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식왕 클리어러-150화 (150/245)

# 150

독식왕 : 클리어러 150화

정령은 눈알을 굴리며 물었다.

“이 녀석들도 네 친구야?”

“응, 친구이자 동료지.”

그러자 즉각 수보타가 반발했다.

“아이고~ 주인님, 말씀이 과하십니다. 정령! 우리는 모두 계약을 맺었다. 기꺼이 조성오 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있지. 감히 말하건대 주인님이 네게 손을 내밀어주신 것은 인생에 다시없을 기회다. 얼른 네 이름을 말하고 주인님께 무릎을 꿇어라!”

“아…….”

정령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자가 너희들의 주인이라는 거군. 계약으로 맺어지는 관계가 뭔지 나도 잘 알고 있다. 우리 정령에게는 매우 익숙한 것이기도 하지. 계약을 맺는 것은 친구 사이보다도 더 긴밀하고 의미 있는 사이가 된다는 뜻이야.”

친구라는 표현에 과민한 반응을 보이던 정령이 계약이라는 표현에는 진지한 반응을 보였다.

“계약을 맺으면…… 그래, 확실히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 수 있을 거야. 다시 태어나는 것과 같겠지. 정령은 언제나 주인을 만나 계약을 맺길 고대하고 있어. 하지만 임퓨어로 태어난 내게는 잡을 수 없는 꿈이나 마찬가지였지.”

나는 미소를 짓고 말했다.

“그 꿈을 내가 이루게 해줄게.”

“…….”

정령의 입이 저절로 벌어졌다. 날개가 활짝 펴지고 정령 특유의 마나가 점점이 떠올랐다.

“너라면…… 그래, 나를 이긴 녀석이기도 하고…….”

자기를 이겼다는 것은 결국 그동안 던전에서 게이머들과 싸웠던 게 백 퍼센트 실력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잘은 몰라도 아마 던전에 들어온 뒤 던전 마스터로서의 자기 역할을 깨달은 거겠지.

정령은 가만히 눈을 감았다. 절반은 흙의 정령, 절반은 하늘 정령의 모습을 한 그에게서 환한 빛이 분사되었다.

잠시 뒤.

“음…….”

내 입에서 감탄이 흘러나왔다.

정령이 인간형으로 변신할 수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코앞에서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정령은 인간보다 자기네가 우월한 존재라고 믿는다. 그래서 굳이 평소에는 하등한 존재로 변신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변신을 한 정령은 여전히 알몸이었다. 삐죽삐죽한 백발에 마른 몸을 가진 남자.

신장은 180센티미터쯤 되고 얼굴은 앳돼 보였다.

알몸이기는 하지만 생식기가 없어서 딱히 문제 삼기 어려웠다. 오히려 신비로운 느낌이 들었다. 중요한 것은-물론 취향 차이겠지만- 남녀를 불문하고 한눈에 호감을 느낄 만한 외모라는 것이다.

모델이 된다면 당장 그 바닥을 평정할 수 있을 만큼.

정령이 장난스럽게 웃어보였다.

“여성체로 변신할 걸 그랬나? 그것도 할 수 있는데.”

“아니야, 괜찮아.”

정령에게는 성별에 따른 구분이 무의미하다. 아마 마음만 먹으면 생식기를 만들어내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정령은 표정을 가다듬고 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내 이름은 타로. 당신과 계약을 맺길 희망한다.”

엄숙하게 오른 손바닥을 내밀었다. 나는 그 위에 내 손을 포갰다.

“나 조성오는 너의 주인으로서 계약을 엄숙히 이행하겠다.”

[정령 ‘타로’가 파티에 합류했습니다. 타로는 NPC에 준한 존재로 간주됩니다.]

[C-004 던전의 마스터가 되었습니다.]

[퀘스트 ‘C급 던전을 두 개 이상 공략하라’를 달성했습니다.]

[보상으로 스킬 에그(A급 이상 보장)를 얻었습니다.]

밝은 빛이 쪼개지더니 타로가 다시 정령이 되었다. 어쩐지 그의 몸이 더 커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분 탓이 아니겠지.’

파티에 합류하여 NPC에 준한 존재가 되었으니 그의 레벨도 나와 맞춰졌을 것이다. 그밖에도 이익이 되었으면 됐지 그의 입장에서 손해 볼 일은 없었을 터.

