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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왕 클리어러-232화 (23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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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왕 : 클리어러 232화

치치타.

이 단순하면서도 잊기 힘든 이름의 NPC는 토끼의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완전한 동물의 형태로도 변신할 수 있지만, 중간 형태와 인간의 모습으로도 변신할 수 있다.

말하자면 암젤, 티코이와 동류인 셈.

특기는 청력을 바탕으로 피아를 식별하고 적의 위치, 전투력까지 가늠하는 것이다.

단순히 소리만으로 모든 걸 알아낼 수 있다는 점에서 가공할 만한 청력이라 할 수 있다.

거기다 고주파로 적에게 대미지를 입히거나 적을 마비시킬 수 있었다.

물론 토끼이기 때문에 엄청난 스피드와 점프력은 기본탑재.

그리고 음…….

또 한가지 눈여겨볼 부분이라면 엄청나게 글래머라는 점.

게임 안에서 그녀를 처음 보았을 때 눈을 어디에다 둬야 할지 모를 정도였다.

암젤이나 아린, 트레앙 등에게는 이성이라는 느낌보다는 동료라는 인식이 강했지만, 치치타에게만은 늘 부끄러운 감정이 생기곤 했다.

게다가 이 NPC는 스킨십을 엄청나게 좋아해서 틈난 나면 안기거나 내게 자신의 몸을 부대꼈다.

“흠흠.”

이 감촉 오랜만이로구만.

당연하게도 암젤은 치치타를 아주 싫어했다.

“주인님! 어디 가셨었어요! 이 치치타는 주인님이 보고 싶어 얼마나 애가 탔는지 몰라요!”

“미안, 치치타. 나도 말없이 떠나려는 건 아니었어.”

치치타가 어깨에 파묻었던 얼굴을 들더니 애교가 담뿍 담긴 표정으로 물었다.

“주인님도 나 보고 싶었쩌요?”

‘음, 이거 참…….’

남자의 마음을 간질이는 뇌쇄적인 표정과 말투. 예전에는 그냥 막연하게 느끼고 있었지만, 현실에서 다시 보니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아마도 그것은 현실의 야구동영상들을 접한 후 내 남자력이 상승했기 때문이겠지.

위험한 분위기를 감지한 암젤이 날카로운 목소리를 냈다.

“그만 떨어지지 못하겠냐옹? 오랜만에 만나서 반가운 건 알겠는데 주인님이 네 남자친구는 아니지 않냐옹.”

이 정도면 아주 얌전하게 의사표시를 한 것이다. 치치타도 미처 인식하지 못했다는 듯 암젤을 보고 흠칫 놀랐다.

얌전한 성품의 그녀는 웬만해서는 동료들과 마찰을 일으키길 꺼렸다.

다만 내 품에서 떨어져 나간 다음에 얼굴을 살짝 기울이며 다시 물었다.

“주인님이 내 남자친구도 하면 안 돼요?”

나는 암젤에게만이 아니라 등 뒤에서 여럿 따가운 시선이 쏘아지는 것을 느꼈으므로 얼른 분위기를 무마시키기로 했다.

“농담은 그만하고 그동안의 이야기나 해보자.”

치치타에게 들을 이야기는 별로 없었다.

그녀가 현실로 나오게 된 사연은 다른 NPC와 크게 다를 것이 없었으니까.

나는 그녀에게 우리가 처한 상황을 이야기해 주었다.

“정말요? 주인님은 저쪽 세계에서나 이쪽 세계에서나 항상 대단한 일만 하시는군요! 역시 치치타가 반한 남자는 달라요!”

습관처럼 안기려는 것을 암젤이 중간에 끼어들어 막았다.

“이제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알지 않겠냐옹? 우리는 한 시도 지체할 시간이 없다옹.”

그녀답지 않은 성숙한 말이었지만 나와 치치타의 스킨십을 막으려는 의도에서 튀어나왔다는 점에서 순수성은 조금 떨어진다고 할 수 있겠다.

동료와의 만남을 끝냈으니 이제 던전 마스터를 사냥하러 갈 차례다.

이미 이 던전에 어떤 몬스터들이 등장하는지 알았으므로 던전 마스터가 어떤 놈일지 짐작할 수 있었다.

나는 로치온에게 전언을 보냈다.

“그쪽은 상황이 어때?”

-우리는 이미 영지 외곽에 주둔하고 있다. 곧 상대 쪽에서도 우리를 눈치채게 될 거야.

