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8
독식왕 : 클리어러 218화
단단한 흑색 갑옷을 입은 아루단이 고성을 내질렀다.
“꾸와아아아~~”
쩌렁쩌렁 공간을 울리는 그 충격에 천장에서 돌가루가 떨어져 내렸다.
놈이 들고 있는 무기는 거대한 양손 도끼였다.
어차피 무기나 갑옷 모두 마나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내가 가진 절대자의 무기처럼 형태를 변형시킬 수 있는 물건이다.
가브리엘이 가장 먼저 두 눈에서 빔을 쏘았다.
지이이잉-!
공격이 닿은 자리에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지만 큰 대미지를 입히지는 못했다.
박재환이 두 번째로 나서서 검을 앞세우고 ‘돌격’을 감행했다.
꽈앙!-
일격필살의 기술답게 덩치 큰 아루단도 이번에는 몸이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그 틈에 테오루마 킹 여덟 마리와 트레앙, 칼리타가 달려들어 한꺼번에 딜을 넣었다.
꾸과과광!-
여러 차례 공격을 성공시키기에는 딜레이가 너무 짧다.
정신을 차린 아루단이 몸을 세우고 커다란 도끼로 공간을 휩쓸었다.
쑤우우우웅-
풍압만으로 웬만한 능력자는 다 기가 질리게 만드는 공격.
테오루마 킹 한 마리가 도끼로 직격을 맞고 몸이 산산조각 났다.
레벨이 높고 실력도 좋지만, 인공지능이 모자란 NPC처럼 유연하게 움직이지는 못한다.
그런 점에서 몬스터를 소환수로 만드는 것과 가브리엘, 박재환을 소환수로 삼는 것은 질적인 차이가 있다고 할 수 있었다.
꽝! 꽝! 꽈앙-!
아루단이 흥분하여 날뛸 때는 마주 공격하지 않는 게 상책이다.
모든 멤버가 거리를 띄우거나 열심히 몸을 굴려 피하는 데만 집중했다.
공방이 본격적인 궤도에 오르자 정신을 차릴 수 없을 만큼 시야가 어지러워졌다.
적은 하나지만 이쪽의 숫자는 열이 넘는다.
거기에 암젤이 소환한 호랑이 떼까지 더한다면…….
A급 던전 마스터와의 싸움답게 대결은 점점 집중력이 고도로 요구되는 상황으로 나아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승기가 이쪽으로 기울 거라는 것은 기정사실이나 다름없었다.
8
갑옷이 너덜너덜해진 아루단이 최후의 발악을 하기 시작했다.
버서커처럼 고성을 지르며 마구 무기를 내지른다. 그의 손에서 무기는 계속 모양을 바꾸었다.
검으로 근접거리를 베는가 하면, 긴 창으로 공간을 휘젓고, 급기야 활을 만들어 먼 곳을 공격하기도 한다.
이 싸움에서 나는 여덟 마리 테오루마 킹을 모두 잃었다.
아쉬운 일이긴 하지만 두 명의 소환수만 운용하면 되었기 때문에 마나 사용에는 어느 정도 여유가 생겼다.
‘아!’
싸움이 거의 막판에 다다랐을 때에야 갑자기 잊고 있었던 것 하나가 생각났다. 어제 새로 얻은 클래스, 정령왕의 전령.
하루에 한 번 자고보르의 힘을 빌릴 수 있는데, 지금까지 그걸 잊고 있었다.
“시간을 좀 끌어줘!”
아루단이 폭주하고 있는 상황에 다소 위험한 일이기는 하지만 나는 소환수 가브리엘과 박재환을 불러들였다.
OG의 멤버들이 빈 공간을 메꾸고 아루단을 타이트하게 포위했다.
나는 그 사이 클래스를 바꾸었다.
정령왕의 전령.
옷차림은 소박하지만, 설명하기 힘든 품위가 온몸을 감싼다.
어지러운 중에도 타로가 변화를 눈치 채고 시선을 돌렸다.
뭔가 가슴이 벅찬 표정이었지만 싸움이 한창일 때 한눈을 팔 만큼 기본이 안 된 녀석은 아니었다.
나는 조용히 눈을 감고 신경을 집중했다.
어제 자고보르에게 지적받은 바와 같이 내 정령술은 한계가 명확하다.
