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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왕 클리어러-159화 (159/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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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식왕 : 클리어러 159화

    [PHASE 5 퀘스트를 모두 달성했습니다.]

    [‘차원문의 열쇠’×1를 얻었습니다.]

    PHASE 5의 퀘스트가 둘뿐이었으니 제니를 죽이면서 자연히 결투의 탑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다.

    특수 퀘스트가 남아 있기는 하지만 이는 필수적으로 달성해야 할 퀘스트는 아니다.

    나는 문득 유진이가 아라돈의 딸 미리스의 대리인이 될 자격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이계 군주의 대리인이 된다는 것은 아직 많은 부분이 미스터리로 남아 있는 일이다.

    이상한 느낌이 들어 암젤을 돌아보았더니 그녀의 이마에 있는 문신이 빛나고 있었다. 나는 지금까지 상황을 돌이켜 보았다.

    유진이가 쌍둥이 던전에서 변을 당한 일이나, 결과적으로 그녀를 치료하기 위해 레벨 100이 넘는 카오스 게이머 제니를 죽인 일.

    흐름이 하나로 이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유진이가 자격을 갖추었다는 사실을 알고도 그녀를 대리인으로 만들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친구를 위험한 일에 끌어들이는 것 같아 내키지가 않았던 것이다.

    나는 암젤에게 물었다.

    “혹시 대리인이 되면 죽을 만큼 깊은 상처를 입었어도 치료할 수 있는 거야?”

    “백 퍼센트 그렇다는 보장은 없다옹. 하지만 인간이 군주의 대리인이 되면 피차간에 생명력과 능력을 나눠 갖는다옹. 굳이 따지자면 2차 각성이라고 할 수 있다옹.”

    나는 암젤이 말한 2차 각성이라는 용어에 주목했다. 게임을 좋아하는 내게 그 말이 주는 감각은 남달랐다.

    게임에서 레벨이 오르거나 각성, 전직 등을 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생명력이 회복된다. 모든 게임이 백퍼센트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일단 상식적으로 통용되는 부분이기는 했다.

    ‘이럴 때도 게임을 생각하다니, 참…….’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유진이의 피부는 점점 더 검어지고 있고, 얼굴은 더더욱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나는 유진이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고 말했다.

    “유진이를 미리스의 대리인으로 지정하겠다.”

    [……관련 정보가 미리스에게 전송되었습니다.]

    내가 지정한다고 해서 한 번에 작업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나는 이 절차가 빨리 마무리되길 바랐다.

    어쩌다 보니 떠올린 가능성이기는 하지만 이제는 그것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믿게 되었다.

    상황의 전개나 암젤의 이마가 빛나고 있었다는 점 등을 감안하면 확률이 높다고 보아야 했다. 내 의지와 무관하게 어쩌면 유진이는 대리인이 될 운명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그녀가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된 게 백 퍼센트 약속된 흐름이라고 보이지는 않았다. 여러 가지가 맞물린 것일 테니 딱히 누군가를 탓할 상황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미리스가 승낙했습니다.]

    [……김유진이 70위 군주 미리스의 대리인이 되었습니다.]

    [특수 퀘스트 ‘대리인을 한 명 이상 구하시오’를 달성했습니다.]

    [보상으로 경험치 +150,000, GP +100,000을 얻었습니다.]

    [레벨 130이 되었습니다. 스탯 포인트 3을 얻었습니다.]

    [기존 클래스를 진화하거나 새로운 클래스를 얻을 수 있습니다.]

    나는 기쁜 마음이라기보다는 메시지를 눈앞에서 빨리 치우려는 마음으로 마법사 클래스를 진화시켰다.

    유진이의 몸에서 손을 떼지 않고 상황을 지켜보았다. 큰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천천히 그녀의 몸에서 검은 기운이 빠지는 것이 보였다.

    잔뜩 경직되어 있던 몸에서도 약간이나마 힘이 풀렸다. 눈꺼풀 아래의 동공이 바쁘게 움직이는 것이 마치 격동적인 꿈을 꾸는 것 같았다.

    나는 타로에게 말했다.

    “타로, 상태가 어떤지 다시 한번 확인해 봐.”

