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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왕 클리어러-230화 (230/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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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식왕: 클리어러 230화

    Chapter 57 ? Road to 독식왕(1)

    1

    -그게 정말인가?

    로치온은 반사적으로 그렇게 물었다가 이내 고쳐 말했다.

    -그래, 거짓일 리는 없지.

    마지막 말에는 큰 기쁨이 담겨 있었다.

    -그렇다면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았군!

    나는 그에게 A급 던전을 이용한 양동 작전에 대해 말해주었다.

    새로운 동료들이 있는 던전은 이계 서열 4~15위까지의 군주들 영역과 이어져 있고, 내가 이쪽에서 던전을 공략하고 반대쪽에서 각 군주의 영역을 오더 진영이 공략한다면 완벽한 협동 전략이 되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너무 쉽게 전개되는 것 같아서 불안하군.

    로치온의 말에 나는 가장 궁금했던 한 가지를 물어보았다.

    “왜 이계왕은 잠자코 있는 거지?”

    -그 이유는 나도 잘 모른다. 헤레디투스는 왕이 된 이후로 칩거에 들어갔어. 그는 원래 왕성한 탐욕주의자인데 이렇게 조용히 있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아.

    “그래도 그가 가만히 있는 것이 우리에게 도움이 되고 있잖아?

    -그 말은 사실이다. 모르는 일에 고민할 필요는 없지. 지금 중요한 것은 하루라도 빨리 전력을 끌어올리는 거야. 여기까지 온 이상 조금도 지체할 시간이 없어.

    로치온의 태도에는 조급증이 느껴졌다.

    나도 앞으로는 무엇보다 시간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이계왕이 왜 칩거를 하는 것인지, 그의 꿍꿍이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쪽에서 택할 수 있는 최고의 전략은 하루라도 빨리 힘을 모으는 것이다.

    실시간 전략게임처럼 정찰병을 보낼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그런 게 가능했다면 로치온은 진즉 이계왕의 사정을 파악했을 것이다.

    ‘가슴이 근질근질 조여오네.’

    당연히 이 느낌이 싫지 않다.

    범인의 관점에서는 변태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이런 감각이 있기에 나는 지금까지 살아서 게임을 계속할 수 있었다.

    이 감각은 십 년 동안 게임에 갇혔을 때 더욱 완벽히 내 안에 각인되었다.

    ‘이런 거구나.’

    베그리프가 말했던 나여야만 한다는 이유.

    아직 사고와 체격이 불완전한 어린아이를 가두어놓고 목숨 걸고 게임을 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재능있는 아이를 선별해 비슷한 트레이닝을 한다면 확실한 성과를 얻을 수 있을 터.

    물론 현실에서는 윤리적인 이유로 허락될 수 없다.

    ‘너는 나에게 갚아야 할 것이 많아, 베그리프.’

    나는 얼마 전에 보았던 그녀의 모습을 떠올렸다.

    물론 그것은 본모습이 아니기 때문에 성별이나 외관은 무의미하다.

    하지만 나를 끌어안았을 때 느꼈던 절박함이나 안타까움 그리고 미안함 등은 생생히 떠올릴 수 있었다.

    물론 그 정도로 내 안에 있던 응어리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것과 무관하게 한편으로는 그녀가 무사했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다.

    어쩔 수 없다고 하는 것은 아주 편리한 핑계이지만, 어쩔 수 없는 것을 어쩔 수 있도록 만들려는 생각 자체가 어쩌면 더욱 편리한 인간의 사고일지 모른다.

    적어도 미워할 수는 없다.

    그리고 나는 내게 주어진 운명을 완수할 수밖에 없다.

    마음에 들건 안 들건 베그리프는 내게 최고의 보상을 내걸기도 했다.

    세상을 독식하는 왕이 되는 것!

    그것도 하나의 세상이 아니라 두 개의 세상을 차지하는 왕이 될 수 있다는 보상이다.

    이러한 조건은 웬만큼 사람을 믿지 않고서는 내걸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진짜 절박했나 보네…….’

    나는 오른쪽 뺨을 문지르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렇다면 정말로 되어주지.’

    베그리프는 최후의 싸움까지 도달하는 길을 열어주었다.

    그리고 그 앞은 그녀조차 모르는 미지로 남아 있다.

    하지만 게임이라는 게 원래 이렇게 미지의 요소가 있어야 재밌는 것이다.

