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3
독식왕 : 클리어러 213화
일성 길드 놈들을 몰살하고 김재용만 곤죽이 된 상태로 남겨놓았다.
그에게는 들을 말이 있었기 때문에.
“자, 말해봐. 박한도의 계획이 뭐지?”
암젤의 환각이나 마인드 리더를 사용하면 쉽게 정보를 빼낼 수 있겠지만 어차피 김재용에게는 비밀을 지킬 의리 따위가 없었다.
“모든 건 이학돈으로부터 비롯되었습니다. 그가 마법사들의 동굴에서 이상한 목소리를 들었고, 자신이 이계 군주의 대리인이 되었다고 했죠. 믿을 수 없는 얘기였지만 곧바로 증거가 나타났습니다. 박한도의 아들 박재환이 자신도 같은 일을 경험했다고 한 거죠.”
김재용은 말을 하며 내 눈치를 보았다.
“멈추지 말고 계속해.”
“네네, 그 얘길 들은 박한도는 계획을 짰습니다. 만약 이계의 군주와 한편이 되어서 그들을 이쪽 세상에 불러올 수 있다면, 그리고 그들과 한편이 될 수 있다면…… 물론 실제로 그렇게 할 생각이 있었던 건 아니죠. A급 던전이 터질지 모른다는 시늉만 하면, 대한민국 정부는 꼼짝없이 볼모가 될 수밖에 없으니까요.”
“잠깐, A급 던전이라고?”
나는 석연치 않게 생각했던 부분이 말끔히 해결되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박재환이 군주들의 청을 거절했던 거군.”
놈은 악마의 산 던전을 차지하고 있는 군주의 대리인이 되고 싶었던 것이다.
자신이 그럴 능력이 있다고 믿고, 또 실제로 크게 틀린 말도 아니었다.
‘만약 진짜로 악마의 산 던전에 군주가 있다면 말이지.’
이들의 계획은 어설픈 정보에서 비롯된 어설픈 계획일 뿐이다.
“목숨만 살려주십시오! 뭐든 시키는 대로 다하겠습니다!”
물론 박쥐 같은 인생을 산 김재용을 살려 둘 마음은 없다. 그는 죄 없는 사람을 여럿 죽인 살인범이기도 하니까.
초월자의 창이 섬광을 긋자 그의 목이 깔끔하게 떨어졌다.
[레벨 180이 되었습니다!]
[기존 클래스를 진화하거나 새로운 클래스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나는 정령사 등급을 한 단계 올렸다.
[클래스 ‘중급 정령사’가 ‘고급 정령사’로 진화했습니다!]
[업적 ‘초고속 클리어’의 효과로 직업 숙련도가 Max가 되었습니다!]
[패시브 스킬 ‘정령이 우러르는 아우라(C)’를 얻었습니다!]
스킬을 얻자마자 타로가 엄청나게 부담스러운 눈빛을 하고 달려왔다.
“주인님! 저 주인님을 좋아하게 된 것 같아요! 이미 좋아하고 있었지만 지금까지보다 훨씬 더 격렬하게요!”
“적당히 해라. 가브리엘 부르기 전에.”
“히끅!”
스킬을 강화하는 건 집에 가서 하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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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한도랑 박재환은 이제 어쩐다냐? 길드가 완전 초토화됐는데?’
아직 대외적으로 공개되진 않았지만 일성 길드 멤버들이 모두 죽었다는 사실은 곧 알려지게 될 것이다.
그 얘길 들었을 때 두 사람이 어떤 표정을 지을지 꼭 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보다 박한도가 내게 펀치를 날리는 것이 빨랐다.
티코이가 드물게 화난 표정을 지으며 나를 찾아왔다.
“주인님, 이번에도 사업 허가가 반송되었습니다.”
“내 이름으로 했는데도 그래?”
“……네.”
티코이는 사업 허가 결정이 거부 된 사실보다 내가 무시를 당했다는 데 더 화가 나는 모양이었다.
화가 나기는 나도 마찬가지다. 기습해 온 일성 길드 멤버를 모두 죽였다지만 그것은 기습을 당한 데 대한 정단방위에 불과했다.
“대한민국에서 아직 내 이름이 이 정도밖에 안 되는구나.”
크게 기대한 건 아니지만 막상 진실을 알게 되니 자존심이 상한다. 가상현실 게임에서는 각 대륙의 주인들이 내 앞에 부복을 했었으니까.
