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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왕 클리어러-191화 (19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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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식왕 : 클리어러 191화

    게네아는 단순히 스티코이의 진화형, 혹은 대장격의 몬스터가 아니다. 생김새부터가 달라 엄밀히 말해 전혀 다른 종의 몬스터라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어떻게 게네아가 스티코이 무리의 리더가 되었느냐 하면-개인적인 추측이기는 하지만? 강력한 마법을 구사할 수 있는 대신 개체가 적은 게네아와, 구사하는 마법의 질은 떨어지지만 개체가 많고 동시에 겁도 많은 스티코이들 간에 모종의 협력 관계가 이루어진 게 아닐까 싶다.

    처음에는 협력 관계였지만 나중에는 상하관계로 바뀌게 되면서 함께 부락을 이루고 자연스럽게 아종으로 엮이게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아무튼 그게 중요한 건 아니고, 지금 우리 앞에 모습을 보인 게네아는 상당한 포스를 자아내고 있었다.

    동시에 넓은 범위를 에워싸 우리 뒤를 완벽히 차단한 짙은 안개는 숨을 턱 하고 막히게 했다.

    “꼬랑내가 난다옹.”

    암젤이 코를 움켜쥐고 불평했다.

    그도 그럴 수밖에, 게네아의 특징이라면 몸 전체에서 꼬릿꼬릿한 냄새를 풍긴다는 점이다. 후드 모양으로 생긴 누더기를 걸치고 한 손에는 썩은 나무 지팡이를 들고 있다.

    지팡이라고 표현하긴 했지만 그 기다란 나뭇가지에는 마법을 증폭시키는 힘이 담겨 있어 이를테면 스태프와 같은 역할을 한다.

    도구를 사용할 줄 아는 지적 몬스터.

    스티코이보다 수준이 높은 개체임은 분명했다.

    “크아악, 크왁크왁, 쿠루루……. 꽉꽉.”

    게네아는 자기만의 언어를 사용한다. 굳이 알 필요는 없지만 표정을 찌푸리고 진지하고 뱉어내는 꼴을 보니 조금 호기심이 생겨 수보타를 돌아보았다.

    수보타는 어깨를 으쓱했다.

    “죄송하지만 저도 뭐라고 하는지 모르겠습니다요.”

    “아, 그래.”

    나는 시험 삼아 마인드 리더를 사용해 보았다.

    그랬더니 뜻밖에도 몬스터의 생각이 번역이 되어 나타났다. 전에 토누크와의 대화가 통역을 통해야만 가능했던 것을 떠올리면 신기한 일이었다.

    원인은 역시 마인드 리더의 등급을 A까지 올린 덕분일 것이다.

    조은영 일행을 만나기 전에, 그리고 게네아와 싸움을 앞둔 시점에 문득 그러는 게 낫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어 강화석을 사용했다.

    앞으로 인간 게이머뿐 아니라 이계인과의 교류도 많아질 거니까.

    거기다 혹시 자기 언어를 구사하는 몬스터의 생각까지 읽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조금은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빙고!

    [네놈들은 내 노예를 수십이나 죽였다…….]

    [나님이 천벌을 내리겠다…….]

    헉. 공생관계인 줄 알았던 스티코이들을 노예로 취급하고 있었다니.

    거기다 스스로를 지칭하며 굳이 높임을 나타내는 접미사 ‘님’ 자를 붙이다니.

    생김새와 어울리지 않게 무지하게 자뻑이 심한 놈이었구나.

    신장 2미터에 2, 3백 킬로그램은 너끈히 나가 보이는 비대한 몸을 뒤뚱거리며 게네아가 몇 발짝 앞으로 나왔다.

    히죽 웃으며 썩은 이빨을 드러내자 꼬릿꼬릿한 냄새가 한층 심해졌다.

    ‘몬스터계의 파오후 같으니.’

    [네놈들도 내 노예로 만들어주마…….]

    게네아가 지팡이를 치켜들었다.

    [팟실리구노…….]

    이상한 말을 지껄이는 것을 보고 순간적으로 이게 마법을 사용하려는 영창임을 깨달았다. 몰랐는데 몬스터들도 영창을 통해 마법을 발현하는 것이다.

    다만 입으로 뱉어내지 않고 속으로 우물거리기 때문에 지금까지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이것 참. 집에 가면 게네아 위키피디아라도 작성해야겠네.’

    영창이 끝나기 전에 내가 먼저 마법을 사용했다.

    ‘대폭발!’

    꽈앙-!

    굉음을 울리며 시뻘건 불길이 확 하고 치솟았다. 가지고는 있었지만 7서클이 되면서 사용할 수 있게 된 마법.

