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식왕 클리어러-217화 (217/245)

# 217

독식왕 : 클리어러 217화

집으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하고 귀환서 쪽으로 걸음을 옮기는데 암젤이 쫓아와 내 다리를 꾹꾹 누르며 물었다.

“저거, 그냥 둘 거냐옹?”

암젤이 말하는 저거란, 박재환의 시체를 일컫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고 나서야 나는 그 시체가 가진 활용 가치를 깨달았다.

‘테오루마 킹 쓰리도 잃어버렸겠다, 딱 인데?’

죽으면서 ‘문 커터’를 떨어뜨리기는 했지만 그에게는 아직 ‘버서커’와 ‘돌격’이라는 막강한 스킬이 있다.

소환수로 활용한다면 테오루마 킹 따위와 비할 바가 못 되리라.

나는 조금씩 녹아내리기 시작한 박재환의 시체 옆으로 가서 검은 소환술을 발동시켰다.

역시나, 몬스터에게 소환술을 걸 때보다 훨씬 저항력이 강했다.

하지만 그간 레벨이 많이 올라서인지 가브리엘을 소환수로 만들 때만큼 힘들지는 않았다.

거세게 치솟는 검은 회오리.

쿠과과과-

날카로운 바람이 박재환의 육체를 갈가리 찢고 뼈만 남겨놓았다.

표정 없는 소환수가 된 그가 천천히 몸을 일으킨다.

가브리엘에게 소환술을 걸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싸한 기운이 등줄기를 훑었다. 때문에 굳이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네 주인은 누구냐?”

“너…… 당신입니다.”

“내게 충성을 맹세할 수 있겠나?”

“크르르르…….”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몸을 떨던 소환수가 발작을 멈추고 대답했다.

“네……. 주인님의 명령에 복종……하겠습니다.”

‘으음.’

가브리엘 때만큼이나 못 미더운 느낌이 한 가득이다.

하지만 검은 소환술의 빈 슬롯을 채우는데 이만큼 좋은 재료를 구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니까.

“앞으로의 네 활약을 기대하겠다.”

“……크르르르……. 네…….”

7

집으로 돌아와 가장 먼저 한 일은 퀘스트 완료 보상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히든 클래스와 넘버링 아티팩트 전용 랜덤 보상 상자.

먼저 히든 클래스의 정보를 펼쳤다.

이름 : 정령왕의 전령

숙련도 : Max

특징 : 역사상 유일하게 정령술을 극한까지 익혔다고 알려진 오리무스는 그 특별한 능력 탓에 모든 정령왕의 부름을 받게 된다. 누구의 편도 될 수 없었던 그는 기지를 발휘해 차라리 정령왕들의 가교 역할을 할 전령이 되기를 자초한다.

연결 가능 정령왕(1) : 자고보르

효과 : 클래스를 유지하면 정령왕이 당신을 찾을 확률이 높아집니다. 정령왕의 전령이 되면 필요할 때마다 제한된 횟수의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와, 이런 게 있었어?’

가상현실 게임에서 대부분의 콘텐츠를 섭렵했다고 생각한 나는 현실에서 게임을 하며 새로운 것이 튀어나올 때마다 깜짝깜짝 놀란다.

물론 가상현실 게임과 현실이 백퍼센트 동일하지는 않겠지만, 이럴 줄 알았으면 지루하다고 생각할 게 아니라 가상현실 게임을 할 때 좀 더 꼼꼼하게 즐길 걸 그랬다는 후회를 하게 된다.

‘물론 다시 게임 안으로 들어가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내 눈길을 가장 잡아 끈 것은 연결 가능한 정령왕이 한 명 있다는 사실이었다.

‘자고보르?’

‘정령왕의 전령’이라는 클래스는 낯설지만 정령왕의 이름까지 낯설지는 않다.

자고보르. 그것은 가상현실 게임의 세계관 안에서 불을 다루는 정령의 왕이었다.

한 명의 왕을 일컫는 고유 명칭이 아니라 불의 정령왕이 되면 ‘자고보르’라는 명칭으로 불리게 되는 것.

‘내친 김에 한 번 해볼까?’

처음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알 수 없었지만, ‘정령왕의 전령’ 클래스를 발동시키자마자 클래스의 지식이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스며들었다.

눈을 감고 의식을 집중했다.

한 줄기 선명한 빛을 따라 자고보르와 연결된 끈을 쫓아간다.

