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9
독식왕 : 클리어러 219화
Chapter 54 ? 콘치온의 음모
1.
“아페라치온님이십니까?”
-응? 이제 보니 너는 오리무스가 아닌데?
“네. 그는 오래전에 죽었습니다. 저는 그의 능력을 이어받은 자입니다.”
-그렇군……. 하긴 소문을 들은 적이 있다. 오리무스가 정령왕들의 등살에 못 이겨 능력을 버리는 길을 택했다고. 그가 없어져서 불편한 점이 많이 있기는 하지만 반성도 했다. 그래서 정령왕들 간에 절대 싸우지 말자는 맹약도 했지. 그는 비록 자취를 감추었지만 누구도 해내지 못한 일을 한 것이다. 그가 이 사실을 알고 눈을 감았을지 염려스럽군.
“그의 능력을 이어받은 자로서 말씀드리건대 아마 알았을 겁니다. 눈을 감는 순간만은 평온했을 것이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어쩜, 너는 말을 참 곱게도 하는구나. 고맙다. 네 덕분에 마음이 편해지는구나.
아페라치온은 불의 정령왕 자고보르에 비해 음성이 곱고 말투도 부드러웠다. 그녀는 나에 대해 이것저것 묻더니 탄성을 내뱉었다.
-두 세계가 연계되어 그런 큰일이 벌어지고 있었다니 나는 정말 몰랐구나!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녀에게 물어보았다.
“혹시 이 싸움에 정령왕들이 개입할 수도 있습니까?”
-으음…….
아페라치온은 고민하는 기색을 보이며 꽤 오랜 시간 대답을 하지 않았다. 나는 괜히 그녀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 것은 아닌지 걱정되었다.
“저의 편이 되어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단순한 호기심이었으니 혹시 실례가 되었다면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아니다. 만약 힘을 보탤 수 있다면 당연히 네 편이 되어야지.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상당히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무엇보다 정령왕들 간에 이루고 있는 힘의 균형을 깨뜨리지 않는 게 중요하지. 만약 네가 모든 정령왕의 허락을 얻어낸다면 네게 힘을 보태는 걸 나는 반대하지 않으마.
“아…….”
이것은 상당히 충격적인 말이었다. 정령왕의 전령이라는 것이 단순히 히든 클래스 중 하나라고만 생각했던 나는 정령왕의 힘을 빌릴 수 있다는 것의 경계가 생각보다 넓다는 것을 알고 경탄했다.
‘정말로 모든 정령왕의 힘을 빌릴 수 있다면…….’
이계를 평정하고 이 게임을 조기에 끝내는 것도 가능하리라.
나는 진심을 담아 말했다.
“감사합니다. 물의 정령왕이시여!”
-그럴 것 없다. 나는 짧은 시간의 대화로 네게 호감을 느꼈으며, 우리무스에게 다하지 못한 책무를 너에게 갚아야겠다고 생각한 것뿐이다. 하지만 미리 말했다시피 모든 정령왕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야.
“가능성이 있다는 것만으로 저에게는 큰 힘이 됩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호호호!
아르페치온과 대화를 마친 뒤에 자고보르 때와 마찬가지로 하루에 한 번 그녀의 힘을 빌릴 수 있게 되었다.
‘스스로 생각하기는 좀 멋쩍지만 나 점점 먼치킨이 되어가고 있는 듯.’
2
다음날.
아침 식사가 끝나고 약간의 휴식까지 취한 뒤, 나는 OG의 멤버를 모았다.
이유는 결투의 탑에 들어가기 위한 것.
수보타의 말에 따르면 62위 군주의 이름은 도블레. 나름 실력이 있지만 경계할 대상은 아니라고 한다.
그 바로 아래 단계에 있는 군주들도 손쉽게 물리쳤기 때문에 나는 큰 걱정을 하지 않았다.
지금 내 실력은 냉정히 말해 62위 군주를 상대할 급이 아니다.
시스템 상 한 단계씩 밟고 올라가야 하기 때문에 이렇게 할 수밖에 없는 것이지, 가능하면 결투의 탑에서 십층이고 이십층이고 군주들만 상대해서 물리치고 싶었다.
‘그건 욕심이겠지.’
혼자 생각해 본 건데 이 시스템을 만든 누군가는 내 편이 분명하다.