    평탄한 엔딩보다도 어떤 반전이 튀어나올지 모르는 전개!

    가슴이 두근두근!

    혼자 웃고 있는 내게 암젤이 다가와 꾹꾹이를 했다.

    “무슨 일이냐옹, 주인님? 기분이 엄청 좋아보인다옹.”

    2

    열두 명의 동료가 있는 던전은 전 세계에 흩어져 있다.

    지금까지는 국내에서만 활동하는 편리한 포지션이었지만, 이제부터 본의 아니게 세계 투어를 해야 하게 됐다.

    여기 대해서는 조금 복잡한 문제가 있었다.

    일반적으로 일국의 게이머가 타국 던전을 공략하는 것은 금기사항이기 때문.

    D급 이하의 던전은 별다른 제재가 없지만, 그 이상의 던전은 허가 절차를 거쳐야 한다.

    더구나 A급 던전이라면 그 허가를 받는 것이 훨씬 까다로웠다.

    내 우려와는 달리 이 문제는 생각보다 쉽게 해결되었다.

    “아마 그들도 좋아할 겁니다.”

    노아가 뭘 그런 걸로 고민하느냐는 듯 시원한 미소를 지었다.

    “오히려 잘됐네요. 사실 지금쯤 길드장님이 나서 줄 때가 됐다고 생각했거든요.”

    “뭘 나서요?”

    “자각이 없으신가 본데 지금 길드장님은 세계 최고로 몸값이 높은 사람입니다. 길드장님을 한 번만 만나봤으면 하는 사람이 줄을 섰어요.”

    나는 생각만 해도 골치가 아팠기에 얼굴을 찡그렸다.

    “그 사람들을 다 만날 수는 없는 거잖아요?”

    “그래도 만나는 게 도움이 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쪽 사정을 고려해서가 아니라 이쪽 편의를 생각해서 그렇죠.”

    나는 대충 이해하고 말했다.

    “길드에 도움이 되나요?”

    “네, OG는 특이한 길드입니다. 영향력이 가장 큰 길드인 반면 지금까지는 너무 사업 쪽에 치우친 경향이 있었거든요. 모든 사람이 길드장님의 존재를 인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계속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면 지금의 이미지가 고착될 우려가 있어요. 저는 OG는 어디까지나 길드장님 중심의 게이머 집단이었으면 합니다.”

    노아의 말은 함축적이었다.

    그리고 그의 마음을 십분 이해할 수도 있었다.

    브레인형 게이머인 그는 애초에 싸우는 게이머라기보다는 던전에 들어가지 않고 머리만 쓰는 쪽이 더 정체성에 부합한다.

    그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소속 길드가 사업에 치중하든 공략으로 명성을 떨치든 상관이 없는 것이다.

    물론 내가 타국의 영향력 있는 인물들을 만나는 것이 사업에 도움이 되기는 할 것이다.

    하지만 그는 내게 OG가 내 중심의 게이머 집단이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

    영향력 있는 타국의 인사들을 만나야 하는 이유가 지금처럼 사업체로서의 이미지보다 게이머 중심의 길드라는 이미지가 우선되었으면 하는 마음임을 내비친 것.

    사실 사업이 우선이라면 내가 굳이 존재감을 과시할 필요가 없다.

    지금처럼 노아와 티코이의 콤비네이션만으로 충분히 잘 성장할 수 있으니까.

    노아는 던전과 이계에 얽힌 비밀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 자신이 이것의 안 좋은 측면에 노출된 전력이 있었다.

    사이가 틀어졌든 아니든 친형을 잃었고, 자신이 몸담았던 길드가 엄청난 범죄를 저지르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 소속된 길드.

    오더(Order)의 가치를 표방하고 세상을 구할 길드의 정체성을 그는 소중하게 여기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나는 미소를 지었다.

    “네, 노아 말대로 할게요.”

    나 역시 OG의 정체성을 올바른 방향으로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게임을 하는 이유는 단순히 왕이 되어 나 자신의 영달을 누리기 위해서가 아니니까.

    더 근본적인 이유는 세상을 카오스로부터 구하기 위해서이다.

    이 자각은 베그리프를 만난 후 구체화되었다. 그녀가 보여준 최악의 비전이 그만큼 강렬했던 것.

    노아가 물었다.

    “그럼 어디부터 가시겠습니까? 가장 가까운 중국부터?”

