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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왕 클리어러-229화 (229/245)

# 229

독식왕 : 클리어러 229화

헤레디투스는 대뜸 문을 해체하고 있는 용에게 뛰어갔다.

쾅!

바닥을 박차고 도약해 수 미터 상공에 있던 용의 등에 올라탔다.

“키에에엑-”

엄청난 몸집을 자랑하는 화룡이지만 헤레디투스의 위세는 대단했다. 그는 용의 목을 조르며 소리쳤다.

“당장 멈추지 못하겠느냐! 베그리프!”

몸을 움직여 헤레디투스를 떨쳐낼 만도 한데, 베그리프는 계속 주문만 외웠다.

결국 화가 난 헤레디투스가 용의 한쪽 날개를 잡고 찢어버렸다.

“키에에엑!”

용은 비명을 지르면서도 한 쪽 날개만 퍼덕거리며 주문을 멈추지 않았다.

앰블레마는 그것을 보며 기이하다고 생각했다.

주문을 몇 초 더 외운다고 해서 수천 명의 마법사가 일 년 동안 만들어낸 문이 완전히 부서지지는 않을 텐데.

헤레디투스가 반대편 날개까지 찢어버린 뒤에야 용이 바닥으로 추락했다.

퍼어엉!-

추락한 용은 천천히 몸이 녹아내렸다.

짙은 마나가 피어오르더니 끝내 아무 것도 남지 않았다.

헤레디투스는 분노에 찬 표정으로 숨을 헐떡였다.

“이런 제길!”

그의 시야에 반파된 문이 비쳤다.

이 문은 특별한 주문을 토대로 만들어진 것으로, 반대편 세상과 일대일로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던전과 통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그는 거친 음성으로 앰블레마에게 물었다.

“고칠 수 있을 것 같으냐?”

“……만약 처음의 설계대로 하려면 완전히 부순 뒤 새로 만들어야 합니다. 이 상태로 복구를 하면…….”

“복구를 하면?”

무서운 얼굴로 대답을 재촉하는 헤레디투스에게 앰블레마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면의 세상에 있는 모든 던전과 통할 수는 없습니다. 아마 한 곳으로밖에 통하지 않을 것입니다.”

“으음…….”

어금니를 깨문 헤레디투스는 자신의 화를 다스렸다.

그간 쏟아 부은 마나의 양도 어마어마할진대 설계대로 문을 완성할 수 없다면 큰 낭패가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숨을 한 번 집어삼킨 뒤, 씹어뱉듯 말했다.

“어쩔 수 없지. 더는 미룰 수 없다. 이 상태로 완성을 시켜라.”

이면의 세상을 한 번에 집어삼키는 방법이 효과적이기는 하겠지만 이곳에 불어 닥친 변고로 동원할 수 있는 카오스 병력도 크게 줄어든 상태이다.

한 곳의 문만 열린다고 하더라도 자기가 두 세계를 지배한다는 큰 그림에는 지장이 없다.

예정과 다르기는 하지만 이미 이렇게 된 것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

‘베그리프. 너는 끝내…….’

연기 같은 마나만 흩뿌린 채 사라진 베그리프를 생각하며 그는 가슴 속 깊이 탄식을 했다.

자기 계획을 망쳐놓았지만 한편으로 그가 없었다면 지금까지의 성과를 이룰 수도 없었다. 그는 이번 일로 베그리프에 대한 미련을 깨끗이 떨쳐내기로 했다.

“뒷일은 너에게 맡기마.”

“네!”

홀로 남은 앰블레마는 어지럽게 널린 잔해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면의 세상으로 통하는 문을 완성하는 것은 그녀로서는 평생의 과업이었다.

이렇게 허무하게 일을 그르치게 될 거라고는 추호도 생각지 않았다.

그녀는 문득 아직 허공에 머물고 있는 환영 같은 마나를 응시했다.

‘베그리프…….’

그는 정말 수명이 다한 것일까?

아니, 애초에 수명이라는 개념이 없는 베그리프가 이런 식으로 목숨을 잃을 수 있는 걸까?

그렇게 생각하자 이곳에 수십 구의 마법사 시체가 있다는 것에도 인식이 머물렀다.

‘그들의 정수를 모아 주입할 수 있다면…….’

부활한 베그리프가 어떤 심상을 갖게 될지는 확신할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을 컨트롤할 수만 있다면 자신에게는 큰 도움이 될 게 분명했다.

