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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왕 클리어러-225화 (225/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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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식왕 : 클리어러 22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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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니콜라스와 그의 패거리가 따라오는 것을 확인하며 던전으로 뛰어들었다.

    여기서 아무 층으로나 워프하면 니콜라스가 날 찾아내기 어렵겠지만 일부러 적당한 거리를 띄우고 들리도록 말을 했다.

    “암젤! 최상층으로 가자!”

    대기하고 있던 암젤이 훌쩍 뛰어 귀환서를 펼쳤다.

    나와 그녀는 동시에 토누크 던전 최상층으로 갔다.

    이미 이곳에는 완벽한 준비가 갖추어져 있었다. NPC들뿐만 아니라 DOOM의 멤버들, 거기에 토누크들까지.

    최상층이기 때문에 토누크 킹이 존재하지만 나는 더 믿음직한 그들 무리의 리더를 이 자리에 등장시켰다.

    시아이.

    던전에 난 통로를 통해 반대편 부락에 있는 토누크들까지 이곳에 불러들인 것.

    때문에 그 숫자가 어마어마했다.

    투석기 업그레이드를 마친 티코이가 보고를 했다.

    “주인님! 세팅 완료됐습니다!”

    “그래, 이제 기다리자.”

    빛 무리가 번쩍이고, 니콜라스를 필두로 한 피스&호프 정예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몬스터가 득실거리는 공간에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더구나 그 몬스터들과 내가 같은 진영에 서 있었다.

    “이게 무슨…….”

    니콜라스는 전부는 아니더라도 내 비밀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알고 있는 인물이다. 설령 그렇다고 해도 지금 눈이 보이는 광경은 그가 생각했던 것과는 많은 차이가 있을 것이었다.

    그의 눈이 빠르게 상황을 스캔했다.

    나 역시 처음으로 마주한 그의 정보창을 들여다보았다.

    레벨은 239, 서열은 16위.

    ‘생각보다 별 거 아니네.’

    최근 들어 레벨을 상승시키는 데만 매달린 나는 그의 레벨과 서열을 확인하고 코웃음을 쳤다.

    사실 그의 능력이 모든 게이머를 통틀어 최고위치에 있지는 않을 거라는 예상은 했었다.

    그보다는 다른 수완을 통해 길드를 성장시키고, 그것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만든 거겠지. 노아의 능력도 거기 큰 기여를 했을 것이고.

    니콜라스는 동요하는 부하들에게 말했다.

    “걱정하지 마라. 이곳은 C급 던전이야. 몬스터들 자체는 아무 것도 아니다. 더구나 저기 있는 게이머들도 우리와 비교하면 실력이 훨씬 떨어져.”

    그 말의 설득력은 차치하고라도 니콜라스는 사람을 노예처럼 부릴 수 있는 스킬을 갖고 있었다.

    금방 부하들의 눈빛이 돌변해서 말을 했다.

    “네! 죽음을 각오하고 싸우겠습니다!”

    “회장님이 있는데 우리가 겁날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니콜라스 패거리는 50명에 달했다. 그들 중 대부분이 랭킹 200위 안에 드는 실력자들이다.

    나는 미리 세워둔 계획대로 명령을 내렸다.

    “일단 병력을 소진하는 한이 있더라도 적의 체력을 갉는 데 집중하자! 그 다음 본격적으로 게이머들이 나서는 거야!”

    던전 안이기 때문에 전투 공간은 매우 넓었다.

    내 전략은 먼저 토누크들을 투입해서 니콜라스 일당의 체력을 떨어뜨리는 것이었다. NPC들과 DOOM 멤버들의 실력도 뛰어나지만 만에 하나 사망자가 나오면 안 되니까.

    백병전은 최대한 유리한 상황이 될 때까지 미루는 게 좋다.

    투석기가 거대한 암석을 날려 보냈다.

    궁병 토누크들이 하늘이 새까매질 정도로 화살을 쏘았다.

    나는 어지러워진 전장 속에서 니콜라스의 모습을 찾아냈다. 그 역시 나를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다.

    ‘이제야 네놈과의 악연에 종지부를 찍을 때가 됐구나!’

    9

    확실히 니콜라스 패거리들은 지금까지 상대했던 적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토누크들이 마치 헝겊인형처럼 쓰러져 간다.

    하지만 싸움이 한 시간이 넘어가면서부터 슬슬 그쪽 무리에 한계를 호소하는 이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회, 회장님. 더는 안 될 것 같습니다. 일단 후퇴해서 진영을 재정비…….”

