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1
독식왕 : 클리어러 211화
‘이건 또 무슨 소리?’
피스티스의 대리인이 되려고 생각한 것은 장난에 가까운 단순한 변덕이었다. 이게 ‘가짜 대리인’이라는 업적 달성으로 이어지리라고는 전혀 짐작하지 못했다.
‘그래도 가끔은 이렇게 의외의 것이 터져주는 쪽이 재밌지.’
동맹 군주 전원과 전언을 나눌 수 있다라…….
업적의 효과치고는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내게는 굉장한 메리트였다.
이곳에 오기 전에도 유진이에게 굳이 메시지를 대신 전해달라고 부탁했으니까.
일반적으로 대리인 한 명과 군주 한 명이 일대일 대응 관계였기 때문에 서로 소식을 전하기에는 상당히 불편한 점이 많았다.
내가 중심이 되어야 할 지휘 계통에도 애로 사항이 있고 말이지.
나는 당장 새로 얻은 업적 효과를 사용해 보기로 했다.
“근데 어떻게?”
내 말을 들은 시스템이 설명을 내놓았다.
[‘메뉴 – 전언’을 선택하면 특정 군주에게 메시지를 보낼 수 있습니다.]
“그렇군.”
전언 메뉴를 열자 현재 동맹 관계에 있는 군주들의 명단이 쭉 이어졌다.
[전체에게 전언을 보낸다.]
[72위 미리스]
[71위 아라돈]
[70위 파로나]
[69위 파라얀]
[68위 베루니]
[67위 피오리오]
[66위 로치온]
[65위 아르바난]
‘단체 메시지를 보낼 수도 있구나.’
어쩐지 핸드폰 메신저로 메시지를 보내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계 오더 군주들의 수장이라고 할 수 있는 로치온을 선택했다.
[66위 동맹 군주 로치온과 연결되었습니다.]
“아아. 로치온, 들려?”
-응?
놀란 듯한 목소리가 들리고 약간의 침묵이 이어졌다.
-혹시 조성오인가? 어떻게 내게 전언을 보낸 거지?
“그렇게 됐어. 새로 얻은 능력이라고 해두지.”
-아…… 새로 얻은 능력이라는 말이지? 네 일이니까 캐묻지 않는 게 좋겠지. 네가 이계에 왔다는 말은 들었어. 피스티스를 쓰러뜨리기 위해서라지?
“응, 방금 해치웠어.”
-……그렇군. 원군을 보내려고 했는데 그렇게 빨리…….
“그리고 곧 64위 군주도 죽일 거야.”
-그래……? 네가 하는 일에 놀라지 않겠다고 생각했지만 마음먹은 대로 잘 안 되는군.
“새로운 오더 군주를 찾는 게 좋을 거야. 애써 쓰러뜨려도 다른 놈이 그 자리에 앉아버리면 소용이 없잖아?”
-네 말이 맞아. 그렇지 않아도 그 문제는 늘 고민하고 있다. 마침 딱 좋은 상대와 접촉했어. 두 자리가 비었다지만 금방 채울 수 있을 거야.
“그거 잘됐네. 너만 믿을게. 그리고 피스티스의 영지 가운데 지금은 없어진 스티코이 부락지가 있는데, 그곳에 내가 있는 곳과 통하는 통로가 있어. 알아두라고.”
-음, 좋은 정보군. 알았어. 항상 네 목숨은 수십억의 목숨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잊지 마라. 싸움과 성장도 좋지만 무리하지는 말라는 뜻이야.
“응, 땡큐. 너도 몸조심해.”
수십억의 목숨이라는 말을 듣자 갑자기 부담감이 확 밀려왔다.
사실 그것은 틀린 말이 아니다.
단순히 이계에 평화를 가져오는 문제에 그치는 게 아니라 이쪽 세상이 카오스 군주들에게 농락당하지 않게 만든다는 의미도 있으니까.
그 일의 성패가 내 어깨에 달려 있다는 말이지.
‘흠…….’
항상 생각하는 거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목표를 추구하는 것은 뜬구름을 잡는 것과 비슷한 것 같다.
어릴 때부터 줄곧 게임만 해서 그런지 게이머의 입장에서 말을 하자면, 결국 대업을 이루는 것은 풍운의 꿈을 따라갔기 때문이 아니다.
