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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왕 클리어러-202화 (202/245)
  • # 202

    독식왕 : 클리어러 202화

    혹시 그러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역시 조은영은 이 자리를 면접 자리로 착각했나 보다.

    이력서를 받아가고 며칠 뒤에 연락을 했으니 충분히 그럴 수 있지만.

    키가 작고 앳된 아가씨가 정장을 차려입은 것을 보니 단정하다기보다는 귀여운 인상이 컸다.

    ‘물론 나보다 연상이지만.’

    나는 손목을 들어 시계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아니에요. 저희가 빨리 나온 거예요. 하나도 안 늦었어요.”

    “후우~~ 그러면 다행이에요.”

    이한호가 내 옆으로 자리를 옮기고 조은영이 맞은편에 앉았다.

    “여기 유명한 가겐데……. 꼭 한번 와보고 싶었어요.”

    주위를 둘러보며 그렇게 말하는 모양새가 매우 소박했다. A급 게이머라기보다 그냥 대학 새내기 같은 모습이다.

    본인이 원한다면 고급 한정식집이야 매일 올 수도 있을 텐데.

    “은영 씨라면 수입이 많을 건데, 아닌가요?”

    “아마 그럴걸요?”

    “아마?”

    “돈 관리는 엄마가 하시거든요. 저축해 뒀다 나중에 크면 준다고. 지금은 용돈 받아서 쓰고 있어요.”

    ‘크면?’

    스물두 살이면 다 큰 거지만 조은영의 하는 양을 보면 아직 많은 부분에서 보호 본능을 일으킨다.

    게다가 소망이 세계평화에 기여하는 거라니까. 수입이 제 손에 떨어지면 버는 족족 기부해 버릴지도 모른다.

    기부라면 나쁠 게 없어도 사기꾼들에게 뜯기기라도 하면 큰일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조은영의 어머니 입장이 크게 공감이 되었다.

    “혹시, 오늘 무슨 일로 절 보자고…….”

    “식사부터 하고 천천히 이야기하시죠.”

    조은영에게는 매우 충격적인 이야기일 수 있는데, 배부터 채운 뒤에 들어야 여파가 더 적지 않을까 싶었다.

    식사를 마치고 후식으로 나온 차를 마시면서 본론을 꺼냈다.

    “은영 씨는 꿈이 뭔가요?”

    이미 알고 있지만 포석을 깔기 위해 굳이 물어보았다.

    “꿈이요? 음…… 세계 평화…… 아니, 게이머로 성공해서 불쌍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거?”

    “하하.”

    그 말에 이한호가 실소를 했다. 비웃는 게 아니라 조은영의 말이 귀엽게 느껴져서이다. 딱 외모와 어울리는 멘트였으니까.

    이한호가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했다.

    “두말할 것 없이 오더 게이머네.”

    “오더요? 뭐 더 주문하시게요?”

    조은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번엔 내가 말했다.

    “좋은 꿈입니다. 저희도 세계평화에 기여하고 싶거든요.”

    “풉! 야!”

    이한호가 차를 뿜으며 얼굴을 붉혔지만 내가 한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표현의 차이일 뿐이지.

    “아, 역시! 그럴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다른 길드에는 안 들어가도 OG에는 들어가고 싶었던 거예요. 물론 받아주실 때 얘기지만…….”

    “……오늘 은영 씨한테 만나자고 한 건 OG 영입 때문이 아닙니다.”

    “네?”

    조은영은 크게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애처로운지 괜한 죄책감이 들 정도였다.

    “그보다 더 중요한 얘길 하려고 만나자고 했어요.”

    대리인 얘길 꺼내려고 하니 한숨부터 나온다. 이한호에게 얘기할 때도 그랬고 유진이에게 말할 때도 그랬지만 어디서부터 이야기해야 할지 막막하다.

    적어도 앞선 두 사람은 기이한 일들을 직접 겪었기에 설명하기 쉬웠다.

    약 30분가량. 다채롭게 변하는 조은영의 표정을 감상하며 설명을 했다.

    “그, 그게 지, 진짜예요?”

    “네.”

    조은영은 나와 한호를 번갈아 응시하며 눈을 끔벅끔벅했다.

    “그럼 혹시 이분도…….”

    눈치가 없지는 않아서 이한호가 이 자리에 동석한 이유를 깨달은 듯했다.