    푸악!

    니콜라스가 휘두른 창이 그런 말을 꺼낸 자의 목을 베어버렸다.

    부하들은 이 상황이 장난이 아님을 깨닫고 약한 말이 나오려는 것을 꿀꺽 집어삼켰다.

    니콜라스가 끌고 온 무리의 대다수가 이미 살인을 경험한 범죄자다. 누구 한 명이 죽었다고 동요를 하지 않고, 여기서 싸워 이기는 것밖에 살아남을 방법이 없다는 것을 직시했다.

    니콜라스 역시 이 싸움이 결코 유리하게 흘러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말 그대로 이곳에 오기 전에 배수의 진을 치고 나왔다.

    밖으로는 GU를 비롯한 많은 길드들의 공격을 받고 있고, 안으로는 크레도의 신뢰가 걸려 있다.

    이미 그는 저쪽 세상에서 전쟁을 치르고 있으니까.

    그 전쟁이 승리로 끝날 가능성은 99퍼센트이고, 조성오 하나 처리하지 못한 자신은 대리인 자격을 박탈당할 우려가 있었다.

    모든 일은 조성오 하나가 발단이 되어 벌어졌다. 그만 죽이면 나머지 일들은 전부 다 수습할 자신이 있었다.

    나는 몬스터의 피를 흠뻑 뒤집어쓴 채 싸우고 있는 니콜라스의 모습을 주시했다.

    ‘슬슬 마무리해도 되겠군.’

    니콜라스 패거리들은 마지못해 싸우고 있을 뿐, 이미 전의를 상실한 자가 대부분이다.

    반면 우리 편 게이머들은 체력을 비축하며 효율적으로 싸우고 있었다.

    나는 소환수 한 마리를 불러냈다.

    ‘가브리엘.’

    화악-

    검은 안개를 퍼뜨리며 흉악한 소환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반항기는 점차 수그러져갔다. 내가 레벨이 오를수록 격차는 점점 더 크게 벌어지고, 소환 능력도 그에 비례해서 강해졌으니까.

    “저놈을 잡아와라.”

    내가 가리킨 것은 니콜라스였다.

    가브리엘은 대뜸 정면을 향해 빔을 쏘아냈다.

    쭈우웅-

    거기 휩쓸려 니콜라스 패거리 몇 명은 물론이거니와 토누크 몇 마리의 몸뚱이까지 녹아버렸다.

    ‘저거 저거, 에휴.’

    아무리 나를 향한 충성심이 강해졌더라도 무대포처럼 구는 습성은 바뀌지 않았다.

    가브리엘이 터진 길로 질주하더니 니콜라스의 몸뚱이를 옆구리에 끼고 내게 돌아왔다.

    사실 니콜라스의 실력이면 가브리엘을 뿌리칠 수 있을 정도는 되었지만 체력이 많이 소모된 상태이고, 불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그러지 못했다.

    더구나 그는 본능적으로 자신을 향해 돌진하는 검은 형상이 누구인지 파악했다.

    ‘……가브리엘?’

    그 거칠고 불쾌한 감각의 마나는 다른 사람에게는 느껴 본 적이 없다.

    가브리엘은 옆구리에 끼우고 있던 니콜라스를 내 발밑에 휙 집어던졌다.

    나는 니콜라스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잘 있었냐. 이 새끼야.”

    지금까지 니콜라스와 피스&호프 때문에 겪은 고생을 생각하면 속이 뒤집어진다.

    하지만 내 의사를 전달하기에는 결정적인 장애가 존재했다.

    “What?"

    이놈은 노아처럼 머리 좋은 게이머가 아니기 때문에 한국어를 할 줄 몰랐다.

    물론 머리가 좋다고 하더라도 거만한 성격상 아시아 일개 국가의 모국어 따위는 학습하지 않았겠지만.

    “문답무용이다, 이 새끼야.”

    나는 니콜라스 앞에서 ‘공간생성’ 스킬을 사용했다.

    순식간에 배경이 사라지고, 예의 별이 빛나는 신비로운 공간이 펼쳐졌다.

    니콜라스가 주위를 둘러보며 이를 갈았다.

    “Fuc……!"

    ‘중요한 싸움이니만큼 일기토로 끝내야지.’

    이제야 상황을 이해한 니콜라스도 입 꼬리를 들어 올렸다.

    “Stupid!"

    “아, 그 말은 무슨 뜻인지 알겠네. 근데 상황 파악 못하는 네가 더 멍청한 것 같은데?”

