA

    Fa-las de sy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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