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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왕 클리어러-172화 (172/245)

# 172

독식왕 : 클리어러 172화

“오랜만이야. 먼 곳에 보내놓고 연락도 자주 못 해서 미안하군.”

“아닙니다. 저야말로 빨리 보고를 올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흠…… 조금 긴장한 것 같군. 우리 사이에 너무 딱딱하게 그럴 것 없잖아.”

셰릴은 니콜라스의 평소답지 않은 말투에 오히려 경직이 되었다. 그가 이런 태도를 보일 때는 오히려 심기가 불편할 때가 많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기 때문이다.

니콜라스가 말을 이었다.

“안 그래도 그 문제 때문에 연락했어. 왜 보고가 늦는 거지? 내가 너무 힘든 일을 맡긴 건가?”

“아, 아닙니다! ……사실은 문제가 좀 있었습니다.”

셰릴은 창백해진 얼굴로 빠르게 항변을 했다. 원래는 확실한 성과와 증거를 확보한 뒤 보고를 하려 했으나 이렇게 된 이상 지금껏 가진 것만으로 얘길 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말하는 내용이 상식과는 거리가 먼 터라 니콜라스는 잠자코 듣기만 할 뿐,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말을 멈추거나 끼어들지 않았다.

그가 곧 침음성을 흘리며 물었다.

“왜 이 이야기를 지금 하는 거지?”

“확실한 물증이 없었습니다. 사안이 사안인지라 완벽한 보고를 드려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셰릴…….”

니콜라스에게서 다시 한번 다정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셰릴은 한 줄기 전류가 허리를 관통하는 느낌을 받으며 몸을 움찔 떨었다.

“내가 너를 얼마나 특별하게 여기는지 아직 모르는군. 나도 게이머이기 전에 한 명의 남자야. 그리고 넌 내게 휴식과도 같은 여성이지.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넌 내게 완벽한 보고를 할 필요 없어. 네가 한 말을 나는 무조건 믿을 테니까.”

“…….”

셰릴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솔직히 지금 하는 니콜라스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과거에도 같은 말을 한 상대에게 어떻게 했는지 숱하게 보았으니까.

하지만 그것과 반대로 그를 무조건 믿으려는 또 하나의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애석하게도 한 명의 게이머, 길드원으로서의 자신이 아니라 니콜라스를 사랑하는 여성으로서의 마음이었다.

“……미안해요, 니콜라스.”

“아니야. 이제라도 알았으니까 상관없어. 하지만 문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심각하다는 것은 분명하군. 네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만큼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보고가 늦었던 거야.”

“아닙니다. 단시간 안에 결과를 내서 꼭 보고를 올리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어. 무리하면 실수를 하게 돼 있으니까. 더구나 상대는 조성오 한 명이 아니야. 너도 노아가 어떤 앤지 알잖아. 그 녀석의 수완에 객관적인 전력은 의미가 없지.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어떻게든 정보를 얻는 거야. 가급적 조성오를 살려서 말이지.”

니콜라스의 말에 셰릴은 흠칫 놀랐다. 사실 그의 전화를 받기 전까지 자신은 조성오를 죽이는 선택지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마치 니콜라스가 자기 의중을 꿰뚫어본 것 같아 심장이 서늘해졌다.

잠시 생각한 니콜라스가 말했다.

“증원을 보내도록 하지. 이번에는 확실한 인물을 보내는 게 낫겠어.”

셰릴은 증원 같은 건 필요 없다고, 자기 혼자서도 충분히 처리할 수 있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결국 그 말을 할 순 없었다.

자기감정보다 더 중요한 것은 길드의 존속이자 성장이니까. 길드가 없으면 자신의 존재도 가치를 인정받기 어렵다.

“흥미롭군.”

전화기 안에서 니콜라스의 웃음이 흘러나왔다.

5

‘부’ 퀘스트를 달성한 나는 곧장 다른 퀘스트로 눈을 돌렸다.

지위, 영토, 동료 퀘스트는 기본적으로 서로 연관이 되어 있다. 모두 던전과 관련이 있는 퀘스트이고, 한 번 공략하기 시작하면 연쇄적으로 달성할 수 있는 것들이다.

