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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왕 클리어러-206화 (206/245)

# 206

독식왕 : 클리어러 206화

“너…… 내가 누구인지 알고 있는 거냐?”

“일성 길드의 유명한 게이머님을 제가 왜 모르겠어요? 우리 OG를 그렇게 싫어한다죠?”

“크흠…….”

내 말에 이학돈은 매우 당황한 것처럼 보였다. 머리가 아픈 듯 얼굴을 찡그렸다가 이내 시선을 바로 했다.

“어차피 대화를 하러 온 건 아니니까.”

이학돈의 몸에서 거친 마나가 피어올랐다. 리더가 움직이자 나머지 게이머들도 한꺼번에 전투태세를 갖춘다.

이학돈 개인이 나를 노리는 거라면 이해할 수 있는데 따라온 게이머들까지 이런다는 건 일성 길드가 얼마나 골 때리는 곳인지 말해주는 대목이다.

나는 한발 물러나서 의상을 바꾸었다.

데피니온 세트.

이학돈도 매지션이니까 매지션 대 매지션의 싸움이 성사된 것이다.

암젤에게 눈짓하자 그녀가 변신을 했다.

인간형으로.

고양이가 아름다운 여자로 변신하자 모두의 시선이 그녀에게 몰렸다.

“뭐야?”

“고양이가 인간으로 변신을 했어?”

“예, 예쁘다…….”

암젤의 동공에 붉은색이 들어찼다.

필레소의 홍안.

두 눈에서 흘러 나간 공포가 열한 명의 게이머를 덮쳤다.

“으아아악!”

“끄아악!”

이학돈을 제외하고는 모두 격이 떨어지는 게이머들이다.

필레소의 홍안을 발동한 건 조금 과하지 않나 싶었지만 적어도 죽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바꿔 말해 공포 스킬을 발동시킨 건 그들을 죽이지 않기 위한 방편이기도 하다.

다만 이학돈만이 자기 몸 밖에 장막을 둘러 공포에서 벗어났다.

검은색으로 일렁이는 ‘커튼 피어’.

필레소의 홍안을 이겨낼 정도로 강한 스킬인 것을 보니 과연 이계 군주에게 하사받은 기술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됐어.”

내 지시에 암젤이 물러났다. 홍안을 거두어도 아직 게이머들은 공포와 혼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각자 팔다리를 휘저으며 비명을 질러댔다.

이학돈이 흠칫거리며 눈치를 보더니 장막을 거두었다.

‘시발!’

뭔가 잘못됐다고 생각하는 그였다. 각성수 한 마리만 데리고 던전에 왔다기에 쉽게 죽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뭐하는 거냐! 놈을 죽여라! 어서!

피스티스의 목소리만 아니면 진즉 발을 빼고 도망쳤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된 이상 이판사판이라고 느꼈다.

어금니를 깨물고 양팔을 내뻗었다.

공포의 장막이 광범위하게 상대를 덮쳐간다. 하지만 스킬이 채 닿기도 전에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옥의 겁화.”

쿠과과과-

시뻘건 불길이 ‘커튼 피어’를 삼켰다. 동시에 이학돈의 몸까지 집어삼켰다.

불길 속에서 허우적대던 까만 그림자는 끝내 불길 속에서 스러졌다.

[명예 퀘스트 ‘카오스 대리인을 1인 물리쳐라’를 달성했습니다.]

[보상으로 랜덤 보상 상자(넘버링 아티팩트 전용)을 얻었습니다.]

[레벨 160이 되었습니다.]

[기존 클래스를 진화하거나 새로운 클래스를 얻을 수 있습니다.]

나는 긴장을 풀지 않고 기다렸다. 가브리엘 때처럼 대리인의 몸을 찢고 이계 군주가 튀어나올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학돈의 사체가 녹아내리고 결정석이 굴러 나온다.

불과 십여 초 만에 끝난 싸움.

“허무하네.”

더불어 가브리엘과의 일전에서 내가 얼마나 강해졌는지 실감할 수 있는 순간이기도 했다.

‘혹시?’

피스티스가 이학돈을 통해 현신하지 않은 것이 장소와 연관이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브리엘과 싸울 때 나는 ‘공간 생성’ 스킬을 통해 현계도 아니고 이계도 아닌 제3의 공간을 만들어냈다.

그 공간이 대결의 탑에 준하는 장소로 인정되어 이계 군주가 대리인의 몸을 찢고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각자의 홈그라운드나 원정지가 아닌 제3의 지역에서만 군주가 현신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만약 아무 곳에서나 이계 군주가 대리인의 몸을 빌려 나타날 수 있다면 진즉 이쪽 세상이 어지러워졌을 테니까.