    “주인, 친구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은 알지만 어쩌겠어. 때로는 싫어도 받아들여야 하는…….”

    거기까지 말한 타로가 고개를 갸웃했다.

    “어라?”

    파다닥 날아와 유진이의 얼굴 쪽에 내려앉았다. 볼에 손을 대보고 다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라라?”

    나는 기대를 갖고 물어보았다.

    “왜?”

    “계속 꼬이던 마나가 안정되고 있어. 실타래가 풀리는 것처럼 조금씩…… 이거 어쩌면…….”

    “치료할 수 있겠어?”

    내 말에 타로가 난처한 얼굴을 했다.

    “하아…… 안타깝네. 방법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내 능력 밖이야. 죽지는 않겠지만 이대로 두면 영영 깨어나지 못해.”

    이를테면 식물인간 상태가 된다는 것 같았다.

    타로가 방법을 안다는 것으로 보아 그의 레벨이 오르고 능력이 향상된다면 치료할 가능성이 생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백 퍼센트 그럴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 그때까지 유진이를 방치하는 것도 안 될 일이었다.

    그때 무언가가 내 종아리를 툭 쳤다.

    내려다보자 암젤이 입에 빨간색 결정석 하나를 물고 있었다.

    “아…….”

    그것을 보자 아까 제니를 죽인 일이 새삼 떠올랐다. 그녀의 시체는 이미 옷가지만 남기고 사라졌지만, 남긴 것은 옷가지만이 아니었다.

    나는 암젤의 입에서 스킬 스톤을 빼냈다.

    [흡수할 수 없는 스킬 스톤입니다. 스킬 ‘속성 조작’을 흡수하기 위해서는 초급 이상의 ‘정령사’ 클래스가 필요합니다.]

    평소였다면 결정석을 그냥 인벤토리에 넣고 넘어가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메시지를 본 순간 머릿속이 환해졌다.

    암젤을 내려다보았더니 그녀가 똘망똘망한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귀여운 녀석 같으니.’

    나는 암젤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어주었다.

    “타로.”

    내 부름에 유진이를 들여다보고 있던 타로가 파다닥 날아왔다.

    “유감이야. 주인 덕분에 내 능력이 많이 세졌지만 저 여자를 치료할 만큼은 아니야. 도움이 못 돼서 미안해.”

    풀이 죽은 타로의 어깨가 늘어졌다. 정령 중에는 태생적으로 악한 성격을 가진 개체도 많지만 적어도 타로는 아니었다.

    몬스터에 빙의해 싸울 때도 불쾌한 느낌은 받지 않았다. 고생을 많이 한 것치고는 오히려 순진한 면이 많은 정령이다.

    나는 그에게 스킬 스톤을 내밀었다.

    “이걸 흡수하도록 해.”

    “이게 뭔데? 먹는 거야?”

    타로가 내 손에서 결정석을 가져갔다. 작은 정령의 몸이 결정석의 무게 때문에 아래로 기울었다.

    그는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곧 얼굴에 화색이 돌기 시작했다. 결정석에서 붉은 마나가 뻗어 나오더니 가닥가닥 그의 몸에 흡수되었다.

    “우와!”

    마지막 한 방울의 마나까지 전부 토해낸 결정석은 잿빛이 되었다. 타로는 쓸모없어진 결정석을 던져 버렸다.

    쌩 하고 날아오르더니 흥분하여 마구 날아다녔다.

    “세졌다! 더 세졌어!”

    급강하하여 내 뺨을 철썩철썩 때렸다. 그러다 뭔가를 깨달았는지 손을 멈추었다.

    “이럴 때가 아니지!”

    유진이 쪽으로 날아간 그는 다시 한 번 그녀의 볼에 양손을 갖다 댔다. 신중한 표정을 짓고 있다가 이내 크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할 수 있어! 주인! 나 치료할 수 있을 것 같아.”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오랜 시간 걱정으로 굳어졌던 마음이 풀리며 입가에 작은 미소가 머금어졌다.

    4

    타로가 유진이를 치료하는 데는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처음에는 조금 헤매는가 싶더니 시간이 갈수록 유진이 몸에서 검은색 마나가 빠져나오는 속도가 빨라졌다.

