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식왕 클리어러-173화 (173/245)

# 173

독식왕 : 클리어러 173화

7

니콜라스와 셰릴의 관계를 폭로하는 기사를 제보한 노아는 이어서 내게도 정보를 제공했다.

피스&호프 한국 지부의 조직도.

셰릴이 지부장으로 오면서 한국 지부의 인사는 상당 부분 변화를 겪었다.

외부에서 볼 때는 크게 바뀐 것이 없지만 셰릴을 따라 이동한 그림자 조직이 추가된 것이다.

그들은 카오스 게이머 닷컴 쪽 일과 정보 수집, 경호 등을 맡고 있었다.

현실적으로 그들만 도려낸다면 셰릴이 민낯을 드러내는 것이나 다름없다.

“생각보다 더 쉽지 않을 것 같네요.”

노아가 자료를 들여다보고 있는 내게 말했다.

자료에는 셰릴의 한국 거주지와 스케줄, 경호 시스템과 보안 설비에 대한 개략적인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다.

“보안 시스템이 훌륭하다는 것은 역으로 우리에게 유리합니다. 지부에 있을 때나 일반 스케줄을 소화할 때는 빈틈이 있는 반면 다른 사람들의 눈에 노출될 위험도 크니까요.”

“셰릴을 잡으려면 집으로 들어가는 게 가장 쉽다는 거네요.”

“네, 다만 경비 수준이 삼엄하다 못해 요새 수준입니다. 물론 일반적인 보안 설비는 영호 씨나 제가 충분히 뚫을 수 있지만, 핵심은 사람입니다. 셰릴 옆에는 실력 있는 게이머가 즐비하니까요.”

“흐음…….”

나는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물론 나나 파티원들, 거기에 카일, 캐미까지 합세한다면 어느 곳에 쳐들어가도 일방적으로 밀리지 않을 것이다.

다만 이 일은 가급적 적은 희생으로, 속전속결로 끝내야 한다.

침입이라는 성격상 시간이 지연될수록 적의 숫자가 많아질 것이고, 혹시라도 OG 멤버들이 피스&호프 한국 지부장 집에 쳐들어갔다는 사실이 알려진다면 상황이 복잡해지는 수준을 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떠올라 노아에게 물었다.

“경호를 맡은 인물이 전부 카오스 게이머 닷컴 쪽 사람은 아니지 않나요?”

“네, 그들이 중추이기는 하지만 대부분은 일반 직원이죠. 피스&호프 특성상 인사가 이원화되어있고, 카오스 게이머 닷컴 쪽까지 관여하고 있는 인물은 비율 면에서 훨씬 적습니다.”

“하지만 그쪽 게이머들이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거죠?”

“네, 겪어봐서 알겠지만 강해지기 위해서는 합법, 비합법의 경계를 따지지 않는 사람들이니까요.”

“음.”

잠시 고민하던 나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면 일단 카오스 게이머 닷컴 쪽 게이머들부터 제거하면 되겠네요.”

“방법이 있습니까?”

노아의 물음은 백 퍼센트 궁금해서 묻는다기보다는 반쯤은 이럴 줄 알았다고 예상한 태도였다. 보기에 따라서 조금은 즐기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지금 보니 경호를 담당한 카오스 게이머 닷컴 쪽 인물들은 백 퍼센트 그 일만 하는 게 아니네요.”

“기본적으로 그들의 임무는 복합적입니다. 한국에 왔으니 이곳 던전에서 필요한 정보나 아이템을 얻는 일을 하겠지요. 쉴 틈 없이 사냥을 하고, 강해지려는 동기가 강한 인물들이기도 합니다.”

“강해져야 눈에 띄고, 눈에 띄어야 아이템 하나라도 더 얻어먹을 테니까요.”

“정확합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이들이 어디 던전에 들어갈 예정인지 알 수 있을까요?”

“그 정도야 간단하죠.”

노아는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다른 자료를 내밀었다. 이것도 마치 내 요구를 미리 알고 있었던 것 같은 태도이다.

나는 그 자료를 훑어보던 중 반가운 내용을 발견했다. 잠시 생각하고, 노아에게 말했다.

“이렇게 하는 건 어떨까요?”

8

타이론은 부하들을 돌아보고 말했다.

“준비해라.”

그의 말 한마디에 십여 명의 게이머가 저마다 마나를 발현하고 전투욕을 고취시켰다.

그들이 있는 곳은 과거 한강 공원이었던 자리에 위치한 빙하 테마의 던전이었다.

원래부터 이곳을 공략할 계획이기는 했으나 하루 전 급히 인원이 충원되었다. 이유는 카오스 게이머 닷컴 안에서 특이한 정보가 나돌았기 때문.

