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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왕 클리어러-185화 (185/245)

# 185

독식왕 : 클리어러 185화

브레인형 게이머들이 제작한 장비에는 큰 관심이 없지만 어느 정도 지식은 있었다. 마요르가 꺼내놓은 장비들은 척 봐도 대단히 비싼 물건들.

당연히 이런 걸 들고 다닐 정도라면 상당한 재력이 있어야한다는 뜻이 된다.

더불어 게이머로서 실력이 떨어진다면 사용 자체를 할 수 없는 물건들이다.

무기나 방어구는 기본적으로 사용자의 마나와 공명을 하여 작용하므로 사용자의 마나양이 부족하거나 질이 떨어진다면 장비의 한계를 맥시멈까지 끌어낼 수가 없다.

그렇기에 굳이 고가의 장비를 사용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어차피 게이머의 레벨이라는 게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장비만 봐도 실력을 가늠할 수 있다는 말이 그래서 생기게 되었다.

‘음…….’

나는 개중에 가장 값나가 보이는 장비를 몇 개 챙겼다. 그것을 보는 마요르의 동공에 지진이 일어났다.

“……다시 갖고 싶지?”

“응?”

마요르는 마치 구세주를 보는 얼굴로 날 올려다보았다.

“나는 네가 훔친 물건들에 관심이 없어. 순순히 내 말을 듣는다면 나머지는 돌려주마.”

마요르는 눈알을 굴리며 내 저의를 파악하려고 애쓰는 눈치였지만 어차피 자신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을 깨달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 무르기 없기야. 이제 인벤토리에 집어넣으면 죽어도 꺼내지 않겠다.”

나는 자연스럽게 마요르를 처음 만났던 때가 생각나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걱정 마. 일단 우리집으로 가자.”

7

“주인님 오셨습니까!”

티코이는 내가 돌아오자마자 반갑게 뛰어나와서 인사했다. 복잡한 보안설비를 관리하는 것도 그의 몫인지라 정문을 통과하는 즉시 우리가 던전에서 돌아왔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는 포박당한 채로 뒤따라오는 마요르를 보고 물었다.

“이자는 누구입니까?”

“아…… 너는 모르겠구나.”

가상현실 게임에서 마요르가 파티에 합류한 것은 티코이가 빠지고 난 다음이다.

나는 간단하게 오늘 던전에서 있었던 일을 말해주었다.

“그렇군요……. 새로운 동료를 만날 때마다 항상 우여곡절이 있는 것 같습니다. 더 쉽게 합류한다면 편할 텐데요.”

“그래, 너도 거미를 개조해서 나랑 싸웠었지.”

“앗!”

티코이는 자기가 쓸데없는 말을 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머리를 푹 숙였다.

“죄송합니다! 주인님! 그때는 제가 주인님에 대해 크게 오해를 하고 있었습니다!”

당황한 나머지 머리 위로 여우 귀가 쫑긋 솟아나왔다.

나는 격렬하게 움직이는 한 쌍의 귀를 내려다보며 웃었다.

“괜찮아. 이제까지 네가 내게 준 도움은 그 일을 백번 만회하고도 남는다.”

“아…….”

티코이가 고개를 들어 반짝거리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자기 잘못을 과도하게 뉘우치는 것도 곤란하지만, 이런 눈빛으로 바라보는 것도 적잖이 거북했다.

어쨌거나 티코이는 남성형 NPC 아니었던가.

지친 표정으로 바닥에 쪼그리고 있던 암젤이 경계심을 드러냈다.

“아린이랑 유진인지 뭔지 하는 여자도 골치 아픈데 이젠 내가 너까지 신경 써야겠냐옹?”

8

마요르를 던전에서 데리고 나올 때는 그에게 은신 망토를 뒤집어씌웠다. 기본적으로 그는 언제나 자신이 도둑질할 상황을 염두에 두고 있으므로 남의 눈에 띄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얌전히 뒤따라오는 동안에도 감탄사를 여러 번 내뱉었다.

중세 판타지 세계나 다름없는 가상현실게임의 무대와 이곳 세상은 그야말로 천양지차.

던전에서는 몰랐겠지만 자신이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 오게 됐다는 것을 깨달은 그였다.

자동차에 태워서 이동할 때는 눈이 땡그래져서 동요를 숨기지 못했다.

