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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왕 클리어러-167화 (167/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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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왕 : 클리어러 167화

파로나를 위시한 마법사들은 인투스가 변형하는 모습을 보고 기겁했다.

세상에는 많은 마법이 있지만 자기 몸을 분리시켜 변형을 하는 기술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백여 구의 시체를 해체하여 자기 몸에 붙인다니, 제정신으로는 발상조차 할 수 없는 기술이다.

로치온은 기가 막혀 언덕 위를 올려다보았다.

어찌 보면 정신을 어지럽힐 정도로 많은 숫자가 밀려 내려오는 상황이 해소된 것이라 다행인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어쨌거나 타깃이 하나로 줄어들었고, 그 타깃은 자기 몸을 가눌 수 있을지 의심될 정도로 거대했으니까.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생각하기에 따라서 지금 상황은 소모되는 마나를 감당 못한 인투스가 최후의 발악을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명령을 기다리지 않고 쏘아져 나간 마법 스킬들이 언덕 위로 난사되었다.

펑! 우지직! 퍼엉!

레벨이 높지 않은 마법사들이 쏟아내는 초급 스킬이지만 수십, 수백 개가 모이면서 화력 자체가 달라졌다.

그대로 언덕 자체가 녹아 사라져 버릴 것처럼 연기가 자욱하게 일어난다.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낀 로치온이 급히 소리쳤다.

“멈춰!”

마나가 담긴 묵직한 음성이 전장을 가로지르자 마법사들은 저도 모르게 움직임을 멈추고 로치온을 바라보았다.

언덕 위에 뭉게뭉게 피어올랐던 먼지가 천천히 가라앉았다.

그 뒤로 드러난 모습에 모든 마법사가 기겁을 했다.

인투스는 아무런 피해도 받지 않은 것처럼 멀쩡했다. 거기 더해 아까와는 질이 다른 요기가 흘러나왔다. 덩치도 미세하게나마 더 커져 있었다.

마법사들은 패닉에 휩싸여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몇몇은 다시 마법 스킬을 날리려고 했다.

이번에도 가장 빨리 상황 파악을 마친 로치온이 소리쳤다.

“공격을 멈춰! 놈은 스킬을 통해 마나를 흡수한다. 마법을 쓰는 것은 놈을 도와주는 거나 마찬가지야!”

상대 생명력을 흡수하여 자기 것으로 만들거나, 마나를 빼앗아 자기 것을 채우는 스킬은 그리 특별한 것이 못된다.

하지만 이렇게 대규모로, 스킬을 얻어맞는 방식으로 마나를 흡수하는 것은 굉장히 낯선 기술이었다.

‘인투스…….’

로치온은 놈이 자기 수준을 뛰어넘는 능력자일 거라고 여기지는 않았다.

다만 마법사가 성가신 점은 수준이 높아질수록 상대하기가 점점 껄끄러워진다는 데에 있다.

낮은 수준일 때는 동급의 무투가가 더 나은 능력을 보이는 반면 수준이 높아질수록 마법사 쪽의 능력이 더욱 효과적이게 된다.

인투스 같은 네크로맨서는 더더욱 자신과 상성이 좋지 않았다.

그는 말고삐를 틀어쥐고 언덕 위로 내달렸다.

마법사들은 자기네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망연히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집채만 한 인투스가 높은 위치에서 로치온을 내려다보았다. 팔을 아래로 뻗어 바닥을 휩쓸었다.

로치온은 그것을 피해 반대쪽으로 말을 몰았다.

더 이상 달아날 수 없는 지점까지 갔다가 훌쩍 뛰어올라 인투스의 팔위에 올라탔다.

그 상태로 어깨를 향해 달려갔다. 팔을 형성한 언데드들이 꿈틀거리며 로치온의 다리를 잡아채려고 했다. 일부는 고개를 들어 물어뜯기도 했다.

“크윽!”

로치온은 창을 거꾸로 들어 바닥에 내리꽂았다. 그 상태로 휘저으니 검은 핏물이 솟구쳤다.

인투스가 마나를 흡수한다는 것을 안 터라 함부로 스킬을 사용할 수는 없었다.

걸음은 점점 느려지고, 체력은 평소보다 몇 배는 더 빨리 소모되었다.

잠깐 움직임을 멈추고 숨을 고르는 사이 반대쪽 손이 날아들었다.

불식간에 당한 일격이라 로치온은 꼼짝도 못하고 거기 붙들리고 말았다.

