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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왕 클리어러-195화 (195/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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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식왕 : 클리어러 195화

    8

    나는 전망대 위에 서서 전경을 내다보았다. 주거지 자체가 언덕 위에 세워져 있기 때문에 가장 높은 건물 옥상에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다.

    이 위에 있으면 가까이에 있는 C급 던전이 통째로 내려다보이고 주거지 쪽으로 진입하는 인원이나 차량도 훤히 보였다.

    ‘오는군.’

    마리아가 말했던 대로 고급 세단 한 대와 승합차 한 대였다.

    열다섯 명의 게이머를 빽빽이 채운 두 대의 자동차가 언덕을 올라오고 있었다.

    아직 노아에게 연락이 없는 걸 보면 마리아가 후발대를 만난 일은 문제없이 진행되고 있는 모양이다.

    그녀가 걱정되기는 했지만 솔직히 A급 게이머 두 명을 추가로 상대해야 하는 부담을 없앨 수 있다면 고마운 일이기는 했다.

    나는 전망대에 따라 올라온 암젤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내려가자.”

    “야옹.”

    이번 싸움에 동원된 OG 멤버는 나, 암젤, 아린, 트레앙, 수보타, 칼리타 여섯 명이다.

    티코이는 전투형 NPC가 아니기 때문에 낄 수가 없고, 타로는 특정 조건이 충족되어야만 능력을 발휘할 수 있으므로 불러봐야 실익이 없었다.

    6 대 15의 싸움.

    숫자에서는 밀리지만 능력자끼리의 싸움은 숫자가 많다 적다로 결정되지 않는다.

    당연히 내가 가장 경계하고 있는 것은 가브리엘이었다.

    나머지 게이머들의 면면은 이미 드러나 있고 데이터와 크게 다를 것이 없다고 한다면, 가브리엘의 존재는 미지 그 자체이다.

    화염 속성을 다루는 능력자라는 것은 알지만 마리아를 정신 공격으로 제압한 걸 보면 능력의 범위가 어디까지일지 속단할 수 없었다.

    차가 가까워진 것을 확인하고 정문을 개방했다.

    자동차는 경계심을 드러내듯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와 우리가 서 있는 가까이 와서 멈춰 섰다.

    곧 그 안에서 우르르 게이머들이 내렸다.

    가장 마지막에 느긋한 태도로 내린 것은 바로 가브리엘이었다.

    기본적으로 거구의 체형이지만 그보다 인상적인 것은 산발에 가까운 머리칼과 드러난 피부 곳곳에 새겨진 흉터, 척 보기에도 맛이 가 있는 눈동자였다.

    길에서 마주친다면 위험한 놈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 법한 인상.

    그가 조소에 가까운 웃음을 띠며 한마디 했다.

    “…….”

    불행하게도 그것은 브라질어였기 때문에 자막 없는 영화를 보는 것 같은 느낌만 줄 뿐 이쪽에 전달되지 않았다.

    가브리엘의 부하들도 헤죽거리며 한마디씩 쏟아냈다. 표정과 제스처를 보자니 OG 멤버들이 미인인 것에 놀라며 희롱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한 녀석은 바짓가랑이 사이에 털이 숭숭 난 손을 얹고 흔드는 시늉도 했으니까.

    “저놈들 몽땅 거세시켜 버리겠다옹.”

    옆에서 암젤이 섬뜩한 한마디를 내뱉었다.

    나는 지그시 가브리엘을 바라보았다.

    곧 눈앞에 그의 정보창이 드러났다.

    이름 : 가브리엘 모헤이라 ★55위 군주 오이누스의 대리인

    레벨 : 174

    성향 : 오더(Order) - 카오스(Chaos) S = 카오스(Chaos)

    업적 : 스톤 이터, 살인마

    랭킹 : 125

    스탯 : 근력 317 /체력 420 /민첩 296 /행운 139

    스킬 :

    액티브 ?멜팅 레이저(S, Lv70), 파이어워크(S, Lv82), 용광로(S, Max)

    패시브 ? 공포(S, Lv65), 식인(S, Max)

    이력 : 범죄자 아버지와 마약 중독자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어려서부터 버려지다시피 한 삶을 살았다.

    사이코패스와 소시오패스 기질을 동시에 가져 주변 범죄자들 사이에서도 눈에 띄는 존재감을 드러냈지만 철저히 아웃사이더의 길만 걸었다. 때문에 지역 범죄자들의 눈 밖에 나 숱한 폭행을 당했으며 나중엔 굶주림으로 죽을 위기까지 내몰리게 된다.

