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스트로이어-5화 (6/158)
  • 1. 운명을 거역하는 것이기에 …… (5)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의 모습이 드러났다. 세이어는 살짝 미소를 띄운 채 주위

    를 살펴보았다.

    인상 험악하고 덩치 큰 남자들이 약 서른 명 정도. 난도질당해 죽어 있는 남자가

    둘. 저 편으로는 길을 가로막은 통나무. 말들이 마구 요동치고 있는 마차 하나. 그

    마차 근처에서 화살에 목을 꿰뚫린 채 죽어 있는 남자 하나. 그리고… 덩치 큰 남

    자들 사이에 갇힌 여자 하나.

    "도적단의 습격이로군요."

    대수롭잖다는 듯이 중얼거리며 세이어는 이제까지와 같이 걸음을 계속했다.

    그들의 모습이 더욱 확실히 드러났다. 여자 한 명을 남자들이 둘러싸고 있는 모양

    이었는데, 그 중 덩치가 가장 큰 녀석―아마 두목인 모양이었다―이 그녀에게 계속

    뭐라고 말하고 있었다. 뭔가 음담패설이라도 하는 모양인지 주위에서는 연신 폭소

    가 터져나왔고, 여자는 입술을 굳게 다문 채 고개를 가로젓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여자가 남자에게 침을 뱉었고, 남자는 여자의 뺨을 쳤다. 짝 하는

    소리와 함께, 여자의 볼이 붉게 물들었다.

    세이어는 싱긋 미소지었다.

    "흔한 일입니다."

    세이어는 잠시 여자를 바라보았다. 연보랏빛 머리칼을 길게 기른, 연약해 보이는

    이미지의 여성이었다. 청순해 보이는 얼굴. 그 한쪽 뺨은 붉게 부어올라 있고, 아

    름다운 눈동자에는 눈물이 고인 것이 측은지심을 일으키는 모습이었다.

    …라고는 해도, 세이어에게는 그다지 감흥이 들지 않는 모습인 모양이었다.

    "헤에∼ 두목님, 여자 다루는 솜씨가 별론데요?"

    "입 닥쳐! 자고로 여자한텐 강하게 나가는 게 최고다!!

    이 무적의 케루베 님께서 여자를 다룬다는 게 어떤 건지를 확실히 보여주마!!"

    …저벅저벅.

    세이어는 모여 있는 그들을 싹 무시한 채 그들 옆을 지나갔다. 그런 그를 발견한

    케루베의 눈이 커졌다.

    "…뭐야, 넌 뭐하는 놈이냐?"

    순간, 모든 도적들의 시선이 일제히 세이어에게로 향했다. 아울러 린의 시선도.

    세이어는 그런 그들의 시선을 미소로 받아넘기며 입을 열었다.

    "그냥 여행자입니다. 떠돌이 검사라고 해두지요."

    "흐음?"

    케루베는 인상을 썼다.

    "네 녀석, 혹시 이 여자를 구한다고 설칠 생각은 아니겠지?

    그렇다면 네놈은 무사하지 못할 테니…"

    "귀찮은 일은 사양입니다."

    세이어는 싱긋 미소지었다.

    "그럼, 전 제 갈 길을 계속 갈 테니, 여러분들은 여러분의 볼 일을 보시길."

    그렇게 말한 세이어는 미련없이 몸을 돌려 가던 길을 계속 걷기 시작했다.

    …….

    "…두목님, 왠지 우리들, 무시당한 것 같지 않습니까?"

    "…그런 것 같은데."

    얼떨떨한 얼굴로 케루베가 말했다.

    "거… 검사님!!"

    갑자기, 린이 외쳤다. 세이어는 왜 그러냐는 듯 고개를 돌려 린을 바라보았다. 린

    은 애절한 어조로 애원했다.

    "제… 제발, 도와주세요. 저… 전 이 사람들에게 당하기 싫…"

    "…제가 왜 당신을 도와야 합니까?"

