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6
독식왕 : 클리어러 226화
크레도와 내 공방은 오래가지 않았다. 솔직히 그는 16위의 군주이고, 아마 내 레벨이 지금보다 낮은 수준에서 부딪쳤다면 나름대로 고생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최근 한두 달 사이 나는 자그마치 50이 넘는 레벨을 올렸다. 그야말로 잠자는 시간까지 아껴가며 렙 업에 매달린 결과!
“이 내가…… 너 따위 놈한테…….”
진부한 말을 뱉으며 바닥을 기는 놈에게 정령왕의 힘을 빌려 따끔한 불맛을 보여주었다.
화르르르륵-
“끄아아아악!”
[16위 군주 크레도를 쓰러뜨렸습니다!]
군주가 죽자 가상의 공간도 사라졌다. 바깥의 싸움도 대강 정리가 되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토누크는 많이 희생되었지만 NPC와 DOOM 멤버는 한 명도 죽거나 큰 부상을 입지 않았다.
“아! 그러고 보니!”
로치온이 급하다는 전언을 보냈는데 그쪽 상황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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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치온은 절망적인 싸움을 하고 있었다. 아무리 최근 세가 급격히 불어났다고 해도 16위 군주 크레도가 작정하고 모은 군대를 상대하는 것은 대단히 힘이 들었다.
한 가지 위안거리가 있다면 이쪽 군주들의 실력이 뛰어나다는 것.
특히 전설의 인물인 피오리오와 아르바난, 그리고 모르돈과 코리우스의 활약이 엄청났다. 그들 능력의 성장은 조성오와 연결되어 있다고 하던데, 그 말인즉슨 최근 들어 조성오의 실력이 엄청나게 늘었다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가 있었다면 이 싸움도 그리 어렵지 않았을 텐데.’
그렇게 생각할 때 미묘하게 전세가 바뀐 것이 느껴졌다.
먼 곳에서부터 크레도의 병사들이 후퇴를 하기 시작한 것.
‘뭐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의아함을 느끼던 찰나 조성오에게 전언이 들어왔다.
-로치온! 괜찮아?
“아니, 여전히 어려운 상황이다. 네 쪽은 어때?”
-이쪽은 방금 싸움이 끝났어. 니콜라스라는 놈을 조종하던 군주가 16위 크레도였지 뭐야.
“뭐?”
-왜 놀라? 그놈은 내가 죽여 버렸으니 신경 쓸 거 없어. 그나저나 지금으로라도 그쪽으로 가서 도움을 주고 싶은데 방법이 마땅치 않으니, 원…….
“괜찮다.”
-응?
“너는 이미 큰 도움을 주었어. 이제 나머지는 우리한테 맡겨라.”
-진짜 괜찮아?
“응. 고맙다.”
전언을 끝낸 로치온이 큰소리로 아군을 독려했다.
“크레도는 죽었다! 이 싸움은 이미 우리가 승리한 전쟁이다!”
믿기 힘든 이야기였지만 로치온은 헛소리를 하는 인물이 아니다. 더구나 리더로서의 그의 카리스마가 어떤 말을 해도 믿음이 가게 했다.
적장이 쓰러졌으면 이 싸움은 더 이상 지속할 가치가 없다. 어차피 크레도의 명령에 의해 시작된 싸움이니까.
인재를 모으는 걸 즐기던 크레도지만 그것은 지위와 돈으로 찍어 누른 관계에 불과하다.
크레도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적 군주들과 실력자들이 뿔뿔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나 마찬가지였던 전쟁이 극적인 반전을 이루었다.
“와아아아!”
빠른 기세로 밀려나던 오더 군주 측의 병졸들이 사기가 충천한 함성을 내질렀다.
그것은 머지않아 승리의 함성이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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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참. 로치온이 말한 전쟁이 크레도가 침입해 온 것이었다니.’
크레도와 니콜라스 입장에서는 양동작전을 펼쳐 우리를 끝장내려 한 것이겠지만 오히려 결과는 정반대가 되었다.
덕분에 오더 군주 진영은 엄청난 전리품을 획득했다.
콘치온의 세력을 집어삼킨 것만도 대단한데, 거기 더해 16위 군주까지 쓰러뜨렸으니.
