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4
독식왕 : 클리어러 224화
4
크레도는 로치온을 앞세운 OG 연합의 동태를 파악하기 위해 대규모의 정찰단을 보냈다.
그들로부터 속속 들어오는 정보를 들은 그는 그때마다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뭐? 전설의 인물들?”
새로 군주 자리를 차지한 자들 중에는 생소한 인물이 많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들 중에 전설로만 존재하는 인물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는 어이가 없었다.
“무슨 소리야?”
하지만 그의 앞에 머리를 조아린 부하는 머리를 조아리며 거듭 보고했다.
“저의 눈으로 직접 보았습니다! 피오리오와 아르바난이 틀림없습니다. 저도 황당무계한 이야기인줄은 압니다만 그들끼리도 같은 이름으로 부르는 것을 들었습니다!”
다른 지역을 정찰한 그 옆에 있던 부하도 비슷한 소리를 했다.
“저 역시 모르돈과 코리우스라는 이름을 들었습니다! 그들 역시 현재의 역사에는 존재하지 않는 인물들입니다!”
크레도는 벌떡 일어나 눈을 부라렸다.
‘그게 가능한 일이야?’
하지만 헛소리를 지껄였다가는 자기에게 목이 달아난다는 사실을 아는 부하들이 섣부른 말을 입에 담을 리는 없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 할지라도 그렇게 보일 만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어 보인다.
‘하긴…….’
그는 왕좌에 털썩 주저앉아 지금까지의 일을 떠올렸다.
‘로치온이 이만큼 세력을 키운 것 자체가 말이 안 되지.’
정말로 전설의 인물들이 부활해 도움이라도 주지 않았다면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다.
‘그것뿐일까?’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자 지금껏 품어왔던 의심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그리고 그 의심은 이쪽 세상의 일뿐 아니라 저쪽 세상의 일까지 떠올리게 했다.
상식에 어긋나는 일이 발생했다는 것에는 그만 한 이유가 있을 터.
지금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가장 큰 변고를 생각하면 두 개의 세상이 연결되었다는 것을 들 수 있다.
수시로 니콜라스와 대화를 주고받았던 그는 한 사람의 이름을 떠올렸다.
‘조성오라고 했었나?’
니콜라스는 갑자기 나타난 새로운 능력자가 무섭게 세를 키우고 있다고 했다.
생각해보면 그런 이야기를 들은 시점과 로치온이 두각을 나타낸 것이 궤를 함께 한다.
더불어 조성오가 던전 안에서 통로를 발견했다는 이야기까지 들었었다.
다소 비약이 있다는 것은 알지만 만약 그 통로를 통해 조성오와 로치온이 내통을 하고 있다면!
그리고 조성오가 불가사의한 능력으로 이쪽 세상에 전설 속의 인물을 부활시키는 등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면!
한쪽으로 생각을 진행시키다보니 이것이 기정사실인 것처럼 느껴진다.
‘적어도 확인해 볼 필요는 있겠지.’
그는 부하들을 물린 다음 니콜라스와 접선을 시도했다.
“니콜라스.”
-네. 크레도 님.
“아직도 조성오라는 인물에 대해 신경을 쓰고 있는가?”
-그게…… 놈이 이쪽 세상에서 세력을 불리는 일에 속도를 더하고 있습니다. 이제까지는 조용히 자기 나라에서만 움직이던 놈이 갑자기 마음을 바꾸고 힘을 키우고 있는 거죠.
“흐음…….”
크레도는 자기가 직면한 상황을 니콜라스에게 이야기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니콜라스 또한 의견을 보탰다.
대화를 나누다 보니 결론은 자연스럽게 하나로 모아졌다.
“놈을 가만히 두면 안 되겠군.”
-같은 생각입니다. 더는 놈이 활개치는 것을 내버려두면 안 될 것 같습니다.
“너는 너의 싸움을 해라. 나는 내 싸움을 할 테니.”
-알겠습니다.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 크레도 님!
크레도는 니콜라스와의 대화를 끝낸 다음 마음을 굳혔다. 이 싸움이 결코 만만하게 생각하지 않을 것임을.
파리 새끼들을 해치우겠다는 가벼운 마음이 아니라 자신의 전력을 부딪쳐서 싸울 것이다.
5
티코이의 이른바, 대리인의 격을 높인다는 작전은 제대로 먹혀들고 있었다.