그 과정은 결코 지루하지 않았다. 정령왕과 나 사이에 수없이 많이 존재하는 정령이 메시지를 실어 나르길 자처했으니까.

쉴 새 없이 눈과 귀로 바쁘게 움직이며 재잘거리는 불의 정령들이 아른거렸다.

십 분쯤 지났을 때 드디어 정령왕의 첫 음성이 들려왔다.

-오오! 너는 전령! 수천 년간 사라졌던 오리무스의 후예로구나!

성정이 포악한 불의 정령왕치고는 그 어조가 사뭇 부드러웠다.

“제 이름은 조성오. 운 좋게 오리무스의 능력을 이어받은 자입니다.”

-으음! 아직 서툴기는 하나 네게는 높은 수준의 정령사의 자질이 엿보이는구나! 거기에 불과의 친화력도 매우 뛰어나군. 실로 전령이 되는 데는 부족함이 없겠어!

“좋게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내 힘을 담기에는 아직 그릇이 부족하다. 하루에 단 한 번, 제한된 범위에서 기운을 나누어 주마.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정령술 연마에 정성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음! 그래야지! 내 도움이 필요하거든 언제든 전언을 보내도록 하라.

짧은 대화만으로도 이마에 땀이 송송 맺힐 만큼 집중력이 소모되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정령왕이 있는 곳은 아마도 이계의 군주들이 있는 곳보다도 훨씬 먼 곳일 것이다.

군주들과 대화를 나누는 게 차원을 하나 건너 띈 행위라면 정령왕과의 대화는 2.5차원에 걸친 행위.

오롯이 정령술에만 기운을 소모하여 온 집중을 다해야만 통할 수 있다.

‘그나저나 대단한 클래스를 가져 버렸네.’

정령왕은 내가 가상현실게임을 수십 회 클리어를 하고 나서야 겨우 어깨를 견줄 수 있었을 만큼 고차원적인 존재이다.

그의 도움을 직접 받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하루 한 번 엄청난 수준의 필살기를 펼칠 있게 됐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 번 사용하면 완전히 지쳐 버리겠지만.’

자고보르의 말마따나 나는 비록 정령술을 마스터하기는 했지만 정령왕의 힘을 고스란히 발현하기에는 부족함이 있다.

그것은 결국 레벨과 스탯의 문제로 직결된다.

한마디로 시간이 걸리는 일이라는 뜻.

하나는 됐고,

이제는 두 번째 보상을 확인할 차례이다.

인벤토리에서 랜덤 보상 상자를 꺼내어 테이블에 놓았다.

방금 정령왕과 대화를 나누느라 기력을 소모했기 때문에 로또 스킬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마나 포션 한 병을 마셔야 했다.

파각파각파각-!

[축하합니다! 로또 3등에 당첨되었습니다!]

[모든 스탯이 일 분간 추가 150퍼센트만큼 상승합니다!]

상자를 열자 밝은 빛이 터져 나왔다.

[넘버링 아티팩트 ‘행운의 반지’를 얻었습니다!]

‘역시, 이럴 줄 알았지.’

현실 게임의 특징은 장비든 아이템이든 시리즈로 된 아이템 중 하나가 나오면 연달아 같은 시리즈가 나올 때가 많다는 것이었다. 어쩌면 그것도 로또 스킬의 운이 작용해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지만.

[행운의 반지]

넘버 : 9

효과 : 만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한 행운을 쥐고 태어났다는 프드니크 대륙의 왕 예토트. 그는 전혀 노력을 하지 않았음에도 모두가 부러워하는 삶을 살았다. 그가 죽고 난 뒤 유능한 마법사 한 명이 왕에게 남아 있던 운을 추출하여 반지 안에 담는 작업에 착수했다. 그 작업이 성공했는지 여부는 알려지지 않은 채 수많은 세월이 흘러갔다. 반지를 손에 넣는 데까지는 많은 운이 따라야겠지만 막상 손에 넣게 되면 반지가 당신을 행운이 따르는 인생으로 안내할 것이다. (‘행운’ 스탯과 관련된 모든 클래스와 스킬 효과 20~40% 상승.)

행운의 반지는 모든 반지 시리즈 중에서도 가장 뛰어나다고 정평이 나 있는 물건이다. 때문에 넘버도 10번 이내를 부여받은 것이고.

‘오늘 보상은 뭔가 수준이 다르네.’

A급 던전 정복을 앞두고 있어서인지 스토리도 발단과 전개를 지나 이제 막 절정의 도입부에 이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물론 아직 갈 길이 아주 멀지만, 일촉즉발의 변수는 어디에서나 튀어나올 수 있는 거니까.

