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2
독식왕 : 클리어러 182화
나는 서둘러 상품 목록을 살펴보았다. 가격을 보니 전부 전보다 낮아져 있는 게 확실히 아판테스의 눈이 효력을 발휘한 듯했다.
그런데…….
‘바뀐 게 없는데?’
상품이 추가되었다고 해서 큰 기대를 했는데 적어도 목록상으로는 바뀐 게 없어 보였다. 꼭 내가 사용할 아이템이 아니더라도 파티원들에게 적용할 수 있는 아이템의 수준이 높아진다면 전체 전력에서 큰 이득을 볼 수 있을 텐데.
“왜 그러냐옹. 조울증 걸린 사람처럼 표정이 다채롭다옹.”
불과 몇 초 사이에 실망에서 기쁨, 다시 실망으로 바뀌는 내 얼굴을 보고 암젤이 말했다. 그녀는 여전히 피곤해 죽겠다는 얼굴로 불만스럽게 날 올려다보고 있었다.
“음…….”
나는 메시지가 실없는 내용을 내보이진 않았으리라 믿고 인내심 있게 목록을 끝까지 넘겨보았다.
“응?”
맨 마지막, 붉은색으로 번뜩이는 상품이 보였다. 그리고 그것을 확인한 순간 등줄기를 찌르르 관통하는 전율을 느꼈다.
“마법책?”
마법 스킬은 내게도 매우 어려운 화두였다. 6서클에 달했지만 사용할 수 있는 모든 마법을 손에 넣은 것이 아니다. 가상현실 게임에서도 마법 스킬을 하나 얻는다는 것은 과연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가성비가 떨어지는 일이었다.
만약 내가 백번 이상 클리어할 만큼 시간이 많지 않았다면 마법을 수집하려고 그렇게 큰 고생을 감수하지 않았을 것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마법 스킬은 그것이 고급 단계의 것일수록 얻기가 힘들다.
어떤 스킬은 특정 지역의 특정 마법사에게 직접 사사하지 않고는 구할 수 없을 정도였다.
물론 아티팩트나 레벨 업을 통해 습득하는 방법도 있지만 그 숫자는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오오…….”
상점에 추가된 마법 스킬들은 목록을 넘겨도 계속 이어질 만큼 빼곡했다. 마음 같아서는 전부 구입하고 싶지만 옆에 붙어 있는 가격이 만만치가 않았다.
‘8서클 이상은 없네…….’
아판테스의 눈으로 상품 목록이 추가되었어도 한계는 있는지 최고급 마법들이 빠져 있었다.
그래도 크게 아쉽지는 않은 것은 서클이 올라가며 가격이 높아지는 추이로 볼 때 현재 가지고 있는 GP를 탈탈 털어도 8서클 마법을 구입하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오히려 상품 목록에 있는데도 구입하지 못한다면 그게 더 아쉬울 일일 터.
나는 목록을 보며 고민에 빠졌다. 메시지가 확실하게 알려주지는 않았어도 마법 스킬을 상점에서 구입할 수 있는 기회가 이번 딱 한 번뿐이라는 것을 알았다.
현재 가지고 있는 GP와 마법의 가치, 즉 가성비를 최대로 고려해야 한다.
오 분가량 고민한 뒤에 나는 결론을 내렸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그 동안 GP를 낭비하지 않아서 상당히 많은 양의 게임 머니가 쌓여 있다는 것이다.
‘물 속성의 마법부터 구입하고…….’
아티팩트의 효과로 불 속성의 마법은 최고 수준의 것까지 습득했다. 그것과 반대되는 속성 마법을 익히면 당연히 스킬 범용성이 높아질 것.
더불어 앞으로 닥칠 싸움을 고려하면 이것이 가장 나은 선택지로 보였다.
[마법책 ‘아쿠아 볼트’를 구입했습니다.]
[마법책 ‘아쿠아 애로우’를 구입했습니다.]
[마법책 ‘아쿠아 웨이브’를 구입했습니다.]
이것들은 각각 2, 3, 5서클의 마법이었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아쿠아 웨이브만 구입하면 될 것 같지만 마법이라는 것이 그리 간단하지가 않다. 한 계통의 마법은 아래 단계부터 차근차근 습득해야 진정한 위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물 속성 마법 중 내가 마지막으로 구입한 것은 당장은 사용할 수 없는 7서클 마법이었다.
