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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왕 클리어러-183화 (183/245)

# 183

독식왕 : 클리어러 183화

5

브라질. 피스&호프 지부.

한국으로 떠날 준비를 하고 있는 가브리엘을 만나기 위해 본사에서 두 사람이 찾아왔다. 카오스 게이머 닷컴 쪽에서 중책을 맡고 있는 마이클과 앰버.

한 사람은 거구의 흑인 남자였고, 한 명은 상대적으로 체구가 작고 레게 머리를 허리까지 늘어뜨린 백인 여자였다.

지부장실에서 둘을 마주한 가브리엘이 코웃음을 쳤다.

“왜? 내가 시킨 일을 하지 않을까 봐 감시하러 오셨나?”

그 말에 마이클이 표정 없는 말투로 대꾸했다.

“길드장님은 이번 일에 신경을 많이 쓰고 계신다. 실수는 용납되지 않아.”

마이클과 앰버도 피스&호프 안에서 대단한 실력자로 정평이 난 인물들이었다.

하는 일이 하는 일이니만큼 드러나지 않게 행동하지만, 그들의 존재가 특별하다는 것을 알 만한 사람은 모두 알았다.

가브리엘이 입꼬리를 들어올렸다.

“그 말을 하려고 굳이 여기까지 오지는 않았을 테고……. 본론을 말해보시지.”

이번에는 앰버가 입을 열었다.

“네가 얼마나 이기적인 놈인지는 잘 알아. 하지만 이번에는 개인이 아닌 길드를 위해 움직여야 한다. 길드장님은 너에게 10인 이상의 실력자를 구성해 임무에 임하라고 하셨지. 네가 이 사항을 잘 이행하는지 우리 눈으로 직접 확인하려고 왔다. 부족하다고 판단했을 때는 길드에서 인원을 보충할 것이다.”

“흥! 핑계대기는. 어차피 나를 믿지 못하겠으니까 네놈들을 이번 일에 동참시켜 감시하겠다는 거 아니야. 내가 그런 얕은 수작에 넘어갈 줄 알았나?”

마이클의 미간이 좁아졌다.

“오만하게 구는 것도 작작해라. 우리는 길드장님을 대리해서 여기 온 거야.”

“……오만?”

가브리엘은 가만히 반문하더니 의자 등받이에 허리를 기댔다. 천장을 올려다보는 별것 아닌 동작에 마이클과 앰버는 강한 위압감을 느꼈다.

잠시 후 가브리엘이 정면을 보고 웃음을 지었다.

“난 지금 이 자리에서 네놈들을 먹어버릴 수도 있어. 못할 것 같아?”

움찔.

마이클과 앰버는 조직 내의 지위도 지위지만 자신들의 능력에 대단한 자부심을 가진 게이머들이었다.

가브리엘이 방금 던진 말은 질 낮은 도발이었지만 어쩐지 맞받아칠 수 없었다. 대꾸하고 싶었으나 입술만 마를 뿐,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가브리엘이 귀엽다는 듯 혀를 찼다.

“네놈들과 내가 근본적으로 다른 게 뭔 줄 알아? 네놈들은 그대로지만 나는 끊임없이 강해지고 있다는 거지.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다르다는 말이야. 나는 두렵지 않아. 지금은 모르겠지만 머지않아 그 역시 내게 따라잡힐 것이다. 그때도 너희 같은 잡놈들이 감히 내 앞에서 오만이라는 말을 입에 담을 수 있을까?”

공기가 누그러지자 마이클은 자신의 가슴을 주먹으로 세차게 두드렸다. 가브리엘이 발하는 기백에 놀랐지만 그는 애써 그것이 눈에 보이지 않는 스킬의 영향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자존심이 너무 상하는 일이었으니까.

태도를 바꾸어 아까보다 정중하게 말을 했다.

“우리 말이 기분 나빴으면 사과하지. 알다시피 우리와 자네의 임무는 똑같아. 이번 일을 실수 없이 마무리 하는 것. 그때까지는 괜히 서로 얼굴을 붉히는 일이 없도록 하지. 그리고, 우리가 여기 온 이유는 또 하나 있어.”

마이클이 말을 마치자 앰버가 바닥에 놓아두었던 가방을 테이블에 올렸다. 고가의 아이템인 이 가방은 개인 특유의 마나가 열쇠로 작용하게끔 되어 있었다.