조심스럽게 헤레디투스가 사라진 방향을 바라본 그녀는 곧바로 작업에 착수했다.

6.

[특수 퀘스트를 완수했습니다!]

드디어 23명의 카오스 군주를 전부 쓰러뜨렸다.

마지막 한 명을 남겨두고 베그리프가 나타나 체력과 마나를 회복시키지 않았더라면 아마 성공을 할 수 없었을 지도 모른다.

그녀를 생각하자 시원했던 마음에 한 가닥 아쉬움이 자리 잡았다.

‘곧 죽을 사람처럼 얘기하던데 진짜 어떻게 되는 것은 아니겠지?’

하지만 이계의 군주들과는 달리 그녀와는 전언이 통하지도 않으므로 더 이상 대화를 나눌 방도가 없다.

아직 시스템이 제대로 운용되는 것을 보면 죽지는 않은 게 아닐까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애초에 시스템은 그녀의 생사와 무관하게 운용될 수도 있는 거니까.

그녀의 모습은 아름다웠고, 내 몸을 끌어안았을 때도 무척 따스한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자기 말로는 구체적인 형상이 없다고 하니 그 모습도 진짜가 아니었을 것이다.

‘내가 좋아할 것 같은 모습을 취했다고 했지.’

그래서 구현한 것이 미소녀였다니, 나를 정말 잘 알고 있다.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추가 메시지가 나타났다.

[보상으로 ‘랜덤 보상 상자(넘버링 아티팩트 전용)×23’을 얻었습니다!]

‘설마 했는데 진짜 스물세 개를 주는구나.’

바로 직전에 얻은 열 개의 넘버링 아티팩트까지 합하면 짧은 시간에 무려 서른세 개의 아티팩트가 생긴 것이다.

이 모든 게 최후를 각오한 베그리프가 남긴 유물이라고도 할 수 있다.

메시지는 그게 끝이 아니었다.

[지위 퀘스트 ‘랭킹 1위가 되어라.’를 달성했습니다!]

[보상으로 ‘랜덤 보상 상자(세트 아이템 전용)’을 얻었습니다!]

‘랭킹 1위…….’

어쩌면 특수 퀘스트가 주어진 또 다른 이유 중 하나가 부족한 경험치를 채워 랭킹 1위에 등극시키려는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같은 레벨을 던전에서 올리려고 했으면 시간이 더 걸렸을 테니까.

자칫 죽을지도 모를 위기를 넘기긴 했지만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얻었다.

그뿐인가? 마지막 페이즈의 부, 명예, 지위 퀘스트를 달성함으로써 ‘동료’ 퀘스트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도 생겼다.

[임시 메뉴 ‘동료 추적’이 활성화되었습니다.]

7.

차원의 문을 통과해 집으로 돌아왔을 때 고양이 한 마리가 목을 빼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나를 보고 무척 반가워했다.

“어디 갔다 왔냐옹.”

“어떻게 알고 여기서 기다렸어?”

“주인님의 냄새가 마지막으로 끊긴 곳이 여기였기 때문이다옹. 장시간 자리를 비울 거면 미리 나한테 말하라옹. 걱정했지 않냐옹.”

“하하.”

암젤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게임 속 세상에서 바깥으로 나올 때 NPC들에게는 통보 없이 사라진 것이 되었었으니까.

암젤은 그때 큰 충격을 받고 많은 날을 헤맸었다고 했다.

내 다리에 매달린 개냥이가 볼을 쓱쓱 문질렀다.

“무사해서 다행이다옹.”

나는 그녀의 모습에서 아직 나를 찾고 있을 많은 NPC들을 떠올렸다. 열두 명의 동료.

이미 합류한 NPC들을 제외하면 그들 또한 나를 그리워하고 있을 것이다.

* * *

샤워와 식사까지 마치고 여유를 찾은 나는 획득한 보상을 하나하나 열어보았다.

서른세 개의 넘버링 아티팩트를 개봉하는 것은 시간이 걸리는 일이었지만 하나도 지루하지 않았다.

고맙게도 개개의 아티팩트가 전부 대단한 것들이었다.

비슷한 아티팩트는 제외되고, 효과가 중복되는 것들 중 더 나은 것들만 나왔다.