“이쪽은 이제 준비가 끝났어. 슬슬 시작해도 될 것 같아.”

-알았다. 나중에 보자. 조성오.

* * *

이 던전의 마스터는 브라타곤이라는 명칭을 갖고 있었다.

묽은 시멘트와 같은 신체를 갖고 있어서, 방어력에 특출난 강점이 있고 신체 일부분을 원하는 모양으로 바꿀 수 있다.

바위를 움직여서 집어던지는 진부한 공격 패턴도 갖고 있었다.

A급 던전 마스터를 쓰러뜨리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었으므로 시간도 거의 소모하지 않았다.

놈을 소환수로 만든 다음 이면의 세상으로 넘어갔다-칼리타의 ‘길 찾기’ 능력으로 최상층에 이계로 가는 통로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던전의 이면에는 또 다른 몬스터 소굴이 있다.

몬스터들은 가장 앞에 서서 튀어나온 브라타곤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외형은 달라도 놈은 분명히 자신들의 우두머리와 같은 종이었으니까.

브라타곤과 브라타곤의 싸움이 펼쳐졌다.

본래 가지고 있는 전투력은 붕어빵이지만 소환수가 된 브라타곤이 전투력이 강해졌으므로 싸움은 놈의 승리로 끝났다.

우두머리들 간의 싸움에 나를 비롯한 누구도 힘을 보태지 않았다.

왜냐면 이제부터 흥미로운 장면이 펼쳐질 거니까.

몬스터들은 자신들의 우두머리를 쓰러뜨린 소환수 브라타곤을 새로운 우두머리로 인식했다.

결과적으로 거대한 소굴에 집결해있는 몬스터 전체를 내가 콘트롤할 수 있게 된 것.

몬스터 무리를 이끌고 카오스 군주가 있는 영지로 내려갔다.

7

“성공적이군.”

로치온은 싸움이 끝난 전장을 바라보며 한 마디를 내뱉었다.

“응, 성공적이야.”

예상은 했지만 나도 이 정도로 일이 쉽게 진행될 줄은 몰랐다.

이제 첫 단추를 끼운 것에 불과하지만 이대로라면 앞으로도 전혀 어려울 것이 없겠다.

“그래도 방심은 금물이지.”

“네 말이 맞아, 로치온. 모레 보자.”

모레 만나자고 말한 것은 중국의 면적이 넓어서 던전 사이의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그 이유를 차치하고라도 하루 정도는 오더 측 병사들의 재정비 시간이 필요하다.

* * *

중국에서의 일정이 모두 마무리되고(예정대로 세 명의 동료를 얻고, 세 개의 영지를 차지했다.) 중국주석의 환송을 받으며 한국에 돌아왔다.

대체로 스케줄대로만 이루어진 간소한 방중이었지만 그 여파는 작지 않았다.

중국은 OG의 길드장이 첫 방문지로 중국을 택한 것을 대대적으로 홍보하며 나와 주석이 함께 찍힌 사진을 국영언론에 내걸었다.

기사 밑에 달린 댓글들을 보자니 피식 웃음이 나온다.

└와, 나이도 어린데 당당한 것 보소.

└내 눈에는 중국 주석이 쩔쩔매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거 실화냐?

└너무 대단해서 국위선양이라는 말도 안 나온다.

‘해외 나들이를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데?’

그래도 기본적으로 나는 멀리 움직이는 것을 싫어한다.

아직 방문해야 할 나라가 많이 남아 있다는 것이 애석할 따름이었다.

“다음에는 어디로 갈까요? 길드장님?”

노아의 보고에 따르면 이번 방중의 사업적 성과가 상당했던 모양이다.

여태껏 증국에 이렇게 많은 양보를 얻어낸 길드가 없었다고 하는데, 사실 다른 길드와 OG를 비교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이번엔 아랍에미리트로 갈까요?”

동료가 있는 곳 중 하나가 아랍에미리트라는 것을 보고 즐거운 마음이 생겼었다.

이곳은 공인된 내 팬이 사는 나라니까.

칼리파는 내 연락을 받고 매우 기뻐했다.

-형이 UAE를 방문한다니 얼마나 기쁜지 몰라! 얼마나 머물 생각이야?

단 이틀만 머물 거라는 내 말에 칼리파의 목소리에 아쉬움이 가득 실렸다.

-그래도 오랜만에 만나는 건데 일주일 정도만 시간을 내주면 안 돼?

“나중에 꼭 그렇게 하자. 너도 바쁜 사람이니까 일주일씩 시간을 내기는 어렵잖아?”

