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3
독식왕 : 클리어러 223화
Chapter 55 ? 피스&호프를 궤멸시켜라.
1
현실로 돌아온 나는 한동안 그 감동에 젖어 있었다.
너무 힘든 전투였던 탓에 같은 전쟁을 매일 치르는 것은 힘들겠지만, 그만큼 전리품도 많았다.
‘우리 편의 전투력도 많이 올라왔어.’
차근차근 세력을 늘리는 동안에는 눈에 띄지는 않았지만 이번 전투로 확실해졌다.
서열이 높은 일곱 명의 군주를 상대로도 결코 밀리지 않고 싸웠다.
물론 나와 파티원들이 각각의 카오스 군주를 뛰어넘는 실력이 가지고 있었지만, 오더 군주들의 능력도 무시할 것이 못 됐다.
‘그런데…….’
아직 걱정거리가 끝난 것은 아니다.
비록 일곱 개의 영지를 새로 차지했지만, 그것을 관리할 능력이 못 된다면 괜히 일만 키운 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내 걱정은 기우였다는 사실이 곧 밝혀졌다.
3일 뒤, 로치온에게서 전언이 들어왔다.
-조성오. 기쁜 소식이 있어 연락했다.
“뭔데?”
-재야에 묻혀 있던 오더측 실력자들이 우리를 찾아오고 있어.
“아……. 그게 진짜야?”
-예전 카오스와 오더 진영이 자웅을 놓고 겨룰 때 우리 측의 실력도 전혀 반전을 노리지 못할 만큼 약한 것은 아니었거든. 패배 이후 각지로 흩어졌던 인사들이 소문을 듣고 찾아오기 시작한 거야.
“그거 진짜 잘 된 일이네!”
-응. 이제 더 이상 우리 측에 군주급 인재가 부족할 일은 없을 거야. 이번에 차지한 영지를 바탕으로 기반을 확실하게 다져야지.
“나도 나름대로 열심히 할 테니까 그쪽 일은 너한테 맡길게. 로치온.”
-알았어. 너도 힘내라. 조성오.
‘다행이다…….’
전쟁에 비유할 수 있을 만큼 큰 전투가 벌어진 것이 우리 측에 비단 나쁘게만 작용한 것이 아니었다.
이 일이 카오스 군주들에게 오더 측 세력이 부활을 꾀하고 있다는 시그널이 된 동시에, 숨어 지내던 오더 측 인사들에게는 희망의 빛을 밝히는 계기가 되었다.
로치온에게 전언이 들어온 이후로 하나씩 새로운 군주가 자리를 차지했다는 메시지가 나타났다.
이번에 싸운 콘치온 일당의 영지를 하나도 빼앗기지 않은 것!
‘좋아! 이대로 꽃길로만 나아가자!’
2
노아와 티코이가 마음먹고 움직이자 OG는 그야말로 쾌속 성장을 거듭했다.
세계에서 자금력 측면으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칼리파까지 적극적으로 지원에 나서자 유례가 없을 정도로 빠르게 성장했다.
그와 동시에 OG의 산하 길드라고 할 수 있는 DOOM의 멤버, 즉 오더 군주들의 대리인을 찾는 일에도 속도를 냈다.
이에 대해서는 티코이가 색다른 견해를 내놓았다.
“대리인을 찾는 일에도 전략적 요소를 더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전략적 요소?”
“주인님, 이걸 봐 주십시오.”
티코이가 PC 모니터에 띄운 것은 두 세계의 지도가 그려진 맵이었다.
두 세계란 당연히 이쪽 세상과 이계를 가리킨다.
지금까지 발견된 통로, 그리고 통로가 있을 거라고 예측되는 지점을 바탕으로 어디서 두 세계의 접점이 일어나는지를 분석한 자료였다.
“우와, 이걸 어떻게 만든 거야?”
“수보타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사실은 쭉 분석해왔던 것인데 최근에 들어서야 가시적인 결과를 도출할 수 있었습니다.”
티코이의 분석에 따르면 내 예상과 마찬가지로 이쪽 세상과 이계의 영토는 일대일로 대응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특정한 마나 발생지를 바탕으로 차원의 경계를 넘어 어지럽게 통로가 형성된다.
통로가 열릴 가능성이 있는 곳은 수백 개에 이르는데, 이것은 그냥 열리는 것이 아니라 이쪽 세상이나 이계 어느 한 쪽에서 특별한 작용이 일어나야만 했다.
