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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왕 클리어러-177화 (177/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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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식왕 : 클리어러 177화

    3

    셰릴을 죽이면서 결과적으로 ‘명예’ 퀘스트를 달성하게 됐다. PHASE 6의 퀘스트는 이로써 세 개가 남은 셈.

    ‘지위’ 퀘스트는 어차피 내가 강해져야 달성할 수 있는 퀘스트이므로 ‘영토’ 퀘스트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

    이는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여겨졌다. 현재 상황이 흘러가는 것을 볼 때 무엇보다 강해지는 것이 선결 과제니까.

    노아는 가브리엘을 상대할 때 홈그라운드의 이점을 살리자고 했지만, 그보다 더 확실하고 빠른 방법은 압도적인 전투력으로 그를 물리치는 것이다.

    노아가 건네준 가브리엘에 대한 정보는 심플했다.

    그는 화염 속성을 다룰 줄 아는 신체 강화형 능력자라고 했다. 자기 능력을 활용할 수 있는 특수 장비를 사용한다고 하니 어떤 의미에서는 웨펀형 능력자라고 볼 수 있었다.

    직접 투시자의 눈으로 정보를 본 게 아닌 터라 확언할 수 없지만, 들은 얘기만으로 판단하면 적어도 두 가지 이상의 능력을 사용하는 멀티 능력자인 셈이다.

    피스&호프에 있을 때 노아는 주로 카오스 게이머 닷컴과 관련된 업무에 집중하며 문서로 정보를 취득하는 입장이었기에 가브리엘이 구체적으로 어떤 인물인지 디테일한 얘기는 해주지 못했다.

    C급 던전은 혼자서도 거뜬히 공략한다거나, 단순히 전투력만으로 피스&호프의 요직을 맡게 됐다는 것은 객관적인 지표가 될 수 있어도 피부에 와닿지는 않았다.

    적을 특정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은 커다란 메리트이다.

    나는 가브리엘을 직접 맞닥뜨리기 전에 가급적 그에 대한 정보를 많이 취득하고 싶었다.

    ‘아!’

    불현듯 셰릴의 집에서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그때 마리아는 가브리엘의 이름을 듣고 불안한 기색을 보였었다.

    그녀의 연락처를 알지 못하니, 노아를 통해 접촉했다.

    부탁한 지 십 분도 되지 않아 마리아에게서 전화가 왔다.

    “자기, 날 찾았다며?”

    “나이 차이가 얼만데, 자기는 적절치 않은 호칭 아닌가요?”

    “어머, 우리 자기는 보수적이구나. 원래 닭도 노계가 맛있는 법…….”

    “크흠. 얘기는 들으셨죠? 가브리엘에 대해 듣고 싶은데요.”

    “성질도 급해라. 원래 이런 얘기는 데킬라 한잔 마시면서 여유 있게 해야 하는데 지부장 역할을 하다 보니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서, 에휴…….”

    “그런 것치고는 즐기는 것처럼 보이던데요.”

    “이런 때 아니면 언제 지부장이 돼보겠어. 얘기했었나? 나 각성하기 전에는 배우였거든. 배우의 장점은 뭐니 뭐니 해도 여러 가지 삶을 살아볼 수 있다는 것 아니겠어? 이왕 하는 거 즐기면서 해야지.”

    “네, 참 좋은 마인드네요.”

    “혹시 인터뷰에서 자기 얘기해서 삐쳤어? 어쩔 수 없잖아~ 일 때문인데.”

    “노아에게 들으니 절반은 애드립이었다던데…….”

    “내가 원래 대본대로 연기하는 걸 싫어하거든. 호호!”

    본인 입으로 바쁘다고 얘기한 마리아는 잡담을 십 분 이상 끌고 갔다.

    나는 슬슬 초조해졌지만 듣다 보니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왠지 마리아가 가브리엘 이야기를 꺼내는 걸 꺼리는 듯한.

    그런 생각이 들자 빨리 얘기하라고 종용할 수가 없어 장단을 맞춰주었다. 다시 십 분간 더 잡담을 하고 나서야 마리아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 자기, 생각보다 자상하네? 오늘밤 우리 집으로 올래?”

    “사양하겠습니다.”

    “호호. 아무튼 고마워. 가브리엘 얘기를 하려면 자꾸 안 좋은 기억이 떠올라서……. 하지만 계속 변죽만 울릴 수는 없으니 슬슬 얘길 해야겠지.”