“이런 마장기까지 운용하다니! 넌 정말 대단한 마법사구나!”

“그래. 그러니까 까불지 마라.”

집에 도착한 이후에도 주위를 두리번대며 연신 기가 막히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그가 도둑질할 목록을 머릿속에서 계속 업데이트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았으므로 수보타에게 지시했다.

“녀석을 감옥에 가둬.”

“감옥이요? 아! 알겠습니다.”

말이 감옥이지 일반인의 집에 그런 게 있을 리가 없다. 그저 게이머가 마나를 발현하지 못하도록 특수 설비가 갖추어진 감금시설을 말하는 것이었다.

공사 때는 훈련시설 명목으로 만든 곳이지만 나중에는 감금시설로 개조를 했다.

내가 하는 싸움은 밖으로 드러나서는 안 되니까, 필요한 경우 카오스게이머를 심문하기 위해 만든 공간이었다.

이곳에 감금될 인물 1호가 동료가 될 NPC일 줄은 미처 몰랐지만.

감옥에 가둔다는 말에 마요르의 어깨가 축 늘어졌다.

“너무 걱정하지 마. 계획대로 잘 진행된다면 금방 나올 수 있을 테니까. 크게 불편하지도 않을 거야.”

“……내 도둑 인생에 이런 수모는 처음이다.”

“뻥치지 말고.”

마요르를 가둔 뒤에 나는 티코이를 불러 계획했던 일을 지시했다.

“이 물건들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아봐 줘.”

내가 인벤토리에서 꺼낸 것은 마요르가 훔쳤던 게이머 장비였다. 일부 고가의 장비에는 시리얼 넘버가 찍혀 있다. 꼭 그게 아니더라도 특정 브랜드의 특정 상품을 구입한 게이머를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싸구려 저급 장비면 사간 사람이 많을 테니 추적이 쉽지 않겠지만 국내에서 몇 개 팔리지 않은 초고가 장비라면 쉽게 주인을 판별하는 것이 가능했다.

티코이는 앉은 자리에서 키보드를 몇 번 두드리더니 내게 말했다.

“이 단도는 이민형이라는 게이머의 것이네요. 웨펀형 게이머로 현재 태양길드 소속입니다.”

태양길드라면 길드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이름은 알 법한 곳이다.

전형적인 기업형 길드로 국내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고 했었나?

티코이가 다시 키보드를 두드렸다.

“음……. 이 펜던트는 조은영이라는 게이머가 소유했던 것이군요. 매지션형 게이머로 특정 길드에 소속되어 있지 않습니다. 주로 지인들끼리 파티를 만들어서 사냥을 한다는군요.”

“그래?”

B급 던전에 들어갈 만큼의 실력자가 길드에 소속되어 있지 않다는 것은 꽤 신선한 일이었다. 아마 각성한지 얼마 되지 않았거나 체질적으로 단체에 소속되는 것을 꺼리는 타입이겠지.

큰돈을 벌거나 명예를 얻을 목적이라면 길드에 소속되는 것이 당연히 낫다.

고가의 장비를 얻는 데에도 길드를 통하는 것이 여러모로 혜택을 볼 수 있었다. 장비가 마모되거나 분실이 되었을 때 뒤처리가 깔끔하니까.

다시 말해 길드원들이 장비를 분실한 경우와 개인 게이머가 분실을 했을 때는 상황이 많이 다르다는 얘기이다.

개인 게이머가 훨씬 뼈아파할 가능성이 컸다.

“오케이. 이 여자로 해야겠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72시간 안에 던전 마스터를 물리쳐야 한다면, 그 방법은 다른 게이머의 도움을 받는 것밖에 없다.

예전 D급 던전에 들어갈 때 유진이와 그녀의 지인들의 도움을 받았던 것처럼 이미 그곳을 공략한 게이머들이 도와준다면 귀환서를 통해 단숨에 최상층으로 가는 게 가능했다.

내 얘기를 들은 티코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좋은 생각이십니다.”

나는 티코이가 불러준 번호로 조은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몇 번 통화를 시도했지만 바쁜 것인지, 아니면 모르면 번호라서인지 전화를 받지 않았다.

할 수 없이 문자를 대신 보냈다.

-OG 길드 조성오입니다. 드리고 싶은 말이 있어서 연락드렸습니다.

잠시 후 휴대폰이 울렸다. 발신자는 조은영.