    일기토라고 해도 일 대 일로 무기를 맞댈 생각은 없었다. 그냥 내가 가진 능력을 백퍼센트 활용하면 되는 거니까.

    “가브리엘! 박재환!”

    확실하게 발음된 가브리엘이라는 단어를 듣고 니콜라스가 흠칫 놀랐다.

    그 역시 가브리엘의 능력에는 두려움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검은 소환수가 되어 능력이 발달한 그가 살아 돌아왔으니 얼마나 놀라울까?

    물불 안 가리는 걸로 치면 박재환도 가브리엘 못지않다.

    두 돌아이 소환수가 니콜라스의 앞을 막아섰다.

    나는 멀찍이 떨어져서 니콜라스와 소환수들의 싸움을 지켜보았다.

    실력자들의 싸움답게 치열하고 솜에 땀을 쥐는 것이 상당히 볼만 했다.

    죽음을 불사한 니콜라스는 혼신의 힘을 다해 싸웠다. 하지만 가브리엘, 박재환 콤비를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 실력자들은 소환수가 된 뒤에 호흡을 맞춘 횟수가 상당수에 이르니까.

    느낌이기는 하지만 서로 은근히 끌리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영혼의 투톱이라고 할까?

    피투성이가 된 니콜라스가 마지막 힘까지 전부 쏟아낸 뒤였다.

    나는 소환수들을 다시 불러들였다.

    “돌아와.”

    가브리엘과 박재환의 모습이 사라지자 구원받은 표정이 된 니콜라스가 무릎걸음으로 엉금엉금 내게 다가왔다.

    바지자락을 잡고 열심히 뭔가를 애원한다.

    자기 목숨을 살려달라는 것뿐 아니라 협상을 시도하는 것 같은데, 미안하지만 나는 영어를 못하기 때문에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어차피 협상을 할 마음도, 봐 줄 마음도 없지만.

    절대자의 무기를 꺼낸 내가 형태를 검으로 바꾸어 그의 몸을 세로로 베어버렸다.

    촤아악!-

    피를 뿌리며 숨이 끊긴 가브리엘의 사체 사이에서 빛이 분출하기 시작한다.

    ‘그래야지.’

    나는 가브리엘을 대리인으로 삼은 군주의 존재가 궁금했다.

    얼마나 대단한 놈이기에 가브리엘로 하여금 피스&호프를 세계 3대 길드로 성장시키고 세계를 호령하게 한 걸까?

    빛이 사라진 자리에 천천히 군주의 모습이 드러났다.

    하얗다 못해 창백한 피부를 가진 인간형의 군주. 키도 덩치도 특별할 것이 없었다.

    뭐랄까, 게임에서 최종보스인 척 음모를 꾸미고 다니지만 사실은 대단치 않은 놈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는 가짜 보스 느낌?

    놈이 자기 발밑에 두 쪽이 나 있는 니콜라스의 사체를 내려다보고 다시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피가 묻어 있는 절대자의 검도.

    나는 이렇게 짧은 사이에 표정이 드라마틱하게 변하는 인간을 본 적이 없다. 그것은 몬스터의 경우까지 통틀어도 마찬가지였다.

    정보창을 통해 들여다보자 이놈의 이름이 ‘크레도’이고 이계 군주 서열이 16위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대단한 놈도 아니었네. 나는 적어도 10위 이내는 될 줄 알았지.”

    역시나 최종 보스인 척하는 가짜 보스였다.

    “네가 조성오로군…….”

    분노가 그득 담긴 눈으로 크레도가 말했다.

    “응, 너는 크레도구나? 니콜라스 데리고 깝치느라 그동안 고생이 많았네.”

    크레도의 세력은 새롭게 부활한 오더 군주 연합과 한창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물론 무리의 수장인 그가 직접 나서지는 않고, 가장 후방에서 느긋한 표정으로 승리를 기다리고 있었을 뿐.

    그러다 뜬금없이 이곳으로 불려오게 되었다.

    너무 황당하지만 상황을 파악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이 자식이……!”

    크레도가 활활 마나를 폭주시켰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조용히 스킬 ‘로또’를 발동시켰다.

    [축하합니다! 로또 3등에 당첨되었습니다!]

    [일분 간 모든 스탯이 150% 상승합니다!]

    확실히 레벨이 많이 오르고 나서 로또에 높은 등수로 당첨될 확률이 올라갔다.

    그건 그렇고…….

    ‘니콜라스도 그렇지만 너도 참 별 거 아니구나?’

    어쩌면 내가 너무 강해진 건지도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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