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스트로이어-4화 (5/158)
  • 1. 운명을 거역하는 것이기에 …… (4)

    덜커덕.

    마차가 흔들렸다.

    길 상태가 그다지 좋지 못한 모양이었다. 하긴, 여기는 그냥 숲길일 뿐이니까. 도

    시의 도로처럼 잘 닦여진 길 같은 것을 기대해선 곤란하다.

    숲 속을 달리고 있는 마차. 그리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는 것은 아니었고, 그냥

    보통의 속도로 달린다는 느낌이었다. 말 두 필이 끄는 사륜마차였는데, 약간 호화

    스럽게 꾸며진 것이 누군가 고귀한 사람이라도 타고 있는 모양이었다.

    마차 안에는 세 사람이 있었다.

    연보랏빛 머리칼을 길게 기른, 스무 살 전후로 보이는 여성이 다리를 모은 채 한

    쪽에 앉아 있었다. 엷은 눈썹에 부드러워 보이는 인상의 눈동자, 크지는 않지만 납

    작하지도 않은 콧날. 그리고 자그마한 입술에 섬세해 보이는 턱선을 지닌 여성이었

    다. 약간 갸날퍼 보이는 몸매에, 깨끗하달까, 청순하달까… 그런 이미지였다. 남성

    의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모습이라고 할까? 그리고 옷은 푸른 색의 원피스를 입고

    있었는데, 약간 거칠어 보이는 것이 그다지 고급의 옷은 아닌 듯 했다.

    그리고 그 맞은편, 마부석과 가까운 쪽에는 남자 두 명이 앉아 있었다. 두 명 다

    가만히 표정을 굳히고 있었는데, 꽤나 무뚝뚝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짧게 깎은 머

    리와, 짙은 눈썹에 약간 큰 코, 그리고 각진 턱. 둘 다 비슷비슷한 얼굴이었다. 그

    리고, 복장도 비슷했는데, 심장 부분에 매가 날개를 펼치고 하늘을 활공하는 모습

    의 문양이 그려진 하프 플레이트 메일을 검은 색의 옷 위에 걸치고 있었다. 아마도

    어딘가에 소속된 병사인 모양이었다.

    무슨 일인지는 알 수 없으나― 여자의 얼굴은 왠지 서글퍼 보였다. 그녀는 물끄러

    미 창 밖으로 스쳐지나가는 숲 속의 풍경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어… 시도아 시까지 얼마나 남았나요?…"

    "…글쎄요."

    왼쪽에 앉은 남자가 대답했다. 인상 그대로, 약간 무뚝뚝한 느낌이 드는 목소리였

    다. 남자는 나름대로는 부드럽게 보이려는 듯한 표정을 하며 말을 이었다.

    "지금 정도의 속력으로 계속 간다면, 오늘 해가 지기 전에는 도착할 수 있을 것입

    니다."

    "…그런가요…."

    여자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남자가 물었다.

    "늦을까봐 걱정되십니까?"

    "……아니요…."

    여자는 서글픈 눈을 하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반대예요……."

    여자는 소근거리는 듯한 어조로 중얼거렸지만, 남자는 그 소리를 알아듣고는 의아

    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언가 걱정되시는 일이라도?… 디간 님께서는 린 님을 정중히 모셔오라 명령하

    셨습니다. 혹 무어 불편한 것이라도 있으신 것입니까?"

    "……아무것도 아니예요."

    린이라 불린 여자는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그렇습니까."

    남자는 입을 다물었다.

    덜커덕. 덜커덕.

    마차는 계속해서 숲 속을 달렸다. 창을 통해 숲 속의 풍경이 보였다. 빠른 속도로

    스쳐지나가는 나무들. 속도감이 느껴진다. 보통은 신난다고 말하며 기뻐할 만한 모

    습이었으나… 린의 안색은 어두웠다.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그녀의 눈은 창 밖을 향하고 있었으나 시선은 창 밖을

    향해 있지 않았다. 어딘가 먼 곳을 바라보는 듯이, 초점이 없는 눈동자는 그저 멍

    하니 창 밖을 내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녀는 오른손에 턱을 고인 채 가볍게 한숨

    을 내쉬었다.

    "…하아."

    덜컹!

    "워워워워!!"

    순간, 갑자기 마차의 속도가 줄더니, 마차가 멈춰섰다. 말들이 푸르릉 투레질을

    했고, 곧이어 마부가 말을 어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오른쪽에 있던 남자가 눈쌀을

    찌푸렸다.

    "무슨 일이야, 컨텐?"

    컨텐이라 불린― 마부가 대답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런 제기. 왠 나무가 길을 가로막고 있잖아.

    어떻게 좀 해 줘."

    "뭐야?…"

    남자는 투덜대며 마차의 문을 열고 내려섰다. 안에 있는 동료에게 눈짓을 하며,

    그는 천천히 팔을 주물렀다.