‘도움을 좀 받아야겠네.’
내 상의 상대는 노아였다. 그 역시 사업 허가가 계속 미뤄지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역시, 자연스럽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지금과 같은 위세라면 정부가 OG 말을 무시할 수 없을 텐데요. 단순히 기업들과 협상을 하느라 늦어진다고 생각했습니다.”
“박한도의 힘이 그만큼 강한 거라고 봐야겠죠?”
“하지만 지하에서 휘두르는 힘은 그만큼 제한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위에서 손바닥을 마주쳐 줘야 뭐라도 할 수 있는 거니까요. 그와의 고리를 끊고 싶게 만들 뭔가가 필요하겠네요.”
“그런 게 있어요?”
노아는 나를 쳐다보며 미소를 지었다.
“우리에게는 누구보다 큰 힘과 재력을 가진 친구가 있습니다.”
“친구요?”
“술탄 빈 칼리파. 그가 마음만 먹으면 대한민국을 뿌리째 흔들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하죠. 사업을 꼭 한국에서만 하라는 법은 없으니까요. 칼리파와 협의해서 결정석 시세 사업을 세계 규모로 확장하는 겁니다. 아닌 나라도 있지만 대부분의 나라가 결정석 매입을 한국과 같은 방식으로 하고 있으니까요. 파장이야 좀 있겠지만 칼리파라면 그것을 뚫어낼 힘이 있을 겁니다.”
“와.”
나는 진심으로 감탄했다. 게임만 하다 보니 게이머가 짱인 줄 알았는데.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내 동생 칼리파가 할 수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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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본 칼리파는 내 품에 달려들었다.
“너무합니다. 이런 일이 아니면 제게 연락도 안 하시는 겁니까?”
그 모습을 뒤에 서 있는 수행 비서 미하일이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연락 안 한 건 피차 마찬가지잖아. 바쁜 게 좋은 거지, 뭐.”
“하나도 안 좋습니다. 저는 딱 일주일만 일 안 하고 편하게 놀고 싶습니다.”
“돈 많은 것도 마냥 좋은 일은 아니구나.”
내 말에 칼리파 대신 미하일이 대꾸했다.
“칼리파께서 짊어진 짐은 단순히 돈만이 아닙니다. 어쨌든 성인이 되기까지는 주변에서 호시탐탐 눈을 빛내는 승냥이들의 공격을 막아야 하니까요.”
“그런데 어떡하죠? 이렇게 큰 부탁을 드려서.”
칼리파와 미하일은 오늘의 만남이 어떤 목적으로 이루어진 것인지 잘 알고 있었다.
일정이 연 단위로 짜인 칼리파가 나를 만나러 온 것은 그 일이 상당한 무게감을 갖는 것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부탁이라뇨. 그렇지 않습니다.”
미하일이 말을 이었다.
“이것은 굉장한 아이디어입니다. 자랑은 아닙니다만 저희가 아니면 해낼 수 없는 일이기도 하고요. 라이벌들의 도발을 피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칼리파의 명예를 높이는 일이죠. 이 사업이 성공하면 전 세계의 헌터들이 칼리파를 칭송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과 같은 세상에 헌터들의 입김은 어떤 정부보다 셉니다.”
“오히려 제가 고맙습니다. 성오 형.”
칼리파의 사업 영역은 전 세계에 뻗어 있다.
아무리 결정석이 대체 자원의 역할을 한다지만 여전히 석유 자원의 위력은 대단했고, 그것을 기반으로 세워진 아부다비 재단은 각국 정부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었다.
말 그대로 칼리파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인 것이다.
“시간은 좀 걸릴 테지만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형. 사업을 벌이는 건 내 특기니까.”
칼리파의 말에 미하일도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성인이 되진 않으셨지만 칼리파의 재능은 역대 최고입니다. 칼리파가 대표가 되신 후 재단의 수익이 20퍼센트나 늘었으니까요. 그를 모시게 된 게 저로서는 일생의 영광입니다.”
그 말이 거짓처럼 들리지는 않았다.
사업 수익은 OG와 아부다비 재단이 50 대 50으로 나누기로 했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칼리파는 자신의 영향력을 증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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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결정석 매입. 사실은 사기?