    죽음 직전에 각성을 한 그는 복수를 감행했고, 그 과정에서 127명이 죽는다.

    오이누스의 눈에 띄어 대리인이 된 그는 스킬 ‘식인’을 손에 넣었으며, 스킬 스톤과 스탯 스톤에 대한 저항력이 생겼다.

    약점 : 지금은 싸움을 피하는 게 상책이다. 싸움을 피할 수 없다면 상성을 고려해 워터 계열의 마법이 효과가 있을 것.

    보상 : 스탯 스톤은 오염되어 흡수 불가. 멜팅 레이저(50-40%), 파이어워크(45-35%), 용광로(30-20%), 공포(60-50%), 식인(1% 미만)

    ‘뭐, 이런…….’

    정보창을 본 나는 깜짝 놀랐다. 군주의 대리인이라니…….

    그 존재를 적으로서 마주한 것은 처음이었다.

    상성에 맞지 않는 결정석을 흡수하고도 부작용이 일어나지 않는 근거가 55위 군주 오이누스를 만나고 얻은 ‘식인’이라는 스킬 때문이라는 사실도 알았다.

    ‘레벨 174…….’

    물론 이 자체로도 충분히 강하다고 할 수 있지만 엄청나게 높은 스탯을 감안하면 비정상적으로 낮은 레벨이었다.

    나는 그 이유가 무엇인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가브리엘은 나와 마찬가지로 게이머가 남긴 결정석을 부작용 없이 전부 흡수할 수 있다.

    레벨이 오르면서 얻는 스탯보다 훨씬 더 많은 스탯 포인트를 결정석을 통해 얻은 것이 틀림없었다.

    물론 나도 레벨에 비해 스탯이 매우 높은 편이다. 그렇다고 해도 가브리엘이 가진 것에 비하면 3분의 2 수준에 불과했다.

    ‘피하는 게 상책인 싸움이라…….’

    나 역시 이 싸움은 피하는 게 정답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게임을 하다 보면 원하는 전투만 골라서 할 수 없는 상황도 오는 것 아니겠는가?

    더구나 이놈을 쓰러뜨리지 않으면 더 이상 진행이 불가능하니까.

    “점퍼”

    의상을 바꾼 나는 패시브 스킬 점프+++를 사용해 가브리엘의 가까이로 훌쩍 뛰어 접근했다.

    놈의 몸뚱이를 꽉 끌어안은 채 다시 허공으로 도약했다.

    주변에 가브리엘의 부하들이 즐비했지만 워낙 빠르게 이루어진 일이라 누구도 반응을 하지 못했다.

    반응하지 못한 것은 OG 멤버들도 마찬가지.

    나는 또 하나의 스킬을 사용하기 전에 가브리엘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

    적에게 붙들린 상황에서도 가브리엘은 조금의 동요도 하지 않고 오히려 웃음을 지었다.

    그 웃음이 너무 소름 끼쳐서 하마터면 놈을 손안에서 놓칠 뻔했다.

    ‘공간 생성!’

    바닥에서 수 미터를 도약한 상태에서 발동시킨 스킬이므로 나와 가브리엘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스킬의 범위 안에 들어오지 않았다.

    주변의 사물이 잠식되며 새까만 배경이 그 자리를 빼앗는다.

    황갈색의 땅과 새까만 하늘만이 이분된 조용하고 신비로운 공간.

    임시적으로 다른 차원에 개입을 하게 된 것인지, 아니면 스킬 자체가 새로운 공간을 창조하는 것인지는 불명확하다.

    스킬이 제대로 발동한 것을 확인한 나는 즉시 가브리엘을 놓고 뒤로 멀어졌다.

    “소달루스”

    시동어를 말하자 몸을 감싼 의상이 바뀌었다.

    느리게 주변을 둘러보던 가브리엘이 더욱 진한 웃음을 띠었다. 비웃듯 한마디를 내뱉었지만 역시 브라질어를 모르는 내 귀에는 의미가 닿지 않았다.

    “뭐라고 지껄이는 거냐옹.”

    갑자기 들려온 소리에 깜짝 놀라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거기에는 암젤이 의기양양한 태도로 가브리엘을 노려보고 있었다.

    “너…….”

    “흥, 주인님이 갑자기 저놈한테 달려들 때부터 이렇게 할 걸 예상하고 있었다옹. 파티원 걱정도 좋지만 본인 몸도 챙기라옹.”

