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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왕 클리어러-156화 (156/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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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식왕 : 클리어러 156화

    ‘타로?’

    나는 그가 내게 전음을 보낼 수 있다는 것에 놀랐지만, 그보다 왜 이렇게 다급하게 불러대는지 궁금했다.

    셰릴에게 차원의 통로 이야기를 털어놓으려고 했던 마음이 순간적으로나마 가라앉았다.

    이계의 존재를 알리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다. 더구나 피스&호프에 그 사실을 알리는 것은 악마에게 순수한 영혼을 바치는 것과 같다.

    최후의 최후까지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물론 그렇더라도 유진이를 희생하고 마음은 없지만.

    나는 가볍게 헛기침을 한 뒤 셰릴에게 말했다.

    “잠깐 화장실 좀…….”

    내 입에서 다른 이야기가 흘러나올 거라 기대했던 셰릴은 한숨을 쉬었다. 턱으로 화장실이 있는 방향을 가리켰다.

    “갔다 왔을 땐 더 의미 있는 이야기를 나눠보자고.”

    화장실로 걸어가는 도중에도 타로는 시끄럽게 나를 불러댔다.

    -주인! 주인! 아이참, 자는 거야? 아니면 내 목소리가 안 들려?

    자기가 전음을 보내면서도 제대로 되는지 확신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자기도 주인을 가져본 게 처음일 테니 어쩌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화장실에 들어가 대변기가 있는 칸의 문을 닫은 후에야 타로의 부름에 응답했다.

    “무슨 일이야?”

    -휴~ 나는 안 들리는 줄 알았잖아? 왜 이렇게 대답이 늦어?

    “그럴 만한 사정이 있어. 나도 지금 한가한 상황은 아니야. 무슨 일로 연락한 건데?”

    -여기 던전에 여자 하나가 들어왔는데…… 괴상한 마나에 오염이 돼서 지금 목숨이 오락가락하고 있거든. 근데 이 여자가 자꾸 잠꼬대로 주인의 이름을 불러서…….

    “뭐?”

    나는 눈이 번쩍 뜨였다. 다른 설명이 없어도 타로가 말하는 마나에 오염된 여자가 유진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목숨이 오락가락하고 있다고?”

    -응, 내가 지금까지 쉬지 않고 치료를 하려고 애쓰고 있지만 잘 되지 않아. 그래도 내가 빨리 발견해서 망정이지 안 그랬다면 진즉 죽고 말았을 거야.

    나는 어금니를 깨물었다. 한두 시간 여유가 있다고 말하더니…….

    만약 셰릴에게 차원의 통로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면 말 그대로 헛짓을 할 뻔했다.

    “젠장!”

    나는 닫힌 문을 노려보았다. 지금이라도 당장 나가서 셰릴을 응징하고 싶었다. 아마 어려운 일은 아니겠지.

    하지만 그 후에 닥칠 후폭풍이 가볍지 않다.

    피스&호프는 자기 직원들의 목숨을 중요하게 생각지 않는 악랄한 집단이지만, 다른 졸개가 죽는 것과 셰릴이 죽는 것은 의미가 다르다.

    2인자가 죽는다면 다음엔 누가 나서게 될지는 자명한 일이다.

    ‘두고 보자…….’

    속으로 읊조릴 때, 타로가 불안한 음성으로 말했다.

    -주인, 왜 그래? 타로한테 화났어?

    “아니, 너 때문에 그러는 거 아니야. 그 여자는 내 친구니까 잘 데리고 있어. 금방 갈게.”

    -응, 최선을 다할게!

    나는 문을 통해 나가지 않았다. 셰릴이 나를 저지하는 것은 힘든 일이겠지만 십중팔구 아래층에는 더 많은 부하가 있을 것이다.

    무사히 나간다 하더라도 시간이 너무 많이 지체된다.

    나는 조그만 창이 달린 벽으로 걸어갔다. 마나를 발끝에 모은 뒤, 벽을 걷어찼다.

    쾅!

    요란하게 부수지는 않았지만 벽이 무너졌기 때문에 어느 정도 소음이 났다. 더구나 깨진 벽돌이 아래로 쏟아지면서 더 큰 소리가 울렸다.

    나는 뚫린 벽 밖으로 훌쩍 뛰어내렸다. 몸이 중력을 받기 시작하자 한마디를 내뱉었다.

    “점퍼.”

    점프 스킬에 특화된 방어구가 금세 몸을 덮었다. 날개를 퍼덕이며 가볍게 바닥에 착지했다.

