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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왕 클리어러-157화 (157/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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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왕 : 클리어러 157화

셰릴의 얘기를 들었으니 범인의 윤곽은 어느 정도 잡혔다.

피스&호프는 유진이에게 접근할 목적으로 미르 길드에 마수를 뻗쳤다.

물론 미르 길드 입장에서는 그런 저의를 파악하지 못했을 것이고, 오히려 그만한 길드가 도움을 준다는 사실을 기쁘게 생각했을 것이다.

피스&호프에 직접 범인이 누구인지 물을 수는 없다.

미르에 연락을 해볼까 했지만 괜히 문제를 크게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이쪽도 적절치 않아 보였다.

나는 잠시 생각하고 아주 쉬운 방법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병우. 바로 이곳 쌍둥이 던전에서 일하는 공무원이다.

직급상 말단이지만 어쨌거나 그를 통하면 던전에 들어온 인물의 정보 정도는 쉽게 얻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그는 내 부탁을 거절할 입장이 못 되니까.

따로 저장하지는 않았지만 얼마 전 그의 집에 들어가서 작업(?)을 한 일이 있기 때문에 연락처가 남아 있었다.

나는 던전을 나가서 곧바로 그에게 전화를 했다.

발신음이 한참 울리고 나서야 졸린 음성의 병우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자고 있었던 것 같은데 깨워서 미안해요. 물어볼 게 있어서 연락드렸습니다.”

“……네? 누구신데요?”

“조성오입니다.”

“네에?”

멍하게 되묻는 목소리가 들리고 곧 부산스러운 소음이 이어졌다.

쿵! 소리가 나는 걸 보니 아마 침대에서 굴러 떨어진 모양이었다.

“조성오? OG길드의 조성오 님이라고요?”

“님자는 거북하니 빼주세요. 아무튼 시간이 없으니 인사는 생략하도록 하죠. 물어볼 게 있어서 전화했습니다.”

“네. 뭐든지, 제가 대답해 드릴 수 있는 거라면 얼마든지 물어보세요.”

“오늘 쌍둥이 던전에 들어갔던 사람들 중에 미르 길드 멤버들이 있었을 텐데, 그들과 동행했던 사람들 이름을 알았으면 합니다.”

“오늘이요? 오늘은 저 비번이었는데…… 사실 쉬는 날이 아니었는데 갑자기 쉬라는 얘길 들어서…… 덕분에 게임도 하고, 잠도 늘어지게 자고…….”

나는 미간을 찡그렸다.

병우를 쉬게 한 것을 보니 이 일이 더욱 계획적이었다는 것이 드러난 셈이다. 병우 말고 피스&호프와 연결되어 있는 다른 공무원이 대체근무를 한 모양이었다.

쓸데없는 말을 주절거리던 병우가 불쑥 말했다.

“그래도 던전 출입 명단을 확인할 수는 있습니다. 기관 사이트에 접속해서 알아보면 되니까요. 미르 길드라고 하셨나요?”

“네, 예약자 중에 김유진이라고 있을 겁니다.”

“김유진……. 잘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나고, 달칵거리는 소리가 이어졌다. 아마도 핸드폰으로 곧장 사이트에 접속한 모양이었다.

일 분쯤 지나서 병우가 말했다.

“찾는 사람이 미르 길드랑 같이 던전에 들어간 사람들인가요? 미르 길드 멤버는 아니고요?”

“네.”

“같은 시간에 미르 멤버들이 던전에 들어간 기록이 있기는 한데요. 그 사람들 외에 추가로 들어간 게이머는 없는데요. 미르 길드 멤버들만 예약한 걸로 돼 있어요.”

“음…….”

기록 자체를 남기지 않다니, 나는 피스&호프 놈들이 생각보다 더 용의주도하다는 사실에 혀를 찼다.

이제 어떡해야 하나 고민할 때 병우가 다시 말했다.

“꼭 아셔야 한다면 방법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닙니다. CCTV에는 기록이 남아 있을 거니까요. 미르 멤버랑 같이 들어온 사람이 있다면 얼굴이 찍혔을 거예요.”

“지금 영상을 확인할 수 있나요?”

