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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왕 클리어러-175화 (175/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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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식왕 : 클리어러 175화

    Chapter 45 - 뒤바뀐 입장

    1

    셰릴의 집에 쳐들어와 카오스 게이머들을 죽이면서 레벨이 2 올랐다.

    그리고 지금 셰릴의 숨이 끊기며 행운 8짜리 콜드 스톤 하나와 블러드 스톤 한 개가 나왔다.

    블러드 스톤은 바로 S급 스킬 ‘트레이싱 비드’가 담긴 것이었다.

    그녀가 가지고 있던 또 다른 스킬인 ‘크레이지 핸드’도 나쁘지 않지만 다른 공격 스킬도 많이 가지고 있는 내 입장에서는 그리 탐나는 기술은 아니었다.

    드롭 확률이 35~40퍼센트에 불과한 ‘트레이싱 비드’가 나온 것이 행운이었던 셈.

    게다가 그녀가 이 기술로 나를 곤경에 빠뜨렸던 점을 생각하면 더욱 욕심나는 스킬이라고 할 수 있었다.

    [흡수할 수 있는 스킬입니다. 지금 흡수하시겠습니까?]

    나는 반사적으로 ‘응’이라고 대답하려다가 멈칫했다. 문득 그럴 듯한 생각 하나가 스쳤기 때문이다. 현재 플레이 중인 게임 시스템 중에는 스킬 합성이라는 것이 있다.

    혹시나 해서 시도해 봤는데 성공해서 나름대로 염두에 두고 있었던 시스템이다.

    ‘트레이싱 비드’가 검은 구슬을 생성해 상대를 추적하는 스킬이라는 사실을 생각해 보면, 이미 보유하고 있는 스킬 ‘추적’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고 볼 수 있었다.

    하나는 S급이고 하나는 B급 스킬이지만 두 개를 합치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궁금했다.

    용도가 같으니 굳이 비슷한 스킬을 두 개나 가지고 있을 필요도 없어 보이고.

    거기까지 생각했다가 아쉬운 마음에 짧은 웃음을 흘렸다.

    전에 스킬 합성을 했던 것은 두 개의 블러드 스톤을 합쳤던 것이다. 결정석으로 물질화한 스킬이기 때문에 아이템처럼 합성이 가능했던 것이다.

    때문에 이미 흡수해서 사용하고 있는 스킬인 ‘추적’을 블러드 스톤과 합성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았다.

    내가 블러드 스톤을 들고 입맛을 다시고 있을 때, 갑자기 메시지가 나타났다.

    [보유하고 있는 스킬은 스킬 스톤에 추출할 수 있습니다.]

    “뭐?”

    메시지가 의미하는 바는 명확했기 때문에 따로 고심할 여지가 없었다. 다만 내 마음을 꿰뚫어 본 것처럼 나타난 메시지에 당황스러운 기분이 컸다.

    메시지를 내보내는 누군가가 정말로 매시간 내 생각을 읽고 있거나, 아니면 단순히 표정만 보고도 심리를 꿰뚫을 만큼 눈치가 빠르다는 의미일 것이다.

    나는 웬만하면 후자이길 바랐다.

    ‘그렇단 말이지…….’

    스킬을 스킬 스톤에 담을 수 있다는 것은 새로운 블러드 스톤을 만들어 다른 블러드 스톤과 합성할 수 있다는 뜻이다.

    ‘참 콘텐츠도 풍부한 게임이야.’

    안타까운 점이라면 상황이 닥치기 전에 미리 시스템을 일러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매뉴얼이나 공략집도 없는 게임이니 그냥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으로 헤쳐 나가는 수밖에 없다.

    나는 인벤토리에서 블러드 스톤을 한 개 꺼냈다. 흡수할 수 없거나 흡수할 가치가 없는 블러드 스톤은 이렇게 인벤토리에 보관하고 있었다.

    사실 블러드 스톤을 거래해야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돈이 쪼들리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습관적으로 이렇게 할 뿐 별로 써먹어야겠다는 생각은 안 하던 물건이었다.

    ‘고스트’ 스킬이 담긴 블러드 스톤. 제법 자주 나오는 물건이지만 흡수할 수도 없거니와 흡수한다 하더라도 크게 가치가 있다고 보기 힘든 스킬이었다.

    고스트를 소환해 부리느니 차라리 분신술을 쓰거나 검은 소환술을 사용하는 것이 낫다.

    ‘아무튼…….’