[마법책 ‘블리자드’를 구입했습니다.]
블리자드는 엄밀히 말해 얼음 속성의 마법이지만, 이 게임의 시스템 상으로 물 속성과 얼음 속성은 굳이 구분되어 있지 않았다.
‘그리고…….’
[마법책 ‘디스펠’을 구입했습니다.]
[마법책 ‘아이언 스킨’을 구입했습니다.]
[마법책 ‘리플렉션’을 구입했습니다.]
‘디스펠’과 ‘아이언 스킨’은 6서클의 마법이다. 각각 상대 마법을 해제하고 동료의 피부를 강화하는 스킬이었다.
강력한 마법인 만큼 안정성은 다소 떨어지는 편이지만 이는 마법사 숙련도를 높이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이다.
같은 스킬이라도 숙련도에 따라 위력이 달라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까.
마지막 ‘리플렉션’은 7서클 마법으로 보호막을 생성해 상대 마법을 튕겨낼 수 있는 스킬이었다.
나보다 수준 낮은 마법사를 상대할 때는 무적이라고 할 만큼 사기적인 마법이기도 하다.
물론 서클이 높은 만큼 무지막지한 마나 소모는 각오해야 하지만.
‘이 정도로 하고…….’
아직 구입하지 않은 마법책들이 눈에 삼삼했지만 가진 GP가 한정적이니 어쩔 수가 없다.
마법책을 구입하고도 나는 꽤 많은 GP를 남겨두었다. 20퍼센트 디스카운트는 자주 오는 기회가 아니니까, 이참에 포션과 강화석을 넉넉히 구입해 두기 위함이었다.
쇼핑을 마치자 여유 있던 GP가 모두 바닥났다.
나는 입가에 미소를 띠운 채로 생각했다.
‘역시 게임은 참 재미있다니까.’
곤경에 처했다 싶을 때 생각지도 못한 해결책이 튀어나온다. 게임이라는 것은 인생과 달리 끝이 선명하고, 문제에 따른 해답이 반드시 존재한다.
요는 포기하지 않고 방법을 강구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내게는 이런 사고가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그도 그럴 수밖에, 길지 않은 인생 대부분을 게임을 하며 보냈으니까.
“가자.”
내 말에 몸을 말고 잠들어 있던 암젤이 눈을 번쩍 떴다.
3
집에 돌아온 나는 구입한 마법책들을 스킬로 바꾸어 습득했다. 물론 7서클 마법인 ‘블리자드’와 ‘리플렉션’은 제외하고.
스킬화한 마법들은 책을 통해 익힌 것이기 때문에 가장 낮은 랭크로 기록되었다. 그것을 강화석과 로또 스킬을 이용해 A등급까지 올렸다.
마음 같아서는 최고 등급인 S까지 올리고 싶었으나 강화석을 이용해 그렇게 하는 것은 너무 효율이 낮은 일이므로 참기로 했다.
다음 날.
같은 시간에 던전을 찾자 어제와 마찬가지로 직원들이 입구까지 나와 대응을 했다. 관리소장 박관춘은 어제 그렇게 무안을 당하고도 번들번들한 얼굴로 나를 반겼다.
“조성오 게이머님, 어제 늦게까지 공략을 하셨다고 들었는데 피로도 풀 겸 들어가서 차 한잔하시는 게 어떻습니까? 중국에서 특별히 공수한 차가 종류별로 구비되어 있습니다만.”
“됐습니다.”
“……네.”
냉정한 얼굴로 말하니 더 이상 권하지는 않았다. 나는 박관춘이 하는 행동이 너무 계산적이라 마음에 들지 않았으나 굳이 그를 미워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다.
원래 이 바닥이 그런 것일 테니까.
더구나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면 별것 아닌 인물과도 척을 지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메인 스토리를 공략하는데 쓸데없는 요소들이 방해하면 안 되니까.
“수고하세요.”
입구로 가기 전에 한마디를 건네자 박관춘은 몹시 기뻐하며 허리를 90도로 구부렸다.
“네! 조성오 게이머님! 오늘도 안전한 공략 하시기를 기원하겠습니다!”
“못생긴 중년 남자는 싫어하지만 제법 인사성은 있다옹.”
