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운명을 거역하는 것이기에 …… (2)
"후우……."
가볍게 내쉬는 한숨.
"……검, 입니까?…."
세이어는 나무에 기대선 채 오른손에 들고 있는 롱 소드를 들어올려 이리저리 돌
려 보았다. 약간의 푸른기가 도는 은색의 검날이 햇빛에 빛났다. 겉보기로는 그냥
밋밋한 검집에 밋밋한 손잡이, 얼핏 보면 좋은 검이 아닌 것 같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검날에서 피어오르는 기운이 예사롭지 않았다.
"…후훗."
문득 세이어가 낮게 웃었다.
"과연… 마왕이 사용했던 검이라니, 어딘가 다르긴 다른 모양입니다."
찰칵.
세이어는 롱 소드를 검집에 되돌렸다.
"하아…."
가볍게 한숨을 내쉰 그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았다. 숲 속에서, 나뭇잎 사
이로 보이는 하늘도 나름대로 운치가 있다. 푸르디 푸른 하늘…, 그리고 순백의 뭉
게구름. 아름답다는 표현이 적당하겠다.
"……아름답다, 라…. 후후훗…."
그러나… 세이어는 조소했다.
"이렇게 멀리서 볼 때의 이야기이겠지요…, 그런 것은."
휘이이잉….
바람이 불어왔고, 나뭇잎은 바람에 스쳐 사아사아 소리를 내었다. 세이어는 가만
히 그것을 바라보며… 입을 다물고는 나무에 몸을 기대었다.
천천히… 시간이 흘러갔다.
…스삭.
수풀 속에서, 토끼 한 마리가 튀어나왔다. 토끼는 귀를 쫑긋 세우고는 깡총깡총
뛰어다녔다. 세이어를 경계한다든가 하는 몸짓은 없었다. 하기야, 세이어를 경계했
가면 겁이 많은 토끼가 애초에 튀어나왔을 이유가 없었겠지만.
"……."
세이어는 가만히 고개를 내려 토끼를 바라보았다. 토끼는 어떤 불안감도 느끼지
못하는 듯, 여유있게 풀을 뜯어먹고 있었다. 세이어는 그것을 바라보며 어쩐지 씁
쓸한 듯한 미소를 지었다.
슥.
이윽고 세이어가 몸을 움직였고, 그 바람에 깜짝 놀란 토끼는 잽싸게 수풀 속으로
숨어들었다. 그 모양을 바라보며 세이어는 빙긋 웃었다.
"경계… 입니까. 살아남기 위해서는 당연한 반응입니다."
세이어는 천천히 롱 소드를 뽑아내며 말을 이었다.
"그러나… 조금 늦었습니다. 그 정도의 반응으로는 죽기 쉽상이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이니아?…"
<…힉!!>
경악의 감정이 담긴, 미성의 소녀 목소리가 들려왔다. 세이어는 빙긋 미소지으면
서 롱 소드를 바라보았다.
"이니아…. 세라린이 사용했던 '검'. 자신의 의지를 가지고 있고, 사용자와 대화
할 수도 있지요. 검의 궁극이라 할 수도 있겠군요…."
<…어떻게 알았어?…>
롱 소드― 이니아가 말했다.
"전 세라린에게서 갈라져나온 복제. 그의 기억을 상당수 얻었지요."
세이어가 대답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 아닙니까?… 이니아.
언제까지 모른 척 하실 셈이었습니까?"
<…쳇, 들켜버렸다는 거네.>
이니아는 볼멘 투로 말했다.
<조용히 있다가 '왁!!'하면서 놀래켜 줄 생각이었는데. 이미 알고 있었다니.
너도 정말 꽤나 재미없는 녀석이네.>
세이어는 조용히 웃었다.
"그렇습니까?…"
<응…. 어쨌든 들켜버렸으니 할 수 없지.
정식으로 소개해둘게. 카이니아 파임이야. 그냥 이니아라고 부르면 돼. 최강급이
라 불러도 손색없는 '검'이지. 헤헷. 일시적으로나마 날 소유하게 된 것을 영광
으로 알라고.>
이니아의 말에 세이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전 세이어라고 합니다. 성은 없습니다."
<……'세이어'?>
이니아가 놀랐다는 듯이 말했다.
<…뭐야, 그게? 네가 스스로 지은 이름이야?>
"뭐… 잘못되었습니까?…"
무표정한 얼굴로 세이어가 물었고, 이니아는 키득키득 웃었다.