-헌터들, 오랫동안 속아왔다는 것에 격분
-아부다비 사업 재단. 결정석 시세사업에 뛰어들기로 결정
사실 이것은 그리 대단한 준비가 필요한 사업이 아니었다. 발상의 문제일 뿐이고, 만약 발상을 했다 할지라도 감히 개인이나 소규모 기업이 벌일 수 있는 일도 아니다.
막강한 재력과 영향력을 가진 아부다비 재단이 독점권을 갖고 사업을 벌이자 그 주가가 하루가 멀다 하고 치솟았다.
더불어 눈 가리고 아웅 식으로 결정석을 매입해 왔던 정부들은 헌터들의 엄청난 비난에 직면했다.
일부 국가에서는 실제로 헌터들이 집단 이민 시위를 하기도 했고.
개중 가장 헌터들의 반발이 심한 국가가 바로 대한민국이었다.
아부다비 재단이 한국에서는 결정석 시세 사업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기 때문에.
언론은 그것이 기업과 결탁한 정부의 부패 때문이라고 연일 기사화했다.
-역시 우리나라는 헬이었어.
-무능과 부패도 정도껏 해야지.
-쪽팔린다! 쪽팔려!
-됐어. 나는 긴 말 않고 이 나라를 떠난다.
OG는 이 사태가 일어나기 전부터 계속 결정석 시세 사업 허가 신청을 했었다.
머지않아 이 사업이 OG와 아부다비 재단이 손을 잡고 벌인 것이라는 것을 알아낸 정부가 내게 접촉을 해왔다.
“길드장님, 이게 무슨 일입니까! 대한민국에서만 사업을 하지 않겠다니요!”
어찌나 급한지 행안부 장관이 직접 나를 만나러 왔다.
“그게 무슨 소리세요? 제가 몇 번이나 사업 허가를 해달라고 신청했는데. 안 하겠다는 건 언제고 지금은 제 탓을 하는 겁니까?”
“상황이 바뀌었지 않습니까. 이대로 계속 헌터들의 비난을 받는다면 정부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합니다. 헌터들이 이 나라를 이탈하면 국민들의 안전은 누가 지킵니까?”
나는 표정을 싸늘하게 바꾸고 말했다.
“장관님은 저 역시 헌터라는 사실을 잊으셨나 보군요.”
장관의 얼굴이 해쓱해졌다.
“설마, 길드장님도 이 나라를 떠날 생각은…….”
“그러면 안 됩니까? 나는 어차피 인생의 절반을 침대에서 보냈고, 이 나라에 대한 유쾌하지 못한 기억도 많습니다. 몸뚱이가 커졌으니 더 큰 둥지를 찾아 떠나는 건 당연한 거죠.”
장관은 더 이상 자신이 큰소리를 칠 입장이 아님을 깨달은 듯했다.
“제 언행이 불편했다면 죄송합니다. 마음을 바꾸실 수 있다면 제가 무슨 일이든 하겠습니다.”
“박한도 씨 아시죠?”
“네?”
그 이름을 들은 장관의 얼굴이 교묘하게 실룩거렸다.
“모르는 척하지 마세요. 사업 허가 신청을 거부한 흑막에는 박한도가 있는 거 알고 있습니다. 얼마나 많이, 그리고 오랫동안 받아먹었는지는 모르지만 이 사태를 막고 싶으면 성의를 보이셔야 할 겁니다.”
“서, 성의 말입니까? 그걸 제가 어떻게…….”
“방법까지 제가 알려드려야 합니까?”
대화는 여기서 마무리되었다.
장관은 나를 만나러 올 때보다 더욱 결연한 표정을 하고 되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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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우리나라 행정부 일 잘하네. 진즉 이렇게 할 것이지.”
그동안 수면 아래 가라앉아 있던 일성 길드 멤버들의 죽음이 이제야 기사화되었다.
단순히 사망을 알리는 기사가 아니라 그들의 전과, 그리고 일성 길드 뒤에 누가 있는지, 심지어는 그 배후의 인물이 자신의 명을 어긴 길드원들을 살해한 것이라는 추측성 기사까지 나왔다.
화룡점정은 그가 바로 OG의 사업 계획, 즉 대한민국에서 가장 먼저 시작될 뻔했던 결정석 시세 사업을 막은 장본인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었다.
박한도는 대한민국 국민의 공적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