    마리아는 본론을 꺼내놓기 시작했다.

    “내가 살던 곳은 치안이 아주 엉망이었어. 원래도 엉망이었지만 각성자들이 나타나면서 그게 더 심해졌지. 가난한 사람들이 능력을 얻으면 가장 먼저 바라는 것이 돈이거든. 그전부터 돈과 권력을 지니고 있던 자들은 그 점을 이용해 각성자들을 이용하기 시작했지.

    원래는 던전에서만 사용해야 할 능력을 각성자들이 특권층을 위해 사용하게 된 거야. 법과 제도는 원래 무시돼 왔기에 힘없는 사람들은 전보다 더 심한 착취를 당했어. 부정한 세력과 결탁한 경찰이나 깡패는 그나마 낫지. 게이머에게 당하면 정말 답이 없거든. 그러던 때…… 갑자기 구세주가 등장했어.”

    “구세주요?”

    나는 반문을 했다. 마리아에게 듣는 이야기는 익히 알고 있는 얘기였다.

    어느 나라나 많든 적든 게이머가 특권층과 결탁하고 있으니까.

    제도가 불안정한 나라는 게이머가 직접 경찰 노릇을 한다는 얘기도 들었다. 그 게이머가 선인이라면 몰라도 카오스 게이머라면 어떻게 될지 끔찍한 일이다.

    게이머들이 득세하는 세상에서 구세주라니, 나는 그게 어떤 것일지 직관적으로 와 닿지 않았다.

    “더 강한 게이머가 나타난 거지. 그가 기존에 나쁜 짓을 하던 게이머들을 제거하기 시작했어.”

    “네?”

    아무리 먼 나라라도 믿기 힘든 이야기다. 게이머가 법망 밖에서 능력을 사용하면 처벌받는다는 국제 규약을 고려하면, 마치 법과 제도가 존재하지 않는 판타지 세상에서나 벌어질 법한 이야기였다.

    물론 카오스 게이머를 수십 명 죽인 내 입장에서 따질 문제는 아니지만.

    “그에 대한 소문은 전설처럼 떠돌았어. 반신반의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었지만 실제로 부역자 게이머들이 사라지고 있었으니까. 권력자들은 그를 잡기 위해 세력을 규합하기 시작했지.

    그 무렵 나도 각성을 하게 됐어. 나는 원래부터 특이한 성격이라 가난하게 살았어도 돈이 먼저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지. 게다가 당장 돈으로 바꿀 만한 능력도 아니었고 말이야. 어쨌든 내가 가장 먼저 생각한 것은 소문으로만 듣던 그 구세주를 옆에서 돕고 싶다는 거였어. 내 능력을 십분 활용해서 그를 추적하는 데 성공했지.

    전설 속의 게이머는 거구의 남자였어. 산발을 하고 옷도 아무렇게나 입은 게 마치 원시인 같았지. 하지만 나는 그의 이야기에 완전히 매료되어 있었던 터라 외모 따윈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했어. 그의 앞으로 나서서 당신의 영웅적 행위에 도움이 되게 해달라고 부탁했어.

    그러자 그가 나를 보고 이를 드러내고 웃었지. 그리고 말했어. 도움이 되고 싶으면 내 손에 죽으라고.

    엄청난 살기를 느낀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곳에서 도망쳤어. 본능적으로 그렇게 했지만 곧 후회를 했지. 영웅이 그런 말을 한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 거야. 그때 나는 그만큼 그에게 매료되어 있었으니까.

    다시 한번 그를 찾았지만 전처럼 무턱대고 다가갈 수 없었어. 이번엔 신중하게 접근하기로 마음먹고 그의 행적을 따라갔지. 그러다 보게 됐어. 그가 게이머의 시체를 뜯어먹는 장면을…….”

    “네?”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제대로 들은 게 맞나?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는다고? 물론 몬스터가 그랬다면 이해할 수 있지만 게이머가 게이머의 인육을 먹었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힘든 이야기였다.

    마리아는 어쨌거나 이야기를 계속했다.

    “나는 그날 구세주의 실체를 보았어. 며칠 더 추적을 한 끝에 그가 게이머를 죽이는 진짜 이유를 알 수 있었지. 정의에는 관심이 없고 단지 강해지고 싶었던 거야. 블러드 스톤과 콜드 스톤에는 만족하지 못해 게이머의 시체를 고기처럼 섭취한 거지.”