그게 우연히 일어나는 곳도 있고, 인위적으로 열리는 곳도 있다.
“제 예상이지만 알려지지 않은 카오스 군주의 대리인은 생각보다 많을 것입니다.”
그들이 이쪽 세상으로 바로 넘어오지 않는 것은 신중을 기하기 위함이다.
서열과 실력이 높을수록 더 훌륭한 전략을 구사할 가능성도 높아지니까.
단발 역전을 노리는 하위 서열 군주들과 달리 그들은 자신의 깜냥을 잘 알고, 가능한 한 효율적인 전략을 세우려고 한다.
“그렇다고 해도 최대 남은 카오스 군주의 3분의 1 정도만 대리인을 가지고 있을 거라고 예상됩니다.”
티코이의 말은 우리도 한국에서만 대리인을 찾을 것이 아니라 더 영향력이 높은 게이머들을 대리인으로 섭외해서 전략적 효율을 꾀하자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이런 사람도 있습니다.”
티코이가 사진으로 보여준 사람은 유럽의 대표 길드 ‘GU(GAMER'S UNITED)'의 수장 메이슨이었다.
“이 사람이 대리인 자격을 갖추었다고?”
“네. 다름 아닌 로치온과 상성이 90퍼센트 맞을 거라고 예상됩니다.”
“과연…….”
메이슨도 근골이 좋은 신체 강화형 게이머이다. 나이는 30대 후반이고, 영국에서 시작한 GU를 유럽에서 가장 큰 길드로 성장시킬 만큼 실력과 카리스마를 겸비한 자였다.
“세계 3대 길드의 수장이라…….”
나는 티코이가 왜 이 자를 추천한 것인지 깨달았다. 지금 OG는 피스&호프와의 싸움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에.
그 거대한 아성을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우리 쪽의 덩치도 그에 못지않게 키울 필요가 있다.
“메이슨에게도 시그니처 던전이 있습니다. 그곳과 이번에 차지한 오더 군주의 진영 가운데 이어진 지점이 있죠.”
“그곳에서 로치온으로 하여금 접촉을 하게 하면 되겠구나!”
“맞습니다. 만약 작업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진다면 메이슨이 알아서 우리에게 연락을 해 오겠죠.”
“과연!”
나는 티코이와 나눈 대화 내용을 로치온에게 전달했다.
이야기를 들은 로치온은 곧장 수긍을 했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만나보는 것이 도움이 되겠군.
* * *
3주가량이 흘러갔다.
그동안 나는 하루도 빠짐없이 던전 공략에 매진하여 레벨 250이 되었다.
그리고 드디어 로치온에게서 기다리던 전언이 왔다.
-메이슨과 대리인 계약을 맺었어. 혼란스러워하는 것 같았지만 결국에는 내 말을 전부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지. 그가 조성오 너한테 직접 연락을 하겠다고 하더군.
“와, 그거 잘 됐네!”
로치온의 얘길 듣고 하루가 지나지 않아 메이슨에게도 연락이 왔다.
“Hello?"
‘이런 제길.’
나는 영어를 못하고 메이슨은 한국어를 할 줄 모르니 대화가 되지 않았다.
결국 티코이가 나 대신 이야기를 나누었다.
티코이는 이미 10개 국어에 통달해 있었다. 이 영리한 여우 녀석!
메이슨은 가능한 한 많은 것을 알고 싶어 했다. 나는 티코이의 입을 통해 지금까지 나와 오더 측 군주들, 그리고 DOOM의 멤버들이 걸어온 길을 이야기해주었다.
설명하기 까다로운 시스템에 관한 문제만 빼 놓고.
내게 연락하기 전에 이미 로치온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숙고를 한 그는 결정을 내리는데 오래 끌지 않았다.
“메이슨도 피스&호프를 무너뜨리는데 일조를 하겠다고 합니다!”
“그래?”
사실 피스&호프가 뒤로 카오스 게이머 닷컴을 운영하고 있는 사실은 공공연히 알려져 있었다.
일반 대중이야 알기 어렵겠지만 일정 수준 이상의 길드를 운영하거나, 명망이 높은 게이머들은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는 일이니까.
이 사실을 폭로하지 않은 것은 피스&호프가 광범위한 로비를 했기 때문이다.
