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1
독식왕 : 클리어러 171화
입주가 완료되자 기대했던 메시지가 나타났다.
[‘부 – 주거지를 마련하라’ 퀘스트를 달성했습니다.]
[랜덤 보상 상자(유니크급 장비 제한)를 얻었습니다.]
나는 지체하지 않고 보상을 확인하기로 했다. 로또 스킬을 사용하자 4등 당첨 메시지가 떴다.
상자를 열자 생각했던 것과는 조금 다른 물건이 나왔다.
[‘필레소의 홍안’을 얻었습니다.]
‘필레소?’
나는 익숙한 이름에 기억을 되새겼다.
필레소라면 분명 가상현실 게임을 할 때 싸운 적이 있는 네임드 몬스터이다.
이 몬스터를 쓰러뜨리기 위해 나름 험난한 과정을 겪었기 때문에 기억이 생생하게 남아있었다.
필레소의 가장 성가셨던 점은 놈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신체 능력이었다.
몸 전체에 스무 개의 눈이 달려 있으며, 각각이 비범한 능력을 발산한다.
그 눈을 획득하면 아이템이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당시 나는 몬스터에게 나오는 아이템 하나하나에 연연할 정도로 약하지 않았고, 그 눈을 파괴하지 않고 쓰러뜨리기도 매우 성가신 일이라 정석대로 눈을 모두 파괴한 뒤, 필레소의 목을 베었었다.
‘흠…….’
필레소의 스무 개, 즉 열 쌍의 눈 중에 홍안이 어떤 능력을 가지고 발휘하는지 구체적으로 생각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는 아이템 정보를 확인하면 해결될 일.
테이블 위에 인간의 눈과 비슷한 크기의 시뻘건 눈알 두 개가 놓여졌다.
‘설마 씹어 먹으라는 건 아니겠지?’
만약 그렇다면 엽기적인 주문이겠으나 그런 일이 실제 비일비재하기 때문에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게임 안에서야 맛을 느낄 수 없으니 아무래도 좋았지만 현실에서는 그게 아니니…….
나는 살짝 걱정이 되는 마음으로 아이템 정보를 확인했다.
[필레소의 홍안]
등급 : 유니크
효과 : 공포(공포에 빠진 상대는 전체 능력치 10~50퍼센트 하락)
부가 효과 : 석화(석화에 걸린 상대는 ‘공포×2’의 효과가 발생, 확률 20~70퍼센트)
사용법 : 눈알을 장비에 장착하거나 직접 상대에게 노출시킨다. 그 외 상성이 맞는 유저는 눈알을 동화할 수 있다.
‘다행히 씹어 먹으라는 얘기는 없군.’
어떤 의미에서는 넘버링 아티팩트와 비슷한 효과를 지닌 아이템이라고 할 수 있었다.
다만 넘버링 아티팩트는 100개가 한정되어 있고, ‘장비’라는 의미 범주에 꼭 무기여야 한다는 법은 없으니까 트집을 잡을 일은 아니었다.
‘그나저나 대단한 아이템이네.’
필레소는 물론 강력한 몬스터이기는 했으나 ‘눈알 파괴 → 본체 쓰러뜨리기’라는 공략법을 알았기에 공략하는 것 자체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전투 시간 자체도 짧아서 각각의 눈알에 직접 노출되지 않았던 터라 그게 어떤 위력을 발휘라는지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이 정도면 충분히 넘버링 아티팩트 효과에 버금간다고 할 수 있었다. 아마 나머지 아홉 쌍의 눈알도 상당한 능력을 품고 있겠지.
문득 그때 눈알을 파괴하는 대신 도려내서 아이템화했다면 좋았을 뻔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진정한 게이머는 이미 했던 공략을 후회하지 않는 법이다.
게다가 다시 한번 생각해 봐도 그때 나는 아이템에 연연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강했으니까.
‘장비에 장착하거나 상대에게 노출시킨다고?’
일단 직접 눈알을 들고 다니는 것은 사양하고 싶었다. 귀찮은 일이기도 할뿐더러 굳이 그렇게까지 할 동기는 없기 때문에.
장비에 장착한다는 것은 해당 무기나 방어구에 ‘공포+석화’ 효과를 부여할 수 있다는 뜻이다.
다만 이럴 경우 아이템이 가진 백 퍼센트 잠재력을 끄집어낼 수 없었다.