    세이어가 말했고, 린과 도적들의 눈이 동그래졌다. 린이 더듬거리며 말했다.

    "왜… 왜라니요… 그… 그런…"

    "당신을 구해줘서 제가 받을 이득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잔인하리만큼 냉정하게 세이어는 말했다.

    "조금 전에도 말했듯, 귀찮은 일은 사양입니다."

    "…대단한 논리구만……."

    케루베가 중얼거렸다. 보통 이같은 경우, 보통의 남자라면 여자를 구한답시고 설

    치는 게 보통이다. 그것이 아니면 미안하다고 말하며 사라져 버린다던가. 그런데

    이 녀석은 '귀찮아서 안도와주겠다'라고 말하고 있다. 꽤나… 낯짝 두꺼운 인간이

    다.

    뭐, 케루베로서도 이 인간이 덤벼오지 않으니 귀찮지 않아서 좋다고 할 수 있겠지

    만… …잠깐.

    "……잠깐, 네 말은…"

    케루베가 입을 열었고, 세이어는 왜 그러냐는 듯 케루베를 바라보았다. 케루베는

    인상을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

    "우리들이야 우습게 처리할 수 있지만, 귀찮아서 안 한다는 거냐?…"

    세이어는 가볍게 미소지었다.

    "잘 아시는군요. 바로 맞추셨습니다."

    "…크윽!!"

    케루베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는 등 뒤에 매었던 팔치온을 꺼내들며 소리높여

    외쳤다.

    "이 건방진 놈을 죽여버렷!!"

    "오오오오오!!"

    도적들이 일제히 검을 들어 세이어에게로 향했다. 그러나, 세이어는 전혀 겁을 먹

    지 않은 듯, 여유 있는 태도를 견지한 채 약간 씁쓸하게 미소지을 뿐이었다.

    "…이런이런……. 결국은 이렇게 되는군요…."

    스릉.

    세이어는 왼쪽 허리춤에 달린 검집에서 이니아를 꺼내들었다. 순간 이니아가 빛을

    발했고, 세이어가 실소했다.

    "…후훗. 제가 원한 일이라…. 과연 그런지도 모르겠군요. 어쨌든, 자….

    갑시다, 이니아."

    "이노오오오오오옴―!!"

    소리치며 케루베가 달려들었고, 세이어는 냉소와 함께 한차례 몸을 돌리며 그 공

    격을 피해냈다. 세이어의 입가에 비웃음이 걸렸다.

    "형편없군요."

    "…이놈이!!"

    세이어의 도발에 케루베의 얼굴이 시뻘개졌다. 세이어는 싱긋 웃었다.

    "스스로가 원해서 덤벼온 것이라는 점에서 그들보다 낫기는 합니다만…."

    챙.

    날아든 팔치온을 이니아로 받아쳐내며 세이어는 말을 이어갔다.

    "어차피 결과는 같겠지요."

    "이 자식!! 죽어어어어엇!!"

    고함을 내지르며 케루베가 마구 팔치온을 휘둘렀지만, 세이어는 여유있게 이니아

    를 움직여 그 공격을 전부 방어해냈다. 케루베는 세이어의 망토 끝자락도 건드리지

    못하고 있었다. 세이어의 얼굴에 경멸의 감정이 스쳐지나갔다.

    "실망입니다…."

    "닥쳐, 이 개자식아!!"

    열이 뻗칠대로 뻗친 케루베가 소리쳤다. 공격은 하나도 통하지 않고 있다. 자신은

    힘들어 죽겠는데 이 녀석은 여유있는 얼굴로 자신을 비웃고 있다. 케루베는 세이어

    를 향해 팔치온을 마구 휘둘러대며 부하들에게 외쳤다.

    "뭐해, 이 바보자식들아! 이녀석을 죽여버리라고 했잖아!!"

    "아, 예예!!"

