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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왕 클리어러-245화 (완결) (245/245)

# 245

독식왕 : 클리어러 24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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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레디투스와의 싸움은 더럽게 힘이 들었다. 뭐 이렇게 강한 놈이 있나 싶을 정도로. 나도 강하지만 놈은 나보다 약간 더 강한 느낌이다. 게다가 그가 동행한 스무 마리의 몬스터는-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지만 빈껍데기 같은 느낌이 더 강하다-각자가 군주급 이상이 능력을 갖고 있었다. 웬만한 군주를 훨씬 능가하는, 아마도 풀 전력의 디아테타와 비슷한 수준이리라.

‘세상에, 이렇게 강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제까지 게임이 순탄하게 진행되어 나도 모르게 경계심이 약해졌던 것일까? 아니, 이것은 경계심을 운운하기 이전에 전력상의 차이가 너무도 크다.

나와 NPC 대 헤레디투스의 싸움이라면 해볼 만하겠지만 스무 마리의 졸개들까지 전력이 막강하니 어떻게 손을 써볼 수가 없을 정도이다.

점점 힘이 부치는 찰나 내 몸에서 은은한 빛이 발산되었다.

[당신은 궁지에 몰렸습니다!]

[클래스 ‘전설의 영웅’으로 강제 전환됩니다!]

믿을 수 없을 정도의 기력이 온몸으로 번져간다. 마치 멈춰 서기 직전의 자동차에 강제로 연료가 주입된 것 같다. 스스로를 자동차에 비유한다는 것은 좀 우습긴 하지만 딱 그런 느낌이다.

나뿐만이 아니라 NPC 전원이 동시에 기력을 얻었다.

‘전설의 영웅이 이런 클래스였구나.’

모호하기 그지없는 비고란의 설명이 이제야 명확해진 참이다. 그렇다고 해서 한 번에 싸움을 역전시킬 만큼의 능력을 얻은 것은 아니었다.

바닥나기 직전의 기력이 한 번에 끌어 올려졌고 보통의 수준보다 약간 더 컨디션이 좋을 뿐이다.

그 말은 즉 시간을 번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다르게 표현하면 사망시간이 좀 더 연장된 것에 불과하다는 뜻.

‘진짜 영웅 스토리라면 이럴 때 기적이 하나쯤 일어날 텐데.’

이것은 게임이지만 현실이기도 하다. 그리고 기적을 만들어줄 존재는 이미 죽어 존재하지 않는다.

‘어떻게든 해야 해.’

나는 백옥보를 휘둘러 헤레디투스의 몸통을 튕겨낸 후 스킬 로또를 사용했다. ‘전설의 영웅’은 행운까지 증가시키는지 한 번도 터진 적이 없는 1등에 당첨되었다.

로또의 효력이 끝나기 전에 헤레디투스를 죽여야 한다는 조급함에 앞으로 달려 나가자 얄밉게도 졸개 몬스터들이 대신 앞을 가로막았다.

내가 휘두르는 공격에 막강하기 그지없는 졸개들이 하나씩 박살이 났다. 다섯 놈을 죽였을 때 안타깝게도 로또의 효력 지속시간이 끝났다.

헤레디투스는 질렸다는 표정으로 웃음을 입에 걸었다.

“이제 끝난 것 같군.”

눈앞이 캄캄해졌다.

‘고작 여기서 죽으려고 그 고생을 했나?’

헤레디투스의 창이 내 심장을 겨누고 찔러왔다. 그리고…….

캉!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그의 창이 튕겨 나갔다. 헤레디투스가 놀랐지만 나는 더 놀랐다.

내가 올려다본 곳에는 익숙한 모양의 형상이 떠올라 있었다.

14

“서, 성공이다!”

앰블레마는 베그리프의 시신 안으로 죽은 마법사들의 영혼이 하나씩 흡수되는 것을 보고 기쁨의 탄성을 내질렀다.

한 번도 시도한 적이 없는 주문이기 때문에 확률은 반반이었다. 아니, 실패할 확률이 더 높았다.

그런데도 주문이 먹혀든 것은 자신의 능력이 출중해서라기보다는 베그리프 자체에 생명에 대한 의지가 강하게 깃들었기 때문이다. 반드시 살아난 뒤에 해야 할 일이 있다는 듯이.

하나씩 영혼을 흡수하기 시작한 베그리프는 점점 더 빠른 속도로 영혼을 흡수해 갔다. 그녀의 몸에서는 더더욱 밝은 빛이 더해지기 시작했으며, 특유의 신비한 아우라가 깃들었다.