“살려주세요!”

“제, 제발 목숨만은…….”

다급한 외침들이 들려와 시선을 옮겼더니 공포에 빠져 있던 게이머들이 하나둘 정신을 차리고 바닥에 엎드려 있었다.

나는 그들의 정보를 차례로 들여다보았다.

카오스 게이머도 있지만 그나마 등급이 높지 않고, 중립, 심지어 오더 성향의 게이머까지 보였다.

일성 길드가 생긴 지 얼마 안 된 만큼 아직 모든 소속 게이머가 손을 더럽힌 건 아니라는 뜻.

나는 필요에 의한 살인은 망설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나 죽이는 사이코도 아니었다.

겁에 질린 일성 길드 게이머 열 명에게 스킬을 걸었다.

기억 삭제.

나를 쫓아 던전에 들어온 기억을 통째로 날리고 열흘간 잠을 못 잔 것으로 조작하자, 곧 세이프 에어리어 안이 코 고는 소리로 가득 찼다.

“주인님, 여깄다옹.”

다시 고양이로 돌아간 암젤이 이학돈이 죽으면서 남긴 결정석을 가져왔다.

콜드 스톤 한 개와 블러드 스톤 한 개.

블러드 스톤은 ‘매직 애로우’라는 특이할 것 없는 스킬을 품고 있었기에 굳이 흡수하지 않았다.

콜드 스톤으로는 행운 16을 얻었다.

“가자.”

뒷수습은 던전 관리소 공무원들에게 맡기고 나는 유유히 던전을 빠져나왔다.

8

생각했던 것보다도 더 쉽게 끝난 싸움이지만 그렇다고 보상까지 어설프지는 않았다.

넘버링 아티팩트.

딱 백 개밖에 없는 귀한 아이템들이기 때문에 그 가치가 더욱 높다.

늘 하던 대로 로또를 먼저 발동하고 보상을 확인했다.

[넘버링 아티팩트 ‘위력의 반지’를 얻었습니다.]

[위력의 반지]

넘버 : 87

효과 : 힘 하나로 일류 몬스터 사냥꾼이 된 바트의 정수가 담긴 반지. 마법 계열을 제외한 모든 무력 관련 클래스에 효과를 발휘한다. 능력이 발휘되지 않을 때는 투명하게 변해 보이지 않으며, 몸에 지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효과가 증대된다. 근력 10~30% 상승.

테이블에 놓인 것은 다소 투박하게 생긴 반지였다. 이미 획득한 ‘매혹의 반지’처럼 액세서리 시리즈 중 하나이다.

정보에 밝혀진 대로 평소에는 끼우고 있어도 모양이 드러나지 않는다. 더불어 답답한 느낌도 없었다.

매혹의 반지는 일상생활이 어려울 만큼 불편을 제공하는 아이템이기에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착용하지 않지만 위력의 반지는 굳이 그렇게 할 필요를 못 느꼈다.

왼쪽 엄지에 끼우자 커다랬던 반지의 사이즈가 저절로 조정되었다.

다음은 새로운 클래스를 택할 차례.

지금 내가 보유한 클래스는 ‘웨펀 마스터’, ‘마법사(8클래스)’, ‘검은 소환술사’, ‘검은 공예사’, ‘점프의 달인’, ‘로열 블러드’이다.

‘무기 숙련가’나 ‘전설의 마창사’, ‘전설의 궁사’ 같은 클래스는 웨펀 마스터에 포함되는 것이기 때문에 굳이 구분할 필요가 없다.

‘다음은…….’

어떤 의미에서는 마법사보다도 익히기 어려운 클래스. 레벨이 낮을 때는 감히 꿈도 꿀 수 없었던 직업을 택할 생각이었다.

[클래스 ‘초급 정령사’를 얻었습니다.]

[업적 ‘초고속 클리어’의 효과로 직업 숙련도가 Max가 되었습니다.]

[패시브 스킬 ‘정령을 보는 눈(C)’을 얻었습니다.]

아무리 업적 효과가 발휘된다 하더라도 등급까지 올릴 수는 없는 모양이었다.

정령사는 초급, 중급, 고급, 마스터 네 단계를 거쳐 능력이 성장한다.

초급 단계에서는 세상에 흩어져 있고 동시에 꽁꽁 숨어 있기도 한 정령을 알아보는 눈을 갖게 된다.

방을 한 차례 둘러보았지만 이렇다 할 변화를 감지하지 못해 스킬을 강화하기로 했다.

강화석으로 ‘정령을 보는 눈’을 A급까지 올렸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이쪽 세상에는 정령이 없나?’

아마 던전이나 이계로 간다면 지금과 사정이 다를 것이다.