    케루베의 부하들도 가세했다. 가세했다곤 하지만, 서른 명에 이르는 인원이 모두

    가세했다는 것은 아니다. 원거리 무기를 가진 것이 아닌 이상 한 사람을 둘러쌀 수

    있는 사람의 수에는 한계가 있는 법이다. 새로 가세해서 자신에게 공격을 가해오는

    네 사람을 훑어보며 세이어가 미소지었다.

    "제게 도전해오는 것입니까? 뭐, 아무래도 좋겠지만."

    세이어의 눈이 빛났다. 세이어는 왼손을 위로 치켜들었다.

    "대가는 죽음입니다."

    우우웅.

    세이어는 왼손 주먹을 쥐었다가 쫙 펼쳤고, 동시에 세이어의 왼손―정확히 말하자

    면 왼손 약간 위쪽의 공간―에 공기가 모여들기 시작했다.

    챙!!

    "무의미합니다."

    자신에게 향해진 공격을 오른손의 이니아로 막아내며 세이어가 말했다.

    "이… 웃기지도 않는 자식이!!…"

    퍽!!!

    케루베가 세이어의 등을 노렸으나, 어느새 몸을 돌린 세이어가 이니아의 폼멜로

    케루베의 얼굴을 찍어 버렸다. 케루베는 신음을 내뱉으며 주춤주춤 뒤로 물러섰다.

    세이어가 피식 웃었다.

    "그럼."

    세이어는 왼손을 내리며 한차례 강하게 휘둘렀다.

    "거스트 오브 윈드 Gust of wind."

    휘이이이잉!!!…

    폭풍이 휘몰아쳤다. 도적들은 모두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넘어져 나뒹굴더니

    , 바람에 밀려 나무에 강하게 부딪혔다. 그것을 바라보며 세이어는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자… 이제 죽어 주십시오…."

    땅에 나뒹군 채 끙끙거리고 있는 도적들을 베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세이어는

    미소를 띄운 채 이니아를 휘둘러갔다.

    "컥!!…"

    단발마의 비명.

    "귀찮군요…."

    세이어가 중얼거렸다.

    <네가 자초한 일이잖아!!>

    이니아가 외쳤다. 세이어는 피식 웃었다.

    "글쎄요…. 전 사실을 말한 것 뿐입니다만…."

    <…….>

    이니아는 한숨을 내쉬었다.

    <'귀찮아서'라니. 시비 거는 것이나 다름없잖아.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말한 거야? 설마 이들이 네 그런 말을 듣고도 그냥 넘어갈

    거라고 생각한 건 아니었겠지?>

    "글쎄요."

    퍼컥.

    또 한 사람의 목을 잘라내며 세이어가 고개를 흔들었다.

    "뭐… 어느 쪽이든 상관없었으니까요."

    <…새삼스레 존경스러워진다. 너란 녀석이.>

    "그렇습니까?…"

    이니아의 말에 세이어는 빙긋 웃었다.

    슈칵….

    세이어는 부드러운 미소를 얼굴에 띄운 채 계속해 도적들을 베어 나갔고, 그들은

    반항 하나 변변히 하지 못한 채 베여져 나갔다.

    - To be continue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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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아…, 매일연재, 매일연재입니다. 비축분도 쌓아 두었겠다… 여유 있습니다.

    아하하. 아, 그리고 참고로, 금요일(=토요일 새벽)은 항상 조금 늦게 올라갑니다

    . 금요철야예배 때문에 말이죠. 때문에, 내일은 평소보다 한시간 정도 늦게 올라

    갈 겁니다. '혹시' 제 소설을 기다리시는 분이 있으시다면 참고하시길.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

    Neissy였습니다.

    번 호 : 6219 / 21135 등록일 : 2000년 04월 08일 00:50

    등록자 : NEISSY 조 회 : 388 건

    제 목 : [연재] ◈ 데스트로이아 ◈ # 6

    데스트로이아 DestroiA

    Fa-las de sy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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