“베그리프…….”

앰블레마의 눈은 욕심으로 번들거렸다.

지금 그녀를 살린 것은 물론 정령왕들이 가세한 오더 진영의 군세를 무너뜨리기 위해서였다. 역전을 기대할 수 있는 방법은 베그리프를 부활시키는 것밖에 없었으니까.

막상 그녀가 살아나자 숨겨두었던 욕망이 하나둘 껍질을 뚫고 튀어 올랐다.

‘베그리프가 나를 돕는다면…….’

일루시안 그리고 헤레디투스 양쪽에 휘둘리던 인생을 끝내고 자신의 영달을 추구할 수 있다. 일루시안은 이미 죽었고, 헤레디투스는 당분간 이면의 세상을 정복하느라 여념이 없을 것이다.

상황을 바꿀 계책을 마련할 시간은 충분하다. 게다가 자신에게는 영생의 약까지 있지 않은가?

제자리에서 영혼을 흡수하던 베그리프가 직접 몸을 움직여 마법사들의 영혼을 싹싹 빠른 속도로 흡수해나갔다.

앰블레마는 공중에 둥실 떠올라 있는 베그리프-그것은 아직 아무 모습도 갖추고 있지 않았다.-에게 말했다.

“너를 다시 살린 것은 나다. 베그리프, 우리 함께 처음부터 시작해보자. 마법사인 나는 누구보다 너를 잘 이해해. 헤레디투스, 그리고 네가 도운 이면 세상의 인물보다 너에게 훨씬 잘해줄 수 있다!”

감격에 찬 말을 쏟아놓는 앰블레마를 베그리프는 가만히 응시했다.

앰블레마는 싸늘한 예감이 등줄기를 훑는 것을 느끼고 한 발짝씩 뒷걸음쳤다.

“왜 그렇게 보는 거야, 베그리프. 너 설마 나를, 너를 살려준 나를…….”

앰블레마는 뒷말을 더 내뱉지 못했다. 그녀의 영혼이 통째로 빠져나가 베그리프에게 흡수되었기 때문에.

앰브레마의 영혼까지 흡수한 베그리프는 비로소 완전한 모습을 되찾았다.

그와 동시에 성문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정령왕들이 가세한 오더 진영이 헤레디투스의 병력을 몰살시키고 성안으로 들이친 것이다.

베그리프는 잠시 한자리에서 맴돌다가 뭔가가 떠오른 듯 빠르게 한 방향으로 날아갔다.

15

나는 허공에 떠올라 있는 금발의 미소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처음 나를 찾아왔을 때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너는 내 취향을 정말 잘 알고 있구나.”

“후후.”

베그리프가 한 손으로 입을 가리고 수줍게 웃었다. 그런 행동조차도 정확히 내 취향에 부합한다.

암젤이 보았다면 질투를 할 상황이지만 다행스럽게도 그녀는 전투를 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베그리프를 본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헤레디투스도 멍한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너, 어떻게…….”

뭔가 삼각관계 같은 광경이 펼쳐졌다. 이 싸움의 승부를 결정지을 열쇠는 베그리프가 쥐고 있다. 그녀가 누구를 택하느냐에 따라 죽을 사람이 결정되는 셈.

그리고 그것은 헤레디투스의 창끝을 그녀가 막아냈을 때 이미 결정되었다.

베그리프가 내 뒤로 와서 어깨에 양손을 올렸다. 내 귀안에 달콤한 목소리를 흘려 넣었다.

“이 싸움은 당신의 손으로 결정지어야 해요. 걱정하지 마요. 내가 뒤에 있을 테니까.”

전설의 영웅 클래스가 발동할 때 그랬던 것처럼 내 안에 새로운 기력이 가득 차올랐다.

일 대 일의 승부를 펼친다고 했을 때 나와 헤레디투스는 막상막하이다. 하지만 베그리프의 모습을 본 그는 심리적으로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행운의 여신을 뒤에 엎고 온 힘을 다해 헤레디투스를 공격했다. 그의 단단한 갑옷이 하나씩 깨어져 튀어나가고, 맨살과 뼈도 백옥보에 의해 찢기고 부수어졌다.

“잘 가라, 최종보스!”

나는 백옥보를 휘둘러 헤레디투스의 목을 깔끔하게 베어버렸다. 다섯밖에 남지 않은 졸개들도 하나씩 NPC들에 의해 쓰러졌다.

기적처럼 승리한 나는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후우……. 설마 2회차가 있는 건 아니겠지?”