아첨을 굳이 마다하지 않는 성격인 암젤이 도도하게 걸음을 옮기며 한마디 했다.
던전에 들어가는 파티원들의 얼굴은 대체로 밝지 않았다. 어제의 경험으로 이곳이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단순히 상대의 방어력이 강해서 깨부수기 어렵다는 것과 잡히면 한 방에 죽일 수 있는데 그 한 방을 때리기 어렵다는 것에는 피로감에 큰 차이가 있다.
포션을 쏟아부으며 열두 시간에 걸친 공략을 했다는 것이 파티원 전부에게 달갑지 않은 기억으로 남았다.
오늘 그 이상으로 힘든 공략을 해야 하는 걸 생각하면 힘이 나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나는 자신이 있었다. 오늘 공략은 어제와 같지 않을 거라는.
달라진 것은 마법을 몇 개 더 습득했다는 것밖에 없지만 그것이 매우 큰 차이를 만들어낼 거라고 믿었다.
‘디스펠!’
화악-
누더기를 걸친 몬스터 종족은 자신들이 펼친 마법이 일순에 사라지는 것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킥!”
“키이익!?”
검은 피부에 눈알 두 개만 노랗게 번뜩이는 스티코이들.
마법을 쓸 수 있다는 것을 제외하면 머리 나쁜 일반 몬스터와 크게 다를 것이 없다.
신중한 성격과 본능적인 전술 감각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들도 모두 마법을 사용할 수 있기에 가치가 있는 것이다.
내가 몬스터의 마법을 무효화시킨 것을 보고, 파티원들이 크게 고무되었다.
“역시 주인님! 하루 만에 더욱 강해지셨군요!”
아린은 틈을 놓치지 않고 혼란의 곡을 연주했다. 당황한 스티코이들은 스킬에 덥석 걸려들어 더 큰 혼란에 빠졌다.
마법만 묶어두면 다음은 매우 쉽다. 애초에 스티코이는 C나 D급 몬스터에 불과한 방어력을 가지고 있었다.
OG 파티원들은 매우 손쉽게 몬스터들을 때려잡았다.
나는 디스펠과 더불어 새로 얻은 마법들을 시험하며 최후방에서 싸움을 조율했다. 마나 소모량이 매우 컸지만, 포션을 아끼지 않고 사용했다.
공략이 쉬워지니 신바람이 나고, 그 덕분에 마법 숙련도도 더 빨리 오르는 것 같은 긍정적인 착각이 들었다.
2층을 공략하는 데 걸린 시간은 1층의 절반인 여섯 시간.
3층은 공간이 더 넓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동안 생긴 탄력과 노하우 덕분에 한 시간 더 적은 다섯 시간 만에 공략이 끝이 났다.
포션을 사용한 횟수가 어제의 5분의 1에 불과하니, 그야말로 성공적인 공략이 아닐 수 없었다.
레벨도 쭉쭉 올라 139에 달하게 되었다. 여기서 1만 더 오르면 드디어 7서클 마법사가 되어 ‘리플렉션’과 ‘블리자드’를 사용할 수 있게 된다.
그러면 B급 던전 공략이 더욱 손쉬워질 것은 자명했다.
4
[레벨 140이 되었습니다.]
[새로운 클래스를 선택하거나 기본 클래스를 진화할 수 있습니다.]
나는 미리 생각한 대로 마법사 서클을 한 단계 올렸다.
[마법사 클래스가 7서클이 되었습니다.]
이어서 한 일은 보유하고 있기는 하나 아직 사용할 수 없었던 마법책을 꺼내는 일이었다.
리플렉션과 블리자드.
이미 이 마법들의 위력을 알고 있는 나는 본격적인 마법사로서의 카리스마를 발휘할 수 있게 되었다는 생각에 마음이 들떴다.
그러나…….
‘없어?’
분명히 인벤토리에 넣어두었던 마법책이 보이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포션도 상당수가 줄어있는 걸 발견했다.
‘이게 대체…….’
나는 당황하여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다 암젤이 던전 벽 한곳을 의심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녀는 나를 돌아보더니 눈살을 찌푸린 채 말했다.
“주인님도 느꼈냐옹?”
“뭘?”
“여기 도둑이 있는 것 같다옹.”
“도둑?”
그 말을 듣자 문득 떠오르는 한 가지 사실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