다만 이것들보다 관심이 가는 퀘스트는 ‘명예’ 퀘스트였다. 이번 페이즈가 시작될 때 현실 콘텐츠에 더 신경 쓰기로 했으니까.

‘어디부터 손을 대야 하나…….’

노아가 했던 말마따나 셰릴이 지부장으로 있는 피스&호프 지부를 타격한다는 것은 쉽게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이었다.

지난번 데이비드 정을 상대할 때처럼 무작정 쳐들어가서는 안 되는 게 당연하다.

역으로 셰릴이 어떻게 나올지도 신경 쓰였다.

간사한 니콜라스의 오른팔이 또 다른 계획을 꾸미고 있을 것이 틀림없었다.

유진이를 이용하는 게 실패로 돌아갔으니까, 이번에는 그보다 치밀하고 성가신 방법일 것이 뻔하다.

‘설마…….’

나는 자연스럽게 어머니와 누나 쪽으로 생각이 기울었다. 나를 자극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가족을 노리는 것일 테니까.

만약 어머니와 누나가 인질로 잡힌다면 결국 셰릴의 요구를 들어주는 수밖에 없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노아가 알려준 번호로 즉시 연락을 했다.

카일은 신호가 두 번 가기 전에 전화를 받았다.

“길드장님.”

정식 OG 멤버가 아님에도 카일은 나를 길드장이라고 불렀다. 낯선 호칭이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해가 가는 일이기도 하다.

피스&호프에서 나왔지만 그의 입장에서 노아는 여전히 부길드장이니까.

길드가 바뀌었어도 그 직위는 그대로 유지되었고, 노아가 부길드장이니 내 호칭은 자연스럽게 길드장이 되는 것이다.

나와 직접적인 상하관계는 없지만 카일의 입장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집에는 별일이 없나요?”

“네, 현재 어머니와 누님의 안전에는 이상이 없습니다. 어머니는 친구분을 만나 시간을 보내고 계시고 누님은 직장에 계십니다.”

“네……. 그렇군요.”

“현재 두 명씩의 팀원을 배치했습니다만 특별히 신경 쓰이는 게 있으시다면 추가 인원을 배치하겠습니다.”

“죄송하지만 부탁드립니다. 마음에 걸리는 게 있어서요.”

“……셰릴 말씀이시군요. 잘 알겠습니다. 실은 그것 때문에 보안을 최고 등급으로 유지 중입니다.”

“그래요?”

나는 카일의 일처리에 감탄했다. 가족의 안전 담장자로서 셰릴 일을 예측하고 적절한 대처를 한다는 것은 그가 아니고는 할 수 없는 일이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목숨을 걸고 두 분을 지키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카일. 당신만 믿을게요.”

“네, Sir!”

카일의 말을 들으니 셰릴이 아직 어머니와 누나에게 마수를 뻗친 것은 아닌 듯했다. 물론 아직은 안심할 수 없는 일이다. 어쩌면 가족을 노리는 게 아닌 다른 수작을 꾸미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결국 그녀에게 대응하기 위해서는 먼저 움직임을 봉쇄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허튼짓을 하지 못하게 막아두고 타격을 가하는 게 옳은 순서이다.

그녀의 행동을 묶어두는 것. 그것은 생각보다 빠르게 현실로 이루어졌다.

6

“뭐라고?”

보고를 받은 셰릴은 화들짝 놀랐다. 그녀는 비서가 내민 태블릿을 들여다보았다. 그 안에는 오늘자로 업데이트된 기사가 떠올라 있었다.

-셰릴 니콜라스와 밀회.

-피스&호프가 한국 지부를 특별대우 하는 것은 당연?

기사 제목만 그런 것이 아니라 화면에는 니콜라스와 자신이 포옹하는 사진까지 나와 있었다.

의심할 여지없이 사진은 합성이 아니다. 자기도 분명하게 기억에 남아 있는 일이니까.

공교롭게도 포옹을 하는 현장 배경은 호텔 건물이었다.

비서가 머뭇거리며 보고를 이어갔다.

“유튜브에 동영상도 올라왔습니다. 발라드 음악이 흐르며 여러 장의 사진이 슬라이드 되는 영상과 그……. 길드장님과 지부장님이 키스를 하는 영상이…….”

