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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왕 클리어러-174화 (174/245)

# 174

독식왕 : 클리어러 174화

9

나는 베어져서 피가 흐르는 옆구리를 잡고 한숨을 토해냈다.

힘든 싸움이 되리라고 짐작은 했지만 역시 셰릴의 그림자 집단은 전투력이 막강했다.

특히 타이론은 신체 강화와 웨펀 형의 멀티 능력자에 레벨도 150을 상회해서 그야말로 귀신같이 강하다는 말이 적절했다.

수십 마리 몬스터와 던전마스터까지 합세했는데도 싸움이 끝나기까지는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부상을 당한 부위도 상당했다. 옆구리뿐 아니라 몸 전체가 너덜너덜할 지경이었다.

내 상태가 이럴진대 다른 멤버들은 말할 것도 없다. 전원 무사하게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 다행이었다.

평소에 포션을 넉넉히 가지고 다닌 것이 그나마 주효했던 셈이다.

파티원 중 가장 멀쩡한 것은 수보타였다. 싸움 중에 비명은 가장 많이 질러댔지만 불사신 능력에 신체강화 능력까지 겸비한 터라 실질적 대미지는 전혀 받지 않았다.

그가 내게 서둘러 뛰어와서 물었다.

“괜찮으십니까? 주인님!”

“응, 나보다 다른 멤버들을 챙겨줘.”

나는 가지고 있던 포션 몇 개를 그에게 건네고 하나는 내가 마셨다.

포션을 마시고 휴식을 취하니 벌어졌던 상처 부위가 빠르게 아물었다.

이번 싸움으로 얻은 소득은 비단 셰릴의 팔다리를 잘라냈다는 데에만 그치지 않는다.

내 레벨은 싸우는 동안 135에 이르게 됐다. 더불어 열다섯 개가량의 콜드 스톤도 흡수했다.

물론 블러드 스톤도 몇 개 나오기는 했으나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스킬들에 견주어 더 좋다고 할 만한 것은 없었다.

다만 매지션 능력자에게 나온 ‘힐’이나 ‘피어’ 등은 아린과 암젤, 그리고 칼리타의 스킬 능력을 업그레이드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신체 강화’ 스킬이 두 개 나와서 하나는 수보타에게, 하나는 트레앙에게 주었다.

카오스 게이머들의 시체가 천천히 녹아서 사라져 갔다.

여러 명의 카오스게이머를 죽였는데도 퀘스트 달성 메시지가 나타나지 않은 것은 역시 퀘스트가 요구하는 ‘집단’의 개념이 이것보다 크다는 의미였다.

‘절반은 해결됐군.’

셰릴의 경호를 맡은 인물들의 중축은 타이론이었다. 오늘 죽인 카오스게이머들 모두 그의 명을 받고 있었고, 더불어 경호 팀 전력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자들이기도 했다.

물론 카오스 게이머 닷컴에 프살무스에 대한 루머를 퍼뜨려진 것은 나와 노아의 작품이다.

노아는 길드를 떠났지만 여전히 카오스 게이머 닷컴의 생리를 잘 알고 있고, 더불어 그것을 이용하는 법도 알았다.

나는 지쳐 있는 멤버들을 보며 생각했다.

‘너무 시간을 끌어서는 안 돼.’

시간을 끈다는 것은 곧 셰릴이 타이론을 비롯한 자기 부하들이 사라졌다는 것을 인지할 시간을 주는 것이고, 추가 인원을 경호에 배치할 틈을 제공하는 것이다.

‘무리를 해서라도 오늘 밤에!’

칼을 뽑은 김에 오늘 당장 셰릴의 집에 쳐들어가기로 했다.

10

셰릴은 일과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다.

쇄도하는 인터뷰 요청을 거절하는 것은 자체로 매우 피곤한 일이었다.

더구나 거절을 하면 할수록 니콜라스와 자신의 관계를 인정하는 꼴이 되었다.

이 일은 현재 해외에서도 관심을 갖고 보도되기 시작했다.

단순히 한국에서 기사가 터진 것만으로는 대단찮은 일일 수 있으나 유튜브에까지 빼도 박도 못할 결정적 증거가 남겨진 것이다.

피스&호프 본사에서조차 적절한 대응을 내놓지 못했다.

‘빌어먹을!’

셰릴은 입술을 짓씹었다. 이럴 줄 알았다면 쓸데없이 신중하게 행동하는 대신 한국에 온 즉시 조성오와 노아를 제거하는 것이 나았을 텐데.

물론 이것은 결과론적인 생각이다. 자신의 성격상, 그리고 상황이 흘러갔던 것을 볼 때 시간을 되돌린다 해도 다르게 행동할 거라는 보장이 없었다.

더구나 그 과정에서 밝혀진 불가사의한 사실은…….

그것은 단순히 거대 길드에서 중책을 맡고 있는 게이머로서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도 굉장한 호기심을 자아냈다.

일개 게이머에게 몬스터들이 몸을 낮추고, 게다가 수수께끼 같은 공간으로 들어가 상당 기간 돌아오지 않기도 했다.

