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운명을 거역하는 것이기에 …… (1)
「…살아 있다는 것. 생명이 있는 존재는 아름다운 것이다. 생명이 있어 살아
숨쉰다는 것. 그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생명은 아름다운 것, 그러나…
그 생명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피를 부르는 투쟁을 해야만 한다는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삶이라는 것은 투쟁.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 여러 가지 일들이 있기 마련이며
, 다른 존재와의 싸움에서 승리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다른 존재가 언제나
자신에게 호감을 가지고 다가오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생명을 계속 유지하
고자 한다면 다른 존재와 투쟁해야만 한다.
인간의 역사는 투쟁의 역사다. 인간에게 적대적인 여러 존재들이 있었고, 인
간들은 자신의 존재를 계속 주장하기 위하여 계속 그들과 싸워 왔다. 인간은
현재까지 계속 싸워 왔고, 앞으로도 싸워 나갈 것이다. 스스로의 의지로, 여
태까지 그랬듯이. 계속해서 존재하기 위한 싸움을.…」
비전의 서, 프리네리아력 57년 발행
서장 '마의 존재들' 에서 발췌.
고요했다.
숲 속은, 너무도 고요했다.
활엽수가 적당히 들어찬 이 숲 속은, 나뭇잎 사이로 햇살이 새어 들어와 약간은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누구라도 감탄이 나올 만한 멋진 광경이었다.
다만, 방금 말했듯이… 너무 고요했다.
숲 안이라면 응당 들릴 법한, 나뭇잎이 바람결에 스치는 소리라든가…, 새들이 지
저귀는 소리라든가 하는 것이… 전혀 없었다. 너무 조용해서 불안하기까지 한 숲이
었다.
"……."
그 숲 안의 한 곳에서, 한 청년이 나무에 기대서서 눈을 감고 있었다. 길게 기른
흑발에, 갸름한 얼굴선. 온통 흑색인 옷을 입고 있는 그는, 눈을 감은 채 가만히
나무에 기대어 있었다. 무언가 생각에 잠겨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왠지, 가까이 해서는 안 될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래, 이 숲의 분위기와 잘 어울
리는 분위기였다.
스륵.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이윽고 청년이 몸을 움직였다. 발걸음을 옮겨, 한 발짝
앞으로 걸어나왔다. 눈은 감은 채로였다.
"…오랜만이로군요."
청년이 입을 열었다.
"……."
부스럭.
청년의 앞쪽에서… 나뭇잎을 밟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를 들은 청년은, 씁쓸
하게 웃으며 천천히 눈을 떴다.
"인사 정도도 할 수 없다는 것입니까?…"
그렇게 말하며, 청년은 자신의 앞에 모습을 드러낸 여성을 바라보았다. 흑발을 길
게 기른 미녀…. 몸에 달라붙는 검은 옷 위에 백색의 옷을 입은 여성―. 어딘지 타
인을 멀리하는 듯한 분위기. 마왕…, 퓨어린이었다.
"너 따위에게 인사해야 할 이유는 없어."
그녀는 차갑게 말했다.
"난, 네가 마음에 들지 않아."
"저도 제가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청년이 씁쓸하게 미소지었다. 잠시, 청년의 흑색 눈동자가 흔들렸다. 퓨어린은 그
러는 그를 잠시 바라보더니, 곧 냉소하며 입을 열었다.
"그래? 그것 다행이군.
그런데, 그런 주제에 왜 그러고 살아 있는 거지?"
청년은 입을 다문 채 그녀를 바라보았고, 퓨어린은 말을 계속했다.
"널 볼 때마다… 기분이 나빠.
널 볼 때마다 세라린이 생각난단 말이야. 그래서 기분이 나빠져. 아주. 세라린은
너같이 멍청한 놈이 아냐. …그래, 최소한 그 외모라도 좀 바꿀 수 없어?"
"죄송합니다만 그럴 마음은 없습니다."
청년은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퓨어린이 가볍게 미간을 찌푸렸다.
"뭐야? 건방지게!…
넌 '그'도 아니면서 왜 그의 외모를 하고 있는 거지?"
"…글쎄요."
청년은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당신께서도 그 이유 정도는 아시리라 생각합니다만….
그보다, 그것을 말하려 온 것입니까?…"
"…흥…."
퓨어린이 코웃음을 쳤다.
"여전히 건방지기 이를 데 없군, 너란 녀석은."
퓨어린은 싸늘한 눈으로 청년을 바라보았고, 그는 퓨어린과 시선을 마주하며 가만
히 미소지어 보였다.
"그런 것은…, 아무래도 상관없지 않습니까?"
"…그래. 그럴지도 모르지."
퓨어린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을 수긍했다.
"하긴, 어차피 이제 곧 세라린이 돌아올 때가 되었으니까.
널 볼 날도 얼마 남지 않았군."
"……."
청년은 퓨어린의 말을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퓨
어린은 의미가 담긴 듯한 미소를 지었다.
"사라딘께서 신탁을 내리셨다는 것, 알고 있지."
"…말하고 싶었던 것은 그것입니까."
청년은 가볍게 얼굴을 굳히며 말했다. 그러한 그의 모습이 마음에 들었던지, 퓨어
린의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설마. 전해줄 것이 있어서 왔어."