“우와! 이게 뭐야! 힘이 막 넘쳐흐른다!”

타로가 정신 사납게 머리 위를 빙글빙글 날아다녔다.

“계약이라는 게 이렇게 좋은 거구나! 진작 할 걸 그랬네!”

자기 입으로 잡을 수 없는 꿈이었다고 했으면서 벌써 까먹은 모양이다.

수보타가 정령의 오해를 바로잡아주었다.

“어허! 네 힘이 세진 건 계약을 맺어서가 아니야. 바로 ‘조성오 님’과 계약을 맺었기 때문이지. 나는 지금의 주인님을 만나기 전에 여러 명의 주인을 거쳤지만 지금처럼 능력이 강했던 적이 없다. 감사히 여기도록!”

오래도록 슬라둠의 시종 겸 집사 노릇을 했던 녀석이라 습관적으로 위계를 잡으려 했다.

“아! 그렇구나!”

타로가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나를 바라보았다. 휙 하고 날아오더니 조그만 손으로 내 뺨을 찰싹찰싹 때렸다.

“좋다! 좋아! 타로는 주인이 정말 좋다!”

자기 딴에는 기뻐서 하는 행동이지만 그렇다고 주인의 뺨을 때리다니.

여자 정령이었다면 얌전히 날아와서 뽀뽀를 했을 텐데.

물론 그랬다간 암젤이나 아린이 가만있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타로를 밀어내며 말했다.

“자, 이제 볼일은 끝났으니 돌아가자.”

“어디로?”

“나랑 계약을 맺었으니 같이 살아야지. 물론 나랑 사는 게 아니라 티코이네 집에서 살게 되겠지만.”

“에~ 엥?”

타로가 기겁을 했다.

“여기서 나가 살아야 한다고?”

“왜? 문제 있어?”

“나는 임퓨어야. 한 가지 속성만 있는 곳에서는 살 수 없어. 가능하면 여기서 계속 살고 싶은데…….”

나는 타로의 말을 생각해 봤다. 함께 행동할 수 없으면 파티원으로서 의미가 없는 것 아닐까?

그렇다고 굳이 데리고 나갔다가는 타로의 힘을 약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었다.

“고민할 거 없어. 주인님과 나는 이제 계약을 맺은 사이야. 주인님이 부르면 언제든 날아갈게.”

“날아온다고?”

나는 반문했다가 금방 그게 무슨 뜻인지 이해했다. 정령은 다른 생명체들과는 다른 존재이니 상식선에서 생각해선 안 될 것이다.

진짜로 날아온다는 게 아니라 내 옆에 곧장 나타날 수 있다는 뜻이겠지.

“좋아. 그럼 지금까지처럼 이곳 던전은 계속 네가 관리하도록 해.”

나는 시스템 메뉴를 열어 C-003, C-004 던전의 마스터 역할을 타로에게 위임했다.

“대신 힘이 세졌다고 여기 들어오는 게이머들을 막 대해선 안 돼. 하던 대로만 해.”

“좋아, 그렇게 할게.”

타로는 기분이 좋은지 내 또 뺨을 찰싹찰싹 때렸다.

‘거참…….’

Chapter 41 - 새로운 동맹 4

1

미르 길드원들은 피스&호프에서 파견된 게이머들과 함께 던전에 들어갔다.

제니가 회의실에 멤버를 모아 앞으로의 방침을 밝힌 뒤로 서로의 관계는 완전히 달라졌다.

미르 멤버들은 의심을 거두고 피스&호프에서 파견 나온 제니 일행을 믿기 시작했고, 그 결과 길드를 떠난 몇몇 멤버가 다시 돌아오기도 했다.

유진은 당연히 이 변화가 반가웠다. 자신에게 미르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길드니까.

이왕이면 다른 곳으로 옮기지 않고 이곳에 계속 머물 수 있길 바랐다.

좀 더 시야를 넓혀 생각하면 길드가 발전한다는 것은 결코 나쁜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사라지거나, 거대 길드에 흡수되는 길드가 한둘이 아니었으니까.

한때는 미르도 피스&호프에 먹혀 버리는 게 아닌가 싶었지만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을 듯했다.

감정을 떼어 놓고 생각하면 피스&호프가 굳이 미르를 삼킨다는 것도 이상한 일이다.