    "후우… 힘 좀 써야겠군. 빌. 내려와라."

    "알고 있어."

    빌은 고개를 끄덕이며 마차에서 내려섰다. 그는 잠시 린을 바라보더니, 한 마디를

    했다.

    "조금만 기다리십시오."

    "예."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는 투로 린이 대답했다. 빌은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마차

    의 문을 닫았다.

    "그럼."

    빌은 고개를 돌렸다. 마차가 서 있는 앞쪽에, 두께가 2예즈 정도 되어 보이는 거

    대한 통나무가 길에 가로누워 있었다.

    "…통나무?"

    빌은 고개를 갸웃했다. 나무가 쓰러져 있는 게 아니라, 통나무가 길을 막고 있는

    거라고?… 이상한 예감이 들었다. 빌은 미간을 찡그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왜 그래? 이거 치우지 않고?"

    "아니… 뭔가 이상해, 헤번."

    "뭐?"

    헤번이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빌은 불안감을 담은 눈동자로 그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이거… 누군가가 일부러 길을 막은 것 같다는 생각이…"

    쉬익!!

    순간 날아온 화살에 빌의 말이 끊겼다. 자신의 눈 앞을 스쳐지나가, 땅에 박힌 화

    살을 확인한 빌의 얼굴색이 변했다.

    "큭!"

    빌은 롱 소드를 꺼내들었다. 슬쩍 옆을 바라보니, 어느새 헤번도 검을 꺼내들고

    있었다. 빌은 컨텐을 향해 소리쳤다.

    "위험할 지도 몰라! 마차를 돌려!!"

    "아… 알겠어!!"

    컨텐은 하얗게 질린 얼굴을 하며 마차를 돌렸다. 숲길이라고는 해도 그런대로 넓

    었기에, 마차를 돌리는 데에 무리가 있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 이런!!"

    저 편에서 몸을 드러낸 남자들을 보며 컨텐이 탄식을 내뱉었다. 웃통을 드러낸 근

    육질의 남자들. 들고 있는 각양각색의 무기들. 건들거리는 태도. 어디로 보나 지금

    자신들을 노리고 있는 도적들이었다.

    히히히힝!!

    말들이 마구 난동을 쳤고, 컨텐은 말을 달래려 애썼다.

    "워… 워워…!!"

    한쪽에는 통나무, 한쪽에는 도적들.

    "…퇴로… 막혀버린 건가…!"

    빌은 이를 악물었다. 두목으로 보이는, 팔치온을 든 덩치 큰 남자가 앞으로 나서

    더니 입을 열었다.

    "후하하핫! 그 마차 안에 아리따우신 아가씨가 있다는 걸 알고 있다.

    다치게 하기 전에 알아서 얌전히 넘기시지!"

    "……!"

    그의 말에 빌과 헤번이 얼굴을 굳혔다. 컨텐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외쳤다.

    "다…당신들, 원하는 게 뭐야!!"

    "말했잖아. 여자를 넘기라고. 다 알고 왔다니까."

    두목은 씨익 웃었다. 컨텐은 당황한 듯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외쳤다.

    "네… 네놈들! 어디서 그런 걸 듣고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만둬라. 컨텐."

    헤번이 컨텐의 말을 끊었다.

    "어차피 싸우는 수 밖에 없어."

    "허어."

    두목이 가소롭다는 듯 웃었다.

    "겨우 두 명이서 우리들을 상대하겠다는 말이냐? 용기가 가상하군."

    그는 삼십 명에 이르는 자신의 부하들을 둘러보며 만족스럽게 웃었다. 부하들도

    킥킥거리며 웃어댔다. 그 중, 눈매가 찢어진 것이 약간 음흉하게 보이는 사내가 입

    을 열었다.

    "켓켓켓. 그럼요, 그럼요. 감히 우리 도적단을 상대할 순 없지요. 특히 우리의 위

    대하신 두목이신 무적의 케루베 님을 상대할 순 더더욱 없지요."

    "바로 그거다. 네가 뭘 좀 아는구나."

    그렇게 말한 케루베가 와하하 웃어댔다.

    "…무슨… 일이지요?…"

    마차 안에서 린이 물었다. 빌은 한숨 섞인 소리를 내뱉었다.

    "도적단의 습격입니다. 죄송합니다."

    "그래요…?"

    덜컥.

    린은 마차 문을 열고는 마차에서 내려섰다. 그것을 발견한 도적들은 와하하 웃으

    며 휘파람을 불어댔다.

    "야아∼ 예쁘장한데?"

    "거기도 죽여줄 것 같은걸?"

    들려온 음담패설에 린은 입술을 깨물었다.

    "저 사람들이 원하는 게 저인가요?…"

    "그렇…습니다만, 그건 왜…,"

    불안하게 린을 바라보며 빌이 물었다. 린은 처연하게 미소지었다.

