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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왕 클리어러-214화 (214/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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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식왕 : 클리어러 214화

    Chapter 53 – 악마의 산에서 하산한 동료

    1

    여기저기 전화를 돌려대던 박한도는 결국 참지 못하고 테이블을 걷어찼다.

    “이런, 시발!”

    매일 목숨을 걸다시피 했던 젊은 시절을 제외하면 자신의 존재가 이렇게까지 위협을 받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자신의 돈을 받아먹은 정치가, 공무원, 판검사 누구 하나 전화를 받지 않는다.

    심지어는 익명으로 메시지를 전해받기까지 했다. 사태가 걷잡을 수 없게 되었으니 외국으로 피신하는 것이 나을 거라고.

    “내가 혼자 죽을 줄 알고!”

    신경질을 부렸지만 누구를 껴안고 같이 가든 어차피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그리고 실상 동귀어진을 결심하면 그나마 남아 있던 아군도 모조리 돌아서는 최악의 시나리오로 가게 된다.

    “이 멍청한 새끼!”

    그가 말하는 멍청한 새끼란 바로 김재용이었다. 왜 시키지도 않은 짓을 해서 이 사달을 만든단 말인가!

    “후우…….”

    하지만 죽은 자를 욕해도 할 수 없는 노릇이다.

    게다가 자신은 그가 무얼 하려는지 알면서도 말리지 않았다.

    김재용은 자신의 힘으로 멤버들을 설득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박한도가 뒤에서 은근히 부추긴 영향이 적지 않았다.

    자신이 대놓고 나서지 않은 것은 박재환만은 움직이지 않길 바랐기 때문이다.

    박재환은 조성오를 자기 손으로 죽이고 싶어 했다.

    하지만 자신의 입장에서는 그마저 죽는다면 최후의 보루를 잃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어쨌든 박재환이 살아 있으면 자기 계획이 성공할 가능성이 있는 거니까.

    악마의 산 던전에 있는 군주가 박재환을 대리인으로 삼기만 하면, 대한민국 정부를 인질로 삼을 수 있다.

    ‘실패할 줄은 몰랐어.’

    자신의 생각에도 김재용이 세운 계획은 그럴 듯했다. 아무리 능력이 뛰어난 게이머라도 A급 던전을 하루 종일 공략하면 지칠 수밖에 없으니까.

    이제는 이판사판으로 계획을 강행해야 할 때다.

    박재환뿐 아니라 자신이 움직일 수 있는 지하의 게이머들이 적지 않다.

    지금까지는 실패했지만 적극적으로 나서면 군주도 응답을 해줄 것이다.

    그런 생각으로 핸드폰을 집어 들었을 때, 갑자기 서늘한 기운이 가슴팍을 파고들었다.

    “헉!”

    깜짝 놀라 아래를 보았더니 날카로운 검이 가슴을 꿰뚫고 들어왔다.

    이 방에 자기 아닌 누군가가 있었다는 것이 믿기 어려웠지만, 심장이 터지고 옷이 피로 물들어 가고 있는 것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자신을 찌른 누군가를 확인하기 전에, 먼저 그의 머리가 목 위에서 굴러떨어졌다.

    2

    이러저러한 일이 일어나는 동안 악마의 산 공략도 40층에 이르렀다.

    레벨은 191이 되었고, 정령사 클래스를 마스터까지 끌어올림으로써 액티브 스킬 ‘정령을 생성하는 힘’을 얻었다.

    ‘정령을 생성하는 힘’은 정령이 살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곳에서 정령들을 만들어내는 일종의 소환술이었다.

    없는 생명을 창조할 수는 없지만, 다른 공간에서 방황하고 있는 정령을 내 옆으로 불러들일 수 있다.

    당연하게도 기술을 발휘하는 자의 능력과 마나양에 따라 소환할 수 있는 정령의 숫자와 질이 달라진다.

    하지만 지금 내게는 크게 쓸모가 있는 기술이 아니었다. 검은 소환술을 이용해 부리는 소환수의 질이 더 뛰어나고, 어떤 정령을 소환하든 타로 이상의 능력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 뻔했기 때문에.

    그렇다고 이 기술이 영영 쓸모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 ‘정령을 생성하는 힘’이 어마어마한 스킬로 변모하는 것은 내가 먼치킨급의 능력을 얻고 난 다음의 일이다.

    ‘그나저나…….’

    40층에 이를 때까지 동료 NPC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진짜 이곳에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울 지경.

    그보다 다른 퀘스트를 달성할 기회가 더 먼저 찾아왔다.