아마 ‘눈알’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그냥 사용하는 것보다 효과가 절반 이하로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가장 좋은 것은 마지막 사용법인 눈알을 동화하는 방법. 이는 실제 자신의 눈처럼 사용할 수 있다는 의미이니 위력을 백 퍼센트 발휘할 수 있을 것임이 분명하다.
‘단 아무나 동화할 수는 없지.’
상성이 맞아야만 동화를 할 수 있다. 나는 시험 삼아 흉물스러운 눈알을 직접 손으로 만져 보았다.
[……상성이 낮습니다. ‘필레소의 홍안’과 동화할 수 없습니다.]
“친절하기도 하여라.”
이렇게 확실하게 알려주면 내가 아이템과 동화할 수 없다는 사실은 분명해진다. 아마 어떤 노력을 해도 불가능하겠지.
‘왜 보상으로 이런 걸 줬지?’
지금까지는 어떤 식으로든 당장 사용할 수 있는 장비나 아이템을 주었기에 조금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물론 장비에 장착하면 될 일이지만 그건 너무 효율이 떨어지는 일이다.
그러다 문득 모든 아이템과 장비를 굳이 내가 사용할 필요는 없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나 이외에 다른 파티원들에게까지 범위를 확대하면 눈알과 동화할 수 있는 인물을 찾을 가능성이 커진다.
‘음…….’
나는 파티원들의 면면을 하나하나 떠올려 보았다.
결론은 오래지 않아 나왔다.
때마침 새로 입주한 펜트하우스 곳곳을 구경하고 다니던 암젤이 거실로 돌아왔다.
“집이 좋기는 하다옹. 이러니 돈이 최고라는 말이 있는 거다옹.”
그녀는 나를 쓱 쳐다보더니 빠르게 다가와 소파 위로 뛰어올랐다.
“왜 그렇게 보는 거냐옹? 집이 바뀌어서 심경에 변화가 온 거냐옹? 하긴 전에 살던 곳은 가족들이 있어서 이것저것 하기가 불편했을 거다옹. 이제 껍질을 벗고 자유로워질 때가 된 것 같다옹.”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이것 좀 봐.”
“응?”
암젤의 시선이 그제야 테이블 위에 놓인 한 쌍의 눈에 향했다.
“필레소의 눈알이라는 거야. 혹시 이걸 보고 특별한 느낌 없어?”
“필레소?”
암젤은 아까 내가 그랬던 것처럼 기억을 떠올리더니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 그 눈알 많은 못난 녀석 말이냐옹? 왜 그 자식 눈알이 여기 있는 거냐옹?”
암젤의 물음은 딱히 대답을 구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나와 같이 있으면 상식적이지 않은 일이 많이 일어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녀는 시뻘건 눈알을 앞발로 툭 쳤다. 그러자 내가 눈알에 손을 댔을 때와는 달리 아이템에서 빛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빛은 실처럼 쭉 이어지더니 암젤의 동공과 연결되었다. 암젤이 귀찮다는 듯 앞발을 휘저어 댔다.
“이게 뭐냐옹. 기분 나쁘다옹.”
나는 차분히 아이템의 효과를 설명해주었다.
“이걸 가지면 딱히 귀찮은 과정 없이 능력 하나를 공짜로 갖게 되는 거야. 모두가 너를 두려워하게 되겠지.”
모두가 두려워한다는 것은 물론 과장이다. 하지만 내 얘길 들은 암젤이 호기심을 띠었다.
“내가 맘만 먹으면 석화시킬 수 있다는 뜻이냐옹?”
“응.”
실제 그렇게 되려면 상대가 암젤보다 레벨이 많이 낮아야 하고, 그럴 경우에도 확률에 달린 문제지만 나는 굳이 그런 내용은 말하지 않았다.
아까운 아이템 하나를 버리는 것보다 암젤에게 장착시키는 것이 훨씬 이익이니까, 그녀가 마음을 바꿀 만한 말은 하지 않는 것이 낫다.
암젤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옹. 내가 갖겠다옹.”
그녀는 테이블로 훌쩍 뛰어올라가 앞발로 눈알을 잡았다. 그러자 새어 나오던 빛이 더욱 강력해지며 그녀의 눈으로 빨려드는 에너지양이 많아졌다.