    곧바로 지하 주차장으로 가는데, 소리를 들은 직원 하나가 마주 달려오는 게 보였다.

    도착하자마자 핸드폰을 뺐었던 남자다.

    나는 달리면서 허공에 손을 뻗어 히루도의 창을 꺼냈다.

    주춤대는 남자를 향해 스킬을 날렸다.

    ‘백 개의 창!’

    쿠구구궁!

    신체 강화형 게이머가 스킬 한 방에 종잇조각처럼 나가떨어졌다.

    나는 정신을 잃은 그의 재킷에 손을 넣어 핸드폰을 꺼냈다.

    부가티가 건물을 떠날 때는 더 많은 게이머가 튀어나오고 있었다.

    사이드미러로 슬쩍 보았을 때, 뚫린 벽 안에 분한 표정을 짓고 있는 셰릴이 보였다. 나는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

    “3대 길드라는 것들이, 하는 짓은 저질이야.”

    Chapter 42 - 새로운 동맹 5

    1

    자동차를 몰면서 노아와 티코이에게 차례로 전화를 했다. 노아에게는 자세한 이야기를 하지 않고 나중에 또 연락하겠다고만 했다.

    그는 궁금한 게 많은 눈치였지만 순순히 알았다고 대답했다.

    티코이는 다급하게 전화를 받았다.

    “주인님! 무사하신가요?”

    핸드폰을 앞에 두고 초조하게 기다렸을 그의 모습이 그려져 그럴 상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가볍게 웃음이 나왔다.

    “지금 C-004 던전에 갈 거야. 너랑 암젤, 아린만 그쪽으로 와.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해줄게.”

    “네, 알겠습니다.”

    이미 밤이 깊은 시간이라 던전 주변은 조용했다. 나는 입구 밖에 차를 세우고 NPC들이 오길 기다렸다.

    십 분이 지나지 않아 티코이의 자동차가 나타났다. 그가 운전을 하고 옆 좌석에는 아린이 타고 있었다. 뒷좌석에는 고양이 모습을 한 암젤이 빼꼼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내가 운전석에서 내리자 티코이가 자동차를 세웠다.

    문이 열리고 나서 암젤이 가장 먼저 튀어 나왔다.

    “무슨 일이냐옹? 자꾸 혼자 행동하니까 이런 일이 생기는 거 아니냐옹. 불안해서 티코이네 집에도 못 가겠다옹.”

    “그거랑 상관없으니까 마음대로 다녀. 시간 없으니 빨리 가자.”

    우리가 향하는 곳은 당연히 던전 관리소가 아니었다.

    비밀 통로.

    하늘 던전의 비밀 통로는 지하 던전에 있었다. 던전 마스터가 되면 저절로 위치를 알 수 있기 때문에 나는 자연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문 앞에 도착해 벽을 두드리자 우르릉 소리를 내며 갈라졌다. 이곳이 다른 비밀 통로와 다른 점은 귀환서가 놓인 단상이 두 개라는 점이다.

    하나는 지하 던전으로 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하늘 던전으로 가는 것이었다. 하늘 던전 자체가 공중에 떠 있다 보니 이런 식의 구조로 이루어진 것이다.

    하늘 던전의 최상층으로 가는 페이지를 펼친 뒤, 그 위에 손을 얹었다.

    내가 최상층에 나타나자 기다렸다는 듯 정령이 날아왔다.

    “주인!”

    반가움이 그득한 얼굴이었지만 분위기상 내 뺨을 때리지는 않았다.

    “유진이는 어딨어?”

    “유진이? 아아~ 그 여자 이름이구나. 따라와.”

    타로가 이끈 곳은 던전 마스터의 방이었다. 구름 모양으로 디자인된 지붕이 얹힌 특색 있는 방이다.

    전체적인 분위기가 푸근했다.

    타로의 몸집이 작은 게 반영되었는지 방 자체는 넓지 않았다. 그렇다고 불편한 정도로 작지도 않다.

    각종 집기들이 오밀조밀했다.

    한가운데 구름 모양으로 솟아있는 테이블에는 두 개의 코어가 있었다.

    하나는 갈색, 다른 하나는 흰색. 상반된 속성을 가진 두 개의 코어가 나란히 존재감을 분출했다.

    유진이는 침대에 누워 있었다. 눈을 감고 잠들어 있었는데, 딱 보기에도 상태가 좋지 않았다.