“여보세요.”

-조성오 씨라고요? 진짜요?

대뜸 잔뜩 흥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맞습니다.”

-하아…….

잠시 전화기 안에서 호흡을 가다듬는 소리가 났다.

-제가 길드 입단 권유는 하도 많이 받아서 익숙한데, 그래도 조성오 씨가 직접 연락을 주시다니……. 잠깐만요. 심장이 두근거려서…….

상대는 나보다 세 살 많은 여성이었다. 나랑 통화한다고 심장이 두근거릴 이유는 또 뭘까 싶었지만, 어쨌거나 예상과 달리 상대의 반응은 훨씬 다이내믹했다.

-내가 진짜 길드는 안 들어가려고 했는데, OG라면……. 조성오 씨라면……. 하아, 이거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이 여자 뭔가 오해하고 있네.’

나는 상대가 더 착각에 빠지기 전에 얼른 말했다.

“얼마 전에 던전에서 물건 잃어버리신 적 있죠?”

-네? 물건이요?

“펜던트 말입니다.”

-아! 그걸 어떻게…….

“제가 어제 던전에 들어갔다가 습득했거든요. 알아봤더니 주인이 조은영 씨로 되어 있어서…….”

-그럼 혹시 전화하신 이유가…….

“펜던트를 돌려드리기 위해서입니다.”

-하아…….

또다시 긴 한숨이 들려왔다. 이번에는 훨씬 길고 복잡한 의미가 담긴 한숨이라서 나는 괜히 미안한 기분이 들었다.

“죄송하지만 저희 길드는 지금 단원 모집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나중에 혹시 모집하게 된다면 따로 연락드리겠습니다.”

-정말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던 것과 대조적으로 즉각적인 반응이 나왔다. 솔직히 길드장으로서 실력 있는 게이머가 OG에 들어오고 싶어 한다는 것은 기분 나쁜 일이 아니었다.

물론 일반인 게이머를 길드원으로 받아들일 계획은 앞으로도 전혀 없을 거지만.

조은영은 내 말에 기분이 좋아졌는지 한결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일부러 연락 주셔서 감사합니다. 큰맘 먹고 산 펜던트라서 잃어버리고 나서 많이 속상했는데.

“그 대신이라고 하면 조금 그렇지만 부탁드리고 싶은 일이 하나 있는데요.”

-네? 길드장님이 저한테 부탁을요?

조은영이 말이 통하지 않는 상대라면 펜던트를 빌미로 반협박식의 이야기를 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다행히 자연스럽게 말을 꺼낼 수 있었다.

내 얘길 들은 조은영이 말했다.

-네, 그런 거라면 당연히 도움을 드려야죠. 하기야 저희 같은 게이머들이랑 달리 길드장님은 돈 벌려고 던전에 들어가시는 것도 아닌데 1층부터 차근차근 공략하려면 답답하시겠죠.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좀 급해서 그러는데 모레까지 부탁드려도 될까요?”

-알겠어요. 제가 친구들한테도 얘기해 놓을게요.

“고맙습니다.”

9

내일 당장 던전 마스터전을 치르지 않은 것은 아직은 준비가 덜 되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루 동안 얼마나 레벨을 올릴 수 있겠느냐만은 그래도 B급 던전 마스터와 싸우는 것인데 조금이라도 더 대비를 하고 싶었다.

새로 얻을 마법들의 숙련도도 웬만큼 올려놓아야 하고.

나는 침대에 앉아 마요르에게 돌려받은 마법책 두 권을 꺼냈다.

리플렉션과 블리자드.

통상 6서클 이상이 되면 최고급 마법사 대열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서클 자체가 마법사 능력의 고저를 판단하는 유일한 기준은 아니지만, 다룰 수 있는 마법의 종류가 늘어난다는 것은 자체로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니까.

여기서 더 나아가 7서클 이상의 마법을 부리게 되면 그야말로 적에게는 공포의 대상이 되는 셈이다.

[7서클 마법 ‘리플렉션’을 습득했습니다.]

[7서클 마법 ‘블리자드’를 습득했습니다.]

마법을 토해낸 책은 쓸모없는 종이뭉치가 되었다.

나는 이어서 스킬 강화석을 꺼냈다.

로또를 발동하고, 강화석을 소모해 리플렉션과 블리자드의 등급을 B까지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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