    * * *

    티코이 역시 내가 외국에 가는 것을 찬성했지만 그의 관점은 노아와 조금 달랐다.

    “외국에 가시면 새로운 대리인을 찾아보시는 게 어떻습니까?”

    “대리인?”

    나는 반사적으로 되물었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렇겠구나…….”

    지금 이계 쪽에서는 엄청난 속도로 오더 진영의 세가 넓어지고 있다.

    당연히 새로 군주 자리에 오른 이는 많아졌으며, 그 대부분의 대리인을 아직 찾지 못했다.

    대리인을 찾는 일은 한국에서만 하는 것보다 세계를 무대로 하는 것이 훨씬 나을 것이다.

    조건에 부합하는 게이머를 찾기 힘들다는 것도 있지만, 이왕이면 더 능력이 뛰어난 게이머를 선택하는 것이 좋으니까.

    각국의 핵심 게이머들이 비밀의 전말을 알고 Order의 가치에 발을 맞춰준다면 게임 진행이 훨씬 매끄러우리라는 전망도 할 수 있다.

    ‘일석삼조로구나!’

    베그리프가 여기까지 계산을 하고 퀘스트를 주었는지는 미지수이다.

    하지만 그녀가 평범한 존재가 아님을 감안하면 그런 가능성도 충분했다.

    ‘너는 정말 최선을 다하는구나.’

    게임 개발자로서는 최고의 마인드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본격적으로 동료들을 찾으러 떠나 보실까?

    3

    중국은 땅이 넓다. 그 말은 즉 던전도 많다는 뜻이다.

    던전이 많으면 경제 패러다임에 의해 세계 초강국으로 우뚝 서야 할 텐데, 실상은 아직 미국에 밀리고 있다.

    거기에는 구시대의 습성을 완전히 탈피하지 못한 정치 시스템과 개개인의 낡은 사고방식이라는 이유가 있는 모양이지만 나는 거기까지 관심이 없고, 흠흠.

    어찌 됐든 그 많은 던전 중 총 세 곳에 동료들이 있었다.

    한 나라를 방문하는 것치고는 많은 성과를 올릴 수 있는 셈.

    같은 이유로 생각보다 오랜 시간을 중국에서 머물러야 했다.

    중국은 상대하기 껄끄러운 나라다.

    이쪽에서 먼저 던전을 공략해도 되느냐는 요청을 하면 그 저의부터 파악하기 시작할 것이고, 내 방문을 자국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이용하려고 기를 쓰겠지. 이런 반응은 비단 중국에만 예상되는 것이 아니다.

    내 입장에는 엄청나게 귀찮은 일이 생기는 것. 단순히 귀찮은 차원을 넘어서 한시가 급한 상황에 필요 이상의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하게 된다.

    그렇게 되게 하지 않기 위해서 우리 길드의 두 브레인이 머리를 썼다.

    우선 내가 외국에 나가는 것에 타국과의 사업적 제휴 및 해외 공장 건설, 그리고 여러 국가와의 관계 구축이라는 이유를 내걸었다.

    그동안 한국에만 있던 거물이 움직인다는 소식에 각국의 반응이 즉각적으로 나왔다.

    약속이나 한 듯 적극적인 러브콜을 보내온 것.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중국도 엄청나게 적극적이었다.

    이쪽에서는 선심을 쓰는 양 그들 부탁에 귀를 기울이기만 하면 되었다.

    노아가 직접 읊어주는 스케줄을 듣다가 나는 슬쩍 놀랐다.

    “주석도 만난다고요?”

    “네, 그쪽에서는 이번 일에 국가의 명운이 걸렸다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당연한 일이죠. 피스&호프가 무너지고 게이머 계의 중심축이 완전히 OG 쪽으로 넘어온 것이니까요. 그 길드장이 방문하는 거니까 주석의 할아버지라도 나와야 할 겁니다.”

    노아의 찰진 비유를 한 귀로 들으면서 나는 걱정을 했다.

    “혹시 저 중국 가면 못 돌아오는 것 아닐까요?”

    노아가 피식 웃음을 짓는다.

    나 또한 내 말이 얼마나 어이없는 것인지 깨닫고 웃고 말았다.

    세계 최고의 게이머를 그 누가 건드린단 말인가? 만약 싸울 생각이라면 국가전면전 수준의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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