    그냥 ‘불’ 속성이 아니라 ‘지옥불’이 기본 속성인 마법답게 치솟는 불길이 어마어마했다.

    나는 안 되겠다 싶어 곧바로 방어용 마법을 사용했다.

    ‘리플렉션!’

    캉! 캉! 캉! 캉-!

    내 마법의 영향력을 내 마법으로 튕겨 내다니. 솔직히 ‘대폭발’의 위력이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가상현실 게임에서 ‘불’ 속성은 가져봤지만 ‘지옥불’ 속성은 가져보지 못했으니까.

    화르르륵-

    꽤 긴 시간 타오르는 불길을 바라보며 마나 포션을 꺼내어 쭉 들이켰다.

    ‘이거 생각보다 쉽게 끝나겠는데?’

    침대에 누워 시뮬레이션했던 것보다 더 빠르고 일방적인 양상으로 싸움이 흘러갔다.

    하지만.

    내 기대를 불식시키기라도 하듯 불길이 거두어진 다음에 드러난 게네아의 모습은 멀쩡했다.

    뒤집어쓴 후드가 처음보다 더한 넝마가 되긴 했지만 대미지를 크게 입은 모습이 아니었다.

    “후욱- 후욱- 파오후욱-”

    게네아의 몸 위로 은빛 방어막이 튀어 오른 것이 보였다.

    ‘귀찮게 하네…….’

    [나님을 화나게 하다니…….]

    [흔적도 없이 찌그러뜨려 주마…….]

    [푸리니무니케…….]

    ‘영창이 바뀐 걸 보니 다른 마법이군.’

    방어막이 두꺼운 걸 감안하면 공격마법은 크게 유용하지 못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어떤 게 튀어나올지 모르니까 일단 리플렉션을 걸어 대비했다.

    쿠르르릉!

    공간이 뒤흔들리며 머리 위에서 커다란 바윗덩어리들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쾅! 쾅! 쾅-!

    몸놀림이 잽싼 파티원들은 알아서 피하긴 했지만 비좁은 공간에 무턱대고 떨어지는 바위들을 완전히 피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렇더라도 한발 앞서 걸어둔 리플렉션 때문에 마법으로 만들어진 바윗덩어리들은 모조리 튕겨 나갔다.

    나는 대충 상황을 정리했다.

    팟실리구노……로 시작하는 마법이 바로 정신을 조작하는 마법일 것이다. 주문을 외기 전에 게네아가 ‘노예로 만들어주마’라고 생각했으니까.

    반면 푸리니무니케……로 시작하는 바윗덩어리를 떨어뜨리는 마법을 사용하기 전에는 ‘흔적도 없이 찌그러뜨려 주마’라고 생각했다.

    ‘마인드 리더를 업그레이드하길 정말 잘했네.’

    나는 수보타에게 지시했다.

    “수보타! 출격!”

    “네?!”

    내 말을 들은 수보타의 표정이 충격과 공포로 물들었다.

    “제가 뭘 어떻게 하라는 말씀이신지…….”

    “저놈은 자기애가 몹시 강한 놈이야. 네 도발에 쉽게 걸려들 가능성이 커.”

    “네에~?!”

    수보타는 명령을 철회해 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고 나를 바라보았다. 그 표정에는 ‘설마, 농담이겠지’ 하는 마음도 묻어났다.

    “현실 도피 하지 말고 얼른 출격해.”

    “후우…….”

    떨리는 한숨을 뽑아낸 수보타가 용기의 물약 하나를 꺼내어 쭉 들이켰다. 게네아 쪽으로 달려가며 도발성 멘트를 내뱉었다.

    “야! 뚱땡아! 너 때문에 코가 썩겠다! 처먹기만 하지 말고 목욕 좀 해라!”

    물론 그 멘트를 게네아가 알아들었을 리는 없다. 하지만 던전 안의 몬스터들은 기본적으로 게이머들에게 적대감을 품고 있고, 지적 능력이 떨어지는 대신 동물적인 감각은 더 발달한 편이었다.

    게네아는 쥐를 닮은 놈 하나가 자기를 능멸하고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아챘다.

    “꾸라락! 쿠락쿠락!”

    파티 전체를 향하고 있던 지팡이 끝이 수보타에게 향했다.

    “히익!”

    수보타는 겁이 나서 달음질을 치면서도 끝까지 제 역할을 포기하지 않았다.

    “에베베베~ 네까짓 게 화내면 어쩔 건데?”

    갈수록 도발 능력이 상승하는 걸 보면 녀석의 마음 깊은 곳에는 수천 년 넘게 쌓인 마음의 앙금 같은 게 있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구박과 구타만 당해온 설움의 나날들.

