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9
독식왕 : 클리어러 189화
“일행분들은 어디 계시죠?”
“안쪽 테이블에 있어요. 길드장님도 마실 것 드셔야죠? 주문 안 하셨으면 제가 대신하고 올게요. 참고로 여기는 망고 에이드가 맛있어요.”
내가 도움을 청한 입장인데 조은영은 마치 면접을 보는 신입사원 같은 태도를 보였다.
“저는 괜찮…….”
다고 말하려는데 무언가가 다리를 꾹꾹 눌렀다. 내려다보니 암젤이 ‘나는 망고에이드를 마셔야겠다옹’ 하는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망고 에이드라고요……. 제가 일행분들 것까지 주문하고 올게요.”
“아닙니다. 먼저 가서 제 친구들하고 인사하고 계세요.”
내가 뭐라고 더 말하기도 전에 조은영은 후다닥 계단을 내려가 버렸다.
암젤이 흥 코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제법 눈치는 있는 여자 같다옹. 그래도 주인님을 좋아하는 것 같으니까 조심하라옹.”
“내가 조심해야 할 게 뭐 있어. 좋아해주면 고마운 거지.”
“어휴. 이래서 옛말에 남자는 다 늑대라고 하는 거다옹.”
나는 대꾸하지 않고 조은영이 가리켰던 테이블을 향해 걸어갔다.
창가 테이블 쪽에 두 명의 여자가 앉아 있었다. 지나치게 동안인 조은영과는 달리 그녀의 친구들은 모두 자기 나이 또래로 보였다.
내가 다가가는 것을 보고 둘이서 약간 당황하는 투로 쑥덕거리더니 몸을 벌떡 일으켰다.
“안녕하세요.”
내가 먼저 인사하자 길을 걷다가 우연히 직장 상사를 마주친 사람들처럼 정색을 하고 몸을 한껏 구부렸다.
“안녕하십니까.”
“처음 뵙겠습니다.”
어딜 가면 꿀리지 않을 수준급의 게이머들이 이런 경직된 태도를 보인다는 것이 이상하게 여겨졌다.
게다가 나보다 나이도 많은데.
혹시나 해서 두 명의 생각을 ‘마인드 리더’로 읽어 보았다.
[실물이 훨씬 잘생겼네.]
[조성오를 만날 줄 알았으면 진즉에 남자 친구랑 헤어질걸.]
‘뭐야, 이건.’
물론 내가 나름 훤칠한 스타일(?)이기는 해도 여자들로부터 이런 격한 반응을 이끌어낼 정도는 아니다.
이상하다고 여기면서 계속 생각을 읽어보니 그녀들이 보인 반응이 비단 내 외모만 가지고 판단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나중에 OG 공채에 합격하려면 오늘 무조건 잘 보여야 돼.]
[아자아자! 이지영. 오늘이 기회다! 무조건 점수를 따자!]
‘거참.’
던전과 결투의 탑만 오가다 보니 내 현실에서의 위상을 정확하게 인지할 기회가 별로 없었다.
한국 게이머계에서 적어도 상위 5퍼센트 이내에 들 정도의 게이머들이 내게 잘 보이려고 애쓰는 걸 보니, 나와 OG의 위상이 그 정도로 커졌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불쾌한 느낌을 받았는지 바닥에 있던 암젤이 두 번의 점프로 훌쩍 테이블 위에 올라왔다.
날카로운 눈빛으로 여자 게이머들을 노려보았다.
“어머나, 예쁜 고양이네?”
“털 고운 것 좀 봐! 길드장님이 키우는 고양이에요?”
조은영의 친구들은 암젤을 보고 환한 표정을 지었다가 곧 몸을 움찔 떨었다.
그녀들의 동공이 격하게 흔들리는 것을 보고, 급히 암젤을 내 쪽으로 돌려놓았다. 한쪽 눈이 불그스름하게 물들어 있는 것을 확인한 뒤 그녀의 허리를 찰싹 때렸다.
“이 녀석!”
“야~ 옹.”
암젤이 원망스러운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내가 눈빛으로 말했다.
‘누가 홍안을 함부로 쓰래?’
필레소의 홍안.
지난번 퀘스트 보상으로 나왔던 아이템으로 상대를 공포에 빠뜨리고 심지어 석화까지 시킨다.
물론 능력을 완벽하게 발현한 것은 아니겠지만 슬쩍 내보이는 것만으로 상대를 불안하게 만들 수 있었다.