    나는 블러드 스톤을 들고 지그시 노려보았다.

    “‘추적’을 추출하겠다.”

    방법을 모르니 그냥 되는 대로 뱉어본 것. 하지만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스킬 ‘고스트’를 ‘추적’으로 대체합니다. 맞습니까?]

    “그래.”

    들고 있던 블러드 스톤에서 붉은 에너지가 증기처럼 뿜어져 나왔다. 그것이 연기처럼 허공에 흩어지고, 곧 내 팔뚝을 타고 새로운 기운이 빠져나갔다.

    뻗어 나간 기운은 퇴색된 블러드 스톤에 다시 붉은빛을 되돌려 놓았다.

    나는 새 스킬이 담긴 블러드 스톤과 셰릴에게 얻은 블러드 스톤을 나란히 바닥에 놓았다.

    메뉴창을 열어 합성을 선택했다.

    S급 패시브 ‘손재주’를 갖고 있으므로 처음 시도하는 레시피더라도 크게 걱정이 되지 않았다.

    리드미컬한 음악이 진행된 뒤, 환한 빛이 터졌다.

    [합성에 성공했습니다!]

    두 개의 블러드 스톤이 합쳐져 한 개의 블러드 스톤이 되었다. 단순히 생각하면 손해라고 볼 수 있는 상황.

    게다가 한 개는 S급 스킬이었으니 단순히 금전적인 의미에서만 따지면 손해가 분명했다.

    하지만 돈보다 중요한 것이 바로 두 개가 합쳐져 어떤 스킬이 만들어졌느냐 하는 것.

    나는 망설임 없이 새 블러드 스톤을 손에 들었다.

    [‘추적+’는 흡수할 수 있는 스킬입니다. 지금 흡수하시겠습니까?]

    ‘추적……?’

    의외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기술의 유니크함이나 등급을 따져 보면 당연히 ‘트레이싱 비드’가 우위일 줄 알았는데, 기술명만 봤을 땐 ‘추적’이 ‘트레이싱 비드’를 집어삼킨 것 같은 결과였기 때문.

    나는 스킬을 흡수한 뒤 정보창을 열어보았다.

    [추적+]

    타입 : 액티브

    등급 : S

    레벨 : 100/100(Max)

    효과 : 마나를 구슬로 형상화해 지정한 대상을 추적할 수 있다. 구슬은 생성한 개수만큼 저장 용량이 나누어지며 대상과의 거리가 멀어질수록 전송하는 영상의 선명도가 떨어진다.

    최대 구슬 생성 개수 : 10

    최대 기억 저장 용량 : 100시간

    ‘역시…….’

    이름에서 얻은 인상과는 달리 ‘트레이싱 비드’ 특성이 더욱 강하게 반영된 스킬이다.

    셰릴이 이 구슬로 나를 추적했던 것을 되새겨 보면 아마 던전 안까지 들어가는 것이 가능할 것이고, 나보다 레벨이 높은 능력자를 상대로도 들키지 않고 발동될 가능성이 크다.

    “좋아.”

    가능하면 퀘스트 보상인 넘버링 아티팩트도 확인하고 싶었으나 남의 집에 무단으로 들어온 마당에 너무 여유를 부릴 수도 없었다.

    셰릴의 시체가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 그녀의 옷가지를 수습했다. 그리고 목숨이 끊어진 나머지 카오스 게이머들의 옷도 수거하여 누가 죽었다는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일반 경호직원들은 잠이 들어서 적어도 대여섯 시간은 깨지 않을 것이다.

    나는 예정된 대로 노아에게 전화를 걸었다.

    잠시 후 노아가 반가운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성공하셨군요!”

    말투에 여유가 있는 게 실패할 가능성은 전혀 염두에 두지 않은 듯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집 안에 두 사람이 들어왔다. 이미 안팎에 있는 방범 설비를 모두 불능 상태로 만들어두었기 때문에 누구의 모습도 노출될 우려는 없었다.

    노아와 동행을 한 것은 30대로 보이는 여성이었다.

    외견만 보아서는 그다지 게이머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다소 짙은 화장에 굴곡진 몸매가 드러나는 의상을 입어서 꾸미기 좋아하고 활달한 남미 여성처럼 보일 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미 들은 얘기가 있어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분이시군요.”

    “이름은 마리아. 저를 따라서 한국에 온 게이머 중 한 명입니다.”

    이로써 노아의 동료는 네 명째 모습을 보이게 되었다.