    이한호는 고개를 끄덕인 뒤에 앉은 자리에서 마나를 발동시켰다.

    인간 게이머에게서 찾을 수 없는 독특한 기운이 피어오르고, 피부 곳곳에 문신이 드러났다.

    “저도 대리인입니다.”

    혼란을 넘어 카오스 상태에 진입하고 있는 조은영에게 내가 말했다.

    “대리인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더군다나 은영 씨가 대리를 맡을 군주는 이계에서도 막강한 실력을 가진 마법사입니다. 은영 씨가 아니라면 적어도 대한민국에서는 대리인을 찾지 못할 거예요.”

    “아아…… 아아…….”

    꼬마 마법사가 더 깊은 혼란에 빠졌다. 그녀가 받아들이지 못할 경우를 가정하여 최후의 수단도 준비해 두었다.

    스킬을 걸어 기억을 삭제하는 방법.

    조은영은 한참 동안 검지로 테이블에 정체불명의 그림을 그려대더니 문득 고개를 들고 말했다.

    “하겠습니다.”

    “네? 더 신중하게 생각해 봐도 되는데…….”

    “할게요! 시켜주세요!”

    단호한 표정과 말투가 대리인을 안 시켜주면 자그마한 주먹으로 한 대 칠 것 같은 기세였다.

    매지션이라도 레벨이 178이니까 맞으면 아프겠지.

    “후회 안 할 자신 있어요? 솔직히 말해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도 한번이 아니라 여러 번.”

    “목숨은 아깝지 않아요. 길드장님도 말씀하셨잖아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저는 이게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기회라고 생각해요.”

    “음…….”

    혹시 조은영이라면 쉽게 받아들이지 않을까 생각하긴 했어도 이 정도로 단호한 대답이 돌아올진 몰랐다.

    나는 시스템을 발동시키기 전에 다시 한번 확인했다.

    “한번 대리인이 되면 물릴 수 없어요.”

    “네, 괜찮아요.”

    [게이머 조은영을 69위 군주 파라얀의 대리인이 되도록 하겠습니까?]

    ‘응.’

    [……게이머 조은영이 69위 군주 파라얀의 대리인이 되었습니다.]

    “아앗!”

    조은영의 몸에서 빛이 터졌다. 이한호 때처럼 문신이 생기진 않았지만 미세하게 그녀의 용모도 바뀌었다.

    가장 먼저 느낀 감상은 약간이나마 어른스러운 분위기가 더해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속은 전혀 그렇지 않은 듯, 양팔을 파닥거리며 격하게 반응했다.

    “우와! 우와와!”

    짧지 않은 과정이 끝나고 빛이 가라앉고 나서야 조은영이 내게 물었다.

    “이제 어떻게 되는 거예요?”

    “네?”

    “대리인이 되었는데 이제 뭘 하면 되죠?”

    어찌 보면 당연한 물음이었다.

    사실 이 자리에 나오기 전까지는 이렇다 할 생각이 없었지만 이한호와 대화를 나누며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다.

    “새로 길드를 하나 만들까요?”

    내 말에 이한호가 먼저 반응했다.

    “길드?”

    “지금은 세 명이지만 앞으로 대리인의 숫자가 더 늘어날 거예요. 각기 흩어져 있는 것보다 뭉쳐서 행동하는 편이 나을 테니까요.”

    그렇게 생각한 데에는 가브리엘과의 싸움이 일조를 했다.

    아군 대리인이 있으면 적 대리인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으니까.

    이계에서 오더 군주들끼리 동맹을 맺은 것처럼, 이쪽에서도 대리인끼리 뭉치는 편이 나을 것이다.

    “OG에 들어오는 방법도 있지만 그러면 괜히 주목만 더 받을 수 있으니까요. 따로 행동하되 하나의 목표로 움직이는 것이 나을 것 같아요.”

    이한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 나한테 일을 그만두라고 한 이유가 그거구나.”

    “그냥 내 생각을 말한 거니까 꼭 그대로 할 필요는 없어. 형도 고민을 해봐야지.”

    “음…….”

    이한호는 길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 말을 듣기 전에 진급을 해서 다행이다. 퇴직금이 더 많이 나올 테니까.”

    조은영은 더 쉽게 결정했다.

    “할게요! 나도 길드에 가입할래요!”