오더 군주의 편이라거나, 이쪽 세상을 구하기 위해서라거나 하는 두루뭉술한 포지션이 아니라 분명하게 나, 조성오의 편인 것이다.
그런 그가 내게 불리한 시스템을 만들 리는 없다. 아마도 단계별로 올라가야 하는 중요한 이유가 있겠지. 내 짐작으로는 아마 단번에 많은 군주가 결투의 탑에 불려오면 이계에 큰 혼란이 야기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지금 이계의 카오스 군주들은 각자도생의 방식으로 이쪽 세상에 넘어와 세력을 키울 희망에 젖어 있다.
겉으로는 서로 하하호호 할지 몰라도 속으로는 죄다 동상이몽을 품고 있는 것이다.
‘그 상태가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알 수 없지.’
아마 조금씩 위험한 단계로 나아가고 있는 중일 거라고 조심히 예측해본다.
어제만 해도 A급 던전을 공략하고 찜찜한 사실 하나를 알았으니까.
‘어쨌든.’
당장은 해야 할 일을 해야지.
차원문의 열쇠를 사용하여 결투의 탑으로 가는 문을 열었다.
나와 OG의 멤버들은 차례로 그 문을 통과했다.
* * *
이번에 두 개의 퀘스트 페이즈를 차례로 달성하며, 내게는 특수 파티원을 소환하기 위한 티켓이 두 장 더 생겼다.
어차피 소환할 수 있는 파티원은 딱 두 명밖에 없었으므로 나는 그들을 소환했다.
아르바난과 피오리오.
미리 전언을 해두었기 때문에 그들은 제대로 복장을 착용하고 싸울 준비를 하고 나타났다.
“오랜만이구나.”
“잘 지냈어? 성오?”
간단하게 인사를 나눈 뒤 나는 그들에게 말했다.
“드릴 것이 있어요.”
절대자의 무기를 손에 넣었으니 더 이상 내가 가지고 있을 필요가 없는 무기들이 있었다. ‘바키움’과 ‘히루도의 창’.
그것들을 받아든 두 사람이 경이로운 표정을 지었다.
“이건 내가 만들었던 무기로군. 얼마 만에 손에 잡아보는지.”
“죄송해요. 더 빨리 드리고 싶었는데, 저도 마땅히 다룰 활이 없어서. 정말 잘 썼습니다.”
“그런 말 할 것 없다. 나보다 네 싸움이 더 치열하고 중요하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으니까. 바키움이 도움이 되었다니 나로서도 기쁠 뿐이다.”
피오리오는 히루도의 창을 여러 번 휘둘러보더니 신기해했다.
“단순한 무기가 아니로군. 뭔가가 깃들어 있는데?”
“그 창에는 파괴신의 룬이 장착되어 있어요. 쌍검으로도 변용이 가능하니, 다루시기 편할 겁니다.”
내 말을 들은 피오리오가 곧장 창을 쌍검으로 바꾸었다. 검을 휘두르는 모습도 여느 검사보다 확실히 우월한 데가 있는 그였다.
“대단하군. 잘 쓰겠다. 조성오.”
시간이 되자 반대쪽 진영에 어지러운 빛줄기가 떨어졌다.
그리고 모습을 드러낸 62위 군주.
그런데…….
나는 그의 정보를 보고 뭔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이름이 도블레가 아닌 페제나였던 것.
이 정도는 실수할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에 크게 신경을 쓰지는 않았다.
하지만 얼핏 바라본 수보타가 꽤 진지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중얼중얼하며 무언가를 생각하는 눈치다.
자세한 것은 나중에 묻기로 하고, 일단은 싸움에 돌입했다.
3
군주전, 더군다나 62위를 상대하는 것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쉽게 결판이 났다.
그 실력으로 치면 차라리 수보타가 모시고 있던 악어 군주가 낫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아르바난과 피오리오까지 불렀는데 그야말로 소 잡는 칼로 닭을 잡은 것!
페제나라는 군주는 숨을 거두기 전에 외쳤다.
“콘치온 군주님이 너희들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뭐?”
상당히 의미심장한 말이었기 때문에 심문을 하고 싶었으나 그 전에 놈의 목숨이 끊어져버렸다.
[62위 군주 페제나를 물리쳤습니다.]
나는 싸움이 끝난 뒤에야 수보타에게 물었다.
“너 혹시 이놈이 한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
“그게 말입니다요.”