각국 정부는 물론이거니와 재계와 언론, 학계와 게이머들에게까지. 만약 자기네가 무너지면 다 같이 망하는 커넥션을 구축해두고 있었다.
“그래도 일이 이렇게 된 이상 두고 볼 수만은 없습니다.”
메이슨은 이계의 세력이 언제 밀어닥칠지 모르는 상황에 우리 쪽에서 암 덩어리를 안고 있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더불어 그는 피스&호프에 무조건 카오스 군주의 대리인이 있을 거라고도 했다.
지금 단계에서는 추측일 뿐이지만 나는 그 말이 무겁게 다가왔다.
티코이도 예측하기를 이미 이쪽 세상에는 많은 수의 카오스 대리인이 있을 거라고 했으니까.
피스&호프에 그런 자가 없을 거라는 건 오히려 순진한 기대에 가까웠다.
‘카오스 군주의 대리인이라…….’
물론 나는 피스&호프에 대해서 완벽하게 알지 못한다.
하지만 길드의 구조를 이해하는 데 니콜라스와 노아를 빼놓을 수 있을까?
나는 이 문제에 관해 노아와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흐음…….”
노아는 신중한 얼굴로 한참을 생각했다.
“확실히 그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그가 기억하는 니콜라스는 처음부터 완벽한 악인은 아니었다고 한다.
물론 기회주의적이고 이기적인 성격인 것은 맞지만, 남의 생명을 빼앗아 그걸 발판으로 자기 위명을 올릴 만큼 강한 성격을 가진 자는 아니었다.
생각은 거듭한 끝에 노아는 흔들림 없는 결론에 도달했다.
“분명합니다. 니콜라스는 카오스 군주의 대리인이에요. 나는 그의 혈육이니까 더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요는 카오스 군주 중 누구의 대리인이냐 하는 것이었다.
3
크레도는 16위 군주이다.
그는 제왕 헤레디투스를 위시로 한 최고 수준의 카오스 군주들 사이에는 끼지 못하지만, 그 바로 아랫단계의 군주들을 대표하는 인물이기도 했다.
나름대로 거대한 세력을 구축하고 있지만, 15위 이내에 탄탄한 벽 안으로는 들어가지 못한다. 그는 현재 심각한 도전에 직면해 있었다.
“콘치온 세력이 무너졌다고?”
“네. 로치온을 필두로 한 오더 군주 연합이 그들의 영지를 빼앗았습니다.”
“허, 참…….”
콘치온은 48위 군주이다. 자기와는 까마득한 차이가 있지만 그 이름값은 완전히 무시할 정도가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콘치온이 죽었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가 쓰러진 것이 다름 아닌 로치온 일당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크레도는 일전에 파라얀을 얻기 위해 부하를 파견했던 적이 있다.
하지만 뜻밖에도 그 일은 성공을 거두지 못했고, 비록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 일에 로치온이 관여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로치온에게 바로 복수하지 않은 것은 영지가 너무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파라얀이 그런 불편을 감내하고 얻을 정도로 가치가 있다고는 생각지 않았기 때문에.
하지만 지금은 전혀 다른 화제로 로치온의 이름이 귀에 닿았다.
짧은 시간에 세력을 무럭무럭 키워 48위 군주인 콘치온까지 쓰러뜨릴 정도로 강해졌다는 것.
새로 얻은 영지까지 감안하면 이제 자기 쪽과도 그리 멀리 떨어졌다고 보기 어려웠다.
“싹이 더 커지기 전에 밟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크레도는 이런 사실이 불편했다. 지금은 이쪽의 다툼에 신경 쓸 때가 아닌데.
무엇보다 자신은 반대편 세상의 세력 선점 경쟁에서 가장 앞서 있었다. 무엇보다 자신의 대리인인 니콜라스가 잘해주고 있었기 때문에.
“할 수 없지.”
일이 커져 15위권 이내의 군주들까지 움직이면 자기는 거대한 흐름 속의 작은 점으로 묻힐 우려가 있다.
“먼저 파리 새끼들부터 제거하는 수밖에.”
물론 로치온 연합을 제압하면 이득도 있었다.
그들이 차지하고 있는 스무 개 이상의 영지가 자기 손에 들어오는 거니까.
결심을 굳힌 그가 부하에게 명령했다.
“전쟁을 준비하도록 해.”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