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
독식왕 : 클리어러 199화
검은 소환술은 대상의 레벨을 1.5배 상승시키는 효과가 있다.
소환수가 되기 전 가브리엘의 레벨이 174였던 점을 감안하면 지금은 200이 훌쩍 넘는 수치라는 뜻.
물론 소환술을 사용한 내 레벨이 150에 못 미친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 능력을 백 퍼센트 사용할 수 있을 거라고는 기대할 수 없다.
기본적으로 소환수는 주인보다 약해야 통제가 가능하니까.
레벨이 더 낮은 내가 가브리엘을 소환수로 만들 수 있었던 데는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한 듯했다.
단순히 레벨 차를 떠나 내가 그보다 우위에 설 수 있는 요소가 많았든지, 아니면 검은 소환술이 레벨차를 무색하게 만들 정도로 강력한 기술이라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나는 멜팅 레이저를 쏘아내는 가브리엘을 응시했다.
뼈다귀밖에 남지 않아 표정을 가늠하기 어렵다.
하지만 꽉 다물어진 이빨이나 부들부들 떨리는 주먹을 보면 오이누스를 향한 분노가 꽤 강한 것 같았다.
지이이잉-
굵은 빔이 바깥쪽에서부터 휩쓸 듯이 촉수를 향해간다.
오이누스가 촉수를 부리는 능력이 신묘하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빔이 휘젓는 각도가 워낙 좋았기에 피하기가 불가능했다.
파직-!
불쾌한 소리를 내며 보라색의 피가 튀었다. 촉수 하나가 뎅겅 잘라지자 오이누스는 급하게 나머지 촉수와 혀를 회수했다.
“크아아악!”
화살을 맞았던 때와는 비교가 안 되는 소리를 내지르며 얼굴을 찡그리고 몇 발짝 뒤로 물러났다.
“이 쓰레기가…….”
가브리엘의 입에서 갑자기 한국어가 튀어나오자 나는 깜짝 놀랐다.
소환수가 된 몬스터들이 으르렁대던 장면을 떠올려 보면 소환수가 됐다고 말 자체를 하지 못하게 되는 것은 아닌 듯하다.
그렇다고 해도 브라질어를 쓰던 가브리엘이 대뜸 한국어를 하다니.
소환수가 되면서 주인의 언어에 동화라도 됐다는 말인가?
단순히 그렇다고 납득하기에는 다른 몬스터 소환수들과 언어가 통하지 않았다는 점이 걸렸다.
추측하자면 그럴 듯한 가정을 할 수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것 중 어느 게 정답이라고 확신할 수 없다. 당장은 중요하지도 않고.
나는 그보다 처음에 품었던 생각이 틀린 게 아니었음을 확인했다.
가브리엘은 오이누스를 향해 강한 적개심을 품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그런 마음이 소환수가 되는 데 도움이 됐는지도 모르겠다.
휙.
돌연 가브리엘의 시선이 내 쪽으로 향했다.
“애송이가 감히…….”
화를 내는가 싶더니 한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고 허리를 수그렸다.
“끄으으…….”
나는 가벼운 조소를 흘렸다.
“안 되지. 소환수 주제에 주인에게 반항하면.”
그렇게 말을 하면서도 내심 불안을 느꼈다. 이제까지 내게 반항심을 드러낸 소환수는 없었기 때문에.
역시 가브리엘은 소환수가 되어서도 통제하기 어려운 존재임에 틀림없다.
그가 쓸데없는 생각을 하지 않게 만들기 위해서라도 목표를 자각시킬 필요가 있었다.
“적에게 집중해라.”
아닌 게 아니라 고통을 극복한 오이누스가 커다란 덩치를 앞세우고 돌진을 해왔다.
몬스터에게 상식의 잣대를 갖다 댈 필요는 없지만 몸집에 비해 가공할 스피드가 아닐 수 없다.
그대로 두면 가브리엘이 오이누스에게 산산조각이 날 태세였기 때문에 나는 마법을 사용했다.
‘블리자드!’
후두두둑-
강력한 냉기가 쏘아지고, 오이누스가 파랗게 얼어붙었다.
1초쯤 움직임이 멈추었을까?
우두둑 소리가 나며 얼음이 부서졌다.
오이누스는 무식하게도 재차 돌진을 감행했다.
그사이 정신을 회복한 가브리엘이 스킬을 사용했다.