    그 기억이 지금에 와 스페셜리스트급의 도발 능력으로 발현된 것이다.

    쿠앙!

    쾅!

    게네아의 시선이 수보타에게 집중되면서 마법 또한 한쪽으로 집중되었다.

    나는 수보타에게 리플렉션을 걸어주었다.

    마법이 튕겨 나갈 때마다 수보타는 점점 더 대담해지고, 게네아의 분노는 더욱 크게 치솟았다.

    게네아의 분노가 극에 달한 시점에 맞추어 7클래스 마법을 작렬시켰다.

    ‘블리자드!’

    우두두둑-

    공간의 한쪽 면이 완전히 얼어붙었다.

    신경이 수보타에게만 쏠려 있던 탓인지 게네아의 방어막도 약해져 있었다.

    던전 마스터의 몸뚱이가 파랗게 얼어붙었다.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집중 공격이 시작되었다.

    트레앙과 칼리타는 변신한 상태로 근접공격을 퍼부었고, 암젤은 소환수를 불러냈으며 아린은 하프를 연주했다.

    9

    공략법은 크게 두 가지였다. 수보타를 이용해 도발 후 드러난 빈틈을 집중적으로 노리는 것과 마인드 리더로 생각을 읽어낸 뒤 게네아의 마법을 사전 봉쇄하는 것.

    단순하지만 효과적인 패턴을 반복 사용하여 대미지다운 대미지를 입지 않고 B급 던전의 마스터를 쓰러뜨리는 데 성공했다.

    “쿠롸라라라~~~~”

    [나님 죽는다~~~~]

    쿵-

    [퀘스트 ‘게네아 물리치기’를 달성했습니다.]

    [레벨 148이 되었습니다.]

    [히든 퀘스트 ‘B급 던전 마스터 다섯 시간 안에 쓰러뜨리기’를 달성했습니다.]

    히든 퀘스트의 보상은 최고급 스킬 강화석이었다. 이전에도 히든 퀘스트가 종종 나왔지만 던전에서 달성한 히든 퀘스트의 보상은 대개가 최고급 강화석이 나오는 것으로 그쳤다.

    본격적인 퀘스트가 진행되면서 던전 퀘스트의 보상은 적정한 수준으로 조정된 듯했다.

    “후우…….”

    마나 포션을 많이 사용하긴 했지만 이 정도면 깔끔한 승리다. 역시 최초 공략할 B급 던전으로 마법사들의 동굴을 택한 것은 잘한 일이라고 생각됐다.

    비록 던전 마스터를 쓰러뜨렸지만 [영토] 퀘스트는 달성하지 못했다. 퀘스트 달성 요건이 해당 던전의 모든 퀘스트를 달성하는 것이기 때문.

    중간층을 훌쩍 뛰어넘어 던전 마스터와 싸운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퀘스트 기준이 충족되지 않았다.

    굳이 중간 단계를 뛰어넘어 최상층으로 온 것은 다른 퀘스트를 달성하기 위함이었다.

    나는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를 보고 미소를 지었다.

    [마요르에게 걸린 마법이 풀렸습니다. NPC를 파티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습니다.]

    10

    마요르가 감금되어 있는 곳은 주거시설 한쪽에 마련되어 있는 넓은 방이었다.

    잠금장치를 해제하고 안으로 들어가자 그는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는 미소를 지은 채 천천히 방 안으로 들어갔다.

    꿈에서 막 깬 사람처럼 마요르의 눈동자가 느리게 나를 쫓았다.

    “혀…… 형님?”

    “응, 나야. 마요르.”

    마요르의 눈 안 가득 물기가 차올랐다. 오랫동안 떨어졌던 부모를 만난 아이처럼 벌떡 일어나 나를 껴안았다.

    “그동안 어디 계셨습니까? 제가 얼마나 찾았는데요!”

    마요르가 나를 부르는 호칭은 형님이었다.

    나는 그의 등을 몇 차례 두드린 다음 물어보았다.

    “너 던전에서 있었던 일은 기억나?”

    “핫!”

    마요르의 얼굴이 부끄러움으로 물들었다.

    “죄송합니다. 그땐 제가 정신이 오락가락해서…….”

    “괜찮아. 이제 그럴 일은 없을 거야.”

    “형님!”

    [마요르가 파티에 합류했습니다.]

    [[동료] 퀘스트 ‘NPC 1인 이상 영입하기’를 달성했습니다.]

    [보상으로…….]

    다음에 얻게 될 히든 클래스는 뭘까?

    나는 허공을 응시하며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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