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식왕 클리어러-184화 (184/245)
  • # 184

    독식왕 : 클리어러 184화

    마요르가 내뱉은 말을 듣고 아린이 나직이 탄식을 내뱉었다.

    “기억을 잃은 모양이네요. 불쌍하게.”

    그녀 역시 이쪽 세상에 오게 된 뒤 고생을 많이 한 터라 안쓰러운 마음이 드는 모양이었다.

    “흥! 네가 누군지를 따질 때가 아니지. 세계 제일의 도둑이 되려고 했던 내가 부끄럽게도 네놈들 따위에게 모습을 들키게 되다니……. 이렇게 큰 수치심을 안고 더 이상 살아갈 수 없다!”

    차릉-

    마요르가 허리춤에서 꺼낸 것은 날카로운 단도였다. 그가 목에 칼날을 들이대는 것을 보고 수보타가 놀라서 소리쳤다.

    “주인님! 마요네즈가 자결을 하려고 합니다! 막아야 하지 않습니까?”

    수보타 역시 눈앞에 있는 자가 새로운 동료가 될 후보이고, 지금은 단지 기억을 잃었을 뿐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하지만 마요르에 대해 잘 모르는 수보타와 칼리타만 놀랐을 뿐, 다른 파티원들은 조금의 동요도 하지 않았다.

    나는 코웃음을 친 뒤 마요르의 옆에 또 한 차례 마법을 떨어뜨렸다.

    꽝-!

    “끄악! 무슨 짓이야! 날 죽일 셈이냐?”

    간접적으로 타격을 입은 왼팔을 주무르면서 마요르가 기겁했다.

    “자결한다는 사람이 할 말이 아닌 것 같은데?”

    암젤의 지적을 들은 그는 곧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연기하지 마. 방심하게 만들어 놓고 달아나려는 걸 누가 모를 줄 알고?”

    내 말을 증명하듯 마요르의 머리 위로 생각이 떠올랐다.

    [그걸 어떻게 알았지?]

    [대단한 놈이다!]

    이 상황을 모면할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고 생각한 그가 얼른 흥정을 시도했다.

    “나를 놓아주면 네게 훔친 물건을 모두 되돌려 주마.”

    “지금 내 물건을 갖고 흥정하겠다는 거야?”

    암젤이 눈치껏 호랑이 한 마리를 소환했다. 호랑이는 어슬렁어슬렁 걸어가 마요르 옆에 털썩 자리를 잡고 앉았다.

    언제든 명령만 떨어지면 한 입에 꿀꺽 삼켜 버릴 기세였다.

    “허억!”

    “시도는 좋았어. 다시 한번 말해보시지.”

    “그…… 엄…….”

    마요르가 물건을 훔치는 이유는 그 행위 자체에서 즐거움을 느끼기 때문이다. 팔아서 생계비를 벌 목적도 있지만 애초에 돈 욕심은 크지 않은 그이다.

    그와 별개로 한 번 훔친 물건을 다시 내놓는다는 것은 매우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목숨을 걸 만큼은 아니더라도 도둑으로서 자긍심은 있는 것이다.

    고민 끝에 마요르가 허공에 손을 뻗었다.

    인벤토리에서 꺼내 놓은 것은 내게서 훔쳐간 마법책 두 권과 수십 개의 포션이었다.

    다른 물건도 많은데 왜 부피가 작은 마법책과 포션만 훔쳐간 것일까?

    나는 그 원인이 아직 그의 레벨이 높지 않은 것에 있다고 생각했다.

    도둑 클래스인 마요르는 다른 NPC에 비해 인벤토리 공간이 큰 편이다.

    하지만 이곳은 가상현실 게임과는 달리 훔친 물건을 처리할 수단이 존재하지 않는다. 매번 훔쳐서 저장해 두기만 하니 남은 인벤토리 공간이 충분치 않았던 것이다.

    눈치를 보던 마요르가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며 다른 물건들도 꺼내기 시작했다. 몹시 굼뜬 동작으로 천천히 물건을 꺼냈기에 지켜보는 것만으로 지칠 정도였다.

    ‘어지간히 내놓기 싫은 모양이군.’

    마요르의 인벤토리에서 나오는 물건들은 일반 게이머들에게서 훔친 것들이었다. 방어구와 무기, 그리고 핸드폰과 지갑 등등.