‘눈앞의 적을 차근차근 죽이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엔딩을 보는 거지.’
수십억의 목숨이 달려 있다고 해도 위험을 무릅쓰지 않으면 중요한 순간에 최선의 선택지를 고르기가 어렵다.
열 살 때까지는 모르겠지만 가상현실 게임에 갇힌 지난 10년을 나는 그렇게 살았다.
피스티스를 제거하는 일이 마무리되었으니, 이제 던전의 코어와 이곳의 코어가 연동하도록 만드는 일이 남았다.
고맙게도 피스티스가 게네아까지 해치워 주었으므로 그 일은 아주 쉽게 해결되었다.
5
현실로 돌아와서 다시 일주일.
나와 OG멤버들이 매달린 것은 당연히 ‘악마의 산’ 공략이었다.
정확하게 일곱 개 층을 더 공략해서 13층까지 공략을 마쳤다.
현재 레벨은 175.
악마의 산이 더 골치 아픈 것은 데미 마스터급 몬스터가 일반 A급 던전보다 많이 등장하기 때문이었다.
고작 3분의 1 지점까지 올라갔는데 두 마리의 데미 마스터와 싸웠다.
‘뭐, 꼭 나쁜 점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강력한 몬스터와 싸웠다는 것은 강력한 소환수가 생겼다는 것과 같은 의미다.
자신에게 위협이 될 만한 데미 마스터급 소환수가 두 마리나 생기자 가브리엘도 더 열심히 싸우는 눈치다.
이런저런 일을 하는 사이 아이템 판매 대금 입금일이 되어 갑자기 두 개의 퀘스트를 달성했다는 메시지가 떴다.
[‘PHASE 7 부 퀘스트 – 사업 매출 1,000억 원을 달성하라’를 달성했습니다.]
[‘PHASE 8 부 퀘스트 – 사업 매출 2,000억 원을 달성하라’를 달성했습니다.]
[보상으로 ‘랜덤 보상 상자(유니크급 장비 전용)×2’를 얻었습니다.]
‘오! 한꺼번에 해결되니까 보기에도 좋네.’
그와 동시에 티코이가 달려왔다.
“주인님! 아이템 판매 대금이 저희 계좌에 입금되었습니다.”
“응. 수고했어, 티코이.”
만족한 얼굴로 일터로 돌아가려는 티코이를 내가 잡아 세웠다.
“잠깐만.”
“네?”
“어차피 너한테 부탁해야 되니까 가지 말고 여기 있어.”
새로운 장비를 얻으면 항상 티코이에게 업그레이드를 부탁한다. 나중까지 미룰 필요가 없기 때문에 지금 이 자리에서 확인하고, 티코이에게 맡기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자동으로 인벤토리로 들어온 두 개의 보상.
상자를 나란히 꺼내놓고 우측 것부터 열어보았다.
펑!
[‘초월자의 창×1’을 얻었습니다.]
상자가 사라진 자리에 놓인 것은 단순한 형태의 창이었다.
“이게 무엇인가요?”
호기심에 귀를 쫑긋거리는 티코이와 달리 내 눈은 초롱초롱하게 빛났다.
“벌써 이게 나오다니!”
[초월자의 창]
등급 : 유니크
효과 : 근력 +50~100, 체력 +50~100, 행운 +50~100, 민첩 +50~100
무기술을 이용한 스킬 사용 시 마나 증폭 +200~300%, 공격력 증가 +200~300%
부가 효과 : 크리티컬 확률 +50~70%, 즉사 확률 +50~70%
비고 : 초월자의 경지에 도달한 대장장이가 초월자의 경지에 도달한 무도가를 위해 만든 무기. 하나의 무기에 모든 기술을 다 녹여낼 수 없어 다섯 개로 나누어 제작했다. 다섯 개의 무기를 모두 모으면 엄청난 시너지가 발휘된다고 하는데, 지금까지 이것을 실현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용 제한 : 무기술 달인급 이상, 6클래스 이상 마법사
심플하기 짝이 없는 모양과 설명이지만 이는 말 그대로 ‘Simple is best’를 실현한 장비이다.
사용 제한을 보면 알 수 있듯 6클래스 마법사 수준의 마나 운용 능력과 달인급 무기술이 없으면 아예 휘둘러보지도 못할 무기!
‘내가 이 정도 수준에 이르렀다는 뜻이겠지.’
