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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왕 클리어러-227화 (227/245)
  • # 227

    독식왕 : 클리어러 227화

    Chapter 56 ? 베그리프

    1

    [결투의 탑에서 군주들과 연속 결투를 펼치시오.]

    “응? 이건 진짜 좋은 거 아닌가?”

    페이즈 퀘스트를 일일이 다 수행할 필요 없이 바로 결투의 탑에 들어갈 수 있다면 좋은 퀘스트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어지는 설명이 내 그런 생각에 찬물을 끼얹었다.

    [결투는 한 번 시작하면 멈출 수 없습니다.]

    [NPC나 특수 파티원 등 누구의 도움 없이 혼자서 수행해야 하는 퀘스트입니다.]

    [쓰러뜨려야 할 군주의 수는 총 23명입니다.]

    “뭐?”

    마지막 군주의 숫자에서 나는 깜짝 놀랐다.

    ‘연속 결투라고 하더니 그게 스물세 명이었다고?’

    “진짜 한 번 시작하면 멈출 수 없어?”

    내 물음을 인식한 듯 메시지가 다시 한번 중요한 포인트를 일깨웠다.

    [결투의 탑 연속 결투 퀘스트는 한 번 시작하면 도중에 멈출 수 없습니다. 각 결투 사이의 휴식 시간은 10분입니다.]

    “헉!”

    거기다 결투 사이의 휴식 시간이 10분밖에 되지 않는단다.

    내가 고민에 빠지자마자 시스템이 종용을 시작했다.

    [5분 이내에 퀘스트 수락 여부를 결정하십시오]

    [Y/N]

    "후우…….“

    나는 퀘스트 내용을 다시 한번 살폈다. 내가 싸워야 하는 군주들의 명단도 확인할 수 있었는데, 그들이 어떤 이들인지 파악하는 것은 쉬웠다.

    바로 콘치온부터 크레도 사이에 위치한 미정복 영지의 군주들.

    얼마 전 이계 쪽의 오더 군주들은 크레도와의 전쟁에서 승리하여 큰 전리품을 얻었다.

    하지만 그 뒤의 수습이 쉽지 않은 상황이기도 했다. 지금의 세력으로는 각지에 흩어져 있는 카오스 군주들을 일일이 찾아가 격파하기 힘들었으니까.

    로치온은 체념 섞인 어투로 그중 절반의 땅은 포기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문제는 또 있다.

    아직 쓰러뜨려야 할 1~15위 군주들이 남아 있고, 곳곳에 있는 카오스 군주들이 힘을 합쳐 쳐들어오지 말라는 법이 없으니까.

    양쪽에서 압박을 받다보면 상대적으로 약한 오더 진영은 무너지게 될 공산이 크다.

    ‘할 수밖에 없나…….’

    그렇게 생각하자 이 퀘스트를 수락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메리트들이 차례로 떠올랐다.

    ‘23개의 추가 넘버링 아티팩트 획득!’

    그리고…….

    ‘부’ 퀘스트를 달성하고 얻은 ‘백옥보.’

    백옥보는 자신이 벤 상대의 마나를 흡수하여 성장한다.

    아마 13명의 군주 이상으로 백옥보에게 훌륭한 먹잇감은 또 없을 것이다.

    ‘시간은 얼마나 걸리려나…….’

    이번 퀘스트는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혼자서 해치워야 한다. 다행이라면 지금 내 인벤토리에 충분한 양의 포션이 있다는 것.

    나는 심호흡을 한 차례 한 뒤 ‘Y'를 터치했다.

    [퀘스트가 시작되었습니다.]

    [‘차원의 문 열쇠’×1을 얻었습니다.]

    [5분 이내에 입장해주십시오.]

    내게 주어진 5분을 활용하여 로치온에게 전언을 보냈다.

    “로치온.”

    -조성오인가? 무슨 일이지? 나는 지금 전투 중인데.

    아닌 게 아니라 로치온의 호흡은 무척 거칠었다. 크레도를 쓰러뜨린 것까지는 좋았지만 그 뒤처리가 녹록치 않은 상황이다.

    나는 빠르게 현재 상황을 알렸다.

    내가 군주들을 불러들여 싸우는 시스템을 이해하고 있는 로치온은 무척 놀랐다.

    -그런 일이 가능하다고?

    “응, 대신 지금 바로 시작해야 돼.”

    -다시 생각하는 게 좋을 것 같다. 23명의 군주를 모두 쓰러뜨릴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지만 위험부담이 너무 크지 않나? 네가 없으면 이 싸움은 어차피 계속 해나갈 수 없어.

    “무슨 말인지 알아. 하지만 이것밖에 방법이 없다는 걸 너도 잘 알 거야. 다시 전황이 복잡하게 얽히면 걷잡을 수 없게 되니까. 그걸 수습한다고 해도 모든 군주를 쓰러뜨리려면 그만큼 많은 시간을 소모할 수밖에 없어.”