“죄송한데 저한테는 CCTV 영상까지 확인할 권한이 없습니다. 관리소 소장의 확인이 필요하거든요.”

“권한만 있으면 사이트에서 바로 확인할 수 있나요?”

“네, 소장님 연락처 필요하시면 알려드리겠습니다.”

“아니요. 괜찮습니다. 대신 문자로 사이트 주소만 알려주세요.”

“더 필요하신 건 없고요?”

“오늘 저랑 전화한 사실을 다른 사람한테 말하지 않으면 됩니다. 도움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는요. 오히려 저야말로 큰 도움이 되지 못해 죄송합니다. 저, 부탁이 있는데 가끔 이 번호로 안부 문자 한 통씩 보내면…… 예를 들어 설날이나 추석에…….”

“안 됩니다.”

“아, 네…….”

나는 전화를 끊었다. 이름을 직접 알 수 없었다는 것은 유감이지만 피스&호프의 행적을 보면 그 이름 또한 본명이 아닐 수 있다. 차라리 얼굴을 직접 확인하는 것이 빠른 방법일 수 있었다.

나는 티코이를 돌아보고 상황을 설명했다.

“그렇군요.”

자세히 말하지 않아도 티코이는 자신의 역할을 인지했다.

인벤토리에서 장치를 꺼냈는데, 그것은 일반 핸드폰보다 약간 큰 크기의 핸드폰이었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모델로 티코이가 직접 몇 대의 핸드폰을 분해하고 특수 부품을 더해 만들어낸 것이었다.

그는 내가 말해준 사이트에 접속하여 약 오 분간 열심히 뭔가를 조작했다.

“주인님, 이거 같습니다.”

티코이가 내민 화면에는 오늘 찍힌 CCTV 영상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유진이를 비롯해 현아와 혜리처럼 아는 얼굴도 보였다. 상당수의 평범해 보이는 게이머는 모두 미르 길드원 같았다.

하지만 그들과 다소 구분이 되는 몇 명의 게이머가 있었다. 이국적인 용모를 가진 그녀들은 미르 길드원들을 마치 학생을 대하듯 다루었다.

미르 멤버들은 그녀들의 말, 특히 상당한 미모의 냉정한 인상을 가진 여자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자연스럽게 몇 개의 파티로 나누어지고, 간격을 두어 차례로 던전에 들어가는 장면이 이어졌다.

유진이는 그중 첫 번째 조에 속해 있었다. 던전 안까지 CCTV가 비치지는 않기 때문에 티코이에게 말했다.

“화면을 빨리 넘겨볼래?”

“네.”

티코이는 시간을 넘겨 미르 멤버들이 던전에서 나오는 장면이 재생되게 했다. 유진이와 같은 조에 속했던 현아와 혜리까지 밖으로 나왔지만 유진이는 끝내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처음 던전에 들어갔던 무리 중에 유이하게 나오지 않는 것은 유진이와 전체 멤버를 인솔했던 차가운 외모의 여자 둘뿐이었다.

이것으로 확실해졌다. 누가 유진이에게 그런 짓을 한 범인인지.

나는 조금 망설이다가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생각에 노아에게 연락했다. 신호음이 세 번 울리기 전에 그가 전화를 받았다.

“성오 씨.”

목소리 톤이 높은 것으로 미루어 그도 오늘 있었던 일을 신경 쓰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까 내가 전화로 무사하다는 사실을 알리긴 했지만 그의 입장에서는 더 자세히, 많은 것을 알고 싶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피스&호프에 관련된 일이니까 더욱 신경이 쓰이는 게 당연하다.

셰릴의 이력을 보면 그녀와 노아 사이에도 나름의 사연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정도 사이라면 노아 역시 셰릴이 어떤 여자인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제껏 내색하지 않았어도 셰릴이 피스&호프 한국 지부장으로 온 이후 쭉 신경 쓰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나는 차분히 상황을 설명했다. 이번 이야기에는 숨길 부분이 많지 않았다. 피스&호프는 공통의 적이니까.

다만 유진이가 던전에서 OG의 다른 멤버들에게 보살핌을 받고 있는 중이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사진을 보내주십시오.”