파이어워크!
퍼버버벙-!
화려한 불꽃이 터지고, 오이누스가 순간적으로 시력을 상실했다.
가브리엘은 훌쩍 뛰어올라 온몸을 화염으로 불태웠다. 그 상태로 오이누스의 머리 위로 떨어져 주먹질을 했다.
퍽! 퍽! 퍽-!
물론 오이누스만큼 강하지는 않지만 가브리엘의 근력도 317에 달한다. 인간이었을 때 그 정도였고 지금은 훨씬 힘이 세졌다.
오이누스는 평소 맷집에 자신 있는 타입이었으므로 방어에는 능숙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마음껏 때려보라는 식으로 버티다가 이게 아니라고 느꼈는지 머리를 흔들어 가브리엘을 떨어뜨리려고 했다.
나는 가브리엘이 방해받지 않고 공격에 집중하도록 활을 꺼내어 오이누스에게 쏘았다.
화살들은 몸뚱이에 닿자마자 튕겨나갔지만 혼란을 주기에는 충분했다.
“캬아아악!”
다른 수가 없다고 생각했는지 오이누스가 등으로 촉수를 뽑아냈다. 그걸로 가브리엘을 휘감아 떨어뜨릴 심산일 터.
하지만 가브리엘이 먼저 뽑혀 나온 한 가닥의 촉수를 움켜쥐었다. 아귀에 마나를 집중하자 화염이 일며 촉수가 녹아버렸다.
“크아악!”
나는 솔직히 감탄을 했다.
“잘하는데?”
암젤도 동의했다.
“저렇게 잘 싸울 지는 몰랐다옹.”
만약 처음부터 이 정도 열의를 보였다면 아마 나와 암젤이 그를 상대하는 것이 훨씬 벅찼을 것이다.
상대를 깔보는 성품의 가브리엘이 이만큼 집중하고 있다는 것은 물론 오이누스를 향한 분노가 크기 때문이겠지.
문득 가브리엘의 주먹질이 멈추었다.
싸늘한 시선이 내게 향하더니 나직이 한마디를 내뱉는다.
“다음은 네 차례다.”
그가 오이누스의 머리통을 꽉 끌어안았다.
오이누스는 앞 뒤 가리지 않고 남은 촉수 세 가닥과 혓바닥을 뽑아냈다.
그것들이 몸을 휘감는 타이밍이 가브리엘이 노리는 순간이었다.
나는 다음에 펼쳐질 일이 무엇인지 즉각 깨닫고, 등을 돌려 암젤을 끌어안았다.
동시에 리플렉션을 발동시켰다.
꽈앙-!
고막을 강타하는 굉음이 지축을 흔들고 퍼져나간다.
리플렉션이 얼마간 물리적 충격을 감해주기는 했지만 나와 암젤 역시 파동에 밀려 바닥을 데굴데굴 굴러야 했다.
경황이 없는 중에도 암젤은 소환술을 사용해 호랑이를 띄웠다.
하늘에서 떨어지기 시작한 화산암을 우리 머리 위에 있는 호랑이가 대신 맞았다.
“캐애앵!”
가브리엘의 필살기 용광로.
직접 당할 때는 무시무시했지만 아군의 입장에서는 이보다 든든할 수 없었다.
간접적 충격도 이 정도일 진데 근접거리에서 당한 오이누스는 어떻게 됐을까?
나는 시선을 들어 진원지를 바라보았다.
처음엔 시야가 가려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차차 어떤 상황인지 드러났다.
뜻밖에도 오이누스의 몸뚱이는 그대로였다.
“대체 얼마나 튼튼한 거냐옹.”
암젤이 질렸다는 투로 말한 찰나 가브리엘이 상체를 들어 올렸다. 그가 끌어안고 있던 오이누스의 머리통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군주 오이누스를 쓰러뜨렸습니다.]
[레벨 153이 되었습니다.]
레벨 업도 좋지만 그보다 반가운 메시지가 떠올랐다.
[지위 퀘스트 ‘랭킹 1,000위 안에 진입하라.’를 달성했습니다.]
[보상으로 랜덤 보상 상자(세트 아이템 전용)을 얻었습니다.]
‘드디어…….’
세계에서 1,000위 안에 드는 게이머가 되었다. 물론 랭킹에는 복합적인 요소가 작용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그보다 훨씬 강할 거라고 보아야 한다.