    나는 그것들을 보며 한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마요르가 이곳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것.

    던전 안에서 소지품을 잃어버렸다면 소문이 나게 마련인데 내가 조사를 할 때까지만 해도 그런 얘기는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물건을 도둑맞은 게이머들은 지금쯤 큰 혼란에 빠져 있을 것이다. 그게 던전 안에 도둑이 있어서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할 터.

    B급 던전에 들어오는 게이머들에게 훔친 물건들이니만큼 고가의 장비가 많았다. 지갑도 하나같이 빵빵했지만 돈을 잃어버렸다고 아쉬워할 게이머는 없을 듯했다.

    모두 웬만큼 떵떵거릴 정도의 재력을 보유한 자들일 테니까.

    마요르의 한숨 소리가 더욱 커지고 장물을 꺼내 놓는 속도도 갈수록 느려졌다.

    그의 고통을 덜어주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보고 있기가 답답해 말했다.

    “그만. 그 정도면 됐어.”

    사실 나는 마요르의 장물에 큰 관심이 없었다. 돈이 아쉬운 입장은 아니고, 현실에서 아무리 대단하다 칭송받는 장비라 하더라도 퀘스트를 달성하고 얻는 장비에 비하면 수준이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마요르에게 장물을 내놓을 것을 요구한 것은 예상치 못한 일로 날 고생시킨 대가를 치르게 하기 위해서였다. 기억을 되찾을 때까지 위계를 확실히 해두려는 목적도 있다.

    도둑인 그를 길들이기 위해서는 훔친 물건을 빼앗는 것만큼 확실한 방법이 없으니까.

    나는 일단 마법책과 포션을 인벤토리에 담았다. 파티원들도 자기가 잃어버린 개수만큼의 포션을 가져갔다.

    인벤토리가 텅텅 비게 된 마요르는 얼굴이 핼쑥해졌다. 육체만 여기 있을 뿐 영혼은 이미 안드로메다로 날아가 버린 것처럼 보였다.

    이름 : 마요르

    레벨 : 70

    성향 : 뉴트럴(Neutral)

    스킬 :

    약탈 ? 목표물이 일정 거리 안으로 들어오면 자동으로 인벤토리 안에 넣을 수 있다. 레벨이 높아질수록 약탈 범위가 늘어나고 정확도가 상승한다.

    인벤토리에 빈 공간이 없을 경우에는 발동하지 않음.(최대 약탈 범위 : 1미터)

    은신 ? 보유한 망토로 몸을 가리면 신체가 투명해진다. 더불어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기척을 모두 감출 수 있다.

    가속 ? 일정 시간 동안 움직임을 가속한다.(최대 시간 : 5분)

    이력 : 고아로 자란 마요르에게 도둑질은 유일한 생계수단이었다. 처음에는 목숨을 부지하기 물건을 훔쳤지만 나중엔 도둑질 자체에 쾌감을 느끼게 되었다. 한 방향으로만 무던히 노력한 결과 지금과 같은 경지에 이른 것. 삶의 대의를 깨닫고 즐거움을 위해서만 도둑질을 하지 않게 된 것은 조성오를 만난 후이다.

    ‘생각만큼 레벨이 낮지 않네.’

    나는 마요르의 정보창을 들여다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이 정도 레벨이 아니었다면 나나 파티원에게 물건을 훔칠 수 없었을 것이다. 던전에 들어오는 다른 게이머들에게 도둑질하는 것도 불가능했겠지.

    더불어 이것이 마요르가 B급 던전에서 생존하는 최소한의 요건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가 이쪽 세상에 건너온 이유는 두말할 것 없이 내 동료가 되어 새로 시작한 게임에 합류하기 위해서이다.

    진행상 B급 던전에서 만나게 될 동료라면 그에 걸맞은 레벨이 부여되어 있는 것이 맞다.

    그 최소한의 조건이 레벨 70이었을 터.

    ‘마요르가 나를 만나기 전에 죽었더라면…….’

    그리고 그를 만나기 전에 내가 퀘스트를 완수하지 못해 진행이 어그러졌다면, 아마 예정된 타이밍에 조우할 기회는 날아갔을 것이다. 동료가 적어지면 게임 난이도가 올라간다는 것은 기정사실이다.