    아마도 ‘속성 조작’이라는 스킬이 타로에게는 큰 의미가 있는 것 같았다.

    치료하는 중간에도 가끔씩 나를 돌아보고 씩 미소를 지었으니까. 아마 유진이를 치료해야 하는 상황이 아니었다면 내 볼을 백 번은 때렸을 듯싶었다.

    이제 되었다 하는 생각이 들어 플레지 허니를 탄 꿀물을 꺼내 마셨다. 안도를 하게 되자 자연스럽게 다음 일이 걱정되었다.

    유진이가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그녀의 레벨은 지난번보다 오르긴 했지만 여전히 60을 넘지 않았다. 이한호는 그렇다 치더라도 즉시 전력이 되기에는 부족한 수치이다. 그녀가 이 사실을 너무 충격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머리가 좋고 재능도 많은 녀석이지만 게임에 빠지는 바람에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껴야 했다.

    그녀의 옆에는 내가 있었으니까. 밤을 새워 연습을 해도 내 실력에는 미치지 못했을 테니 많이 답답했을 것이다.

    물론 어린 시절에는 그런 것까지 생각하지 않았다. 대전게임에 지고 분해하던 그녀를 놀리던 일이 생각나 살짝 부끄러워졌다.

    “다 됐어!”

    타로가 만족스러운 얼굴로 이마의 땀을 훔쳤다.

    “고마워, 타로. 잘했어.”

    나는 그에게 컵에 담긴 플레지 꿀물을 내밀었다. 타로는 코를 킁킁대다가 얼굴을 박고 꿀물을 마시기 시작했다.

    “푸핫! 맛있다! 마나가 회복됐어!”

    나는 컵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자연스럽게 타로는 컵을 따라 하강했다.

    유진이는 편안한 얼굴이었다. 여전히 눈은 뜨고 있지 않았지만 고통이 완전히 가셨다는 사실은 알 수 있었다.

    드러난 그녀의 피부에 문신이 새겨진 것이 보였다. 갈퀴 모양의 문신은 이한호의 것처럼 크고 거친 형태는 아니었다. 오히려 일부러 새긴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문신은 유진이가 미리스의 대리인이 되었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으음…….”

    신음을 흘리며 유진이가 깨어났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 그녀의 손을 덥석 잡았다.

    “유진아!”

    유진이는 꿈을 꾸는 표정으로 내 얼굴을 보았다. 천천히 주변을 살펴보는데, 동작이나 얼굴에 아직 꿈의 여운이 짙게 배어 있었다.

    그녀는 꿀물을 마시고 있는 타로를 보고 놀랐지만, 이내 암젤과 아린을 발견했다.

    암젤은 이미 여러 번 본 고양이이고, 아린 역시 던전 공략을 같이 한 적이 있다. 비록 스킬로 기억이 조작되긴 했지만, 나는 기억을 삭제한 대신 인간형의 암젤과 아린에 대해 좋은 인상을 남겨놓았다.

    유진이의 시선이 내게로 돌아왔다. 그녀의 눈에서 꿈 기운이 물러난 대신 현실 감각이 채워졌다.

    미간을 살짝 찡그린 채 내게 물었다.

    “여기 설마…… 던전 안이야?”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녀가 깨어나기 전에는 걱정이 많았지만 막상 깨어난 모습을 보니 우려가 사라졌다.

    내가 겪은, 그리고 겪고 있는 상황을 이해해 줄 사람을 세상에서 딱 한 명만 꼽자면 바로 눈앞에 있는 친구였다.

    현실로 돌아와 처음 그녀를 보았을 때 생각했었다. 그녀라면 내 얘기를 위화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을지 모른다고. 크게 돌아 결국 제자리로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유진이의 머리맡에 앉아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한호에게 이야기할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비밀을 공유할 친구가 있다는 것은 결코 나쁘지 않은 일이다. 의식하지 못한 사이 가슴속에 억눌렸던 답답함이 조금씩 해소되는 느낌을 받았다.

    유진이는 동화를 듣는 아이처럼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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