무엇보다 GU의 수장 메이슨이 우리 편이 된 게 크게 주효했다. 적어도 개인의 영향력으로 치면 그가 니콜라스보다 앞서니까.
가장 위험한 던전에 가장 먼저 뛰어드는 그는 헌터 사이에서만이 아니라 일반 대중에게도 인지도가 높았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마음먹고 뒤져보니 대리인이 되기에 적합하고, 활동지역의 던전이 연결되어 있는 게이머들 숫자가 꽤 되었던 것!
그중에서 실력이 출중하고 영향력이 큰 자들을 찾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내가 직접 그들을 만나 설득하고 같은 편이 되어줄 것을 부탁했더라면 대단히 많은 시간이 걸렸겠지만 각자가 던전에서 군주들과 접촉을 하자 그 시간이 대폭 단축되었다.
결과적으로 나와 메이슨을 꼭짓점으로 해서 세계를 범위로 한 엄청난 규모의 연합이 구축되었다. 더불어 우리의 목표는 하나로 모아졌다.
바로 피스&호프를 궤멸시키는 것!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동안 니콜라스가 각국에 심어 놓은 영향력이 그야말로 어마어마했기 때문에.
말 그대로 대규모의 전쟁을 방불케 한다고 보아도 무방했다.
게이머 계의 거대한 지각변동이라고 할까?
하지만 이 일이 실행에 옮겨질 수밖에 없는 이유는 단순하다. 이대로 있다가는 세상이 멸망할 수도 있으니까.
이계의 군세가 밀려들기 시작하면 이쪽 세상이 휘말리는 것은 순식간일 터.
작전은 신중하고 꼼꼼하게 세워졌다.
일단 소규모 언론을 통해 피스&호프의 행적을 고발한다.
이를 묻으려 하거나 무마하려는 언론과 정치인이 있다면 그들을 타깃으로 삼아 비리를 파헤친다.
처음에는 눈이 띠지 않는 식으로 이루어지던 이 일은 급기야 거대한 들불이 되어 번졌다.
몇몇 국가에서는 피스&호프의 지부가 철수해야 한다는 움직임까지 일어났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동안에도 나는 간헐적인 보고만 받을 뿐, 직접 관여하지는 않았다.
내가 할 일은 어디까지나 레벨을 높이는 것이었으니까.
싸움의 규모가 커질 대로 커진 뒤에는 내가 나서서 그것을 결정지어야 한다.
그리고 상황이 무르익었을 때,
나는 결정을 내렸다.
“니콜라스를 죽이러 간다!”
물론 이 일은 쉽지 않다. 미국으로 가서 피스&호프의 본사나 자택을 직접 침입하겠다는 거니까.
하지만 일은 생각보다 쉽게 흘러갔다.
노아가 내게 연락을 했다.
“니콜라스가 한국에 왔습니다. 아마도 결착을 내려는 마음인 것 같습니다.”
“그거 잘 됐네요!”
당연히 혼자 오지는 않았을 터! 나는 OG 멤버들과 DOOM의 멤버들까지 주거지에 집결시켰다.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똥줄이 탄 니콜라스가 제 발로 걸어 들어올 수밖에 없을 테니까.
6
로치온은 근심에 젖어있었다.
다름 아닌 16위 군주 크레도가 계속해서 정찰병을 보내오고 있었던 것.
그런 움직임에는 당연히 얼마 전 있었던 콘치온과의 전쟁이 큰 몫을 차지했을 것이다.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겠지.’
오더 진영의 힘이 더 커진다면 15위 이내의 거물급 군주들이 움직이기 시작할 터.
그랬다간 크레도 본인이 나설 기회가 사라질지 모른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이전까지는 영지가 멀리 떨어져있는 탓에 그의 영향력에서 멀리 있을 수 있었지만 이제는 피할 수도 없게 되었다.
‘그래도 신중한 놈이니까.’
간사하게 머리를 굴리는 걸로 치면 크레도를 따라잡을 이가 없다. 15위급 이내 군주 세력에 편입하지 않고 나름대로 세력을 만들어 우두머리를 하고 있는 것도 그런 간악함이 크게 작용했다.
더불어 그의 옆에는 강한 부하들이 많이 포진하고 있었다.