15

내가 헤레디투스를 쓰러뜨리는 동안 오더 진영은 정령왕들의 합류에 힘을 얻어 왕성을 함락시켰다.

나는 그 기분 좋은 소식을 로치온이 보내온 전언을 통해 들었고, 똑같이 기분 좋은 소식을 알렸다.

나는 일단 던전을 빠져나갔다.-S급 던전의 최상층에는 1층으로 가는 귀환서가 있었다-나와 OG 멤버들이 전부 죽었을 거라고 예상하고 있던 세상을 놀라게 했고, 가장 큰 충격과 슬픔에 빠져있던 어머니와 누나에게 무사귀환을 알렸다.

S급 던전의 수준에 대해 물어보는 기자들에게 한 마디로 간단하게 대답했다.

“위험하니까 들어가지 마세요. 나와 OG 아니면 누구도 공략할 수 없습니다.”

나는 자타공인 최고의 게이머이다. 내가 들어가지 말라고 하는데 누가 토를 달 수 있겠는가?

S급 던전은 내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게이머라는 하나의 상징이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세상의 왕이 나라는 표식이나 다름없었다.

이쪽 세상에 왕이라는 존재는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세상 모든 사람이 경애하고 마음만 먹으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게 바로 왕 아니겠는가?

나는 연일 나에 대한 찬사로 도배되는 뉴스와 기사를 보고 생각했다.

“세상 사람들은 내가 세상에 평화를 가져왔다는 사실을 알까?”

모르면 어때? 어차피 누군가의 인정을 받으려고 한 일이 아니다.

나는 그저 ‘게임’을 했을 뿐이다.

이계로 건너간 나는 그곳의 왕이 되는 대관식을 치렀다. 내가 사는 세상보다는 이계 쪽이 훨씬 왕을 예우한다는 느낌이 든다.

내 대관식에는 숫자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이계인들이 와서 축하를 했다.

며칠간 이어진 피로연을 즐긴 뒤에는 정령계로 건너가 정령왕들과 시간을 보냈다. 그들의 초대에 응하는 것은 내게 썩 내키는 일이 아니었지만 양 세계 간의 평화적 교류를 위해 싫어도 응해주라는 로치온의 조언에 따랐다.

그리고 정령계에서는 지내는 것은 생각만큼 지루하지 않았다.

정령계는 이름 그대로 아름답고, 유쾌하고, 매력 넘치는 정령들이 한 가득 있는 세상이었다. 그들은 나를 정령왕과 동급으로 우대했다.

문제가 있다면 서로 나에 대한 애정을 경쟁적으로 드러내는 바람에 수천 년 동안 이어진 평화가 흔들릴 뻔했다는 정도?

비록 왕의 타이틀을 지니고 있지만 내 생활의 베이스는 기본적으로 이계가 아니다. 따라서 내가 부재한 기간에는 서열 2위가 된 로치온이 왕의 대리 역할을 하기로 했다.

급한 일이 있으면-기본적으로 그럴 일이 별로 없지만- 전언으로 알리기로 했으니 큰 문제는 없었다.

에필로그에 준하는 활동들이 일단락된 뒤에 내내 미소녀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그녀는 날마다 모습을 바꾸었다. 덕분에 나는 공략대상이 매일 바뀌는 미연시 게임을 하는 기분을 맛보았다.- 베그리프가 내게 무언가를 내밀었다.

투명한 액체가 담긴 작은 병.

“이게 뭐야?”

“영생의 약입니다. 앰블레마가 제조한 것을 가져왔어요. 애석하게도 이것을 만든 일루시안과 앰블레마는 영생을 누릴 수 없었지만요.”

그 말은 앰블레마를 죽인 사람이 할 말이 아닌 것 같은데.

아무튼.

나는 눈앞의 병을 보고 생각했다.

‘영원히 산다는 건 정말 행복한 일일까?’

소수의 철학자들은 인간의 삶이 유한하기 때문에 더욱 가치 있다고 말하지 않는가?

“하하!”

나는 한차례 웃음을 터뜨리고는 병의 마개를 열고 그것을 단숨에 삼켰다.

당연히 오래 살 수 있으면 좋은 거지. 이것은 고민할 거리도 안 되는 문제다.

내가 영생의 약을 마시는 걸 흐뭇하게 바라보던 베그리프가 물었다.

“아직 당신에게 게임을 클리어한 보상을 주지 못했어요. 원하는 것이 있다면 말해주세요.”

“내가 원하는 것…….”

나는 미소와 함께 대답했다.

“당연히 게임을 계속하는 거지!”

<독식왕 클리어러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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