    -그래도…… 너무 위험한 도박이다.

    “걱정 마. 군주 스물세 명 정도 금방 정리해버릴 테니까.”

    -내가 도움을 줄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깝군.

    “너는 내가 이긴다는 전제하에 어떻게 그 영지를 장악할 것인지 계획을 세워 둬. 힘들게 기회를 잡아 놓고 뺏긴다면 엄청 아까운 일이잖아.”

    -알았다, 지지마라. 조성오.

    “응.”

    대화를 끝낸 나는 몸을 일으켰다.

    차원의 문 열쇠를 사용하자, 방 한가운데 빛이 터졌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나는 문을 열고, 혼자서 결투의 탑으로 갔다.

    2

    헤레디투스는 옥좌에 앉은 채로 신하 앰블레마에게 물었다.

    “진행상황은 어떻게 되고 있지?”

    “이제 8할 이상 완성이 되었습니다. 한 달이면 저쪽 세상으로 건너가실 수 있을 겁니다.”

    앰블레마는 헤레디투스의 앞에 열 개 이상의 영상을 띄웠다.

    각각의 영상은 마법사들이 마나를 퍼부어 문을 생성하는 장면을 비쳤다.

    저쪽 세상으로 통할 수 있는 거대한 문.

    차원을 뛰어넘는 문이기 때문에 복잡한 마법 공식과 수천 명의 뛰어난 마법사가 필요했다.

    이 작업은 일 년 이상 계속되어 왔고, 결과가 드러나기까지 불과 한 달이 채 남지 않았다.

    “후후후…….”

    헤레디투스는 이 작업을 지켜보며 그 외의 일에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 문을 만드는 과정에 자신의 마나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왕의 마나’는 문을 생성하는 정수이자, 필수 재료였으니까.

    “베그리프의 상태는 어떻지?”

    “여전히 결계 속에 자신을 가둔 채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그 결계를 깨기란 결코 쉽지 않지만, 적어도 그의 마나가 조금씩 옅어지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오래 버티지는 못할 것입니다.”

    “으음…….”

    베그리프는 수만 년의 역사를 통틀어 절대적인 실력을 자랑하는 최고의 마법사였다.

    역대 최고의 마법사라 불리는 열 명을 모아 놓아도 그 한 명을 대적할 수 없다.

    동시에 베그리프는 실체가 없는 존재이기도 했다. 수명이 다한 마법사들이 수천 년에 걸쳐 자신의 정수를 남기고 죽었다. 그리고 그 정수 속에서 의지를 가진 신비한 존재가 탄생한 것!

    헤레디투스는 그것을 발견하고 ‘베그리프’라는 이름을 붙였다.

    어린아이처럼 순수한 베그리프에게 자신을 도울 것을 종용하고 많은 일들을 시켰다.

    그 결과 자신은 왕이 될 수 있었고, 또 다른 세상도 정복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하지만 생명이 없는 존재 베그리프는 시간이 갈수록 많은 것들을 보고 그로 인해 자아를 형성했다.

    그가 결정적으로 변화한 것은 ‘락시움’과 장시간의 대화를 나눈 후였다.

    그로 인해 이 세상에 ‘카오스’가 아닌 ‘오더’라는 신념이 존재하고, 이 세계가 오랫동안 평화롭게 유지되기 위해서는 ‘카오스’가 아닌 ‘오더’가 필요하다는 가치관을 갖게 되었다.

    그때부터였다. 베그리프의 일탈이 시작된 것은.

    헤레디투스는 최근까지도 베그리프가 해온 일을 전혀 알지 못했다. 먼 영지에서 락시움의 아들 로치온이 군주가 되고, 세력을 일굴 때만 해도 하찮은 반항이라고 생각하고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지금은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을 뿐 아니라, 오더의 잔당들 정도야 언제든 짓밟을 수 있다는 자신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차례차례 들려오는 소식은 의심을 자아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지?’

    ‘뭔가가 배후에 있는 것은 아닐까?’

    꼬리를 잡은 것은 따로 일을 벌이느라 베그리프가 엄청난 마나를 소모했기 때문이었다.

    이상하게 생각한 앰블레마가 속사정을 살폈고, 그 내막이 대충이나마 드러나게 됐다.

    물론 그것을 완벽하게 이해할 순 없었다. 유일하게 대화가 가능한 헤레디투스에게 마음을 닫고, 지금은 결계를 형상한 뒤에 조용히 일을 꾸미고 있으니까.

    하지만 그런 발악도 오래 가지는 못할 것이다.

    베그리프는 더 이상 마법사의 정수를 주입받지 못하고, 동시에 스스로 막대한 양의 마나를 소모하고 있었다. 이대로 가면 자멸을 하게 될 것이 분명한 일.