앰버가 마나를 흘려 넣자 달칵 소리를 내며 가방이 열렸다. 그 안에 빼곡히 담긴 물건을 본 가브리엘의 눈이 번뜩 빛났다.

앰버는 가방에서 콜드 스톤을 한 개씩 꺼내어 테이블에 올렸다.

테이블에 놓인 콜드 스톤의 개수는 총 열 개. 마치 좋아하는 간식을 마주한 아이처럼 가브리엘의 얼굴에 들뜬 표정이 떠올랐다.

“선금이라고 생각해. 나머지는 일이 끝나는 즉시 지급하도록 하지.”

“…….”

가브리엘은 콜드 스톤에서 시선을 거두지 않은 채 말했다.

“너희들이 뭘 하든 날 귀찮게만 하지 않으면 상관하지 않겠어. 니콜라스에게 이번 일은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전해 줘. 동생 놈은 확실히 내 손으로 죽이겠다고 말이야. 흐흐.”

마이틀과 앰버는 한 차례 마주 본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이클이 ‘한국에서 보지’라고 말했지만 이미 콜드 스톤에 정신이 팔린 가브리엘에게는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두 사람은 방을 나와 복도를 걸었다.

“우리가 할 수 있을까?”

“해야만 돼. 너도 봤잖아. 저건 인간이 아니야. 몬스터보다 더 위험하다.”

지부장실에서 광기 어린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복도를 쩌렁쩌렁 울리는 그 소리에 마이클과 앰버의 인상이 구겨졌다.

지부를 떠나는 두 사람의 걸음걸이가 한층 빨라졌다.

6

암젤의 말을 듣고 내가 떠올린 것은 이 던전에 동료가 한 명 있다는 사실이었다. 메인 퀘스트 중 하나인 NPC 영입.

던전 공략 자체에만 집중하다 보니 그 사실을 깜박 잊고 있었다.

도둑이라는 말에 떠오르는 인물은 하나뿐이었다.

‘그렇군.’

왜 내 인벤토리를 털어간 것인지 이유를 알기 어려웠지만 지금까지 NPC를 만났던 과정을 돌이켜보면 늘 일관성이 있었던 것은 아니니까.

뭔가 사연이 있을 가능성이 크고, 당장은 그 사연이 무엇인지 알기 어려웠다.

‘난감하네…….’

NPC의 흔적을 찾았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리플렉션’과 ‘블리자드’를 도둑맞은 것은 달갑지 않았다.

아직 4층을 공략하는 중이기 때문에 영향이 크지 않더라도 이 B급 던전은 상당히 난이도가 높은 편이다. 최초로 데미 마스터가 출현하는 6층에 이르면 디스펠만 가지고는 이겨내지 힘들지 모른다.

가브리엘과의 싸움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 이왕이면 전투력이 강한 동료를 얻을 수 있길 바랐건만, 하필이면 도둑 클래스를 가진 NPC라니. 더구나 만나기 전부터 마법책을 훔쳐 갔다.

‘자식이…….’

주위를 둘러봤지만 NPC의 흔적은 전혀 찾을 수 없었다. 그도 그럴 수밖에, 녀석은 도둑 직업에 관한 능력이라면 완벽에 가까우니까.

나와 합류하기 전이므로 아직 레벨이 낮을 것임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나나 암젤의 눈을 피해 인벤토리를 털어간 그 능력은 가히 경이롭다고 할 만했다.

나는 제자리에 선 채로 잠깐 고민했다.

그냥 전진할 것인가, 아니면 문제를 바로잡고 갈 것인가.

녀석이 자취를 완벽하게 감추고 있으므로 나는 NPC가 가까이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그럼에도 녀석은 우리의 인근에 있을 것이 틀림없었다. 은신 스킬로 기척을 지우고 또 도둑질할 기회를 노리고 있겠지.

나는 결심을 굳힌 뒤, 파티원들에게 전언을 보냈다.

-각자 그 자리에서 내 말을 들어. 지금 이곳에 도둑이 있는 것 같다.

“네? 도…….”

눈치 없이 수보타가 소리 내 말하려는 것을 암젤이 호랑이를 소환해 막았다.

“어흥!”

“끄악!”

덩치 큰 호랑이가 수보타를 깔아뭉갰으나 어차피 불사의 몸을 가진 녀석이니 걱정할 일은 아니었다. 수보타가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필사적으로 머리를 내저은 뒤에야 암젤이 그의 등에서 호랑이를 치웠다.