어쩌면 이제까지 누구도 밝혀내지 못했던 던전과 게이머의 존재에 관한 비밀에 접근하는 열쇠가 될지도 모른다.

“음…….”

셰릴은 그러나 그런 사실에 무관하게 마음이 매우 무거웠다. 자신의 게이머로서 인생은 한 사람을 빼놓고는 생각할 수 없다.

니콜라스.

그와 함께 성장을 하고, 미래를 꿈꾸고, 또 불완전하기는 하나 사랑도 했으니까.

그와의 관계가 무너진다는 것은 자신의 입장에서는 정체성 자체가 무너지는 것과 같았다.

맡은 임무를 제때 해내지 못한 것은 비교적 괜찮다. 그러나 밀회 보도가 터진 것은 굉장히 치명적인 일이었다.

니콜라스는 결벽증에 가까운 성격을 가지고 있다. 적어도 그의 계획에 자신과의 연애나 결혼 따위는 포함되어 있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골치 아픈 방해 요소로 여길 가능성이 크다.

‘노아…….’

셰릴의 얼굴에 분노가 드리웠다.

신경질적인 태도로 집 안으로 들어서던 그녀는 문득 오늘따라 경호원의 수가 대폭 줄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따라오던 비서를 돌아보고 물었다.

“오늘 경호가 왜 이 모양이지? 타이론은 왜 안 보이고?”

“그게…….”

비서의 우물쭈물하는 태도에서 셰릴은 뭔가 안 좋은 일이 일어났음을 직감했다.

타이론은 자신과 운명공동체이다. 타이론 본인이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으므로 웬만해서는 경호에 빈틈을 드러낼 리가 없었다.

비서가 긴장된 음성으로 말했다.

“오후부터 연락이 되지 않습니다.”

“뭐? 어디에 있는데?”

“확인된 스케줄로는 던전에 들어간 걸로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돌아왔다는 보고는 아직 없었습니다.”

셰릴의 이맛살이 구겨졌다.

“어느 던전에 들어간 건지, 몇 명이나 들어갔는지, 특이사항은 없는지 보고하도록 해.”

“네.”

“십 분 주겠어.”

샤워를 마친 셰릴은 잠시 고민하다가 편한 옷을 입는 대신 게이머용 방어구를 착용했다. 그녀는 비서의 보고를 기다리면서 나름대로 생각을 해보았다.

가장 심증이 가는 것은, 그리고 가장 확실해 보이는 가정은 이 일이 조성오와 관련돼 있을 거라는 것이었다.

타이론이 비록 실력이 뛰어난 게이머이기는 하나 조성오라는 불확실성 앞에 놓이면 무엇도 안심을 할 수 없다.

그때 비서가 들어왔다. 십 분이라는 시간을 맞추기 위해 서두른 기색이 역력했지만, 셰릴은 그녀가 숨을 고를 여유도 주지 않고 물었다.

“어떻게 됐지?”

“오늘 타이론이 들어간 던전은 한강 인근의 빙하 던전입니다. 그곳 던전마스터에 대한 새로운 정보가 들어와 확인 차원에서 인원을 급히 충원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아무도 돌아오지 않았다는 건가? 조성오는, 혹시 조성오가 오늘 거기 들어간 일이 있나?”

비서는 들고 있던 태블릿으로 몇 가지를 확인하더니 자신 있게 말했다.

“아닙니다. 적어도 오늘은 없습니다.”

“‘오늘은’이라니?”

“전에 공략을 했던 기록은 있습니다만 근 몇 주간은 이 던전에 들어간 기록이 없습니다. 따라서 오늘 일과는 무관하다고 보는 것이…….”

“누가 너더러 결론까지 말하라고 했어?!”

결국 셰릴은 참지 못하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당장 경호 인원을 보충해! 경계 범위도 최대로 늘리고!”

“네! 알겠습니다! 지부장님.”

그때 방 안의 불빛이 훅 꺼졌다. 비단 이 방뿐만 아니라 집의 모든 전기 시설이 한꺼번에 차단된 듯했다. 금방 비상 전력이 들어오기는 했지만 이 일은 자체로 커다란 불안감을 조성했다.

“제길!”

셰릴이 몸을 일으키고 자기 앞에 있던 비서를 거칠게 밀었다. 지금 그녀의 머릿속에는 빨리 이 집을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만이 가득 찼다.

방을 나간 그녀는 빠르게 통로를 가로질렀다. 쓸데없이 큰 집이 오늘따라 거추장스럽기 그지없었다.

그녀의 귀에 불안한 소리들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근접전을 치를 때 나는 무기 부딪치는 소리와 스킬 터지는 소리, 그리고 비명 소리가 교차해서 들려왔다.

패닉에 빠진 그녀는 재빨리 스킬을 사용했다.

검은 구체가 만들어지고, 작게 쪼개져서 분열을 했다. 그것으로 침입자가 누구인지 밝혀내고 퇴로를 확보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스킬을 날려 보내기도 전에 무거운 충격이 뒤통수를 덮쳤다.

“헉!”