행운의 반지를 손가락에 끼우자 투명하게 변해 완전히 모습을 감추었다.

그런 까닭에 반지를 끼우고 있다는 이물감도 전혀 없다.

‘A급 던전 마스터와 싸우려면 내일은 푹 쉬어야지.’

말 그대로 오랜만에 여유를 갖고 하루 종일 게임만 할 생각이다.

8

악마의 산 최고층을 정복하기 위해 출발한 아침.

던전 관리소 앞에는 소장인 이덕철이 나와 있었다.

“벌써 최고층에 이르다니, 정말이지 다른 게이머님들과는 궤를 달리한다는 말밖에 할 수가 없군요.”

“과찬이십니다. 제가 한 가지를 하면 거기에만 집중하는 타입이라, 힘들어도 그냥 쭉 달려왔습니다.”

“허허……. 노력하는 천재라니, 게이머 중에도 정말 그런 분이 계셨군요.”

“말씀 낮추십시오. 제가 까마득히 나이가 어린데.”

“아니요. 던전에 입장하는 모든 게이머를 존중하는 것이 관리소장으로서의 중요한 소임 중 하나입니다.”

이런 훌륭한 마인드를 가진 헌터관리소 소장은 F급 던전이었던 검은 산 이후 처음 만나보는 것 같다. 그나저나 그분은 잘 살고 있으려나?

“몸조심하십시오.”

정중히 허리를 숙인 이덕철의 배웅을 뒤로 하고, 나와 OG의 멤버들은 악마의 산 꼭대기 층을 향해 출발했다.

* * *

이곳 던전의 최상층은 독특한 형태로 이루어져 있었다.

전체적인 인상은 기암 동굴과 같고, 안으로 들어갈수록 폭이 좁아지는 구조를 띠고 있다.

다른 층에 비해 등장하는 몬스터의 수가 적지만, 하나 같이 실력들이 대단해서, 데미 마스터에 준하는 능력을 발휘한다.

다른 층보다 규모 자체는 작기 때문에,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나아갔다.

마지막 일전을 위해 최대한 힘을 아끼고, 한 놈 한 놈을 최대한 힘을 아끼면서 사냥했다.

[레벨 199가 되었습니다.]

던전 마스터가 등장하는 코앞까지 이르렀을 때 내 레벨도 드디어 200에서 하나 모자란 수치가 되었다.

쿠구구구궁-!

등 뒤와 좌우의 벽이 무너지면서 까만 안개가 저주처럼 뒤덮어온다.

던전 마스터와의 싸움을 앞두고 완벽하게 퇴로가 차단된 것.

A급 던전의 최상층에서는 귀환석의 발동 확률도 현저히 떨어진다.

가장 비싼 귀환석의 발동 확률이 30퍼센트가 채 되지 않을 정도.

사냥에 성공하면 그 이상을 돌려받게 되지만, 그만큼 A급 던전의 마스터와 싸우는 것은 비장함을 동반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후우우우웅-

매캐한 연기가 전면에서 쏟아져 나왔다.

검은 연기 무더기는 공간을 휩쓸며 점점 덩치를 불려나갔다.

천천히 하나의 형상으로 자리 잡더니, 연기가 확 걷히고 난 다음에는 신장 5미터가 넘는 기사 하나만 덩그러니 남았다.

악마의 산 던전 마스터 ‘아루단’.

저주를 받고 영생을 사는 테오루마들과 달리 이 몬스터는 저주 자체가 만들어낸 가짜 원혼이다.

테오루마들의 한탄과 염원이 수천 년에 걸쳐 형상화되어 쉽게 넘어뜨릴 수 없는 최강의 기사가 탄생한 것.

나는 가상현실 게임에서 아루단과 싸웠던 일을 떠올리며 웃음을 지었다.

“네가 악마의 산 보스란 말이지?”

납득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약간은 김이 새기도 한다.

역시, 지구를 덮은 던전의 시스템은 A급이 전부가 아닐 것 같다는 의심이 재차 고개를 든다.

우선은,

나는 소환수 열 마리를 한꺼번에 불러냈다.

OG의 다른 멤버들도 재빨리 전투 대형을 갖추었다.

‘이놈부터 쓰러뜨려야지.’

내가 손을 내뻗는 것과 동시에 가브리엘과 박재환, 그리고 여덟 마리의 테오루마 킹이 튀어 나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