비록 백 개의 넘버링 아티팩트를 전부 갖게 된 것은 아니지만 전부 가졌다고 보아도 무방한 결과였다.

‘다음은 세트 아이템.’

마지막 페이즈 보상으로 무기는 백옥보가 나왔는데, 방어구는 어떤 것이 나올까?

물론 어느 정도 결과가 예측되기는 했다.

[‘장인의 걸작’ 세트를 얻었습니다!]

이 세트 역시 갑옷, 건틀릿, 바지, 부츠로 이루어져 있다. 모든 장비는 사용자의 능력을 감안하여 만들어진다.

엄청난 효과를 녹여냈다고 해도 사용자가 그것을 소화하지 못하면 의미 없는 일이니까.

한 왕이 거기에 착안을 하여 실력이 좋다는 장인을 모두 불러 모은 뒤 명령을 내렸다고 한다.

“어떤 귀한 재료든 마음껏 사용해도 좋다. 세상에서 제일가는 장비를 제작해라.”

단순한 호기심이었지만 거기에는 어마어마한 비용과 노력, 시간이 소요되었다.

자부심 강한 장인들이 합심하여 만들어낸 장비는 누구도 그 잠재력을 백퍼센트 끌어내지 못했고, 결국 봉인된 채 전설로만 회자되는 운명에 처했다.

이것이 ‘장인의 걸작 세트’ 비고란에 적힌 설명이다.

실제 이런 일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장비의 성능은 대단했다.

모든 클래스의 정수를 녹여냈기 때문에 이것만 있으면 클래스별로 다른 장비를 구비할 필요도 없다.

디자인도 어마어마하게 멋지다.

‘땡큐, 베그리프.’

시스템을 만든 것이 누구인지 알았으므로 이제는 고마움을 표할 대상도 특정할 수 있었다.

임시 메뉴 ‘동료 추적’.

메뉴의 이름조차도 임시로 만들었다는 느낌이 풀풀 난다.

메뉴를 활성화하자 지구본 모양의 홀로그램이 나타났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집중적으로 출현한 것과 달리 이번에 찾을 NPC들은 세계 여러 곳에 흩어져 있었다.

번뜩거리는 각각의 점을 터치하자 구체적인 지명과 던전의 이름이 나왔다.

‘우연 같지는 않은데 말이야.’

왜 굳이 열두 명의 NPC들을 세계 곳곳에 흩어놓은 걸까?

나는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들어 티코이를 찾아갔다.

“주인님!”

언제나 바쁜 티코이가 여우 형태로 키보드를 두드리다가 나를 발견하고 의자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사업 쪽은 티코이와 노아에게 전담케 했으므로 두 사람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OG는 단기간에 많은 지부를 설립하고 여러 길드와 관계를 맺었으니까.

수입이 늘어난 만큼 바빠진 것도 당연한 수순이었다.

“언제나 고생이 많아. 티코이.”

“이 정도는 별 것 아닙니다. 오히려 바쁜 쪽이 활력이 생겨서 더 좋습니다.”

근래 들어 텐션이 높아진 티코이의 모습을 보면 그것은 거짓말이 아닌 것 같다.

“궁금한 게 있어서 찾아왔는데.”

“뭡니까? 주인님?”

나는 티코이에게 ‘동료 추적’ 메뉴를 활성해 보여주었다.

“왜 이렇게 흩어져 있는 거지?”

유심히 홀로그램을 들여다보던 티코이가 노트북을 가져와 자기 자료와 대조를 했다.

“이 던전들은 이계의 특정 지점들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는 수보타와 머리를 맞대고 제작한 지도를 보여주었다.

각 던전이 이계와 통하는 공식을 찾아내 가상으로 만들어낸 지도였다.

동료들이 있는 던전은 아직까지 미수복된 지역.

즉 15위 이상의 카오스 군주들이 차지한 영역으로 이어졌다.

개 중 하나도 오더 군주의 영지와 이어지지 않은 것을 보면 단순한 우연 같지는 않았다.

“그렇군.”

이런 식으로 설정이 된 것은 일타쌍피를 노리라는 뜻인 것 같다.

전쟁을 하려면 이곳이 아닌 이계에서 하는 것이 나으니까. 던전을 통해 카오스 군주의 영지로 진입을 하고 안쪽에서 오더 군주들이 협응을 한다면…….

‘재밌겠네.’

드디어 싸움이 막바지에 접어들었다는 실감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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