    헤레디투스로서도 더 이상의 미련은 없었다. 이미 왕좌를 차지하고, 저쪽 세상으로 건너갈 준비도 완료된 상태이니까.

    ‘크레도까지 쓰러뜨리다니…….’

    헤레디투스는 오더 일당의 약진에 매우 놀랐다. 하지만 그들의 부상도 곧 한계에 부딪칠 수밖에 없었다.

    크레도까지는 몰라도 15위 이내의 군주들은 막강한 실력을 가지고 있으니까.

    더불어 오더 진영에 힘을 보태고 있는 베그리프도 소멸이 얼마 남지 않았다.

    ‘아무리 기어올라도 어차피 개미새끼일 뿐.’

    앰블레마가 헤레디투스의 앞에 공손히 허리를 숙였다.

    “왕이시여.”

    “그래. 뽑아가라.”

    앰블레마가 뒤를 돌아보자, 십여 명의 마법사가 후다닥 헤레디투스의 앞에 늘어섰다.

    그들이 주문을 외기 시작하자 헤레디투스의 마나가 뽑혀 둥그런 구슬에 빨려 들었다. 그것이 이면의 세상으로 통하는 문을 여는 필수 재료였다.

    이계의 왕이 함부로 자신의 마나를 낭비하려 하지 않는 이유였고, 오더 진영에 시간을 벌어주는 빌미가 되기도 했다.

    헤레디투스는 모르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조정오라는 인물이 결투의 탑에서 카오스 군주들을 한 명 한 명 쓰러뜨리고 있다는 사실을.

    3

    “헉, 헉.”

    일곱 명의 군주를 쓰러뜨린 뒤, 나는 10분간의 휴식 시간을 이용해 마나를 회복했다. 예상은 했지만 역시 쉽지 않은 퀘스트이다.

    군주와 일 대 일의 싸움을 벌이는 것 자체는 그렇다 치더라도 혼자서, 그것도 중간중간 10분간의 휴식 시간만을 갖고 연속해서 싸움을 해야 한다는 것이 큰 부담이었다.

    더구나 아래 서열부터 시작된 결투는 차차 더욱 강한 군주가 등장하는 식으로 진행이 될 것이다.

    결투로 인해 받는 부담이 점점 가중될 수밖에 없는 상황.

    하지만 이 상황이 결코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어쨌거나 이 과정을 통해 카오스 군주들이 하나씩 목숨을 잃고, 이계의 오더 군주들이 영지를 늘리게 됐으니까.

    일일이 영지를 쳐들어가 전투를 벌이는 것에 비하면 이쪽이 훨씬 더 간편하고 시간도 단축된다.

    나는 나를 각성시킨 이가 급하긴 급한가 보다고 생각했다. 마지막 페이즈 퀘스트를 내민 데 이어 이런 연계 퀘스트까지 마련했으니까. 그의-혹은 그녀의-상황이 절박할지 모른다는 심증이 점점 굳어지는 순간이다.

    ‘누군지는 몰라도 무사했으면 좋겠는데…….’

    실체를 보지 못했으니 누구인지도 알지 못한다. 하지만 이제까지 그의 도움을 받아온 터라 알게 모르게 일체감이 생겼다.

    무엇보다 그가 없으면 지금까지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고 마니까.

    열심히 플레이해 온 유저로서 게임을 서비스해온 회사가 사라진다는 것은 큰일일 수밖에 없지 않은가?

    ‘일단 나부터 퀘스트를 완수하자.’

    확실히 강한 놈들과 싸우는 것이니만큼 경험치도 빨리 늘었다. 그 말은 즉 던전을 공략하는 것보다 레벨이 발리 오른다는 의미이고, 빠르게 강해지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나는 내 손 안에 들린 백옥보를 내려다보았다.

    녀석은 검붉은 색을 띠고 잔뜩 흥분한 상태였다.

    맛 좋은 먹이가 쉴 새 없이 흘러들고 있었으니까.

    녀석이 마나를 취할수록 나에 대한 종속감도 커진다.

    애완동물이 먹이를 주는 주인을 잘 따르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할까?

    나뿐만이 아니라 백옥보도 성장하고 있는 것을 보니 의욕이 한층 커진다.

    [휴식 시간이 종료되었습니다.]

    [다음 층으로 이동합니다.]

    빛이 시야를 뒤덮고 배경이 바뀌었다.

    똑같은 탑에서 한 층 위로 올라간 것뿐이니 극적인 변화는 없지만 아무튼 나름의 정복감은 있었다.

    한줄기 빛이 번쩍!

    다음으로 상대할 군주가 등장했다. 놈은 눈알을 뒤룩뒤룩 굴리며 이 상황이 어떻게 된 것인지를 파악하려고 애썼다.

    물론 놈이 적응을 할 때까지 기다려 줄 생각은 없다. 나는 백옥보를 들고 놈에게 돌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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