이 조그만 길드를 합병하든 안 하든 그들 입장에서는 큰 차이가 없을 테니까.

오히려 한국의 중소 길드에 도움을 주어 이미지를 좋게 만드는 게 더 도움이 될 것이다.

제니 일행 네 명은 모두 상당한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 중에 제니가 가장 뛰어났지만, 나머지 멤버들도 크게 뒤지지 않았다.

제니 일행은 지도하기 편하도록 미르 게이머들을 넷으로 쪼개었다. 각자 한 명씩 붙어 멘토 역할을 하며 효율적인 던전 공략을 지도하겠다는 취지였다.

유진이 속한 팀은 제니가 붙은 A팀이었다. 그녀가 역할을 마치고 돌아가면 유진이 부길드장을 맡을 테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밖에도 혜리와 현아가 같은 팀에 배정되었다.

제니가 연습 장소로 삼은 던전은 일명 쌍둥이 던전이라 불리는 던전이었다.

물론 C급 던전은 쉽지 않은 난이도지만 한 팀만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네 팀, 16명이 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에 크게 걱정할 일은 못되었다.

게다가 이미 미르는 이 던전을 공략한 경험이 있다. 미르가 감당할 수 있는 한계가 바로 C급 던전까지였다.

하늘 던전 11층.

미르 멤버들과 제니 일행은 모두 같은 층에 입장했지만 팀 별로 각자 적당한 거리를 띄우고 있었다.

가장 깊숙이 들어간 팀이 바로 유진이가 속한 A팀.

던전을 공략해 들어가는 동안 제니는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혜리 씨, 매지션이 원거리 포지션이라고 너무 긴장을 늦추면 안 됩니다. 동료들의 목숨이 자신에게 달려 있고, 또 동료들이 죽으면 자기 목숨도 위험하다고 생각하셔야 되요. 공중에서 날아오는 몬스터를 가장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게이머가 바로 매지션입니다.

몬스터에게 눈을 떼지 말고 동선을 읽으세요. 집중력을 잃는 순간 목이 날아간다고 생각하십시오.”

“현아 씨! 당신은 너무 저돌적이에요. 고스트형 게이머의 요체는 어디까지나 고스트입니다. 현아 씨 자신이 싸우는 게 아니란 말이에요. 고스트로 공격할 생각만 하지 말고 현아 씨 몸을 보호하세요.

마나를 나눠서 사용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공격이 2라면 방어는 1이에요. 템포를 잘 기억해서 늘 활용할 줄 알아야 합니다.”

멤버들은 처음에 제니의 지도를 잘 이해하지 못했다. 자신들이 평소에 공략하던 것과 발상 자체가 달랐으니까. 던전 안에서 죽을 수도 있다니, 생각한 적도 없는 일이다.

죽을 수도 있다면 어떤 게이머가 던전에 들어오겠는가?

적당히 안전이 보장된 상태에서 적당히 돈을 버는 것이 게이머란 직업인 것이다.

그런 생각을 꿰뚫어 보고 제니가 말했다.

“안이한 생각으로는 절대 성장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평소보다 20퍼센트만 더 집중하면 훨씬 더 빨리 성장할 수 있어요. 각성을 했다고 끝이 아닙니다. 욕심을 가지고 더 위를 바라보세요!”

16인이 들어왔다고 해도 네 팀으로 쪼개졌으니 한 팀 당 네 명씩밖에 되지 않는다. 따로 떨어져서 공략하다보니 결코 쉬운 공략은 아니었다.

더구나 제니는 조언만 할 뿐이지, 자신이 직접 나서지는 않았다.

일행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제니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내가 지금까지 했던 것은 진짜가 아니었구나!’

유진은 왠지 모르게 머릿속으로 성오의 모습을 그렸다. 어쩐지 그가 자신보다 훨씬 능숙하게 던전을 공략했던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것은 잘못된 기억이었다. 성오와 그가 데리고 온 여자 게이머들은 매우 서툴렀으니까. 그들을 이끈 것은 바로 자신과 혜리, 현아 언니였다.

“유진 씨는 기본이 되어 있으시네요. 역시 차기 부길드장답습니다.”

등 뒤에서 들려온 제니의 칭찬에 유진의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그려졌다.

0