나는 앞에 놓인 창을 잡아보았다. 그러자 평범한 창에서 빛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초월자의 창’은 말 그대로 초월의 경지에 오른 사람만 사용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경지가 어느 정도냐에 따라 각기 다른 모양과 능력을 갖춘다.
빛이 잦아들었을 때, 초월자의 창은 처음 모습을 드러냈을 때와 달리 화려하게 변해 있었다. 효과도 적정 수준에서 고정되었다.
근력 +65, 체력 +65, 행운 +65, 민첩 +65
무기술을 이용한 스킬 사용 시 마나 증폭 +250%, 공격력 증가 +250%
크리티컬 확률 +55%, 즉사 확률 +55%
‘아직 이 정도라는 거네.’
초월자의 창이 가진 잠재력을 절반도 이끌어 내지 못했다.
‘역시 도도한 장비.’
나는 창을 내려놓고 다음 상자를 열었다. 어떤 물건이 나올지 예측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초월자의 활×1’을 얻었습니다.]
창을 제외한 네 가지 무기 중 어떤 게 나올지는 몰랐지만 초월자 시리즈가 나오리라는 것만은 짐작했다.
‘초월자의 활’도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다. 아주 아주 심플한 모양.
모르는 사람이 보았다가는 싸구려 무기인 줄 알고 관심조차 갖지 않을 정도다.
내가 손을 대자 이번에도 빛을 뿜으며 화려한 잠재력을 뽐냈다. 장비의 효과 수치는 초월자의 창과 동일했다.
“사용자의 마나에 협응하다니, 엄청난 무기로군요.”
티코이가 감탄을 내뱉었다.
“응, 대단한 물건이지. 근데 업그레이드는 못 하겠다.”
티코이도 그 점은 순순히 인정했다.
“한계까지 능력을 뽑아냈는데 그 이상은 안 되겠죠.”
나는 창과 활을 한 군데에 겹쳐서 놓았다. 그러자 두 개의 무기가 엉켜 하나의 쇠막대로 변했다.
초월자의 무기 시리즈는 이렇게 서로 형태를 합치는 게 가능하다.
사용자의 의지에 맞춰 창과 활, 두 개 중 하나의 모양으로 변하는 것이다.
‘창과 활이라니, 나쁘지 않네.’
더 좋은 무기를 얻었으니 히루도의 창과 바자야는 피오리오와 아르바난에게 양도하기로 했다.
6
다음 날 로치온에게 전언이 왔다.
-조성오, 내 말 들리나?
“로치온?”
-이거 참 편리하군. 나도 자네에게 전언을 보낼 수 있다니. 대체 어떻게 했냐고 묻고 싶지만 어차피 들어도 이해하기 어렵겠지.
“설명하기도 어려워.”
-군주 자리를 대체할 인물과 접선에 성공했네. 우리는 이미 피스티스의 영지였던 곳에 주둔해 있어. 이제 자네 마음대로 하게.
“오케이. 오늘 안에 해결하지.”
로치온이 마음대로 하라는 건, 전에 말했던 대로 64위 군주를 죽이라는 뜻이었다.
지금의 동맹 군주들의 전력이라면 64위 군주의 땅을 차지하는 것도 어렵지 않겠지만 그렇게 하면 여러모로 위험부담이 따른다.
첫째로 병력을 소진해야 하고, 각자 떨어진 영지의 군주와 병력이 한군데로 모여야 한다. 대규모 병력의 움직임은 서열이 높은 군주들을 자극할 수도 있다.
내가 머리를 쳐 내버리면 그 자리로 일부 병력만 데리고 들어가도 되니 아주 간단한 작업이 될 터.
[‘차원문의 열쇠’를 사용하시겠습니까?]
“그래.”
새로 열쇠를 얻지는 않았지만 전에 갖고 있던 것이 하나 있어 그걸 사용했다.
64위 군주 소키에타스.
놈도 피스티스처럼 허접한 실력이었다. 나름 군주로 행세할 정도는 됐지만, 170레벨이 훌쩍 넘은 나와 멤버들을 상대하기에는 한참 모자랐다.
“끄아아아악!”
그가 단말마를 내지르며 목숨을 잃자 기분 좋은 메시지가 떠올랐다.
[64위 군주 소키에타스를 물리쳤습니다!]
[결투의 탑 9층을 정복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