-놈을 잡기 전까지 던전 공략은 유보할 거야. 일단은 내가 시키는 대로 따라줘.

파티원들에게 역할을 정해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를 지시한 뒤, 내가 먼저 큰 소리로 연기를 시작했다.

“역시 B급 던전이라 쉽지가 않네. 다들 여기서 잠깐 쉬었다 가자.”

“감사합니다요, 주인님. 안 그래도 힘들어 죽을 뻔했습니다요.”

수보타의 국어책을 읽는 것 같은 연기가 이어지고, 멤버들이 각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잠시 뒤 여자아이인 상태로 쉬고 있던 트레앙이 지루하다는 듯 몸을 일으켰다. 그녀는 여기저기를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다가 벽을 향해 쭈그려 앉았다.

“우와! 여기 이런 게 있네?”

아린이 그녀의 목소리에 벌떡 일어나 옆으로 다가갔다.

“뭔데 그래?”

그녀는 트레앙이 바라보고 있던 곳을 똑같이 응시한 채 과장된 음성으로 말했다.

“와! 이게 여기 떨어져 있다니! 트레앙, 얼른 챙기는 게 좋겠다.”

“응, 안전하게 인벤토리에 넣어둘게.”

트레앙이 작은 손으로 바닥을 쓸어 중요한 무언가를 허공에 집어넣는 시늉을 했다. 물론 그녀가 인벤토리에 넣은 것은 돌멩이 내지는 한 줌의 흙일 터였다.

이로써 덫은 놓아졌다.

모든 멤버가 일부러 트레앙과 떨어져서 그녀 쪽을 보지 않았다. 다만 나는 팔짱을 끼고 자는 척을 하면서 슬쩍 그쪽을 보고 있었다.

순간이지만 대기가 흔들리는 느낌이 전해졌다.

나는 조용히 스킬을 발동시켰다.

‘로또.’

머리 위로 구슬들이 떠오르며 동시에 공기의 흐름이 느려졌다. 트레앙의 옆으로 무언가가 잽싸게 다가가는 것이 보였다. 시간의 흐름이 느려졌음에도 자세히 보지 않으면 모를 만큼 녀석의 행동은 매우 빨랐다.

다만 트레앙의 인벤토리에서 원하는 물건을 발견하지 못했기에 움직임이 잠깐 정체되었고, 그것이 녀석의 꼬리를 잡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축하합니다! 로또 3등에 당첨되었습니다!]

‘평소에는 줄기차게 4등만 나오더니…….’

물론 지금 내게 중요한 것은 로또의 등수가 아니다.

내 눈에 정확하게 도둑이 트레앙의 인벤토리를 뒤적거린 뒤 다시 원래 있던 곳으로 가서 숨는 것이 보였다.

녀석이 있던 곳은 직사각형 모양의 커다란 바위 뒤.

모습을 숨겨주는 망토를 두르자 기척이 싹 사라졌다.

나는 몸을 일으킨 뒤 그쪽은 보지도 않고 스킬을 사용했다.

‘라이트닝 볼트!’

꽈릉!

“악!”

아무 것도 없는 곳에서 앳된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순간이었지만 사방이 조용한 상황이었기에 그 목소리는 멤버 누구의 귀에도 똑똑히 들렸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냥 나올래? 아니면 한 발 더 떨어뜨려 줄까?”

“…….”

“좋아. 이번엔 더 강한 걸로 떨어뜨려주지. 7서클짜리 ‘대폭발’ 정도면 되려나?”

내가 느긋하게 오른손을 들어 올리자 바위 뒤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아! 잠깐! 잠깐만!”

“빨리 안 나와?”

“…….”

누군가가 가만히 몸을 일으켰다. 파란 머리칼에 호리호리한 몸매를 가진 남자 NPC. 나이는 십 대 후반쯤 되었을까?

비록 내게서 마법책을 훔쳐 가는 대담한 짓을 저질렀지만 워낙 오랜만에 보는 탓에 반가운 마음이 일었다.

“잘 있었어? 마요르?”

“마요네즈? 저자의 이름이 마요네즈입니까?”

식재료에 관심이 많은 수보타가 되물었다.

“쥐새끼 주제에 어디서 개수작이야? 내 이름은 마요네즈가 아니라 마요르다!”

라이트닝 볼트를 얻어맞아서 마요르의 정수리는 까맣게 그을려 있었다. 그는 상황과 맞지 않는 호기심이 가득한 눈으로 나를 보았다.

“어떻게 내 이름을 알고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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