손아귀가 가하는 압력과 더불어 언데드들의 이빨이 피부를 잘근잘근 씹어댔다.

“으으윽…….”

인투스의 변형은 생각했던 것보다 빈틈이 없었다. 어떻게 이런 스킬을 사용할 수 있는지 경이로울 정도였다.

로치온은 마나를 폭발시켜 압박하는 손아귀를 떨쳐 냈다.

파바박!

손가락이 부러지며 핏물이 튀었다.

바닥으로 추락하는 로치온은 다시 이어 붙는 손가락을 보고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 같았다.

거대한 신형을 가지고 있지만, 신체를 형성한 각각의 언데드들도 생명력을 가지고 움직인다.

공격법을 바꾸지 않으면 이 싸움은 영영 끝나지 않을 것이었다.

바닥에 내려선 그는 다시 쫓아오는 손아귀를 피해 인투스의 몸 뒤로 돌아갔다. 한참을 달려야 거대한 등판을 마주할 수 있었다.

창에 최대한의 마나를 주입시켰다. 웅웅거리는 소리를 내며 창신이 진동을 하고, 그것을 쥔 팔이 저릿거리기 시작했다.

마나를 분출하자 폭발하듯 창날이 길어졌다. 길이와 폭이 쭉쭉 늘어나 급기야 그것을 쥐고 있는 로치온의 몸뚱이보다도 더 커졌다.

“이야아앗!”

고함과 함께 무기를 휘둘렀다. 거대한 창이 허공을 가르며 거짓말처럼 인투스의 종아리를 뎅겅 베어냈다.

쿵-!

짧아진 다리 때문에 인투스의 몸이 기울었다.

로치온은 낮아진 허벅지를 향해 다시 한번 창을 내질렀다.

“크아아악!”

비명은 인투스에게 나온 것이 아니라 다리를 형성하고 있던 언데들에게서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온 것이었다.

로치온이 다시 한번 마나를 폭발시키자 원형의 파동이 퍼지면서 허벅지 아래로 인투스의 다리가 잘려졌다.

그가 이렇게 마나를 폭발시킨 것은 상대의 마나가 체내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 그것을 흡수해 버릴 거라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마나를 사용할 거라면 큰 기술을 걸어 놈의 몸 안에 머물지 않도록 해야 한다.

로치온은 미간을 찡그렸다. 예상대로 떨어져 나간 다리가 천천히 다시 엉겨 붙기 시작했다.

그는 숨을 돌릴 틈도 없이 해체된 언데드들과 싸웠다. 그의 창날에 완전히 생명력을 상실한 언데드들은 다시 거대한 몸의 일부가 되지 못했다.

재생이 완료되었을 때 인투스는 한쪽 다리가 눈에 띄게 짧아져 기형적인 모습이 되었다.

“……이놈…….”

수십 미터 위에서 메아리 같은 음성이 들려왔다.

몸집은 거대하지만 머리통은 인투스 자신의 것이라 매우 작았다. 그것이 본체인 것은 당연하지만, 공격할 방법이 요원했다.

로치온은 인투스를 상대하는 나름의 해법을 찾아내기는 했지만 그것을 계속하기는 한계가 있었다.

단 한 번 공격만으로 몸 안의 마나가 뭉텅이로 소모되었으니까.

다시 한번 인투스의 신체를 절단할 만큼 창을 크게 만들려면 마나가 회복될 시간이 필요하고, 지공으로 상대하기에는 적이 너무 강했다.

“제길…….”

로치온은 자신이 한심하게 여겨졌다. 헤레디투스를 왕좌에서 끌어내리고 세상을 바꾸겠다는 원대한 꿈을 꾸었건만, 16위 군주 크레도, 그것도 본인이 아닌 부하 한 명을 이겨내지 못해 고생하고 있다.

자신의 꿈이 어린 마음에서 발로한 철없는 공상이었던 것 같아 비참한 기분이 들었다.

그때 다시 한번 인투스의 몸이 변형되기 시작했다. 인간 형태를 갖추고 있던 거대한 하반신이 꿈틀거리더니, 네 개의 다리로 재조직되었다.

때문에 다리 한쪽이 짧아진 것도 더 이상 단점이 아니게 됐다.

쿵! 쿵! 쿵!

몸을 돌리려고 다리를 움직일 때마다 바닥이 크게 진동했다.

로치온을 향해 몸을 돌린 인투스가 그대로 돌진을 했다.