    게다가 이 게임은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맞물려 있다. 퀘스트를 완수하지 못해 받는 페널티보다 더 나쁜 것은 한 번의 실수가 진행을 어그러뜨려 난이도가 쭉쭉 상승한 나머지 나중에는 기어코 감당하지 못하게 되어버리는 것이다.

    지금까지 크게 어려움 없이 게임을 진행해 왔다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게임의 난이도가 쉬운 것이 아니라 내가 나름대로 공략을 잘해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가상현실 게임에 십 년 동안 가둬놓은 누군가가 진짜 바란 것은 내게서 게임과 현실을 구분하는 감각 자체를 사라지게 만드는 것이 아니었을까?

    방 안에서 안전하게 컨트롤러를 들고 게임을 하는 것과 현실 자체가 게임이 되는 것은 천치차이이다.

    게다가 세이브와 리셋이 불가능한 게임이니까.

    만약 이런 심각한 상황에 마음이 먼저 무너졌다면 진행을 매끄럽게 할 수 있었을 리가 없다.

    가상현실 게임에서 십 년을 버틴 나니까 막힘없이 게임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건 그렇다 치고…….’

    나를 각성시킨 이의 의도가 무엇인지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내게 의미가 있는 사실은 눈앞에 게임이 있고 그것을 플레이한다는 사실뿐.

    내가 이 정도로 게임 중독일 줄은 아마 날 각성시킨 이도 미처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뺏어가지만 마라.’

    게임을 다 클리어하기도 전에 이만하면 됐다고 종료시켜 버린다면 나는 어린애처럼 엉엉 울어버릴지도 모른다.

    2회 차 플레이가 존재하지 않는 최고난이도의 게임!

    그것은 내 꿈이나 다름없다.

    [마요르는 현재 마법에 걸린 상태입니다. 마법이 해제되기 전에는 동료로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음…….”

    메시지를 보고야 의문이 풀렸다.

    왜 마요르와 만나고 그를 제압한 뒤에도 동료로 받아들이겠냐는 메시지가 나타나지 않았는지.

    설명을 듣지 않아도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알 것 같았다.

    게네아.

    이 던전의 마스터인 놈은 마법을 사용하는 몬스터 종족인 스티코이의 수장답게 자기 역시 마법을 사용한다.

    단 모든 게네아가 같은 마법을 사용하지 않는 터라 미처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않았던 것이다.

    만약 이 던전의 마스터가 기억을 잃게 하거나 마음을 컨트롤하는 마법을 사용한다면…….

    고작 레벨 70의 비전투형 NPC인 마요르가 저항을 할 수 있었을 리가 없었다.

    [특수 퀘스트가 추가되었습니다.]

    “응?”

    나는 처음 보는 메시지에 깜짝 놀랐다.

    지금까지 모든 퀘스트는 처음부터 일괄적으로 주어졌고, 그것은 특수 퀘스트도 예외가 아니었다.

    신기한 마음에 새로 추가되었다는 퀘스트를 열어보았다.

    [특수 퀘스트 : B급 던전 마스터 게네아를 물리쳐라.(제한 시간 : 72시간)]

    “뭐?”

    내가 놀란 것은 퀘스트의 내용이 던전 마스터를 물리치라는 것 때문이 아니었다. 던전에 들어와 마스터를 물리치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므로.

    그보다 제한 시간이 너무 짧았다. 던전 공략을 시작한 지 이제 고작 3일째인데 72시간 안에 던전 마스터를 물리치라니.

    물론 특수 퀘스트는 공략하지 않아도 진행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하지만 내게는 이것이 그냥 무시해도 좋은 메시지로 보이지 않았다.

    ‘뭔가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

    이 게임은 모든 퀘스트가 처음부터 끝까지 완성된 채로 시작되지 않았을 것이다. 진행에 따라 상황이 여러모로 바뀔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에.

    갑자기 특수 퀘스트를 추가했다는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어서일 가능성이 크다.

    ‘어떡해야 되지?’

    난감함에 마요르를 한 번 쳐다본 나는 문득 그가 꺼내 놓은 장물로 시선을 옮기게 되었다. 그것들을 보자니 불현듯 한 가지 방법이 떠올랐다.

    ‘그러면 되겠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