로치온은 후속 조치를 하기 위해 빠르게 16위 군주 자리에 올랐다.
크레도의 잔당을 물색하여 하나하나 제거하는 작업도 동시에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이제는…….’
니콜라스를 죽였지만 피스&호프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여세를 몰아 그 뿌리를 완전히 뽑아내야 할 터.
그렇게 결심했을 때 메시지가 떠올랐다.
[퀘스트 ‘현재의 자산 규모를 열 배 이상 늘려라.’를 달성했습니다!]
[보상으로 ‘랜덤 보상상자(유니크급 장비 제한)’를 얻었습니다!]
“오! 드디어!”
사업을 계속 확장하여 수입이 빠르게 늘고 있기는 했는데 결국 자산을 열 배 규모로 늘리는 데 성공했다.
이는 당연한 결과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소규모(?)의 사업을 할 때만 해도 벌어들이는 돈이 많았는데 지금은 전 세계를 대상으로 사업을 하고 있으니까. 모르긴 해도 여기서 다시 열 배로 자산을 불리는 일도 가능할 것이다. 무엇보다 내 옆에는 이런 쪽으로 머리를 굴리는 데 특화된 유능한 부하가 있으니까.
‘뭐가 나왔는지 한번 볼까?’
마지막 페이즈 퀘스트이니 만큼 평범한 보상이 나올 것 같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 예상은 보란 듯이 적중했다.
[백옥보]
등급: 유니크
효과: 근력 +50, 체력 +50, 민첩 +50, 모든 스킬 사용 시 마나 증폭 +100%
부가효과: 성장, 능력 흡수
비고: 탐욕스러운 자아를 가진 검 백옥보는 먹잇감의 생명력을 흡수해 스스로 성장을 한다. 아울러 마나와 스킬까지 취해 특별한 능력으로 재탄생시킨다.
‘백옥보!’
드디어 나왔구나!
이 검은 가상현실게임에서 내가 마지막으로 취한 무기였으며, 끝까지 사용한 무기이기도 하다. 물론 그 뒤에도 다른 무기를 얻을 기회가 많았지만 어떤 것이든 백옥보에 비할 수는 없었다.
설명에 나온 대로 이 검은 베인 상대를 먹잇감으로 해서 스스로 성장한다. 최초 효과가 다소 떨어지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며, 사용하는 빈도와 상대의 강함에 비례해 빠르게 성장했다.
‘이제 다른 무기는 필요 없겠구나.’
가상현실게임에서 마지막까지 사용하는 데 불편이 없었음을 감안하면 현실에서도 마찬가지일 터.
그리고 나는 이 무기가 좋았다. 무엇보다 나와 함께 성장을 한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
‘백옥보를 주었다는 것은…….’
이 게임이 진짜 끝을 향해 달리고 있다는 뜻이다.
나는 틴테를 불렀다.
“틴테!”
벽 쪽에서 그림자가 드리우더니 그녀가 스윽 모습을 드러냈다. 이런 식으로 나타날 때마다 깜짝 놀랄 수밖에 없다. 아무리 보아도 적응이 안 된다고 할까? 혹시 내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설마, 아니겠지.
나는 인벤토리에서 절대자의 무기를 꺼내어 그녀에게 주었다.
“이것은…….”
틴테의 눈이 가늘어지며 무기의 존재감을 가늠했다.
“이렇게 귀한 물건을 어찌 제가 사용할 수 있겠습니까. 주인님께서 보관하시옵소서.”
“아니, 나는 내게 적합한 무기를 이미 손에 넣었어. 앞으로 너는 내 옆에서 큰일을 해야 할 사람이야. 너라면 누구보다 이것을 잘 사용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틴테가 황송하다는 듯 두 손으로 절대자의 무기를 받쳐 들었다.
“앞으로도 제 목숨을 바쳐 주인님을 보좌하겠나이다.”
* * *
피스&호프를 궤멸시키는 작업은 다각도에서 진행이 되었다. 전 세계 주요 국가와 도시에 지부를 가지고 있을 만큼 거대한 조직이니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이 일에는 노아와 GU의 메이슨이 앞장섰다.