퓨어린은 천천히 앞으로 오른손을 내뻗더니, 가만히 눈을 감으며 오른손에 마나를
모았다.
―즈즉.
가볍게 공간을 찢으며 검 한 자루가 소환되었다. 길이 약 1예즈(프리네리아의 길
이 단위, 1예즈는 약 1.072미터) 정도의, 심플한 디자인의 롱 소드였다.
퓨어린은 눈을 뜨고는 그 검을 청년에게 건넸다.
"받아둬. 세라린이 사용했던 '검'이야."
청년은 의외라는 표정이었다.
"…이것을 왜?"
"그건 나도 알 수 없지."
퓨어린은 무표정한 얼굴로 그렇게 말했고, 청년은 가볍게 미간을 찌푸렸다. 자신
도 모르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한 투였다. 자신이 주는 것이면서, 그 이유를 자신이
모른다니?
청년의 심중을 알아챈 듯, 퓨어린은 피식 냉소했다.
"착각하지 마. 내가 주는 것이 아니니까.
세라린의 부탁이었어."
"…그의? 어째서입니까?"
청년이 재차 물었고, 퓨어린의 얼굴에 짜증난다는 듯한 기색이 떠올랐다. 그녀는
눈썹을 찡그리며 청년을 노려보았다.
"나도 모른다고 했잖아? 뭘 그렇게 꼬치꼬치 묻는 거지?
제길. 세라린의 부탁 아니었으면, 나도 이거 너한테 줄 생각 따윈 없었어. 너같
은 녀석에게 그의 물건을 넘긴다는 거, 엄청 기분 나쁘니까, 내 신경 건드리지
마. 얌전히 닥치고 받으라고."
"……그러지요."
청년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당신께서도… 꽤 친절하시군요."
청년은 얼굴에 미소를 띄웠고, 그 말에 퓨어린은 노골적으로 인상을 찌푸렸다.
"…웃기지 마.
어쨌든, 그가 부탁했던 일은 이것으로 끝마쳤으니 난 가겠어."
"인사 따윌 할 이유는 없다 하시더니. 굳이 그런 것을 말할 필요는 없잖습니까?
작별인사라도 바라십니까?…"
비꼬는 듯한 어조로 청년은 그렇게 말했고, 퓨어린은 냉소하며 청년에게서 등을
돌렸다.
"그럴 리가."
퓨어린이 '힘'을 집중함과 동시에, 퓨어린의 앞으로 마나가 모여들기 시작했다.
지지…지지직.
공간의 틈이 열리며, 그 안에서 순백색의 빛이 뿜어져 나왔다.
비정상적인 에너지 응축에 의한 공간 왜곡 현상. 6서클의 마법 워프 Warp다. 퓨어
린은 흰 빛이 뿜어져나오는 그 공간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찰나, 그녀의 입술이
살짝 달싹였다.
"그럼. 다시 보는 일이 없길 빈다. 세이어."
"……."
청년― 세이어는 입을 다문 채 퓨어린의 이동을 지켜보았다.
파앗!
백색의 빛이 퓨어린의 온몸을 휩싸는가 싶더니, 다음 순간 그녀의 모습이 사라졌
다.
…….
약간의 정적.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어디선가 이름모를 새소리가 들려왔다.
표로롱….
그 소리를 선두로, 이상하리만큼 고요했던 숲 속에는 다시 여러 가지 새소리들이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평소의 모습대로. 생기 넘치는 숲의 모습이다.
생기라…. 그러나.
"……풋…."
세이어는 오른손을 들어 눈을 가리며 웃었다. 뒤로 몇 발짝 발걸음을 옮겨, 나무
에 몸을 기댔다.
"푸훗…, 후후후훗, 아하하하하하……."
숲 속에 웃음소리가 울려퍼졌다. 어딘지 모르게 허무한 듯한 웃음소리였다.
"아하… 하… 하하하….
……그렇군요. 결국…, 저란 존재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이군요."
문득 웃음을 멈춘 세이어가 중얼거렸다.
"그렇겠지요. 전 그의 복제일 뿐이니까요."
세이어는 알고 있었다.
자신의 존재 이유는 없음을. 그는, 애초에 생겨나지 않았어야 할 존재였으니까.
- To be continue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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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시간을 두고 올릴 생각입니다. 쓰는 것 자체는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긴
합니다만, 좀더 퇴고를 확실히 해보려고 합니다. 빨리빨리 올라오지만 허술한 글
보다는, 약간 느리게 올라오지만 그런대로 탄탄한 글이 좋지 않겠습니까?…
(…라고 말하고는 있지만, 어느 정도 비축분이 쌓이게 되면 올라오는 속도가 빨
라질 겁니다.^^)
아아…. 이해하기 쉽게 쓴다고 썼지만, 여전히 이해하기 힘들게 쓰여진 듯 싶습
니다. 어떠신지, 여러분의 의견을 들어 보고 싶네요. 메모 하나라도 보내주셨음
합니다만……, 아하하.(뭐, 강요하는 건 아녜요^^)
Neissy였습니다.
번 호 : 6094 / 21135 등록일 : 2000년 04월 01일 21:16
등록자 : NEISSY 조 회 : 510 건
제 목 : [연재] ◈ 데스트로이아 ◈ # 2
데스트로이아 DestroiA
Fa-las de sy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