빙하 테마 던전에 등장하는 마스터급 몬스터 프살무스를 일정 시간 안에 죽이면 유니크한 결정석이 나온다는 얘기였다.

일정 시간이라는 것이 어느 정도인지 특정되어 있지 않고, 유니크한 결정석이라는 것도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언급이 없었지만, 사이트의 특성상 이곳에서 오가는 정보는 60퍼센트 이상의 정확도를 갖고 있었다.

카오스 게이머 닷컴은 세계에서 가장 큰 암거래 사이트인 동시에 가장 많은 정보가 오가는 커뮤니티이기도 했다.

피스&호프의 저력은 비단 사이트 운영을 통한 부의 축적에서만 오지 않는다. 고급 정보를 선점하여 얻는 메리트가 큰 부분을 차지했다.

정보는 돈이 되기도 하지만 나아가 권력을 제공하기도 한다. 그들은 뜬소문의 진실을 확인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고, 그렇게 확인된 정보는 원하는 권력을 얻는 데 활용되었다.

각국의 정부와 기업, 언론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핵심이 여기에 있다.

프살무스가 등장하는 빙하 던전은 생각만큼 많지 않았다. 그중 한 곳이 대한민국 서울에 있고, 이곳에 다행히 피스&호프의 지부가 있었다. 카오스 게이머 닷컴에서 얻은 정보니까 이를 확인하는 임무는 카오스 게이머 닷컴 측 인원들이 맡게 되었다.

타이론은 셰릴의 그림자 조직에서도 우두머리급이었다. 그녀의 경호를 총괄하고 있고, 동시에 셰릴을 제외하면 지부 내에서 가장 높은 지위에 있는 인물이기도 했다.

최근에 상황이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기는 하지만 그는 큰 걱정을 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얻은 정보만 보면 OG의 능력은 대단치 않다. 멤버 숫자도 적고, 던전 공략보다는 사업에 목적을 두고 만들어진 집단에 가깝다.

아직 많은 부분이 불명이기는 하나 거기에 큰 반전이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누구보다 오랜 실전 경험을 가지고 있는 그는 확신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자체로 두려움을 자아내지만, 결국은 상식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법이라고.

던전과 게이머의 존재도 처음에는 혼란을 낳았지만 이제는 모두 일정한 상식의 범주 안에 묶이게 되었다.

조성오가 특이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알겠으나 피스&호프와 반목을 하게 된 순간 목숨을 잃는 것은 경각에 놓인 것이나 다름없는 처지였다.

그런 생각이 오늘도 경호보다는 루머의 진실 여부를 확인하는 데 무게를 두게 했다. 셰릴이 일반 스케줄을 소화하는 낮 동안은 OG도 함부로 움직일 수 없을 거라는 계산도 포함된 결정이었다.

프살무스가 등장하는 던전은 C급이다. 루머를 단번에 확인하기 위해서는 최대한 빨리 던전 마스터를 죽이는 것이 나을 것이었다. 때문에 셰릴의 그림자 조직 중 절반 이상을 이번 임무에 포함시켰다.

이미 이곳을 공략한 경험이 있는 직원들이 나서서 최상층으로 안내했다. 워낙에 강한 멤버들로 구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던전 마스터로 향하는 것은 일방통행으로 쭉 뚫려 있는 길을 걷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쿠구구구…….

거대한 백곰형 몬스터가 신형을 드러냈다. 일정 등급 이상이 아니면 명함도 내밀지 못하는 강력한 몬스터이지만 이곳에 모인 멤버들에게는 크게 경계할 거리가 되지 못했다.

타이론이 본인 특유의 무기인 대도에 마나를 흘려 넣으며 중앙에 서고, 나머지 멤버들이 반원형으로 늘어섰다.

곧 프살무스가 몸을 곧추세우고 돌진했다.

“크와아앙!”

타이론은 제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않은 채 도를 머리 위로 치켜든 뒤 힘차게 내리그었다.

“크앙!”

프살무스의 가슴팍에 대뜸 긴 혈흔이 그어졌다. 무섭게 전진하던 던전 마스터가 주춤거렸고, 기다렸다는 듯 나머지 멤버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포화를 터뜨렸다.

“크와와!”

“크와아앙!”

비명은 일방적으로 프살무스에게만 터져 나왔다. 어렵지 않은 마스터전이었지만 타이론은 시간을 유념하여 집중을 놓지 않았다.

‘십 분.’

그는 마음속으로 세운 기준을 넘지 않기 위해 마나를 끌어모았다.

“비켜!”

타이론의 일갈에 멤버들이 약속이나 한 것처럼 몸을 뒤로 뺐다.