바닥에 넘어진 그녀는 의식이 가물거리는 것과 함께 누군가의 대화소리를 들었다.

“이런 약한 여자한테 붙잡혀 있었다는 말이냐옹? 주인님, 실망이다옹.”

“그땐 사정이 있어서 어쩔 수 없었어. 너도 알면서 그래.”

들었던 적이 있는 목소리라 누구 것인지 구분하기 어렵지 않았다.

“조, 조성…….”

거기까지 중얼거리고 셰릴은 완전히 의식을 잃었다.

11

셰릴의 집에 침입하는 일은 생각만큼 어렵지 않았다.

물론 타이론을 비롯한 경호의 핵심 멤버를 미리 제거한 탓이 크지만, 더불어 티코이와 노아가 방범 설비를 무력화한 것도 큰 도움이 되었다.

나는 경호원들을 둘로 구분했다.

카오스 게이머와 일반 직원들.

노아의 말마따나 구성원의 숫자는 일반 직원 쪽이 많았다. 나는 그들은 기절만 시키고, 카오스 게이머들은 모두 죽였다.

괜히 카오스 게이머가 아닌 터라 하나같이 살인이나, 그에 준하는 범죄를 저지른 놈들이었다. 괜히 동정심을 가질 필요가 없는 것이다.

기절시킨 일반 직원들을 한 방에 집어넣고 정신을 차리도록 했다.

기억 삭제 스킬을 걸어 기억을 지운 뒤, 일주일간 잠을 못 잔 것으로 조작했다. 그러자 하나같이 금세 쿨쿨 잠에 빠져들었다.

마지막으로 한 일은 정신을 잃은 셰릴을 포박하고, 그녀가 깨어나길 기다리는 일이었다.

오 분이 지나도 깨어나지 않자 암젤이 뺨을 후려쳤다.

“으으…….”

세릴은 천천히 눈을 뜨더니 곧 공포에 질린 얼굴로 크게 숨을 삼켰다.

“허억!”

나는 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어때? 반대 상황이 될 줄은 몰랐지?”

“……빨리 나를 죽여라!”

“그럴 수는 없지. 너를 죽인다고 끝나는 게 아니니까. 분명 니콜라스에게도 보고를 했을 거야. 꿍꿍이가 있다면 지금 털어놓으시지.”

“바보로군. 어차피 나는 이제 잃을 것이 없다. 목숨이나 부지하려고 네놈에게 정보를 흘릴 줄 아느냐?”

“역시, 예상대로.”

나는 뒤쪽에 서 있던 트레앙에게 눈짓을 보냈다. 붉은 머리칼의 근육질녀가 한 방의 주먹질로 셰릴을 다시 기절시켰다.

십 분 뒤. 셰릴은 눈을 떴다.

그녀는 곧 자기가 처한 상황을 깨닫고 절망감을 느꼈다.

“응?”

하지만 하얘졌던 시야가 다시 밝아졌을 때 눈에 들어온 것은 전혀 예상치 못한 장면이었다. 좁은 방 안에서 조성오가 누군가와 싸우고 있었던 것.

피투성이가 된 그는 고전을 하고 있었고, 반면 그와 맞선 상대는 평온해 보였다.

가볍게 조성오의 목을 낚아챈 뒤, 우드득 뼈를 부수어버렸다.

조성오가 눈알이 뒤집어져 바닥에 나뒹굴었다. 이제 보니 방 안 여기저기에는 OG 멤버들의 시체가 깔려 있었다.

조성오를 죽인 남자가 특유의 무뚝뚝한 음성으로 물었다.

“괜찮아? 셰릴?”

차가운 말투였지만 내용은 따뜻하기 그지없다.

“니콜라스…….”

셰릴의 눈에서 왈칵 눈물이 고였다.

“이런…….”

니콜라스의 손이 셰릴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혼자 보내는 게 아니었는데, 너만 고생시킨 것 같아 내 마음이 찢어지는군.”

“니콜라스……. 지원을 보낸다는 건 어떡하고 직접 오셨나요?”

“지원?”

“네, 가브리엘을 보내신다고…….”

“음, 그렇군.”

세릴은 순간 가슴이 싸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방구석에서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고양이를 발견했다.

눈이 새빨갛게 빛나고 입가에는 조소를 띤.

“제길!”

깨달은 순간 환상이 부서졌다. 파편처럼 깨어진 환각이 시체 대신 멀쩡하게 살아 있는 조성오와 OG 멤버들을 소환했다.

“그렇군. 가브리엘이라는 놈이 오기로 했단 말이지?”

“윽……. 비, 비겁한…….”

“네 입에서 비겁이라는 말이 나오다니, 정말 낯짝도 두껍구나.”

나는 손에 들고 있던 창으로 셰릴의 가슴을 찔렀다.

푹-

심장이 터지는 감각이 손 안에 전해지고, 동시에 반가운 메시지가 떠올랐다.

[퀘스트 ‘명예 – 카오스 게이머 집단을 하나 이상 궤멸시켜라.’를 완수했습니다.]

[보상으로 랜덤 보상 상자(넘버링 아티팩트 전용)를 얻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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