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스트로이어-0화 (1/158)
  • 프롤로그 Prologue

    어디까지고 암흑일 뿐인,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공간이

    있었다. 말 그대로,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 무 無의 공간.

    그 무의 공간 안에서… 한 존재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외관상으로는, 20대 초반의 청년이었다.

    길게 기른 흑발에, 흑색의 눈동자. 약간 가름한 얼굴에 선이 고운 외모로, 준수하

    다… 라고 할 수 있는 얼굴이었다. 단지, 그의 흑색의 눈동자는 마치 모든 것을 빨

    아들일 것만 같은 기분나쁜 기운을 발산하고 있었다.

    회색 웃도리에 회색 바지, 거기에 흑색의 조끼 같은 것을 입었고, 그 위로 흑회색

    의 망토를 두르고 있었다. 그런대로 수려한 디자인으로, 약간 귀족적인 인상을 주

    는 옷이었지만―, 여기저기 찢겨나가 있어 보기에 흉했다. 방금 격렬한 전투라도

    치르고 온 것 같은 모습이었다.

    "크…윽…."

    청년은 입을 열었다. 그의 표정… 일그러진 그의 표정은, 숨김없이 '분노'라는 감

    정을 드러내고 있었다.

    "……왜… 입니까!!"

    속에서 끓어오르는 울분… 그것을 터뜨린다는 느낌의 외침이었다.

    "…왜… 당신은!!…"

    그가 이를 악묾과 동시에, 이 무의 공간이 일그러졌다. 왜곡되어 찌그러졌다고 할

    까. 마나를 다룰 줄 아는 자가 지금 이 자리에 있다면, 지금 이 청년의 몸에서 엄

    청난 양의 마나가 퍼져나오고 있다는 것을 알아볼 수 있었을 것이다.

    마나… 순수한 에너지, 그 자체.

    그 마나가… 실로 막대한 양의 순수 마나가 지금 이 공간을 뒤흔들고 있었다.

    "그들은!!…"

    절규…에 가까운 듯한 외침.

    그 외침과 함께, 그는 으득 어금니를 악물며 오른손에 마나를 모았다.

    즈즈즈즈즉….

    마나가 구의 상태로 형상화되며 들리는 소리.

    "그들은 인정하면서 왜―!!!"

    쿠콰쾅.

    폭음과 함께 공간이 일부 깨어져 나갔다. 일순, 공간은 그 틈을 보이는 듯 했으나

    … 그 뿐, 곧바로 다시 원상태로 회복되었다.

    그것을 바라보며, 그는 허무하다는 듯 웃어대기 시작했다.

    "크크크크큭…. 크훗…. 크…크하하하하핫!!"

    그는 아무렇게나 이 공간 안에 마나를 내쏘아댔다.

    쿠쿠쿵. 쿠쿵.

    공간이 흔들렸다. 그러나 그 움직임은 극히 미약했다. 그도 알고는 있다. 이런 짓

    을 한다 해서 이곳에서 빠져나갈 수는 없음을.

    "빌어먹게도 단단하게 쳐 놓으셨군요, 사라딘이시여!

    이것이 당신의 뜻이라는 겁니까!!"

    당신의 뜻.

    그리고 당신의 뜻을 거역하는 나의 의지.

    하지만 나의 의지를 인정하지 않는 당신의 뜻.

    "사라딘이시여."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신에게 향해진 그 음성에, 사라딘은 자신의 의식을 그녀에게로 향했다.

    길게 기른… 윤기흐르는 흑발. 갸름한 턱선. 얼굴은… 상당히 예쁜 편으로, 일견

    청순해 보이는 얼굴과 약간 날카로운 눈매가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몸에 달라붙는 흑색의 옷을 입고 그 위에 백색의 망토를 걸친 그녀는, 이 '신전'

    의 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고서 꿇어앉아 있었다.

    <퓨어린… 이구나.>

    사라딘의 음성에, 퓨어린은 자신의 흑색 눈동자를 빛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퓨리게의 자식, 냉 冷의 마왕 퓨어린.

    어둠의 사라딘을 뵙습니다."

    <오래간만이구나.

    그런데, 어쩐 일이냐?…>

    "세라린을… 봉인하셨다고 들었습니다."

    퓨어린은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그래.>

    "왜… 그러셨습니까?… 그는…."

    <그를 걱정하는 게냐. 퓨어린.>

    "…아…."

    퓨어린의 표정이 흔들렸다.

    <…아아……. 네 마음은 알고 있다, 퓨어린.

    그러나…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예…?"

    사라딘의 말에 퓨어린은 반문했다.

    <세라린, 그는 내가 정성을 들여 창조한 나의 아이…. 퓨리게가 널 아끼는 것처럼

    , 나 또한 세라린을 아끼고 있다.>

    "하지만… 왜,"

    퓨어린은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듯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그의 힘을… 나누어 버리셨습니까?"

    <아아…. 그 아이의 의지가… 너무 강했기 때문이었다.>

    "그의… 의지… 라고요?"

    퓨어린이 물었다.

    <퓨어린… 너도 알겠지만. 그 아이는 여태까지 그 누구보다도 열성적으로 인간을

    위해 싸워 왔다. 그러나…, 인간들이 우릴 버린 지금, 세라린의 그 애정은 증오

    로 바뀌어 버린 것이지….

    지금의 세라린이 원하는 것은 인간의 절멸…….>

    "압니다…."

    <그래…. 인간들이 택한 것은… 우리들을 적대하는 것…. 그들은 우리들을 적으로

    삼고 있는 셈이지…. 이제… 더 이상 전쟁의 의미는 없다.

    인간들도, '마왕'― 세라린도, 모두 내가 창조한 나의 피조물…. 나의 아이들….

    그들을 서로 싸우게 하고 싶지는 않은 거다….>

    "사라딘이시여, 하지만…"

    퓨어린이 무언가 말하려 했으나, 사라딘의 말은 계속되었다.

    <우리… '악신'들은 스스로를 정신계에 봉인하기로 결정했다. 너희들에게는 스스

    로를 봉인하라고 하진 않았지만…. 세라린, 그 아이의 경우는 어쩔 수 없었다.>

    "너무… 가혹하신 처사가 아닐런지요…."

    <그래…. 그 아이에겐 약간 가혹한 일일 지도 모르지….

    그러나, 견뎌 내야만… 한다.>

    "그 말씀은…?"

    퓨어린은 고개를 들며 물었다.

    "때가 오면…, 그 아이의 봉인을 풀어줄 것이야.

    그 때까지… 그 아이는 스스로를 성장시켜야 하지….>

    기분 탓일까, 퓨어린은 사라딘이 슬퍼하고 있다고 느껴졌다.

    <그래…. 스스로의 의지로 운명을 바꿀 수 있는 존재는,

    너희들과 인간들 뿐이니까….>

    - To be continue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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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메이크입니다. 다시 올리게 되는군요….

    기본적으로 저번에 올렸던 것이 조금 개그풍이었다면, 이제는 좀더 진지하게 이

    야기를 이끌어 나갈 생각입니다.

    사건에 이런저런 변화들이 있을 것입니다.

    Neissy였습니다.

    번 호 : 6063 / 21135 등록일 : 2000년 03월 30일 00:42

    등록자 : NEISSY 조 회 : 650 건

    제 목 : [연재] ◈ 데스트로이아 ◈ # 1

    데스트로이아 DestroiA

    Fa-las de syent

    그와 세라린의 눈이 마주쳤다.

    강한 의지를 담은 그의 눈동자. 그것을 바라본 세라린은 고개를 저으며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네가 택한 길은 그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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