    “음…….”

    나는 몇 가지 이해가 안 가는 것이 있었다. 게이머를 잡아먹는다고 자기 능력치가 오르나? 게다가 얘길 듣자니 블러드 스톤과 콜드 스톤도 흡수를 한 모양인데, 이 결정석은 상성이 맞지 않으면 부작용이 심하다.

    산발을 하고 다닐 정도로 이성적이지 않은 자가 그런 구분을 해가면서 결정석을 흡수했을 거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네가 하고 싶은 말이 뭔지 알아. 그 남자, 가브리엘은 무지했던 거야. 게이머를 먹으면 그 능력을 뺏을 수 있다고 착각한 거지. 그는 대단한 특이점을 가지고 있는데, 그건 바로 어떤 블러드 스톤과 콜드 스톤을 흡수해도 거부반응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점이야. 그런 점이 니콜라스가 불편함을 느끼면서도 그를 완전히 내치지 않은 이유지.”

    “아…….”

    나는 초기에 치른 카오스 게이머와의 싸움을 떠올렸다. 그는 자기 입으로 피스&호프에서 각종 연구가 진행 중이라고 했다. 그중 하나가 블러드 스톤과 콜드 스톤의 부작용을 없애는 것이었다.

    만약 연구가 성공한다면 게이머 계에 일대 혁신이 일어나게 될 것이다. 대규모의 동족상잔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보장할 수 없으니까.

    나는 그 연구 성과가 누구를 통해 나온 것인지 깨달았다.

    “그렇다면 니콜라스가 가브리엘을 투입한 이유를 더 모르겠는데요? 이러니저러니 해도 니콜라스한테 가브리엘은 중요한 자원 아닌가요?”

    “아니, 이미 뽑아낼 것은 다 뽑아냈어. 그렇지 않다면 브라질로 보내지도 않았겠지. 이제 가브리엘은 니콜라스에게 쓰기 편한 병졸이 되었을 뿐이야. 강함에 집착하기 때문에 어려운 임무라도 보상만 확실하다면 거부하지 않지. 만약 그 과정에서 죽는다 하더라도 니콜라스는 손해 볼 것이 전혀 없어.”

    이야기를 모두 들으니 마리아가 가브리엘에게 불편한 반응을 보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각성 초기였던 그녀에게 가브리엘은 일종의 트라우마가 되었던 것이다.

    이런 식으로 다시 대면하게 되었다는 것이 그녀의 입장에서는 얄궂은 일일 터.

    마리아가 불쑥 말했다.

    “저기, 길드장.”

    “네? 저 말인가요?”

    “너 아니면 누가 길드장인데? 노아는 여전히 내 직속 보스야. 프리랜서이기는 하지만 다른 사람 밑에서 일할 생각은 없으니까. 노아가 부길드장이고 네가 길드장이니까 나도 길드장이라고 불러야 맞지.”

    “……그런가요?”

    정식으로 길드에 들어온 것도 아니면서 이렇게 생각하다니.

    뭐, 이래저래 따지면 OG의 준길드원 정도는 된다고 볼 수 있긴 하지만.

    “나는 가브리엘이 이번에 한국에 오는 게 기회라고 생각해. 아직도 브라질 사람들은 그의 이중적 행위에 고통을 당하고 있어. 지금은 인육을 먹지 않지만, 그의 사고방식은 여전히 인간이 아닌 짐승에 가까우니까. 사람의 탈을 쓴 몬스터가 세상에서 반드시 사라졌으면 해.”

    나는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걱정 말아요, 마리아. 가브리엘은 곧 죗값을 치를 겁니다.”

    “음…… 오늘밤 우리 집에…….”

    “사양할게요!”

    나이를 따지자는 건 아니지만 소중히 간직해 온 순결을 50대 여성에게 뺏길 수는 없지.

    나는 전화를 끊고 생각을 정리했다.

    가브리엘이 어떤 게이머이고, 그의 성장이 왜 그토록 빨랐는지 이해했다. 만약 카오스 게이머를 죽이는 게 복싱이나 격투기 경기 같았다면 유튜브 동영상을 보며 약점을 연구했겠지만, 그건 불가능한 일이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단시간에 능력을 올려 그를 이길 만큼 강해지는 것이다.

    당연하게도, 빨리 성장하는 걸로 치면 나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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