눈알과 동화가 끝나기까지는 약 일 분 정도가 소요되었다.
에너지를 뺏긴 필레소의 눈알이 바짝 말라 부슬부슬 흩어져 버렸다.
“오!”
암젤이 고개를 들어 거실 천장을 올려다봤다. 흡족하게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새로 얻은 아이템의 효과를 확인했다.
마치 처음으로 안경을 쓴 아이가 신기해하는 것과 비슷한 모습이었다.
“마음에 들어?”
“별로 달라진 건 없다옹. 색안경을 낀 것처럼 시야가 붉어졌다옹. 이걸 내 마음대로 조종할 수 없었다면 오히려 불편할 뻔했다옹.”
“그렇군.”
암젤이 고개를 홱 돌렸다. 그녀는 시뻘건 눈으로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미간을 좁히고 한참 쳐다보던 암젤이 가볍게 탄식을 내뱉었다.
“휴…….”
“방금 뭐하려고 한 거야?”
“석화된다고 하지 않았냐옹?”
그녀는 테이블을 내려가 휘적휘적 딴 곳으로 걸어갔다.
“날 석화시켜서 어쩌려고 한 거야?”
“……됐다옹. 잊어버리라옹.”
5
셰릴은 머리가 복잡했다.
지난번 조성오를 불러냈을 때 끝장을 보았어야 하는데 놓치고 말았다는 사실이 매우 아쉬웠다. 기회는 자주 오는 것이 아니니까.
‘좀 더 확실하게 덫을 놨어야 하는데…….’
김유진을 인질로 잡은 것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실제 조성오가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으니까.
다만 어쩐 일인지 그녀가 무사히 던전을 나왔고, 제니는 돌아오지 못했다.
조성오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일들은 불가사의가 가득했다.
그녀는 이제껏 한 번도 특정한 인물 하나가 흐름을 잡고 주도해 가는 그림을 본 적이 없다.
심지어 니콜라스조차 많은 계획에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길드를 키웠었다.
조성오를 보고 있으면 마치 보이지 않는 의지가 그를 돕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똑같은 현실에 발을 붙이고 있어도 자신은 조연이고, 그가 주인공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무슨 헛생각을…….’
셰릴은 이마를 짚고 미간을 찡그렸다. 공을 들인 계획이 실패한 탓에 너무 생각이 많아진 것 같았다.
손끝으로 테이블을 두드렸다.
‘어떡해야 되지?’
또 다른 계획을 구상한다는 것은 녹록치 않다.
지난번 일로 조성오가 결코 약하지 않다는 것이 증명되었고, 그날은 혼자 나왔지만 OG길드원들의 면면도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가족을 직접 노려야 하나?’
애초에 김유진보다 가족에게 접근하는 것이 더 쉽고 확실한 카드가 되었을 것이다.
다만 그 방법을 쓰지 않은 것은 일반인인 조성오의 가족에게 접근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불법을 저질러야 했기 때문이다.
김유진은 미르 길드를 이용해서 함정에 빠뜨릴 수 있었지만 일반인을 상대로는 딱히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 많지 않다.
결국 납치만이 실행 가능한 유일한 수단일 것이고, 그러면 조성오와는 끝장을 보는 관계까지 가야 한다.
가장 좋은 것은 그를 회유하여 비밀을 알아내고, 필요하다면 피스&호프에 자발적으로 협력하게 만드는 것이다.
가족을 납치하면 회유나 협조는 영영 불가능하게 된다.
그녀는 어금니를 깨물었다.
‘그래도 이제 어쩔 수 없지.’
이미 한 번 잡았던 물고기를 그물에서 놓아버렸으니 또다시 같은 그물에 걸려들기를 바랄 수 없다.
가족을 납치하고 조성오에게 정보를 뽑아낸 뒤, 모두 죽여 버리는 선택지만 남은 셈이다.
최악의 경우 피스&호프가 이용하지 못할 거라면 미지의 정보가 세상에서 없어지는 것이 낫다.
그녀가 결론을 내렸을 때 핸드폰 수신음이 울렸다.
셰릴은 퍼뜩 자세를 바로잡았다. 상의 안에 있는 핸드폰으로는 직접 연락할 사람이 많지 않다.
더구나 이 수신음은 딱 한 명에게만 설정해 놓은 것이다.
그녀는 딱딱한 음성으로 전화를 받았다.
“길드장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