    "그럼… 저만 저 사람들에게 간다면…"

    "그…그런 말씀 마십시오!!"

    빌이 당황해하며 외쳤다. 동시에 도적들이 웃어제끼기 시작했다.

    "쿠하하핫∼! 이봐, 그 아가씨께서 우리에게 오시겠다잖아!"

    "큭큭큭, 그래, 저년도 사실은 원하고 있었던 건가 보지? 한데, 우리들을 다 상대

    하려면 힘들 텐데 괜찮을까 몰라?"

    "그러게 말이지, 쿠하하핫!!"

    빌은 표정을 굳히며 천천히 도적들에게로 발걸음을 향했다.

    "…제 임무는 린 님을 지키는 것입니다. 여기서 제가 도망친다면 지금은 살 수 있

    을 지도 모르겠지만, 어차피 디간 님께 죽임당할 겁니다."

    "그리고… 여자를 지키지는 못할망정, 그럴 수는 없지요.

    저희들이 싸우는 동안 도망치십시오. 통나무 때문에 마차로는 갈 수 없겠지만,

    어떻게든 멀리 도망치시길. 길은 컨텐이 안내할 것입니다."

    빌의 뒤를 따르며 헤번이 말했다. 린이 당황해하며 말했다.

    "자… 잠깐만요, 그럼 당신들은…,"

    "…시간이 없습니다, 가세요!!"

    그렇게 외친 빌이 도적들에게 돌격해갔다.

    "부탁한다, 컨텐."

    그렇게 말하며 헤번도 달려갔다.

    "가… 가야 합니다, 린 님…"

    덜덜 떨면서 컨텐이 린의 손을 잡아 이끌었다. 린이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다

    는 듯 안절부절못하며 말했다.

    "하…하지만, 하지만…"

    "느… 늦기 전에… 컥?!!"

    퍽.

    순간 날아온 화살이 컨텐의 목을 관통했다. 컨텐은 부들거리다 그대로 고꾸라져

    버렸고, 린은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보내 줄 것 같아?"

    씨익 웃으며 케루베가 말했다. 그의 옆에서는, 예의 그 음흉해 보이는 남자가 활

    을 든 채 피식피식 웃고 있었다.

    "두목님 다음으로는 제가 해도 좋겠지요?"

    "음, 좋아. 그렇게 해라."

    만족스럽게 미소지으며 케루베는 팔치온을 치켜들었다.

    "그보다 우선, 일단 이 멍청이들을 처리하고 말이지! 자, 가자!"

    "오오오오오!!"

    그렇게 외친 도적들은, 일제히 검을 들어 자신들에게 달려오는 빌과 헤번에게로

    향했다.

    "…흠?…"

    세이어가 가볍게 눈쌀을 찌푸렸다.

    <…뭔 일이야, 또?>

    이니아가 물었다. 세이어는 앞으로 곧게 펼쳐진 길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저 앞쪽에서 싸움이 일어난 모양입니다.

    이거, 귀찮을 지도 모르겠군요."

    세이어는 가볍게 고개를 돌려 주위를 둘러보았다. 앞뒤로는 길, 옆으로는 나무들.

    별로 특별할 것은 없다.

    <그래서, 뭘 어쩌려고?>

    "글쎄요…."

    이니아의 물음에 세이어는 고개를 흔들었다.

    "일단은, 가던 길을 계속 가도록 하지요."

    <귀찮을지도 모른다며? 괜찮겠어?>

    "뭐, 상관없지 않습니까…."

    세이어가 미소지었다.

    "앞길을 막는다면 무너뜨리면 그만입니다."

    <…꽤나 편한 사고방식이네.>

    황당하다는 듯한 어조로 이니아가 말했다.

    <뭔가 있는 것처럼 말하더니, 생각한 게 고작 그거야?

    너 참 편하게도 산다.>

    "글쎄요."

    세이어는 입가에 미소를 띄웠다.

    "그 길 외에 특별한 방법이라도 있으면 말해 주시길. 참고로 전 저런 존재들이 무

    섭다고 피하거나 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할 말 없게 만드는구나. 너란 녀석은.>

    "뭐, 칭찬으로 받아들여 두겠습니다."

    세이어가 빙그레 미소지었다.

    - To be continue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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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 이 정도라면 앞으로의 전개가 어떠할지는 대충 예상이 가능하겠군요. 세이

    어가 어떻게 반응할 지는… 글쎄요.

    Neissy였습니다.

    번 호 : 6207 / 21135 등록일 : 2000년 04월 07일 00:41

    등록자 : NEISSY 조 회 : 411 건

    제 목 : [연재] ◈ 데스트로이아 ◈ # 5

    데스트로이아 DestroiA

    Fa-las de sy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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