경직이 풀리고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는 두 여자에게 내가 설명했다.
“미안합니다. 이 녀석 보통 고양이가 아니거든요.”
“보통 고양이가 아니라면 혹시…….”
둘은 서로 얼굴을 마주 보더니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각성수?”
“네.”
“와! 각성수를 직접 보는 건 처음이에요!”
“개체수가 엄청 적다던데.”
[돈 많다고 가질 수 있는 펫이 아닌데.]
[어쩜! 멋있어!]
콩깍지가 쓰인 여자들에게는 각성수를 데리고 있다는 자체도 멋있게 보이는 모양이었다.
얼굴에는 호기심이 가득하지만 이미 한 번 매운맛을 본 터라 함부로 암젤에게 손을 뻗지는 못했다.
그때 조은영이 쟁반을 들고 나타났다.
체구가 작은 터라 컵 네 개가 담긴 쟁반이 그녀에게는 무척 커 보였다. 나는 얼른 그것을 받아 들고 대신 테이블에 놓았다.
조은영이 배시시 웃으며 얼굴을 붉혔다.
“안 그러셔도 돼요. 저도 게이머라 힘센데…….”
아닌 게 아니라 아무리 매지션 능력자라도 일반인보다는 근력이 훨씬 세다.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방금 행동은 조건반사처럼 튀어나온 것이다.
뭐랄까, 초등학생에게 버거운 심부름을 시키고 죄책감을 느끼는 삼촌의 마음이라고나 할까?
“매너 좋으시다…….”
“얼굴도 잘생기고 능력도 좋으시고, 대체 부족한 게 무엇인가요?”
라이벌이 하나 늘었기 때문인지 내내 생각으로만 품고 있던 호감을 직접 내뱉는 조은영의 친구들.
암젤의 눈이 다시 붉게 변하려고 했기에 얼른 그녀를 안아 바닥에 내려놓았다.
아예 딴생각을 하지 못하게 망고에이드를 들이밀었다.
할짝할짝.
반사적으로 음료수를 마시는 암젤의 눈에서 붉은 기운이 빠르게 사라졌다.
컵에서 얼굴을 떼고 ‘쏘쏘’ 하는 표정을 짓더니 계속해서 할짝거린다.
그동안 고급 디저트에 길들여진 탓에 카페에서 마시는 에이드 정도는 성에 안 차는 모양이었다.
“어머. 예쁜 고양이네요. 그런데 고양이한테 에이드를 줘도 되나요?”
조은영의 말에 그녀의 친구들이 대신 말했다.
“일반 고양이가 아니래.”
“각성수야. 놀랐지?”
“뭐?”
조은영이 땡그란 눈을 번쩍 떴다.
“우와! 각성수!”
마치 애완동물 가게 앞에서 혼이 빠진 어린아이와 같은 표정으로 암젤을 내려다보았다.
그 모습이 귀여워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가 문득 생각나는 것이 있어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펜던트를 꺼내어 조은영에게 건넸다.
조은영의 얼굴에 활짝 웃음이 퍼졌다.
“감사합니다. 잃어버리고 엄청 속상했는데……. 근데 이거 어떻게 찾으셨어요?”
“몬스터 중에 스틸 마법을 사용하는 종이 있어요. 저도 자세히는 모르지만 아주 낮은 확률로 마법사의 동굴에 출현한다고 하더군요. 물건을 훔치고 바로 숨어버리기 때문에 잡기가 엄청 어려운데, 운 좋게 제 앞에 나타났던 거죠.”
나는 미리 생각해 뒀던 대로 이야기를 했다.
“그 몬스터를 죽이니까 펜던트가 나왔다고요?”
“네, 흔한 물건이 아니라서 구매자를 조사해 봤더니 은영 씨더라고요.”
“와……. 정말 착하세요. 다른 사람 같으면 자기가 갖거나 팔아버렸을 텐데.”
“당연한 일을 한 건데요. 게다가 덕분에 부탁도 드릴 수 있게 됐고요.”
내가 사람 좋은 미소를 짓자 조은영이 우물쭈물하는 태도로 말했다.
“정말 최상층까지 안내만 해드리면 되나요? 같이 싸워드릴 수도 있는데……. 저희는 던전 마스터랑 여러 번 맞붙어봐서 공략법을 잘 알거든요.”
“맞아요. 정산금은 따로 분배 안 해주셔도 되요.”
“OG 길드장님과 함께 사냥할 기회가 어디 흔한가요?”