    “그럼 대리인들끼리 뭉쳐 길드를 만드는 것으로 잠정 결론을 내리기로 하죠. 다른 한 명한테는 제가 이야기할게요.”

    헤어지기 전에 두 사람에게 지금까지 있었던 일. 즉, 주적인 피스&호프와의 대립에 대해 들려주었다.

    “피스&호프…….”

    게이머계의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이한호는 보다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피스&호프는 주요 도시에 지부를 두고 있는 명실상부 세계 3대 길드 중 하나이니까.

    지금의 성장세로 보면 개중 가장 두드러진다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카오스 게이머 닷컴을 통해 암시장을 장악하다시피 하고 있으니까.

    “당장은 걱정할 것 없어. 노아가 휴전 협정을 맺었다고 했으니까.”

    “휴전 협정?”

    내가 노아에게 문자를 받았을 때 그런 것처럼 이한호도 놀란 반응을 보였다.

    피스&호프 길드장이 그만큼 희생자를 내고도 휴전을 받아들였다는 게 이상하니까.

    “아무튼 몇 달은 괜찮은 모양이야.”

    “불행 중 다행이군.”

    두 사람과 헤어진 뒤 바로 유진이에게 연락을 했다. 사정을 밝히자 긍정적인 반응이 나왔다.

    “나보다 네가 먼저 대리인을 발견했구나.”

    “네 일은 잘돼가?”

    “괜찮은 후보를 몇 명 추렸어. 한 명이랑은 며칠 뒤에 만나기로 약속했고.”

    “음…… 게이머를 대할 땐 늘 조심해야 한다는 거 잊지 마.”

    “내가 너보다 선배잖아. 잘 알고 있어.”

    “한호 형이랑 은영 씨한테 연락해서 이왕이면 같이 만나기로 하는 게 어때?”

    “그러면 좋지.”

    “길드 창설은 대리인이 몇 명 더 모인 뒤에 구체적으로 논의하자.”

    “오케이.”

    길드 이름이나 세부 사항은 대리인 게이머들끼리 의논해서 결정하면 될 일이다.

    세력이 부족하면 OG가 서포트하면 된다.

    대리인들이라면 OG가 할 수 없는 일도 할 수 있겠지.

    지금으로서는 가닥이 잡히지 않지만 곧 그런 일이 터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9

    다음 날.

    가벼운 마음으로 던전 공략에 나섰다. 처음 공략할 땐 어려움을 겪었지만 한번 던전 마스터를 쓰러뜨리고 레벨도 여럿 오른 입장에서는 더 이상 마법사의 동굴 공략이 어렵지 않았다.

    1층 공략에 한나절이라는 시간을 소요했지만 지금은 단 두세 시간 만에 한 층을 공략했다.

    던전에서 쪽잠을 자며 이틀 내내 공략에 매달린 결과, 공략하지 못한 중간층을 모조리 해치울 수 있었다.

    [B-001 던전의 마스터가 되었습니다.]

    [영토 퀘스트 ‘B급 이상의 던전을 획득하라’를 달성했습니다.]

    [보상으로 ‘스킬 에그(A급 이상 보장)’을 얻었습니다.]

    [‘차원문의 열쇠×1’를 얻었습니다.]

    던전을 공략하는 동안 레벨도 159에 이르렀다.

    ‘군주 공략은 모레 하자.’

    이틀 동안 던전 공략에 매달려서 피로감이 극에 달했다.

    다만 아무리 피곤해도 보상을 확인할 여유는 있었다.

    ‘먼저 로또를 쓰고…….’

    파각 파각 파각-

    [축하합니다! 로또 3등에 당첨되었습니다!]

    [1분간 모든 스탯이 150퍼센트 증가합니다!]

    ‘역시…….’

    행운 스탯이 급격하게 올라 로또 당첨 확률이 올라갔을 거라는 예상이 맞았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스킬 에그를 깨뜨렸다.

    팍!

    [스킬 ‘마법사의 긍지’를 얻었습니다.]

    “와우!”

    게임 안에서도 가지고 있던 스킬이라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마법사의 긍지]

    타입 : 패시브

    등급 : S

    레벨 : 100/100(Max)

    효과 : 마나가 50퍼센트 이하로 감소했을 때 스킬당 소모 마나가 50퍼센트 감소한다. 추가 10퍼센트 감소할 때마다 50퍼센트 추가 감소 효과.

    제한 : 레벨 150 / 8클래스 이상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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