나는 노아에게 니콜라스를 죽여야만 했던 일에 대해 사과를 했다.
“미안해요. 노아.”
“아닙니다. 길드장님. 형은 이미 제 안에서 죽은 지 오래되었습니다. 오히려 저는 악마에게 영혼이 팔린 형이 죽음으로써 구원되었다고 생각해요. 가족이라는 이유로 그의 죽음을 슬퍼하기에는 이 일에 휘말려 목숨을 잃은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저도 앞으로 그 죗값을 갚으며 살아갈 생각입니다.”
노아는 앞으로 이 일을 다시 언급하지 말라며 오히려 나를 격려했다.
피스&호프는 이미 각국 언론으로부터 실상이 고발되고 있었다. 일부 국가에서는 대중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지부를 철수하라는 압박을 하기도 했다.
피스&호프가 무너진 결정적 계기가 된 것은 길드장의 죽음이 알려진 뒤이다. 니콜라스는 공식적으로 자살을 한 것으로 발표되었다. 자기 범행이 드러나고 명성이 추락할 것을 염려해 스스로 죽음을 택했다는 것.
‘내가 아는 니콜라스는 절대 자살 같은 걸 할 사람이 아니지만.’
어찌 됐든 피스&호프만 한 조직이 무너졌으니 그 전리품도 굉장히 많을 수밖에 없었다.
자산의 규모로 따지면 OG를 따라올 길드가 없으니 결과적으로 그것 중 상당수를 OG가 싼값에 매입했다.
어쩌면 이 일에 앞서 ‘부’를 획득하게 한 것도 이런 흐름으로 이어지게 하려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
거대 길드가 무너지자 동시에 많은 사람이 불안해하기도 했다.
게이머의 존재는 곧 평화와 치안의 확보로 연결되니까. 거대한 축이 무너졌다는 것은 당연히 그만큼의 불안을 야기할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그 자리를 대신할 새로운 영웅의 부상을 기대했고, 자연스럽게 그 인물로 나와 OG가 꼽혔다.
‘귀찮은 건 싫지만.’
내가 직접 플레이한 게임으로 획득한 보상이니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것도 이쪽 세상에서 왕이 되기 위한 당연한 행보일 테니.
세계 주요 도시에 OG의 지부 건설작업이 시작되었고, 나는 그 일을 노아에게 맡겼다.
“카오스게이머닷컴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노아의 물음에 나는 고민을 했다. 카오스게이머닷컴은 말할 것도 없이 엄청난 범죄 집단이다. 피스&호프의 붕괴와 함께 사라질 위기에 처했지만 한편으로는 아깝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만한 시스템을 구축한 암거래 사이트는 또 없으니까.
카오스게이머닷컴이 사라진다고 해도 암거래시장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다른 세력이 몸집을 불려 금세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겠지. 어쩌면 하나의 강자가 시장을 독식하는 것보다 우후죽순 불법 단체가 양산되는 것이 더 좋지 않을 수 있다.
범죄의 수준과 빈도가 높아지고, 그것들이 음성화되는 양상도 커질 테니까.
“우리가 이어가기로 할까요? 당연히 나쁜 부분은 도려내고요.”
“옳으신 판단입니다.”
노아는 나를 대신해 OG의 대외적인 업무를 처리할 부길드장이었으므로, 새로운 카오스게이머닷컴은 티코이에게 맡기기로 했다.
티코이는 멋진 장난감을 선물 받은 아이처럼 눈을 빛냈다.
“중책을 맡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일단 이름부터 바꾸기로 할까?”
“음…… 블랙게이머닷컴은 어떻습니까?”
“그거 괜찮네.”
[퀘스트 ‘길드 피스&호프를 궤멸시켜라.’를 달성했습니다!]
[보상으로 ‘랜덤 보상상자(넘버링 아티팩트 전용) × 10’를 얻었습니다!]
“뭐?”
열 개나 준다고?
마지막이라 특별 서비스를 안기는 건가?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연계 퀘스트가 열렸습니다. 추가 보상을 얻으시려면 퀘스트를 수락하세요.]
추가 보상이란 다름 아닌 넘버링 아티팩트의 추가 획득이었다. 그리고 퀘스트의 내용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