    3

    -이번엔 틀림없어.

    티코이가 완벽한 조사를 통해 찾아낸 대리인 적격자를 유진이가 먼저 만났다.

    “좋은 사람들인가 보네.”

    오더 성향 군주의 대리인이 될 게이머들이니까 일단은 좋은 사람이어야 하는 것이 맞다.

    나도 살인을 하기 때문에 법률을 어기지 않는 도덕성을 따지는 게 아니다. 이계의 구분으로 오더 성향을 지닐 자격이 있느냐가 관건.

    스스로 의도를 갖고 감추지 않는다면 악인은 악인의 아우라를 풍기게 마련이다.

    유진이도 대충은 그게 무엇인지 감을 잡은 것 같고.

    -일단 만나보면 알 거야.

    유진이의 전화를 받고 이틀이 지난 토요일.

    나는 새로운 대리인 후보자들을 만나러 예의 그 한정식집으로 갔다.

    어째 대리인 후보자를 만나는 접견 장소는 이곳으로 고정이 돼버린 느낌이다.

    박재환과의 안 좋은 기억이 있기는 하지만, 뭐 그렇다고 해서 장소까지 바꿀 필요는 없으니까.

    약속 장소에는 김유진과 조은영, 그리고 얼마 전 완전히 공무원을 그만 둔 이한호까지 나와 있었다.

    원래 친한 사이이기도 하고 오랜만에 보는 것이기도 해서 분위기는 아주 좋았다.

    “너는 어째 볼 때마다 강해지는 것 같다.”

    이한호가 날 보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걸 숨길 수 있어야 진짜 강자지.”

    “너무 겸손이 지나치면 상대방이 자괴감을 느낀다, 이 녀석아.”

    자연스럽게 화제는 길드를 만드는 것으로 넘어갔다. OG의 산하 길드이기도 하고, 서포트 길드 역할도 수행할 대리인들만의 길드.

    “내가 생각해 봤는데.”

    이제는 자연스럽게 말을 놓게 된 조은영이 검지를 척 들었다,

    “이름은 이렇게 하는 게 어떨까?”

    그녀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모였다.

    조은영이 뱉어낸 단어는 짧았다.

    “둠.”

    “둠?”

    모두의 표정이 미묘하게 찌푸려지는 걸 감지한 조은영이 얼른 부연 설명을 했다.

    “DOOM. Deputy of order monarch. 오더 군주의 대리인이라는 뜻이야.”

    “오~”

    “나쁘지 않은데?”

    의미를 듣고 나서야 긍정적인 반응이 나온다.

    “이름이 정해졌으니 이제 진짜로 결성하는 것만 남았네.”

    “오늘 나오는 사람들이 대리인 적격자라면 다섯 명이 모인 시점에 결성하는 걸로 하자.”

    왜 다섯 명이냐면 오늘 나올 대리인 후보자가 두 명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남매.

    누구의 대리인이 될지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짐작이 가능한 셈이다.

    플루스와 플로스.

    쌍둥이는 아니지만 그들에 맞는 적합자를 찾았다는 것부터가 대단한 일이었다.

    심지어 아직 로치온과 베루니, 파로나의 대리인도 찾지 못했는데.

    존재하는지 의문이긴 하지만 피오리오와 아르바난의 대리인도 아직 없고.

    ‘그래도 이번에는 티코이가 자신만만해했으니까.’

    원래 완벽하게 일 처리를 하는 녀석이 실수를 했었다는 것 자체가 신기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더구나 나는 박재환을 만나게 된 게 마이너스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일성 길드는 언제든 내 앞을 막을 존재였고, 그들이 힘을 키우기 전에 조우했다는 건 결코 나쁘다고 볼 일이 아니니까.

    ‘재환이 이놈은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아닌 게 아니라 위치를 알아내려 해봤지만 끝내 찾지 못했다. 아버지가 맘먹고 숨겨놔서 그런 것일까?

    박한도도 지금쯤 엄청 똥줄이 탈 텐데 말이야.

    신뢰할 수 있는 정보에 의하면 아직 국내를 벗어나진 않은 것 같다.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드디어 오늘의 주인공들이 도착했다.

    누나와 남동생으로 이루어진 남매 헌터.

    그것도 둘 다 A급이다.

    누나 쪽은 몇 년 전에 먼저 각성을 했고 남동생이 각성한 건 최근의 일이다.

    누나인 이동주는 국내 거대 길드의 주축 멤버로 활약하고 있었는데, 동생이 각성하자 둘이 함께 길드를 만들려고 그곳을 그만뒀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나는 두 사람의 인상부터가 플루스, 플로스와 닮았다고 생각했다. 동생은 약간 거칠어 보이는 반면 누나는 엄청 차분한 인상이다.