물론 일반적인 정령사로서의 수준은 최고까지 올랐지만 오리무스의 그것에 비하면 한참 모자란 셈.
몇 분의 시간을 소요하고 나서야 자고보르에게 내 의사가 전해졌다.
-알았다. 힘을 빌려달라는 거군.
온몸을 타고 오르는 격정적인 불의 기운을 느끼고, 나는 소리를 내질렀다.
“다들 피해!”
쿠와와앙-!!
엄청난 폭음을 울리며 내 양팔을 타고 불기운이 쏘아져나갔다. 일반적인 화염이 아니라 용암보다 뜨거운 지옥불이다.
일직선으로 터져나간 불기운이 아루단의 가슴을 직격했다.
“꾸와아아~~~!”
소리를 지르며 이겨내려 하지만 힘이 빠진 던전 마스터가 정령왕의 능력에 대항할 수는 없었다.
오래지 않아 아루단의 갑옷에 새빨간 구멍이 뚫렸다. 나는 불기운의 방향을 바꾸어 놈의 머리통을 공격했다.
엄청난 연기와 함께 본격적으로 산화되기 시작한 저주받은 마나.
쿵-
머리 없는 던전 마스터가 쓰러지자 검은 마나가 어지럽게 피어올랐다. 처음 나타났던 곳으로 사라져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던전 공략을 완수했습니다!]
[영토 퀘스트 ‘A급 던전을 획득하라’를 달성했습니다!]
[보상으로 스킬 에그(A급 이상 보장)을 얻었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200레벨이 되었습니다!]
[기존 클래스를 강화하거나 새로운 클래스를 얻을 수 있습니다.]
[페이즈 퀘스트를 모두 완수했습니다!]
[‘차원문의 열쇠’×1을 얻었습니다!]
“후우…….”
예상대로 정령왕의 전령 클래스가 발휘하는 능력은 엄청났다.
정확히 말하면 정령왕인 자고보르의 능력이 엄청난 거겠지만.
‘이제야 다 공략했네.’
A급 던전을 완전 공략하는데 참 많은 시간이 걸렸다.
정령왕의 기운까지 빌려 공격을 했더니 몸 안에 힘이 하나도 없다.
이 정도면 포션을 복용하는 정도로는 회복이 안 된다. 집에 가서 푹 쉬어야지.
그때 갑자기 칼리타의 높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인님! 이곳에도 통로가 있습니다!”
“응?”
그녀가 가리키는 방향에는 과연 기다란 틈이 있었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알아보기 어렵지만 그곳에서는 은은한 빛이 흘러나왔다.
발하는 기운으로 보아 이계로 통하는 길이 확실하다.
‘A급 던전에 통로가 있었다고?’
지금까지 박한도와 박재환이 세웠던 계획은 어설픈 가정에서 도출된 헛짓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진짜로 이곳에 이계와 통하는 통로가 있었을 줄이야.
이어서 떠오르는 메시지.
[던전 이면의 코어는 48위 군주 콘치온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코어를 가졌다니.’
48위 군주 콘치온.
아마 내가 아루단을 쓰러뜨리고 던전을 차지한 사실을 알고 있을 텐데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나는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등줄기를 훑는 것을 느꼈다.
‘지금까지와는 뭔가 다른데?’
하지만 여기 선 채로 생각해봤자 알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일단 돌아가서 대책을 강구해 봐야지.
9
원래대로라면 이번에 올라갈 수 있게 된 결투의 탑 층수는 9층이지만 이런저런 과정을 통해 64위 군주와 63위 군주는 이미 쓰러뜨렸기 때문에 두 층을 건너뛰어 11층에 들어가 62위 군주와 싸울 수 있게 되었다.
아래 두 층의 군주들이 워낙 약해서 딱히 걱정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수보타에게 물어보았다.
“62위 군주는 어떤 놈이지?”
내가 할 질문을 예상하고 있었던 것인지 수보타의 대답은 빠르게 나왔다.
“이름은 도블레. 주인님의 실력이라면 크게 염려할 대상은 아닙니다만 그래도 이제까지 만난 군주들보다는 강단이 있는 편에 속하니 나름의 준비는 하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렇군.”
나는 물어보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수보타는 대체로 적을 대단치 않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었다.
오랜 세월 동안 폭군의 밑에서 수발을 들었으니 그런 습관이 든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닐 터.
아무튼 그가 이렇게 말할 정도면 꽤 실력이 있는 군주라는 뜻이었다.
