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1
독식왕: 클리어러 231화
4
내가 노아, NPC들을 비롯한 동료들과 함께 중국에 도착했을 때, 그곳에는 생각보다 적은 사람들이 나와 있었다.
대부분이 검은 수트를 입고 긴장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을 보면 일반인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노아를 통해 내 존재감이 크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내심 얼마나 많은 인파가 공항에 몰렸을까 기대를 했었다.
내 어설픈 사회지식을 바탕으로 하면 공항에 스타가 뜨면 대체로 어마어마한 인파가 몰리게 마련이니까.
서툰 한국어로 ‘사랑해요!’라고 외치거나, 서로 밀치면서 피켓을 들고 사진을 찍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하지만 실제 드러난 풍경은 내 기대와는 상당히 거리가 있었다.
사진을 찍는 사람도 커다란 전문가용 카메라를 든 한 사람밖에 없다.
노아도 의외의 풍경이라고 생각했는지 헛웃음을 지었다.
“역시 중국이군요. 길드장님 방문에 맞추어 공항을 비운 모양입니다.”
“네?”
그러고 보니 사람만 적은 것이 아니라 공항이 전체적으로 한산했다.
‘아, 그런 거구나!’
중국 정부에서 이른바 내 편의를 위해 공항의 운행 자체를 멈춘 모양이다. 과연 중국의 스케일답다.
아무리 귀빈이 왔다지만 이렇게까지 할 수 있는 나라가 얼마나 되겠는가?
서글서글한 인상의 중년 남자가 다가와 한국어로 말을 걸었다.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주석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역시, 시작은 꼭대기부터로군.
* * *
나는 중국 주석의 이토록 친절한 모습을 보지 못했다.
물론 내가 그 사람과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매스컴에 비치는 모습은 꽤 거만해 보였으니까.
미국 대통령을 만날 때는 물론이거니와 그 밖의 고위인사들을 만날 때도 ‘내가 니들 위다.’라는 태도를 견지했다.
하지만 지금은 마치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조카를 대하는 듯하지 않은가?
상다리가 부러지게 차려진 식탁에서 식사를 하고 있자니 노아가 내게 나직이 말을 했다.
“길드장님, 좀 웃으십시오. 저들이 곤란해 하고 있습니다.”
“네?”
아…….
미처 인식하지 못했다. 거만하게 굴고 있는 건 중국 주석이 아니라 바로 나였구나.
솔직히 미치도록 지루하다. 아무리 친근한 표정으로 말을 걸어도 외교적 수사가 포함된 대화를, 그것도 통역을 통해 계속 듣는다는 것은 고역이었다.
내 지루함이 표정으로 그대로 드러났고, 뭔가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다는 제스처가 되어 주석을 포함한 중국의 고위급 인사들을 당황케 한 모양이었다.
‘사람은 참 오해받기가 쉬워.’
나는 언젠가 축구선수 메시가 일국의 대통령을 만나면서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나타나 주머니에 손까지 넣는 모습을 떠올렸다.
그것을 생각하니 번뜩 경각심이 인다.
‘적어도 건방지게 보이지 말아야지.’
내가 억지로 웃기 시작하자 확실히 분위기가 훨씬 화기애애해졌다.
‘영향력 있는 사람으로 사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구나.’
표정을 꾸미려고 하니 이 자리가 두 배는 더 지겨워졌다.
5
나는 딱 중국 주석을 만나는 데까지만 의무를 이행했다. 던전은 하루 종일 공략할 수 있는데, 이 짓거리는 한나절 이상을 못하겠다.
그나마 스케줄을 최대한 가볍게 한 것이 이 정도라니, 참 불편한 것도 정도껏 해야지.
나는 얼굴을 내비친 것으로 의무를 다했고, 실무적인 이야기는 노아를 포함한 OG의 사업파트 전문가들이 맡을 것이다.
하지만 내 입장에서도 중국의 게이머들을 만나는 것만은 흥미로웠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중국은 땅이 넓다.
땅이 넓은 만큼 던전이 많고, 게이머의 숫자도 타국을 압도한다.
양이 많으면 당연히 인재가 나올 확률도 높다.
중국은 그 나라의 특성답게 게이머를 관리하는 방법도 특이했다.