    나이는 누나 쪽이 스물둘, 동생은 이제 갓 성인이 된 스물이었다.

    일단은 정보 창부터 스캔하고…….

    이름 : 이동주

    레벨 : 175

    성향 : 오더(Order) B / 카오스(Chaos) - = 오더(Order)

    업적 : 남매의 사랑(끈끈한 사이의 남매가 둘 다 훌륭한 게이머로 각성했다. 함께 싸울 때 공격력이 50퍼센트 증가한다.)

    랭킹 : 211위

    스탯 : 근력 65/ 체력 97/ 민첩 153/ 행운 132

    스킬 : 축복(A, Lv50), 고무(A, Lv50), 탈력(B, Lv22)

    이름 : 이동철

    레벨 : 153

    성향 : 오더(Order) C / 카오스(Chaos) - = 오더(Order)

    업적 : 남매의 사랑(끈끈한 사이의 남매가 둘 다 훌륭한 게이머로 각성했다. 함께 싸울 때 공격력이 50퍼센트 증가한다.)

    랭킹 : 685위

    스탯 : 근력 122/ 체력 118/ 민첩 88/ 행운 42

    스킬 : 스트롱 펀치(A, Lv30), 대시 킥(B, Lv11), 무영각(B, Lv7)

    두 사람 다 의심할 여지가 없는 오더 게이머였다.

    딱히 세상에 이로운 일을 했다기보다는 평소의 행실이 나쁘지 않았다고 보는 게 맞으려나?

    누나라면 몰라도 동생인 이동철은 각성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까.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두 사람이 가진 업적이었다.

    ‘남매의 사랑’이라는 이름답게 둘이서 나란히 보유하고 있다.

    ‘나도 누나를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엄청 오글거리는 이름이네.’

    우리 누나가 각성을 한다고 해도 이런 업적이 달성될 것 같지는 않다.

    그만큼 이동주, 이동철 남매가 끈끈하다는 뜻이겠지.

    “갑작스럽게 부탁드렸는데 만나자는 요청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뭘요, OG길드장님이 만나자고 하시는데 저희야 영광이죠.”

    누나 이동주가 공손히 대꾸했다.

    “미리 말씀을 드리는 게 맞을 것 같은데, 저희는 OG에 들어갈 생각이 없습니다. 이미 동생과 새로운 길드를 만들기로 해서요. 물론 OG에 들어갈 수 있다면 영광이기는 하겠지만 돈이나 명예보다는 가족과 함께할 수 있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역시 두 사람은 ‘남매의 사랑’이라는 업적을 달성할 자격이 있었다.

    “그러면 왜 이 자리에 나오신 건지…….”

    “동생이 길드장님의 팬이거든요. 녀석의 성화에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굳이 만나 뵙고 안 좋은 이야기를 드려서 죄송해요.”

    “아니요. 괜찮습니다. 이왕 나오셨으니 식사나 하고 가시죠.”

    이쪽 세상이 이계의 군주들에게 침공당할지도 모른다는 얘기는 천천히 분위기가 무르익고 나서 해도 늦지 않다.

    나는 이동철이 아까부터 왜 나를 반짝거리는 눈으로 보고 있는지 이유를 알게 되었다.

    이런 눈빛은 NPC나 OG의 다른 멤버들에게 항상 받고 있어서 익숙하다.

    도저히 누를 수가 없는지 그가 어린아이처럼 소리쳤다.

    “길드장님! 게임 좋아하시죠?”

    “네?”

    “길드장님의 전설은 익히 들었습니다. 게임을 너무 잘해서 아예 그 안에 들어갔다 오셨다고요!”

    “녀석이!”

    누나가 동생의 머리를 딱 하고 때렸다.

    이동철의 말은 듣기에 따라 굉장히 실례되는 말일 수 있기 때문에.

    나는 그런 사실은 아랑곳하지 않고 이동철이 무슨 뜻으로 그런 말을 꺼낸 것인지 이유를 짐작했다.

    ‘그렇구나.’

    아마 이동철도 나처럼 게임 마니아일 것이다.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끼리는 친근감을 느끼게 마련이니까.

    자기도 각성을 했겠다, 아마도 나를 롤 모델로 삼은 거겠지.

    스킬 이름이 ‘스트롱 펀치’, ‘대시 킥’, ‘무영각’이라니.

    ‘어지간히 게임을 좋아하나 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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