고개를 갸웃거리며 한참 생각을 하던 수보타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도블레도 파제나도 모두 콘치온 밑에 있던 놈들입니다. 페제나는 실은 군주급이 안 되는 잔챙이에 불과하죠. 왜 이런 일이 생긴 걸까 생각해봤는데 아마 일부러 그런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의 말을 듣고 나도 인정하고 싶지 않은 한 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설마? 콘치온이 내가 다음으로 상대할 군주가 62위라는 걸 알고 있었던 건가?”
“네, 제 생각도 같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실력 있는 도블레를 빼고, 잃어도 아쉬울 게 없는 페제나를 군주 자리에 앉혔다고 여겨집니다.”
“하아…….”
콘치온이라는 놈은 대체 뭐하는 놈이지? 전에 수보타에게 들은 적이 있다.
서열은 48위이고, 대장노릇하기를 좋아해서 더 실력 있는 군주 편에 붙기보다 자기 세력을 만들어 리더 역할을 하고 있다고.
테오루마 서식지를 차지하고 코어를 가졌을 정도면 상대한 세력과 실력이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런데 대체 무슨 꿍꿍이를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대체 뭔데 그래?”
나와 수보타가 나누는 대화를 옆에서 듣고만 있던 피오리오가 궁금해하며 물었다.
나는 이제가지 겪은 일 중 콘치온과 관련된 것을 추려 피오리오와 아르바난에게 들려주었다.
“아무래도 보통 일은 아닌 것 같군.”
아르바난이 진지하게 대꾸했다.
“돌아가서 로치온과 상의해 보지.”
의혹이 남기는 했지만 어쨌든 결투의 탑에서의 볼일은 모두 끝이 났다.
그렇게 생각하고 헤어지려고 했더니 불쑥 두 개의 빛줄기가 떨어져 내렸다.
번쩍! 번쩍!
한 명은 길고 풍성한 수염을 가진 노인이었고, 다른 한 명은 건강한 몸매와 잘생긴 외모를 가진 남자였다.
그들은 어리둥절해하며 주위를 둘러보고, 호기심과 경탄이 담긴 한숨을 내뱉었다.
같은 장면을 이미 두 번 보았기 때문에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 수 있었다.
바로 새로운 특수 파티원들이 등장한 것.
아니나 다를까, 둘 중 나이가 젊은 남자가 내게 물었다.
“당신이 조성오요?”
“네. 당신의 존함은 어떻게 되시는지요.”
나보다 적어도 수백 살은 더 많을 테니 일단 예의를 갖추었다.
“저는 코리우스입니다.”
그 말에 피오리오가 놀랐다.
“아! 당신이 그 검의 달인 코리우스!”
그가 놀란 것에 비해 아르바난이 미동도 하지 않는 것은 아마도 세대 격차 때문일 것이다.
아르바난이 더 윗세대의 인물이고, 중간이 코리우스, 그 다음이 피오리오인 거겠지.
가만히 있던 아르바난이 여전히 주위를 둘러보고 있는 노인에게 조심히 물었다.
“혹시 당신은 모르돈이 아닙니까?”
“흐음, 어떻게 내 이름을 알고 있지? 어디 보자…….”
눈을 찡그리고 아르바난을 마주 보던 그가 탄성을 내질렀다.
“아하! 당신이 바로 궁신이라고 불린 그 아르바난이구만.”
이로써 족보가 어느 정도 정리되었다.
모르돈과 아르바난이 동시대의 인물, 코리우스가 그 다음, 그리고 피오리오가 마지막.
전설 속의 인물이 넷이나 모였으니 할 얘기가 많았다. 나는 어느 정도 시점까지 어울려주다가 대화를 끊었다.
“나머지 이야기는 저쪽 세상으로 넘어가서 하시면 되겠네요?”
“어떻게?”
모르돈이 의아한 얼굴로 내게 물었다.
“일단 두 분은 자리가 비어 있는 62위 군주 자리를 맡아주세요. 서열이야 지금 상황에서 꼭 중요한 건 아니지만 나중에라도 조정하면 되겠죠.”
시스템 상 특수 파티원은 비어 있는 군주 자리를 맡게 할 수 있다.
그들이 떠나기 전에 나는 내가 가지고 있으면서, 더 이상 쓸 필요가 없어진 모르돈 세트와 코리우스의 검을 건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