다른 나라처럼 완전히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게 아닌 절반-경우에 따라서는 그 이상-이 국가에 매인 몸이다.
당연히 게이머의 해외 유출도 전혀 없었다.
게다가 국가가 주도해서 의무적으로 던전의 최소 공략 횟수를 정하고, 레벨업을 위한 교육까지 실시한다.
‘그 사람들은 중국에서 태어난 게 죄로구나.’
이 정도로 관리하는데 일정 이상의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는 것을 보면 참 신기하다.
어쨌든.
나는 중국에 오기 전에 티코이에게 명단을 받았다. 이름하야 DOOM의 잠재적 영입 리스트.
중국은 보안이 철저한 나라이지만 이제는 거의 인터넷을 다루는 게 신의 경지에 오른 티코이에게 뚫리지 않는 정보란 존재하지 않았다.
중국에 오기 전에 그들과 접촉을 하고,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
민감한 이야기를 꺼내야 하기 때문에 한꺼번에 만날 수는 없다.
한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한 시간으로 제한하고, 차례로 미팅을 했다.
그리고…….
‘이쪽이 훨씬 낫네.’
중국 주석과 딱딱한 자리를 함께하는 것보다 게이머를 만나는 것이 훨씬 마음이 편하고 좋았다.
그들은 내게 순수한 호기심과 존경심을 표현했다.
질문세례에 대답을 하는 것만으로 한 시간이 부족할 지경이었다.
게이머들과 만나는 자리의 통역은 티코이가 담당했다.
언제, 무슨 이유로 습득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티코이의 중국어는 현지인을 능가했다.
‘세 명이군.’
다섯 명 중에 세 명이 대리인으로 낙점되었다.
다섯 명 모두 대리인 자격을 갖추고 실력도 뛰어났지만, 완전히 믿음을 갖고 비밀을 털어놓기에 두 명은 좀 부족하다고 느껴진 것.
비밀의 엄중함을 생각하면 그냥 ‘믿을 수 있다.’ 정도로는 안 된다.
이 사람을 완전히 신뢰할 수 있고, 절대 배신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어야 한다.
그런 점까지 감안하면 다섯 명 중 세 명은 나쁘지 않은 숫자였다.
역시 티코이, 굿 잡!
여기서 또 하나의 난제!
중국 정부의 삼엄한 관리를 받는 게이머들을 어떻게 영입할 수 있을까?
나는 이 문제에 대해 미리 노아와 상의를 했다.
그는 중국 정부와 사전협의를 했고, 예상보다 아주 쉽게 승낙을 얻어냈다.
이런 이례적인 허가가 가능한 이유는 일단 중국 측에서 DOOM과 OG의 관계가 밀접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중국은 주석이 직접 나설 만큼 OG와 가까운 관계가 되려고 애쓰고 있다.
자국의 게이머 몇 명이 OG의 산하 길드라고 할 수 있는 DOOM에 들어간다면 거기 도움이 될 거라고 판단한 것이다.
‘권력은 참 편리한 힘이군.’
의식하지 못한 사이 내 사회적 등급이 엄청나게 상승을 했다.
어쩌면 게이머 레벨을 올린 것보다 이쪽이 더 간단하고 쉽게 이루어진 것 같기도 하다.
‘드디어 끝났네.’
나는 하기 싫고 귀찮은 일은 먼저 해치워 버리자는 주의이다.
이제는 하고 싶은 일, 중국의 던전을 공략하는 일을 해야지.
헤헷.
6
속도전이 관건인 상황에 정석대로 모든 층을 공략할 수는 없다.
그 조건을 달성해야 던전 마스터가 될 수 있지만 내가 중국에 온 이유는 이곳 던전들의 마스터가 되기 위함이 아니니까.
동료를 찾고, 이면에 있는 군주의 영지를 정복하는 것이 일차적인 목표이다.
물론 동료를 찾기 위해서는 모든 층을 둘러볼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이번 퀘스트가 이전의 것들과 다른 점은 ‘동료 추적’ 메뉴의 도움을 받고 있다는 것.
임시 메뉴 ‘동료 추적’은 기대 이상으로 편리해서, 단지 동료가 있는 국가와 던전의 위치만 표시하는 것이 아니라 동료가 해당 던전의 몇 층에 있는지까지 표시되었다.