    내가 가브리엘과 일대일의 싸움을 유도한 것은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일단 6 대 15의 싸움을 해서 이길 수 있다는 보장이 없었다.

    가브리엘이 스킬을 사용한다면 동레벨이라고는 해도 나보다 약할 수밖에 없는 파티원들은 즉사 내지는 치명상을 입을 수가 있었다.

    가브리엘의 수하 열네 명도 결코 약하지 않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그들을 상대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겠으나 가브리엘이라는 변수가 추가되면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가 없다.

    어차피 확률이 낮은 싸움이라면 일 대 일로 싸우는 것이 피해를 줄이는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가상현실 게임이었다면 좀 더 가혹한 선택지를 택했을지도 모르지만, 이 게임은 2회 차 플레이라는 것이 없으니까, 나중의 진행을 생각하면 이렇게 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여겨졌다.

    암젤은 그런 내 생각을 꿰뚫어 보았다. 다른 종족보다 감각이 발달한 묘족인 탓도 있겠으나 나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네가 있다고 이길 수 있는 싸움이 아니야.”

    물론 어느 정도 확률은 높아지겠으나 결정적인 차이는 아니다. 그만큼 가브리엘의 수준이 높기 때문에.

    내 냉정한 말을 암젤은 코웃음으로 대응했다.

    “나는 다른 파티원들이랑은 다르다옹. 나만 믿으라옹. 주인님을 지켜주겠다옹.”

    “…….”

    고맙고 감동적인 말인 것은 분명하지만 이왕이면 실력이 받쳐 주는 상태였다면 더 설득력이 있었을 텐데.

    가브리엘은 몇 마디 말을 더 내뱉었다가 언어가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포기한 듯 양팔을 넓게 벌렸다. 두 손을 중심으로 이글거리며 독특한 마나가 피어올랐다.

    몸뚱이의 색이 주황색으로 물들었다가 곧 붉은빛을 띠기 시작했다. 어느 시점이 되자 화륵 소리를 내며 입고 있던 옷이 불에 타 사라졌다.

    “남근도 조그만 녀석이 어디서 옷을 벗고 난리냐옹!”

    “저게 조그만 거면 내 건 없는 거나 마찬가진데?”

    “주인님은 주인님이니까 상관없다옹.”

    가브리엘의 두 눈이 시뻘겋게 물들었다.

    나는 그것이 스킬 ‘멜팅 레이저’를 쏘려는 것임을 눈치챘다.

    조용히 스킬을 읊조렸다.

    “로또.”

    파각, 파각, 파각-

    공중에 떠오른 일곱 개의 공이 개방되고 당첨 메시지가 나타났다.

    [축하합니다! 로또 4등에 당첨되었습니다!]

    [일 분간 모든 스탯이 40퍼센트 상승합니다!]

    이제까지는 로또를 좋은 아이템을 얻기 위해 확률을 높이는 용도로만 활용했다.

    하지만 ‘로또’는 행운 스탯만 올려주는 것이 아니다. 지속 시간이 단 일 분밖에 안 되기 때문에 던전 공략이나 레벨이 낮은 다수의 적을 상대할 때는 큰 효과가 없지만, 지금처럼 일 대 일의 상황이라면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낮은 배속으로 재생시킨 화면처럼 느리게 뻗어오던 두 줄기 레이저가 스킬의 효과가 끝나자마자 벼락같은 속도로 나를 향해 날아들었다.

    허공에 훌쩍 뛰어 피한 뒤 무기를 꺼냈다.

    바키움.

    비록 최근에는 숙련도를 높이려는 목적으로 마법만 사용했지만 나는 기본적으로 일곱 개의 클래스를 가진 능력자이다.

    ‘연사!’

    묵직하게 당겨진 활시위가 세 대의 화살을 날려 보냈다.

    화살은 멜팅 레이저에 지지 않는 속도로 가브리엘을 향해 날아갔다.

    가브리엘은 몸을 돌려 피하려 했으나 두 대의 화살만을 흘려보냈을 뿐, 마지막 한 대의 화살은 오른팔에 맞고 말았다.

    그는 즉시 화살을 뽑아내어 왼손에 움켜쥐었다. 단단했던 화살은 화염에 휩싸여 쉽게 녹아버렸다.

    그 순간, 턱밑까지 접근했던 내가 또 다른 스킬을 사용했다.

    ‘섀도 커터!’

    히루도의 창을 변형시킨 쌍검이 가브리엘의 가슴팍에 두 줄기 긴 상흔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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