몇 번 다리를 놀리지 않아 거리가 완전히 좁혀졌다. 좁은 공간 안에 로치온을 가두고 마구잡이로 다리를 놀렸다.

쿵! 쿵! 쿵!

거기 더해 인투스의 몸뚱이에서 언데드의 신체 조각이 떨어져 내렸다.

머리가 있는 것들은 피부를 물어뜯었고, 팔이나 다리가 있는 부분은 몸을 옭아맸다.

“칫!”

빠져나갈 방법이 없다고 여겨지자 암담함이 눈을 가렸다. 이대로라면 낙하하는 인투스의 다리가 몸을 으깨는 것도 시간문제였다.

머리 위로 검게 드리우는 그림자를 보며 어금니를 깨물 때였다.

퍼엉-!

불꽃이 터지는 소리와 함께 인투스의 몸이 한쪽으로 크게 쏠렸다. 허공에서는 녹아 붙은 시체 조각들이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펑! 퍼엉-!

연이어서 터진 불꽃에 인투스의 몸이 버티지 못하고 넘어갔다.

쿵-!

로치온은 열린 틈으로 재빨리 빠져나갔다. 언덕 아래를 내려다보았더니 새하얀 로브를 입은 마법사 하나가 스태프를 이쪽으로 뻗고 있었다.

어두컴컴했던 하늘이 그녀가 있는 곳을 중심으로 햇살을 드러냈다.

“파라얀…….”

후드 때문에 얼굴이 보이지는 않지만 로치온은 지금 그녀가 자기를 보고 있다고 느꼈다.

“끄으으…….”

느리고 거북한 음성이 인투스가 이제 한계에 달하고 있음을 짐작케 했다.

애초에 이런 기술은 아무나 쓸 수 있는 것이 못된다. 극심한 체력 소모가 따를 거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인투스가 아무리 군주급의 실력을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16위 군주 크레도의 능력을 뛰어넘을 만큼은 되지 못한다.

로치온은 하마터면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채 싸움을 포기할 뻔했다는 생각이 들어 뒷목이 서늘했다.

자기가 인투스와 싸운 것은 전혀 쓸모없는 일이 아니었다.

시간을 끈 것 자체가 큰 타격을 준 것과 같다.

인투스의 몸에서 부슬부슬 흩어지는 시체 조각들은 비단 파라얀의 마법을 얻어맞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가 버틸 수 있는 한계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는 것이다.

로치온은 심호흡을 한 뒤 마나를 끌어모았다. 그의 창신이 진동을 하기 시작했고, 크기가 쭉쭉 늘어났다.

열린 하늘에서는 파라얀이 떨어뜨린 불덩어리가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8

파라얀이 가세한 뒤로 인투스는 오래 버티지 못했다.

생명력을 잃은 언데드 조각들이 모조리 해체되고 결국에는 머리통 하나만 남았다.

인투스는 발악하듯 힘을 쥐어짰다. 그러자 손바닥 두 개가 그를 향해 다가와 목 아래에 이어 붙었다.

회심을 미소를 한 차례 지은 그는 다리가 된 손가락을 재게 놀려 도망을 쳤다.

툭.

바쁘게 달아나던 그는 무언가에 부딪쳐 벌렁 자빠졌다. 눈알을 희번득 뜨고 올려다보자 로치온이 자기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디 가냐?”

“큭! 네놈은 대체 누구냐? 누구기에 상관도 없는 싸움에 끼어들어 사달을 내는 것이냐!”

로치온은 인투스가 자기를 전혀 알지 못하다는 사실에 세월의 무상함을 느꼈다.

이백 년이나 속세를 떠나 있었으니 자신을 죽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더 많은 게 당연했다. 그 말은 곧 세상에서 절반은 잊힌 존재가 되었다는 뜻이다.

“알 거 없어.”

창끝으로 인투스의 머리통을 찍어버렸다.

“컥!”

지긋지긋한 존재감을 자랑하던 인투스는 단말마와 함께 목숨을 잃었다.

현장은 어수선하기 짝이 없었다. 수백 구의 언데드 사체가 널린 것은 둘째 치고, 마법사도 적지 않은 수가 목숨을 잃었으며 천막으로 이루어진 마을도 반파되었다.

하지만 더 중요한 사실은 승산이 거의 없던 싸움을 뒤집어 결국 승리를 했다는 것.

로치온이 언덕을 내려가자 마법사들이 환호성을 터뜨려 그를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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