은영의 친구들이 기회는 이때다 싶었는지 얼른 말을 덧붙였다.
그녀들의 목적은 물론 내게 잘 보여 점수를 따려는 것일 터.
나는 문득 호기심이 생겨 세 사람의 정보창을 차례로 들여다보았다.
‘역시…….’
B급 던전에 들어갈 정도로 뛰어난 게이머들이기에 흔히 볼 수 없는 스펙을 지니고 있었다. 조은영의 친구 두 명은 각기 웨펀형과 고스트형이었는데 레벨이 130대에 이르렀다.
가장 놀란 것은 조은영의 정보창를 보고 나서였다.
이름 : 조은영
레벨 : 178
성향 : 오더(Order) B / 카오스(Chaos) - = 오더(Order)
업적 : -
랭킹 : 729위
스탯 : 근력 70/ 체력 92/ 민첩 188/ 행운 166
스킬 : 침묵(S, Lv100), 어스퀘이크(S, Lv72), 더스트 월(A, Lv50), 매직스톤(A, Lv50)
이력 : 3년 전 교사가 되려고 준비하던 중에 각성을 하게 되었다. 자신의 능력을 신이 준 선물이라고 생각하기에 게이머로서의 명예나 지위를 누리기보다 인류의 행복에 기여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다.
약점 : 뛰어난 매지션이지만 모질지 못한 성격 탓에 자기 능력을 백 퍼센트 발휘하는 일이 드물다. 상대적으로 약한 멘탈을 공략하면 의외로 쉽게 승리할 수 있을 것.
보상 : 민첩23(30~50%), 행운20(40~60%), 침묵(20~35%), 어스퀘이크(35~55%), 더스트 월(50~70%), 매직 스톤(40~60%)
‘178이라고……?’
순진한 표정을 짓고 있는 꼬마 마법사가 나보다 레벨이 30 이상 높다고 생각하니 순간적으로 정신이 멍해졌다.
“응? 왜 그러세요? 길드장님?”
방긋방긋 웃으며 마주 보는 얼굴에 이제까지와는 다른 아우라가 느껴졌다.
‘역시 세상은 넓구나…….’
분위기로 보아 눈앞에 있는 세 명이 파티를 맺고 던전 공략을 하는 모양이었다.
남들보다 훨씬 적은 수로 수준 높은 던전을 공략할 수 있는 것은 역시 조은영 덕분일 것이다.
‘친구들은 조은영의 가치를 잘 알고 있을까?’
돈에는 관심이 없는 성격이라니 아마도 던전 공략 뒤에 분배도 똑같이 하지 않을까 싶었다.
원래대로라면 조은영이 절반 이상 정산금을 가져가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인데.
‘뭐 거기까지는 내가 참견할 바가 아니지.’
그나저나 인류의 행복에 기여하고 싶어 한다니…….
마치 동화 속의 주인공처럼 해맑은 발상이다.
“저, 길드장님. 혹시 OG 공채는 언제쯤 하실 생각인가요? 괜찮으면 미리 이력서를 드려도 될까요?”
“아! 제 것도 드릴게요!”
조은영의 친구들이 앞다투어 내게 USB를 내밀었다.
‘이력서를 USB로 제출하나 보네.’
하기야 종이로 된 이력서를 가지고 다닌다는 것은 번거로운 일이다. 대충 알고 있기로 길드원을 뽑는 심사는 제법 까다로워서 등급은 물론이고 각성 시기, 성장 속도, 사냥 경험들이 중요하게 작용한다고 한다.
그런 정보와 아울러 증빙 자료까지 첨부하려면 데이터로 정리해 USB로 제출하는 것이 편할 것이다.
기대하는 표정들을 보자니 그냥 내치기가 뭐해 일단 받아서 주머니에 넣었다.
“너무 기대는 하지 마세요. 당분간은 길드원을 충원할 계획이 없으니까요.”
“저, 제 것도…….”
허둥대며 추가로 이력서를 내미는 조은영.
나는 그것을 받아 들다가 문득 찌릿 하고 전율을 느꼈다.
멍한 눈길로 조은영, 아니, 그녀의 머리 위에 떠오른 메시지를 바라보았다.
[성향…… Ok, 타입…… Ok…….]
[……마나 호응도…… 83%…… Ok.]
‘뭐야. 설마…….’
[동맹자 파라얀의 대리인이 될 수 있는 적합자입니다.]
“헉.”
“왜 그러세요? 길드장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