    게이머인 카일과 캐미, 그리고 사업적인 수완이 뛰어난 게이먼까지 모두 특출하고 개성이 뚜렷한 인물들이다.

    그렇지만 나는 오늘 처음 만난 마리아가 개중에서도 가장 독특한 인물로 여겨졌다.

    카일이나 캐미가 훌륭한 게이머이기는 하지만 그 자체로 아주 특별하다고 말하기는 어렵고, 게이먼은 능력이 좋은 일반인일 뿐이다.

    마리아는 노아 밑에서 이들과 전혀 다른 임무를 맡고 있었다.

    나는 그녀를 마주하고 내심 매우 놀랐다. 이유는 투시자의 눈이 발동하지 않았기 때문.

    S급에 만렙인 스킬인데, 이런 경우가 있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마리아는 흠칫 몸을 추스르더니 나를 보고 흥미롭다는 눈빛을 띠었다.

    “재미있는 애네?”

    그녀가 내뱉은 것은 억양과 발음이 완벽한 한국어였다. 말의 내용으로 보아 내가 스킬을 썼다는 걸 알고 정보가 내비치지 않게 막은 것 같았다.

    이론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 아니겠으나, 이 일이 가능하려면 나보다 레벨이 높고 투시자의 눈보다 뛰어난 차단 스킬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게 아니면 고급 패시브나 장비를 지니고 있어 저절로 자기를 보호할 수 있든지.

    어떤 가정이라도 놀랄 만한 첫인상을 남긴 여자임에는 틀림없었다.

    “……네가 조성오구나.”

    마리아는 여유 있는 태도로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노아가 멋쩍게 말했다.

    “미안해요, 성오 씨. 마리아는 한국의 예절에 익숙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보기와 달리 50대니까 이해해 주세요.”

    “오~ 노아! 나이를 말하면 어떡해?”

    마리아는 토라진 표정으로 입술을 오므렸다.

    나는 노아의 말에 깜짝 놀랐다. 아무리 많이 봐도 30대 중반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데, 50대라니…….

    반사적으로 남미 여자는 참 섹시하구나 하고 생각했던 게 무색해졌다.

    마리아는 내 옆으로 오더니 대뜸 팔짱을 끼었다.

    “나이와 국경은 남녀 사이에 전~혀 의미가 없는 거야. 알고 있지?”

    고혹적인 눈빛으로 바라봐도 나는 그저 난감할 뿐이다.

    뒤에서 잠자코 있던 암젤이 발끈했다.

    “할머니! 그 팔 치우시지?”

    할머니라는 말에 마리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하지만 그 말을 한 게 암젤이라는 사실을 알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오! 귀여운 아가씨! 당신에겐, 음…… 특별한 게 느껴져.”

    마리아는 잠시 생각하다가 밝은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래, 고양이! 고양이 같아. 야~옹!”

    “헉!”

    이곳 세상에 나와서 단번에 정체를 들킨 것은 처음이기 때문에 암젤은 자기도 모르게 숨을 삼켰다. 놀란 것은 그녀뿐만이 아니라 다른 OG멤버들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나는 마리아가 고양이라고 한 것이 묘족이라는 것을 완벽히 꿰뚫어보고 한 말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노아가 묘하게 깨달음을 얻은 표정을 짓고 있다는 게 신경 쓰이기는 하지만.

    등장한 지 일 분 만에 분위기를 휘어잡은 마리아가 내 팔을 흔들며 소녀처럼 웃었다.

    “시작하죠.”

    노아가 말하자 마리아가 즉시 자신의 스킬을 사용했다. 외형이 급속도로 변하더니 금세 익숙한 누군가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나는 섬뜩한 기분에 얼른 팔을 빼냈다. 마리아가 어느새 셰릴과 똑같은 모습이 되어 있었기 때문.

    “오! 그러지 마, 성오. 누나가 안 잡아먹을게.”

    목소리 또한 셰릴의 것과 백 퍼센트 같았다. 이 정도 변신 능력이라면 자기 모습을 젊게 유지하는 것 정도는 별것 아닐 수도 있다.

    내 생각을 눈치챈 듯 마리아가 불퉁하게 말했다.

    “쓸데없는 추측은 말아줘. 나는 원래 동안이야.”

    ‘네, 그러시겠죠.’

    사라진 셰릴의 자리를 우리 편으로 메꾸는 것. 그것이 노아와 내가 꾸민 계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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