생물처럼 뻗어 나간 마나가 백곰의 몸뚱이를 깔끔하게 갈라 버렸다.

무기를 거두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9분 50초.’

다행히 기준을 넘지 않았다.

이제껏 일정시간 안에 마스터를 죽이면 특정한 아이템이 나온다는 얘기는 적지 않았다. 그런 루머 중 절반가량이 사실이었고, 기준은 저마다 달랐다.

이제껏 가장 빠른 제한 시간이 십오 분이었다. 다시 말해 십 분이면 가장 빠른 기준을 3분의 1이나 웃도는 것이었다.

만약 이번에 카오스게이머닷컴에 떠돈 정보가 진실이라면 반드시 그 유니크한 결정석이 나와야 한다.

“확인해라.”

타이론의 말에 서너 명의 멤버가 달려들어 사라져 가는 프살무스의 사체를 뒤졌다. 그들은 한참 동안이나 확인한 끝에 고개를 내저었다.

“후우…….”

타이론은 짜증스러운 한숨을 토해냈다. 어차피 던전을 공략하는 일이 본업이나 마찬가지니, 허탕을 쳐도 크게 손해 볼 것은 없다. 다만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했을 때 보상이 주어지는 공식은 어느 집단이든 마찬가지였다.

그는 셰릴에게 속한 몸이고, 셰릴의 성과에 자신의 입지도 정해지는 위치에 있었다.

한국 지부에 오게 된 일이 상식 밖이기는 했지만 역으로 큰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흐름대로라면 기회는커녕 위기가 될 확률이 높았다.

이번 공략이 그동안 받은 스트레스를 조금은 상쇄하길 바랐건만…….

그뿐만이 아니라 모든 멤버의 얼굴에 허무감이 드리웠다.

“철수하자.”

타이론의 명령에 카오스 게이머 닷컴 멤버들이 걸음을 옮기려 할 때였다. 갑자기 안쪽에서 한 무리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앳된 외모의 남자 하나와 고양이 한 마리, 그리고 하프를 손에 든 여자.

타이론은 자기 눈을 의심했다.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 헛것이 보이는 건가?

앳된 남자가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놀랄 것 없어. 네가 생각하는 게 맞다. 내가 바로 조성오야.”

패닉의 순간. 하지만 타이론은 산전수전을 모두 겪은 베테랑이었다.

그의 얼굴에 곧 잔인한 웃음이 번졌다.

“빙고.”

마음 같아서는 언제든 조성오를 포한한 OG 멤버들을 찾아가 도륙해 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무슨 이유인지 셰릴은 이번 일을 복잡하고 신중하게 끌고 갔고, 그럴수록 상황이 나빠졌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모르겠으나 이 상황은 누가 보더라도 조성오가 자신들을 기습한 것이었다.

그를 죽이더라도 정당한 대응을 한 것에 불과하다. 조금 전 프살무스의 사체 속에서 결정석을 발견하지 못한 아쉬움이 몇 배의 기쁨으로 되돌아왔다.

“무슨 생각하는지 아는데, 한국에 이런 말이 있거든? 김칫국부터 마시지 마라.”

두두두두-

갑자기 공간이 진동을 했다.

타이론을 포함한 카오스 게이머들은 급히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뒤에서도 한 무리의 게이머가 다가오고 있었다.

붉은 머리칼에 큰 키를 가진 여자와 은발을 늘어뜨린 차가운 분위기의 여자, 그리고 게이머가 맞는지 의심스러움 점잖은 인상의 노인까지.

그보다 더 시선을 끄는 것은 뒤를 이어 몰려오고 있는 수십 마리의 몬스터였다. 그 몬스터들이 이곳 던전에 등장하는 종이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다만 상식적으로 공략이 끝난 상태에서, 그것도 등 뒤에서 무더기로 공격해 온다는 것은 맞지 않는 일이었다.

게다가 이 그림은 마치…….

몬스터들이 OG와 한 편인 것 같은 느낌을 주고 있지 않은가?

“쿠와아앙!”

갑작스럽게 터진 괴성에 고개를 돌리니 이번에는 더 놀랄 일이 벌어졌다. 방금 죽인 프살무스가 건재한 모습으로, 아니 평상시보다 더욱 무섭게 안광을 빛내며 서 있는 것이었다.

타이론의 시선이 바닥으로 향했다. 사체가 아직 사라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죽은 몬스터가 부활한 것은 아니었다.

“……Shit!”

입 밖으로 저절로 욕지기가 터져 나왔다. 무엇보다 상식을 중시하는 냉철한 성격.

그의 그런 점이 패닉을 배가시켰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