“What!?”

셰릴은 너무 놀라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물론 니콜라스와 밀회를 나누는 게 사실이기는 하지만 그 횟수가 결코 많지 않았다.

니콜라스의 성격을 감안하면 이런 가십이 노출되는 것을 극도로 꺼리며, 이미 언론을 웬만큼 장악하고 있는 미국에서는 감히 기사거리로 삼지도 못할 내용이었다.

한국이니까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이다. 더구나 이 나라 언론의 특성 상 피스&호프가 한국 지부를 특별 대우할 것이라는 기대로 들떠 있었다.

셰릴은 골치가 아파 평소 그녀답지 않게 인상을 와락 구겼다.

비서는 창백한 얼굴로 계속 같은 자리에 서 있었다.

셰릴이 찌증과 불안이 담긴 음성으로 물었다.

“왜요? 더 들어야 할 일이 있나요?”

“저……. 한국 언론에서 인터뷰 요청이 계속 들어오고 있는데…….”

“기사의 진위를 확인해 달라는 건가요? 거짓말이라고 하세요. 사진이나 영상은 전부 조작된 거라고!”

“진위를 확인하자는 요청이 아닙니다. 이미 지부장님이 직접 인정했다는 기사가 나갔습니다. 각 언론은 자기네한테도 쓸 만한 기사를 던져주기를 기대하고 있는 것이고요.”

“뭐요?”

셰릴은 아까 보았던 기사를 이번엔 내용까지 훑어보았다.

“F…….”

욕이 터져 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기사에는 익명의 제보자가 직접 자기에게 니콜라스와의 관계를 인정하는 말을 들었다는 내용이 있었다.

당연히 페이크 기사이지만 사진과 동영상까지 유출된 현재, 진실을 알려고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필 지금…….”

니콜라스가 조성오와 관련된 일을 알게 된 시점이다. 자신은 무슨 일이 있어도 이 프로젝트를 성공시켜야 했다.

그녀는 문득 한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노아!’

사진을 수중에 가지고 있을 만한 사람은 그밖에 없다. 셋이서 어울릴 때가 많았고, 그라면 니콜라스의 경계를 벗어나 사진을 찍는 수완을 발휘할 수 있었을 테니까.

마치 앞으로의 일을 예견한 것처럼 사진을 보관하고 있었다는 자체가 놀라웠다.

‘이렇게 나오다니…….’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식의 대응이었다.

동시에 효과적이기도 했다. 언론의 관심이 자신과 한국 지부에 집중된다면 함부로 운신하기 어려우니까.

게다가 니콜라스에게 약한 자신의 심리를 정확히 꿰뚫는 것이기도 했다.

그녀는 문득 니콜라스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자신들이 상대하고 있는 것은 조성오 하나가 아니라고. 노아 앞에서 객관적인 전력은 무색할지도 모른다는.

노아가 터뜨린 기사의 효과는 강력했다. 마침 별다른 뉴스거리가 없는 시점이라 각 언론은 앞다투어 관련 사실을 보도하고, 피스&호프가 한국 지부에 전폭적인 지원을 할 경우 대한민국 게이머계에 어떤 메리트가 있는지 예측과 토론을 이어갔다.

필연적으로 피스&호프 한국 지부에는 질의와 인터뷰 요청이 쏟아지게 되었고, 셰릴은 이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하지 못하는 애매한 입장이 되었다.

평소 언론에 친화적인 이미지를 쌓아왔기 때문에 모든 요청을 완전히 내칠 수가 없고, 만약 니콜라스와의 관계를 부정한다 하더라도 사진과 영상에 찍힌 내용만은 해명을 해야 했기 때문에 여러모로 난처한 상황이 된 것이다.

이런 때 뭔가 다른 일을 한다는 것은 시스템이 잘 짜인 피스&호프, 즉 카오스 게이머 닷컴이라 하더라도 어려운 일이었다.

급기야 그녀는 본사에서 지령을 받게 되었다.

당분간 행동을 자중하라는.

그것이 니콜라스의 개인적 지령이 아닌 길드의 공식 지령이라는 것이 셰릴을 더욱 궁지에 내몰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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