<정말이지 뛰어난 네이밍 센스네. 칭찬해주고 싶을 정도야.
자기 이름을 그런 걸로 짓냐, 어떻게?>
이니아의 말에 세이어는 씁쓸하게 웃었다.
"아아…, 뭐… 딴은 그렇기도 하군요."
<뭐야, 별로 상관없다는 듯한 그 말투는?>
"아무것도…. 그보다,"
그렇게 말한 세이어는 고개를 돌려 주위를 둘러보았다.
숲 속. 일견 평화롭고 아늑해 보이는 숲 속이다. 그러나… 실상은 조금 다른 듯하
다. 나무에 가려 보이지는 않지만….
"…느껴지는군요."
<응?>
난데없는 세이어의 말에 이니아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말했으나, 곧 이해한 듯
이어 말했다.
<…아아. 확실히. 느껴지는구나.>
세이어는 빙그레 미소지었다.
"이 정도 기운이라면 느껴야겠지요.
살아남고 싶다면 말입니다."
<헹….>
이니아가 웃었다.
<못 느끼는 게 바보지.
이 정도 소리가 난다면 말야.>
"확실히."
저편에서부터 들려오는 쿵쿵거리는 발소리를 들으며 세이어는 고개를 끄덕였다.
발소리의 크기로 보건데… 거인… 류인 것 같다. 그리고, 저쪽에서부터 풍겨오는
이 기운을 말하자면….
"뭐, 게다가 이렇게 적의를 발산하고 있으니, 말입니다만.
자신들의 존재를 숨길 생각은 전혀 없는 모양입니다."
아니면 숨길 필요가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조금쯤은 기다려 볼까요."
세이어는 오른손에 들린 이니아를 바라보며 싱긋 웃었다.
아직은 여유가 있는 상황이었다. 짐작하건데, 현재 세이어가 있는 곳까지 저들이
오려면― 최소 1분 정도는 걸릴 것이다. 단, 그것도 곧장 왔을 때의 이야기이지만.
곧장 왔을 때의 이야기.
……곧장… 이라.
"…재미있군요."
세이어는 그의 긴 흑발을 쓸어 넘기며 쓴웃음을 지었다.
"아무래도 저들… 애초부터 저를 노리고 있는 것 같은데…."
약간의 빗나감도 없이 이쪽을 향하고 있는 발걸음 소리를 들으며 세이어는 이니아
의 손잡이를 고쳐잡았다. 일순, 이니아의 검날이 검은 빛을 발했다. 세이어가 입을
열었다.
"…뭐라고 하셨습니까, 이니아?"
그렇게 말하며 그는 이니아를 내려보았다.
<그러니까… 굳이 싸울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이니아가 말했고, 세이어는 눈을 가늘게 뜨며 살짝 미소지었다.
"당연하지요."
세이어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저 편에서부터 천천히 수풀을 헤치며 다가오고 있는 2예즈 크기의 적갈색 거인들.
그들을 주의 깊게 살피며 세이어가 말했다.
"제게 덤벼 온 존재들입니다. 그 댓가 정도는 받아내도 좋겠지요."
<흐음. 오우거라는 몬스터, 결코 약한 몬스터가 아니야. 너도 잘 알고 있을 텐데?
인간들이 오우거를 상대하려면…>
"물론, 잘 알고 있지요."
세이어는 가볍게 미소지으며 이니아의 말을 끊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인간'들이 오우거를 상대할 때의 이야기이지요."
나무 사이로 그 모습을 드러내는 오우거들을 바라보며 세이어는 말했다.
"전, 인간이 아니잖습니까?…"
세이어는 쓰게 웃으며 나직히 중얼거렸다.
"…매직 미사일 Magic missile."
스읏.
빛나는 순백색의 구체 열 개가 생성되어 세이어의 주위를 맴돌았다. 세이어는 여
유 있는 태도로 다시 한 번 주위를 살폈다.
―정면에 둘. 좌측에 셋. 우측에 하나. 뒤에 하나.
"포위공격… 입니까."
모습을 드러낸 오우거들을 향해 세이어는 살기 어린 웃음을 지어 보였다.
"받아들여 드리지요."
- To be continue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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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
자신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그런 것,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Neissy였습니다.
번 호 : 6158 / 21135 등록일 : 2000년 04월 05일 02:11
등록자 : NEISSY 조 회 : 539 건
제 목 : [연재] ◈ 데스트로이아 ◈ # 3
데스트로이아 DestroiA
Fa-las de sy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