그건 그렇고,
아무리 마음이 급해도 A급 던전 마스터를 물리치고 온 당일에 바로 결투의 탑에 들어가는 건 현명한 생각이 아니다.
일단 오늘 남은 하루는 푹 쉬고 내일 오후에 들어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일단 보상이나 확인해 볼까?’
영토 퀘스트를 달성하고 얻은 보상, A급 이상 보장 스킬 에그.
여느 때처럼 로또를 먼저 사용하고 스킬 에그를 부화시켰다.
[축하합니다! 로또 3등에 당첨되었습니다!]
[일 분간 모든 스탯이 +150퍼센트만큼 상향됩니다!]
단순히 운이 좋아 로또 3등이 된 것인지, 아니면 어제 얻은 ‘행운의 반지’의 영향인지는 알기 어렵다.
아무튼 좋은 등수가 나왔으니 기대를 해봐도 괜찮겠지.
쩌저적- 파악!
스킬 에그가 깨지면서 메시지가 튀어 올랐다.
[패시브 스킬 ‘물의 정령술(S급)’을 얻었습니다!]
[업적 ‘초고속 클리어’의 효과로 스킬 레벨이 만렙이 됩니다!]
‘와!’
단순히 시의적절한 스킬이 나왔기 때문만이 아니라 S급 스킬이라는 사실도 매우 기쁜 일이었다. 지금까지는 아주 드문 일이었기 때문에.
[물의 정령술]
타입 : 패시브
등급 : S
레벨 : 100/100(Max)
효과 : 속성 부여가 가능한 모든 스킬에 물의 정령의 도움을 받아 위력을 강화할 수 있다.
제한 : 중급 이상의 정령술, 물의 속성을 다룰 수 있어야 함
최근에 정령술을 마스터했기 때문인지 계속 정령술에 관련된 스킬이며 아이템이 나오고 있었다.
단순히 운만 좋아서라기보다는 이 시스템을 만든 이가 나를 성장시키려고 한다는 강한 의지가 느껴진다.
‘좋은 일이지.’
나는 잠시 미뤄두었던 또 다른 한 가지를 해치우기로 했다.
클래스 선택.
정령술까지 마스터했기 때문에 이제는 새로운 클래스를 가질 차례이다. 게임을 처음 시작했을 때와 비교하면 지금은 선택할 수 있는 클래스의 수준이 대폭 상향되었다.
필수 클래스를 모두 마스터했기 때문에 이제부터 택할 클래스는 선택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잠깐 고민을 하다가 적절해 보이는 한 가지를 선택했다.
[성기사(창술 전문) 클래스를 얻었습니다!]
[업적 ‘초고속 클리어’의 효과로 숙련도 Max가 되었습니다!]
절대자 시리즈 같은 훌륭한 무기를 손에 넣었기 때문에 그 잠재력을 최고로 발현할 수 있는 클래스를 택하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다.
이미 웨펀 마스터 클래스를 통해 무기술은 최고의 경지에 올랐다고 할 수 있지만, 성스러운 기운을 활용하는 성기사는 또 다른 영역에 있는 클래스니까.
마법과 정령술을 사용할 수 없었던 초기에는 활용 가치가 떨어지지만, 지금은 그 능력을 극대로 발현할 수 있을 것이었다.
‘할 일은 다 했고.’
나는 잠이 올 때까지 게임을 하기로 했다.
어제 ‘정령왕의 전령’ 클래스를 얻고 한 가지 새로운 습관을 들이기로 결심한 것이 있다.
여가와 일상을 보낼 때 가능하면 정령왕의 전령 클래스를 발동시키고 있기로 한 것.
왜냐면 이 상태로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다른 정령왕과 통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시간을 잊고 게임에만 몰입한 지 다섯 시간 째.
나는 어디선가 들려오던 부드러운 음성을 들었다.
-오랜만이구나, 오리무스. 나는 네가 죽었다고 생각했다.
‘어? 새로운 정령왕인가?’
클래스를 얻고 하루 만에 또 다른 정령왕과 교신하는데 성공했으니 매우 페이스가 좋다고 할 수 있었다.
이름을 물으면 실례일 것 같아 클래스 정보를 확인했다.
연결 가능 정령왕(2) : 자고보르, 아페라치온
‘오! 이번엔 물의 정령왕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