단적인 예로 가브리엘이 125위였지 않은가? 그를 이긴 나는 랭킹이 더 높아야 자연스럽다.
또 한 번 강력한 충격을 받아서인지 공간 생성 스킬이 사라지는 속도가 빨라졌다.
주위를 덮었던 신비한 배경이 사라지며, 원래 있던 장소, 즉 주거지의 앞마당이 드러났다.
배경이 바뀌자 마치 짧은 꿈에서 깨어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귓속으로 익숙한 목소리들이 박힌다.
“주인님! 무사하셨군요!”
“오빵! 너무행! 혼자만 강한 적이랑 싸우고!”
“감동입니다요! 저희의 안위를 염려해 자신을 희생하시다니……!”
면면을 확인하니 한 명도 줄어들지 않았다.
꽤 고전한 흔적이 있기는 하지만 예상대로 가브리엘 이외의 게이머들은 이 멤버로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이다.
“주인님! 저건 뭔가요?”
아린의 다급한 목소리를 듣고 나서야 다시 가브리엘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는 활활 타오르는 몸뚱이를 활짝 편 채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다음은 나라고 했던가?’
용광로를 사용하면서 이성을 상실했기 때문인지 주인을 향해 적개심을 드러내도 심리적 영향을 받지 않는 듯하다.
이미 한 번 진 전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를 바라보는 가브리엘의 태도에는 여유가 느껴졌다.
자신을 대리인으로 속박시켜 굴욕감을 느끼게 한 오이누스보다 나를 향한 분노가 훨씬 작다.
그러한 여유에는 소환수가 되면서 자신이 한층 강해졌다는 자각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게는 모든 것을 덮을 만한 마법의 주문이 있다.
“돌아와.”
덜컥.
가브리엘이 몸이 흔들렸다.
순간적으로 흐릿해지는 듯했던 그의 몸이 곧 원래대로 돌아왔다.
‘뭐야? 왜 안 되지?’
원래대로라면 가브리엘이 마나로 치환되어 슬롯에 틀어박혀야 한다.
당황한 내 앞에 예상치 못한 메시지가 나타났다.
[가브리엘 모헤이라가 소환술의 영향력에서 벗어났습니다.]
“뭐라고?”
이런 일은 경험한 적은 물론이거니와 들은 적도 없다. 소환수가 주인의 영향력을 벗어나다니.
기껏 싸움이 끝나나 했는데 또 다시 레벨 200이 넘는 강력한 적을 상대해야 하는 상황이 되고 마는 것이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주거지가 날아가기 전에 공간 생성 스킬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이번에는 일대일의 구도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
가용한 모든 전력을 활용해도 이길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기 때문에.
“주인님!”
암젤의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바닥에 다수의 결정석이 놓여있는 것이 보였다.
가브리엘 패거리들을 죽이고 나온 결정석을 그녀가 한꺼번에 모아온 것이다.
“시간을 끌어줘!”
내 외침에 파티원들이 행동에 들어갔다.
수보타가 약 올리는 소릴 질러 가브리엘의 시선을 돌리고, 아린이 혼란의 곡을 연주한다.
나는 그사이에 빠르게 결정석을 흡수했다.
강한 게이머들이 남긴 결정석답게 스탯 상승폭이 컸다.
[가브리엘이 소환술의 영향력 안으로 돌아왔습니다.]
“응?”
내 능력이 다시 가브리엘을 감당할 만큼 강해졌다는 뜻일까?
하지만 안도감은 오래가지 못했다.
[가브리엘이 소환술의 영향력에서 벗어났습니다.]
“젠장!”
모든 스탯스톤을 흡수한 뒤에도 상황은 바뀌지 않았다.
머릿속이 아득해지려는 찰나, 허공이 이지러지더니 낯익은 인물이 튀어나왔다.
“형님! 저 왔어요!”
“마요르?”
싱글벙글 웃고 있는 그의 품에는 마리아가 안겨 있었다. 그녀는 바닥에 놓이자마자 마요르에게 소리쳤다.
“얼른 그걸 성오한테 줘!”
“알았어. 말 안 해도 드릴거야.”
“대체 뭔데?”
긴박한 상황이기 때문에 눈살이 찌푸려졌다. 하지만 마요르가 꺼낸 뜻밖의 것들을 보고, 이마가 저절로 펴질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