    볼이 움푹 패어 있고, 검은색으로 오염된 핏줄이 얼기설기 도드라져 있다.

    “상태는 어때?”

    “최선을 다하긴 했는데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는 모르겠어. 나도 이렇게 당한 것은 처음 봐서…….”

    “얼마나 시간이 남았는지 모르겠다니?”

    타로는 머뭇대며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내가 혼낼 거라고 생각했는지 날개를 퍼덕여 거리를 띄우고 말했다.

    “다시 살려내긴 힘든 상태야. 주인도 알겠지만 나는 치료사가 아니잖아. 정확히 얼마나 살 수 있을지는 몰라. 하지만…….”

    타로는 고개를 저었다.

    “치료하기는 어려워.”

    나는 가슴에 무겁고 둔중한 것이 내려앉는 느낌을 받았다. 타로의 목소리를 듣고 이곳에 올 때까지 이 정도로 심각한 상황은 가정하지 않았다.

    재빨리 인벤토리에서 포션을 꺼냈다. 가장 상위 포션으로, 웬만한 상처는 모두 치유할 수 있는 아이템이다. 지금 내 레벨에는 사용할 필요가 없는 물건이지만 혹시 몰라 구비하고 있었다.

    유진이의 머리를 살짝 들어 올리고 빛 속성의 마나를 흘려 넣었다. 그녀의 표정이 조금 편안해지고, 입술이 벌어졌다. 나는 그녀의 입안에 포션을 부었다.

    머리를 다시 뉘인 뒤 가슴 한가운데 손을 얹었다. 빛 속성의 마나가 운행되며 포션이 식도를 타고 넘어갔다.

    초조한 기분으로 효과가 나타나길 기다렸다. 하지만 끝내 아무 반응도 없었다.

    “포션으로는 치료할 수 없어. 그걸로 고칠 수 있다면 죽을 거라는 말도 안 했을 거야.”

    “그런 건 아이템을 쓰기 전에 말하라옹.”

    암젤이 앙칼진 말투로 쏘아붙이자 타로가 반발했다.

    “나는 치료사가 아니야. 생각은 했어도 확신은 못 했어.”

    나는 옆에서 파티원들이 뭐라고 하든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어떡해야 되지?’

    포션으로 낫게 할 수 없다면 아주 지독한 스킬에 당했다는 뜻이다.

    나는 타로를 돌아보았다.

    “누가 이랬는지 봤어?”

    “아니, 이상한 느낌이 들어 날아가 봤더니 드로스트들에게 붙잡혀 있었어. 이 여자를 이렇게 만든 녀석이 드로스트들도 조종한 거지. 속성 마나를 아주 잘 다루는 놈이야.”

    “혹시 스킬을 건 자를 찾으면 치료할 수 있을까?”

    타로는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가능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어.”

    “왜?”

    “속성 마나를 오염시키는 스킬을 사용할 수 있다고 해서 그것을 정화하는 스킬까지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야. 하지만 가능성이 없다고 단정 짓기도 어렵지.”

    나는 타로가 이 상황을 매우 부정적으로 여기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내 눈치를 보며 확실하게 말을 하고 있지 않을 뿐이다. 정령인 그가 하는 말이니 누구에게 묻는 것보다 정확하다.

    나는 고통에 찌들어 있는 유진이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새삼 그녀의 존재가 그리웠다. 어린 시절부터 준 것보다 받은 것이 훨씬 많다.

    유진이를 잃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간절했다.

    “서…… 성오…… 야…….”

    그녀의 입술 사이에서 뜻밖에 내 이름이 흘러나왔다. 무슨 꿈을 꾸고 있는지 찡그리고 있던 이마가 잠깐 펴졌다.

    나는 아린을 돌아보았다.

    “여기서 타로랑 같이 유진이를 돌봐줘.”

    아린을 데리고 온 이유가 이것 때문이었다. 그녀의 스킬은 포션의 효과와 동류이지만, 다른 점도 있다.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증상을 늦출 수 있었다.

    아린이 하프를 손에 들고 단호하게 말했다.

    “네, 주인님. 염려 마세요.”

    타로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주인, 어쩔 생각이야?”

    “일단 할 수 있는 걸 해야지.”

    유진이를 이렇게 만든 게이머를 찾는 게 먼저다. 그놈을 찾으면 다음 길이 보일 것이다.

    나는 머릿속으로 방법을 구상하며 암젤에게 말했다.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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