노아의 말에 나는 범인이라 여겨지는 여자의 캡처된 사진을 전송했다. 사진을 본 노아의 입에서 기묘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아…….”

“왜 그래요?”

“이 여자가 내가 아는 그 여자가 맞다면 또 성형을 한 모양이군요. 아마 최근 사용한 이름도 본명이 아니었을 겁니다. 그녀의 본명은 아무도 모르죠. 이 여자는 피스&호프 소속이 아닙니다. 프리랜서로 일하는 용병이죠. 그쪽 업계에서는 아주 유명하고 몸값도 비싼 게이머입니다.

A급 이상의 용병은 카오스게이머닷컴에서도 가급적 고용하지 않습니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인물들이라 돈만 주면 무슨 짓이든 하는 족속들이니까요. 의뢰인의 정보도 다른 쪽에 팔아넘길 가능성이 다분합니다. 그런 것까지 감안해서 셰릴이 굳이 그녀를 고용했다는 것은 그만큼 일을 확실하게 처리하고 싶었던 거겠죠. 지난번에 다른 용병들이 전멸당한 걸 생각하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긴 합니다.”

“그 여자를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죠?”

“찾으면, 제거할 생각이십니까?”

“그보다는 유진이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게 먼저예요. 일반적인 치료가 통하지 않아 사경을 헤매는 중이니까요.”

“……알겠습니다. 제가 그녀가 있는 장소를 당장 알아보도록 하죠. 필요하시면 카일과 캐미를 보내드리겠습니다.”

“아니요. 이 일은 가능하면 제가 직접 처리하고 싶습니다.”

“음…….”

노아는 걱정을 하는 것 같았지만 더 말하지 않았다.

“금방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네. 고마워요, 노아.”

“별말씀을요. 어쨌든 이번 일을 계기로 피스&호프와는 더 껄끄러워지겠네요. 뭐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요. 어떤 의미에서는 차라리 마음이 편하네요. 셰릴이 언제 무슨 일을 저지를지 계속 신경 쓰였는데.”

전화를 끊고, 나와 암젤, 티코이는 주차된 차로 가서 자동차에 탑승했다. 암젤은 내 차에 타고 티코이는 자기 차에 탔다.

좌석에 머리를 기대자 기분이 금방 초조해졌다. 일이 이렇게 흘러갈 거였다면 히든 클래스로 백마법 혹은 치유사 계열 직업이 나오길 바랐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지난 일이고 내게 선택권이 없었다는 것은 잘 알지만 유진이가 치명상을 입게 된 것은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큰 충격이었다. 모든 게 내 잘못인 것 같고, 실제로 책임의 상당 부분은 내게 있었다.

잠시 후 메시지 수신음이 울렸다. 노아가 범인이 있는 장소를 알려왔다. 강남에 있는 호텔의 주소, 그리고 호실까지 문자로 보냈다. 이어서 또 하나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몸조심하세요, 성오 씨. 냉정한 말이라는 거 잘 알지만 저에게는 친구 분의 목숨보다 성오 씨의 목숨이 더 소중합니다. 성오 씨는 세상을 바꿀 분입니다. 항상 그걸 잊지 마세요.

나는 노아의 메시지를 보고, 그가 내 비밀을 이미 알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그럴 가능성은 낮지만, 머리가 좋고 눈치가 빠른 사람이기에 어느 정도 느낌은 갖고 있을 것이다.

나는 가만히 메시지의 내용을 곱씹었다. 노아의 말대로 나는 세상을 바꿔야 할 운명을 짊어진 사람이다. 이깟 도발이나 수작질에 당하고 있을 수는 없다.

셰릴의 오만한 표정을 떠올렸다. 결투의 탑에서 만난 어떤 군주보다도 악랄하고, 분노를 자아내는 태도.

그런 자들이 세상 여기저기에 깔려있을 거라 생각하니 가슴이 뜨거워졌다. 이제까지는 단순하고 막연한 느낌이 컸지만 이 일로 더욱 능동적인 동기가 생겼다.

나는 내비게이션에 호텔 주소를 입력하고 시동을 걸었다.

‘지옥을 보여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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