파라얀에게 집적거린 전력이 말해주듯 그의 또 다른 취미 중 하나가 인재 수집이니까.
로치온은 회의를 열어 군주들과 이 일에 대해 논의했다.
하지만 결코 답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콘치온과의 전쟁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지금은 그 뒷수습조차 마무리되지 않았다.
“우리가 먼저 움직일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방비를 단단히 할 수밖에 없겠지.”
아라돈의 말에 로치온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그는 섣불리 움직이지 않을 것입니다. 정찰을 계속 보내서 자기가 백퍼센트 이긴다는 확신이 있을 때만 움직이겠죠.”
물론 지금 쳐들어온다고 해도 승산은 놈에게 있지만 더불어 병력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이는 일까지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상황이 어려워지면 조성오에게 도움을 청하겠습니다.”
회의는 당연한 결론을 내고 끝을 맺었지만 현실은 그 당연한 예측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크레도가 생각보다 빨리 병력을 이끌고 움직인 것이다.
‘늦었어!’
로치온은 마음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완전히 뒤통수를 얻어맞은 거니까. 이제 와서 조성오에게 도움을 청한다 하더라도 한 발 늦을 수밖에 없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는 생각에 전언을 보냈다.
“조성오! 이쪽에 긴급한 일이 일어났다. 전쟁이 일어나기 직전이야!”
-뭐? 안 되는데? 나도 지금 엄청 강한 놈이랑 싸우고 있어!
7
니콜라스는 크레도와 대화를 나눈 이후 마음이 들끓었다.
원래 그의 마음 한편에는 조성오를 가만두면 안 된다면 생각이 자리 잡고 있었다.
하지만 연이은 시도가 실패로 돌아가고, 더 이상 전력을 소모하고 판을 키우는 것도 부담이 되어서 후일을 기약하기로 했다.
‘이렇게 빨리 상황이 바뀌게 될 줄이야!’
조성오와 OG가 비록 눈에 띄는 존재이기는 해도 자기가 이루어놓은 업적을 따라잡기 위해서는 긴 시간이 필요할 거라 생각했다.
그동안 천천히 견제를 하면 언제가 틈이 보일 거라고 생각했었고.
‘노아 때문만은 아니야.’
자기 동생인 노아가 비록 출중한 브레인 게이머이기는 해도 그의 능력만 가지고 이런 일이 가능했으리라고는 볼 수 없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조성오의 불가사의한 능력이 자기를 초월할 정도로 뛰어나고, 노아는 거기 일정 수준의 보조만 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아직 부족할 것이지만.’
지금 시점이라면 자기를 뛰어넘을 정도의 실력을 키우지는 못했다.
깨닫는 게 조금만 늦었더라면 따라잡히고 말았겠지만.
결정을 내리는 데는 크레도와의 대화가 큰 부분을 차지했다.
어쨌거나 자신의 계획은 크레도의 도움을 받아 그가 이쪽 세상을 정복하도록 도운 다음, 그의 옆자리에서 함께 세상을 지배하는 거니까.
조성오가 이곳에서뿐만 아니라 이계에까지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면!
더 이상 시간을 끌어서는 안 된다. 자기가 직접 무력으로 부딪쳐서라도 조성오를 죽이는 수밖에.
그는 자기가 직접 스무 명에 이르는 최정예 게이머들을 이끌고 한국에 들어왔다.
그리고 몰래 중국과 일본 지부로부터도 상당수의 실력자들을 불러들였다.
이들과 합류하여 조성오의 주거지를 습격하는 것.
이것이 그가 세운 단순하면서도 절대로 실패할 수 없는 작전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일은 계획했던 대로 흘러갔다. 습격을 예상하지 못하고 혼자 무방비로 있었다는 것이 의외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조성오는 자신과 패거리들을 보자 꽁무니를 빼고 달아나기 시작했다.
‘쳇. 진즉에 이랬어야 하는 건데!’
미국에 있으면서 속만 끓였던 것을 생각하니 기가 막혔다.
직접 눈으로 본 조성오는 애송이 중에 애송이였던 것이다.
“놈을 쫓아라!”
얼마나 당황한 건지 조성오가 향하는 곳은 던전이었다. 그곳이 자기 무덤이 될 줄도 모르고.
‘오히려 환영이지.’
니콜라스는 한 치의 의심도 하지 않고 패거리들과 함께 토누크 던전으로 따라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