그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인! 주인! 나 불렀어?

의심할 여지없는 타로의 목소리이다. 하늘, 땅 속성을 가진 임퓨어 정령.

“아니, 안 불렀는데?”

-나 지금 가슴이 막 벅차. 주인이 좋았지만 더 좋아진 것 같아. 막막 힘이 세지고 있어.

‘그렇군.’

정령사 클래스의 효과가 뜻밖의 곳에서 드러나고 있었다.

9

이학돈을 죽였다고 해서 피스티스까지 끌어낼 수 없다는 점은 아쉽지만 한 가지 가능성이 열리기는 했다.

‘공간 생성’ 스킬을 써서 싸우면 대리인을 통해 군주가 나타날 수도 있다는 사실. 아직 확인한 바는 없지만 충분히 시도해 볼 만했다.

그리고 이학돈의 머릿속을 들여다보고 알아낸 또 한 가지 사실.

피스티스가 던전의 통로를 찾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군주가 통로의 중요성을 알고 있는 건 아닌 것 같다.

만약 그랬다면 피스티스보다 높은 순위의 군주들이 이미 방법을 찾아냈을 테니까.

피스티스가 통로의 중요성을 알았다면 다른 군주가 깨닫는 것도 시간문제일 터.

그전에.

‘내가 먼저 찾아볼까?’

내게는 던전 통로를 찾을 확실한 수단이 있다. 칼리타가 ‘길 찾기’ 스킬을 통해 이계로 가는 통로를 발견할 수 있으니까.

무심결에 발휘된 그 능력 탓에 그녀가 이쪽 세상으로 건너오기도 했다.

레벨이 오를수록 자각도가 상승한다고 하는데, 160레벨에 이른 지금은 처음보다 그 능력이 훨씬 향상되었을 것이 틀림없다.

“알겠습니다. 분부대로 하지요.”

그녀 혼자 던전에 들어가서 탐색을 한다 하더라도 내가 던전 마스터이기 때문에 몬스터에게 습격받을 위험은 없다.

다만 작업의 능률을 생각해서 마요르를 붙여주었다.

“형님, 나 따라가서 게이머 물건 훔쳐도 돼?”

“너는 도둑질하겠다는 말을 그렇게 당당하게 하냐?”

“어쩔 수 없지. 내 직업인데 뭘.”

“훔치지 마. 괜한 소문이 날 수도 있으니까.”

“칫, 알았어. 형님 말이니까 어쩔 수 없지.”

‘다음은 특수 퀘스트인가?’

굳이 순서대로 공략할 마음은 없지만 페이즈 7 퀘스트 중에서 ‘명예’ 퀘스트는 이미 달성했다.

‘부’ 퀘스트는 시간문제니 그냥 내버려 두면 되고.

두 개가 해결되었으니 이제 하나만 남은 셈이다.

특수 퀘스트는 오더 대리인을 영입하라는 것이었다.

현재 같은 편 군주 중 대리인이 있는 것은 세 명이다.

72위 미리스, 71위 아라돈, 69위 파라얀.

만약 피오리오와 아르바난에게도 대리인을 지정할 수 있다면 다섯 명의 대리인을 더 찾을 여지가 있었다.

‘조건이 생각보다 까다로워 보이진 않으니까.’

대한민국 서울에서 이미 세 명을 찾은 걸 감안하면 대리인을 찾겠다고 굳이 전 세계를 뒤지고 다닐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발신자는 김유진.

“오! 안 그래도 네 생각하고 있었는데.”

엄밀히 말하면 유진이가 진행 중인 일에 대한 생각이지만.

-어렵게 마음 접었으니까 설레는 말 하지 말아줄래?

“아……”

-농담이야. 그렇게 진지하게 반응할 것 없어. 업무 진척 상황을 보고하고 싶은데.

“대리인 후보랑은 만났어?”

-응, 한호 오빠는 인수인계 때문에 시간이 안 난다고 해서 은영 언니랑 둘이 만났어.

나는 조은영을 언니라고 부르는 유진이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누가 보아도 유진이가 언니 같은데.

한호나 은영을 오빠, 언니라고 부르는 걸 보니 그새 친해졌나 보다.

하긴, 누구 한 명 성격이 모난 사람이 없고, 군주의 대리인이라는 동질감으로 뭉쳤으니 친해지기 쉬웠을 수 있다.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우리가 보기엔 결격 사항은 없는 것 같은데, 최종 판단은 네가 하는 거니까.

“알았어. 나 지금은 바쁜 일 없으니까 편한 시간에 만나자고 해봐.”

-응, 약속 잡고 연락할게.

퀘스트 진행이 척척 되고 있다는 건 게이머로서 뿌듯한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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