-형을 접대한다는 건 내게도 휴식을 취할 좋은 핑계야. 감히 누가 OG 길드장을 만난다는 데 딴지를 걸겠어?

아……. 그런 개념으로 볼 수도 있구나.

하지만 지금은 너무 바쁘다. 칼리파에게 말한 대로 마음 놓고 휴식을 취하는 것은 모든 일이 다 마무리한 뒤에 해도 늦지 않다.

8

아랍에미리트에서 칼리파의 존재감은 대단했다. 애초에 나는 국빈급 방문객이었는데 거기에 칼리파의 영향력까지 더하자 마치 왕족처럼 대우를 받았다.

‘아쉽긴 하네.’

남부러울 것 없는 생활을 하는 나이지만 그렇다고 왕족처럼 사는 것은 아니다.

이곳에 오니 시대 감각이 흐려지는 기분이었다.

몇백 년 전으로 되돌아가 전제군주 시대의 왕이 된 기분이라고 할까?

칼리파는 NPC 동료가 늘어난 것을 보고 감탄을 했다.

공교롭게도 이번에 중국에서 재회한 동료들은 모두 여자 NPC였다. 그것도 대단한 미모를 가진.

어쩌면 이런 것도 베그리프가 내 취향을 고려해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나는 열 살 때부터 확고한 미소녀 취향을 가지고 있었던 셈이다.

뭐, 딱히 부끄러울 것은 없지만.

“형은 참 대단해. 한국 같은 나라에서 하렘을 꾸리다니.”

“너 뭔가 대단한 오해를 하고 있구나.”

물론 타인의 관점에서는 내가 하렘에 둘러싸여 생활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내가 아무리 그녀들과 남녀관계가 아니라고 해도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이가 얼마나 되겠는가?

NPC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를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은 그런 생각이 한층 굳어질 것이다.

UAE에서의 일정도 손쉽게 마무리되었다. 이 정도로 일이 잘 풀린다면 살짝 불안감이 생길 정도이다.

이것은 게임 마니아가 가진 당연한 감각이기도 한데, 어떤 게임이든 후반부로 갈수록 난도가 상승하기 때문이다.

‘너무 순조롭단 말이지.’

이대로 최상위 군주들을 하나하나 쓰러뜨려 그 세력을 흡수해가다 보면 헤레디투스와 최종전을 벌이는 것도 어렵지 않을 것이다.

이 정도의 난이도라면 EASY가 아닌 VERY EASY쯤 된다고 보는 것이 맞겠지.

‘불필요한 생각은 하지 말자.’

나는 마음에 깃든 여유를 내몰았다. 만약 이것이 나 혼자 즐기는 게임이라면 문제 될 것이 없지만, 수많은 사람의 생명과 안전, 나아가 세상의 존망이라는 무겁기 그지없는 타이틀이 걸린 일이라면 절대 방심할 수 없다.

여유롭다는 것은 곧 위험이 닥칠 거라는 신호이기도 하다.

군주들도 가만히 당하고 있지만은 않을 테니까.

그들이 거센 저항을 시작하기 전에 조금이라도 빨리 움직여야 한다.

9

이계 서열 2위 군주 디아테타.

그녀는 작금의 상황을 흥미롭게 관망하고 있었다.

수만 년 동안이나 이어온 명문가의 핏줄인 그녀는 어떤 상황이 와도 현상을 위에서 내려다보는 데 익숙했다.

헤레디투스와의 싸움에서 졌을 때도 그러했다.

치욕감에 피를 토했음에도 불구하고 언젠가 자신이 그 자리를 되찾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리고 지금 자신의 열망이 현실이 되고 있었다.

“큭큭큭, 흥미로워…….”

그녀에게 이면의 세상을 차지하는 것은 그닥 흥미로운 일이 아니었다. 당면과제는 어디까지나 이곳의 왕좌를 탈환하는 것이다.

조상들이 대대로 차지해왔던, 그리고 자신이 잃어버린 왕좌를.

그녀가 혼자 미소를 짓고 있을 때 신하 한 명이 다가와 보고를 했다.

“성문 밖에 군주님들이 와 계십니다. 모두 급한 얼굴로 여왕님을 뵙기를 청하고 있습니다.”

“몇 명이나 왔더냐?”

“다섯 분이십니다.”

“……아직 적군. 뭐 다른 놈들도 이제 곧 제 발로 찾아오겠지.”

디아테라는 거만한 몸짓으로 옥좌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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