고맙게도 중국 정부는 이번 공략에 편의를 제공했다.
안내인을 동행하여 바로 원하는 층을 공략할 수 있도록 해준 것.
물론 거기에는 나와 OG멤버들의 실력을 가늠하고자 하는 이유도 있었겠으나 나는 원하는 층에 도착한 뒤에 안내인들을 바로 돌려보낼 것이다.
실력의 유출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동료를 만나는 것과 이면 세상으로 건너가는 장면을 보이는 것은 안 될 일이니까.
처음 방문한 던전은 기암괴석이 엄청난 규모로 솟아 있는 특수한 형태의 던전이었다.
산의 형태를 한 던전은 아주 흔하지만, 과연 중국은 그 흔한 것 중에서도 스케일이 다르다고 할까?
여유만 있다면 천천히 공략하고픈 생각도 있지만, 지금은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개인적 욕심은 접어두기로 했다.
“어떻습니까? 이곳은 총 66층 규모로써 세계 제일의 연면적을 자랑합니다!”
안내인이 능숙한 한국어로 자랑을 했지만 던전이 크다는 게 자랑할 일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아, 그렇군요. 축하합니다.”
코 옆에 커다란 점이 있는 안내인 게이머는 A급에 인성도 나쁘지 않아 보였지만, 어쩐지 무협 영화에 나오는 식당 종업원을 연상시켰다.
손님이 원하지 않는데 쉴 새 없이 수다를 떠는 것이 특히 그렇다.
최상층에 잠깐 들른 뒤 -방문 기록을 남겨둬야 나중에 또 올 수 있으니까.- 동료 NPC가 있는 55층에 왔을 때는 귀에 딱지가 앉을 지경이었기 때문에 즉시 그에게 귀가요청을 했다.
“고맙습니다. 여기서부터는 저희끼리 알아서 할게요.”
“괜찮으시겠습니까? 이곳의 공략법은 까다롭습니다. 자랑은 아닙니다만 저는 이곳을 30번 이상 공략했기 때문에 길드장님께 큰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제 실력이야 길드장님에 비하면 미천하기 그지없지만 던전 공략이라는 게 절대적인 실력만으로는 공략을 쉽게 할 수 있느냐 여부를 결론지을 수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저는 정부로부터 수당을 따로 받기로 되어 있기 때문에 길드장님이 사양하실 이유는 절대 없습니다. 공짜로 부리는 종이라고 생각하고 마음껏 명령만 내리시면 됩니다. 헤헤.”
자존심 강한 중국인이 외국인을 향해 자신을 종이라고 표현하는 것을 보면 정말 특이한 캐릭터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특이한 캐릭터에 대한 호기심은 이미 오래전에 바닥났으므로 더는 같이 있고 싶지 않았다.
더군다나 말은 나한테 하면서 계속 곁눈질로 이쪽 미녀 멤버들을 흘긋거리고 있는 것도 거슬리고 말이지.
“안녕히 가세요.”
“어? 저, 저기, 길드장님?”
등 뒤에서 당황한 목소리가 들렸지만 무시하고 성큼성큼 걸어갔다.
옆에서 인간 모습을 한 암젤이 질렸다는 듯 말했다.
“내 가슴은 주인님을 위해 달려 있는 거다옹. 저 인간이 계속 쳐다보는데 1초만 더 있었어도 죽였을지도 모른다옹.”
나는 경험으로 암젤의 말이 진심임을 알고 있었다.
나를 위해 달린 가슴이라고 한 표현은 좀 부담스럽지만 말이지.
중국인 안내인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공략은 아주 쉬웠다.
이곳에 출몰하는 몬스터를 과거 숱하게 사냥한 적이 있어서 생각보다 손이 먼저 나간다.
얼마 전 이계 군주들과 연속 대결을 펼쳤을 때와 비교하면 너무 쉬운 싸움이었기 때문에 손안에 있는 백옥보도 지루하다는 듯 느릿하게 반응했다.
몬스터들을 쓸어버리며 전진하고 있자니 어디선가 희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혹시 주인님?”
이내 멀리서 총알처럼 그림자 하나가 달려왔다. 그것은 훌쩍 뛰더니 내 품에 쏙 안겨 왔다.
나이스한 보디에 깡총하니 높은 귀를 가진 NPC의 등장에 암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너였냐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